낭독의 공동체
근대 이전만 해도 이야기책을 혼자 읽는 것은 흔한 일이 아니었다. 더욱이 책을 소리 내지 않고 눈으로만 읽는 ‘묵독(黙讀)’의 관행은 좀처럼 찾아보기 힘든 일이었다. 책 읽기는 대부분 소리 내어 읽는 ‘낭독’의 방식을 취했다. 전기수는 직업적인 낭독자였고 이들의 활동은 근대 사회에 접어들어서도 계속되었다. 그러나 이제 글을 읽고 쓸 줄 아는 사람들이 이전 시대보다 증가했고, 신문과 잡지의 등장으로 읽을거리 또한 증가하면서 전기수는 점점 사라져갔다. 그러나 전기수가 하던 일, 즉 이야기 혹은 책을 낭독하고 구연하는 전통은 지속되었다.
근대 초기 신문과 잡지를 비롯한 다양한 서적은 지금처럼 전적으로 개인이 구독하는 형태가 아니었다. 18세기 중반에 세책방이 있었다면 20세기 초에는 책 대여점에 해당하는 신문종람소나 서적종람소가 등장했다. 민중들은 이곳에서 책이나 신문을 대여했다.

글을 읽을 줄 아는 사람들은 누구나 앞선 시대의 전기수처럼 여러 사람들 앞에서 글을 낭독했다. 그렇지만 이들의 낭독은 전기수와 같은 직업적 개념이 아니었고, 돈을 받은 것도 아니었다. 근대 초기 신문 한 장은 약 60여 명의 공동 독자를 갖고 있었다고 추정된다. 이러한 신문과 잡지 읽기 방식의 일상화로 사람들은 세상 돌아가는 사정을 함께 공유하고 이해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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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 동마다 넓은 집으로 신문종람소(新聞縱覽所)를 정하고 저녁을 먹은 후에 동네의 남녀노소가 신문종람소에 모여 각각 한 자리씩 차지하고 쭉 둘러앉아 혹 담배를 피우고 혹 아이를 안고 혹 짚신을 삼고 자리를 짜기도 하며 혹 옷을 짓고 물레질을 하기도 하는데, 유식한 사람이 높은 의자에 앉아 신문을 낭독한 후에 의미를 설명하면 내외국 사정과 고금의 형편을 모를 것 없이 다 알게 되었다.
―김유탁, “신문 광포(廣布) 의견서”, 〈서우〉, 190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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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독의 특징은 파편화되어 있는 개인들을 하나의 공동체로 묶어주는 역할을 한다는 점이다. 묵독이 고립된 개인을 양산한다면 낭독은 공동체적 개인을 길러낸다. 근대에 들어서 전기수와 같은 낭독의 문화가 사라지고 묵독이라는 독서 방식이 등장한 것은 근대적인 ‘공적 영역’이 생겨났기 때문이다. 학교, 도서관, 기차, 버스 등과 같은 공적 장소에서 책을 읽을 경우 묵독을 해야만 했다. 그것이 근대적인 ‘매너’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근대적인 공적 영역의 탄생과 함께 낭독의 문화가 점점 사라지기는 했지만 완전히 낭독의 문화가 자취를 감춘 것은 아니었다.
식민지 조선의 소설가였던 한설야의 회고에 의하면 식민지 조선에서도 옛날의 전기수와 같은 역할을 했던 이야기꾼들이 여전히 존재했다.

이들은 ‘신소설’ 혹은 옛날 소설을 파는 장사치들이었다. 저잣거리를 돌아다니며 책을 팔았던 책장사들은 책만 파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이 팔 책을 여러 사람들 앞에서 구연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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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기에는 허줄한 사나이가 가스등을 앞에 놓고 앉아 있으며, 그 사나이는 무슨 책을 펴 들고 고래고래 소리 높여 읽고 있었다. 울긋불긋 악물스러운 빛깔로 그려진 서툰 그림을 그린 표지 위에 ‘신소설’이라 박혀 있고 그 아래에 소설 제명이 보다 큰 글자로 박혀 있었다. 그 사나이는 이 소설을 팔러 나온 것이며 그리하여 밤마다 목청을 뽑아가며 신소설을 낭송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사나이의 주위에는 허줄하게 차린 사람들이 언제나 삥 둘러서 있었다.
얼른 보아 내 눈으로 판단할 수 있는 사람은 인력거꾼, 행랑어멈 같은 뒷골목 사람들이었다. 거기에는 젊은 여인의 얼굴도 띄엄띄엄 섞여 있었다. 가운데 앉은 사나이가 신이 나서 점점 목청을 뽑을수록 사람들은 귀담아 듣느라고 숨소리를 죽였다.
하긴 그도 그럴 것이 가만히 들으려니까 그 사나이가 읽는 신소설에는 지금 그것을 듣고 있는 사람의 설움과 비슷한 것들이 적지 않게 적혀 있는 것이다. (……) 그들은 소설에 그려져 있는 것보다 더한 비극이 앞날에 자기들에게로 달려들 것을 방불히 내다보는 듯이 마침내 어떤 아낙네는 흑흑 느껴 울기 시작했다. (……) 나는 그 뒤부터 매일같이 이 다리 밑 풍경을 찾아 다녔다. 신소설 장사치들은 동대문께 다리 밑에서 시작하여 종로 쪽 다리 밑으로 이동하면서 밤마다 소설 낭송을 했다.
구차한 사람들이 주머니를 탈탈 털어서 그 소설들을 샀다. 그 소설 내용은 거지반 다 가정 비극이지만 이 비극은 이미 가정 범위를 벗어나서 커다란 사회 문제로 되고 있었다.
―한설야, “나의 인간수업, 작가수업”, 〈우리시대의 작가수업〉, 역락,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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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장사들의 구성진 낭독 솜씨 여하에 따라 책의 판매가 결정되었으니 어떤 면에서 식민지 시대의 책장사들은 전기수의 후예였다. 전기수가 전문적으로 책을 읽어주고 대가를 받았다면, 신소설이나 옛날 소설을 판매했던 책장사들은 자신들이 보유한 책을 판매하기 위하여 책을 읽어주었던 것이다. 식민지 시기까지 이야기책에 매료되었던 독자들은 ‘보는 책’보다 ‘듣는 책’에 더 예민하고 풍부한 감각의 촉수를 뻗었던 것이다. 이러한 이야기책 읽기 문화는 1960년대까지 그 생명력을 유지했다. ‘글패’라고 불렸던 이들은 식민지 시대 책상사가 그랬던 것처럼 책을 팔기 위해 장터를 돌아다니며 민중들에게 책을 읽어주었다. 그들의 책 읽기는 책을 팔기 위한 일종의 공연이었던 셈이다. 전기수가 혼자 활동을 했다면, 글패는 말 그대로 여럿이 함께 돌아다니며 책을 팔고 이야기책을 구연하던 무리들이었다. 이제 낭독은 텔레비전 프로그램에서나 볼 수 있는 향수어린 풍경이 되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