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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수화기를 내려놓을 시간
식민지 시기 여자 전화교환수는 사람들의 관계를 매개해주는 소리의 네트워커였다. 그네들이 했던 일은 통신 산업에서 매우 중요한 영역이었지만, 대부분 여성이라는 이유로, 서비스직에 몸담고 있다는 이유로 세상으로부터 홀대받은 것으로 보인다.
그뿐만이 아니다. 전화교환수는 근대 문명의 ‘진보’와 함께 과학이 발전하면서 생긴 신종 직업이었다. 전화교환수는 어떤 면에서는 ‘문명’의 혜택을 받은 직업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계속해서 진보하는 문명과 과학은 전화교환수를 ‘퇴물’로 만들어버리기도 했다.
1935년에 이르면 공전식 전화교환기 대신 ‘자동식 전화교환기’가 등장한다. 이제 전화교환수가 일일이 전화선을 연결시킬 필요가 없어진 것이다. 1935년 10월 1일 경성중앙전화국에 근무하던 전화교환수 100명이 퇴직했다. 신문에는 퇴직이라고 나왔지만, 지금으로 말하면 정리 해고된 것이다.

식민지 시기의 ‘언론’은 전화교환수의 힘겨운 노동 환경을 이야기하기는 했지만, 그들의 노동 환경을 어떻게 개선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좀처럼 의견은 내놓지 않았다. 이는 식민지 시기라는 특수한 상황 때문만은 아니었고, 해방 후에도 마찬가지였다. 1945년 10월 5일 새로운 종합 일간지가 창간되었다. 시기에 걸맞게 그 이름도 〈자유신문〉이었다.
“먼저 찾을 것은 ‘우리말’―일상생활에서 일본어를 말살하라”. 1945년 10월 23일자 〈자유신문〉의 기사 제목이다. 오랫동안 일제의 ‘강압’에 의해 ‘우리말’을 빼앗겼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말이야말로 민족정신의 요체라고 믿어왔던 지식인들이었기에 빼앗긴 ‘우리말’에 대한 사랑은 더더욱 깊었을 것이다. ‘우리말’을 찾기 위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일상생활에서 일본어를 ‘말살’하는 것이었는데, 그 첫 번째 대상이 전화교환수의 ‘말’이었다. ‘모시모시, 하이, 난방’이 문제였던 셈이다. 매일 접하는 전화교환수의 일본어야말로 가장 먼저 말살하고 척결해야 할 식민지의 잔재였던 것이다. 틀린 말은 결코 아니었다. 그렇지만 여기에 전화교환수의 ‘빼앗긴 청춘’도 다시 ‘찾아주자’고 말했으면 더 좋았을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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