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병통치약의 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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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각 신문에는 특색이 있다. 매약광고가 8할을 점령한 사실이 그것이다. 말하길, 매독약, 임질약, 폐병약, 성 흥분약. 외국 사람이 보면 조선인은 모다 화류병자라고 할 일. 광고료도 귀하나 민족의 체면은 더 귀하다.
―“담배 한 대 피워 물고”, 〈삼천리〉, 1931년 4월 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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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제국 시기와 식민지 시기에 민간에 유통되어 인기를 끌었던 대부분의 약은 ‘매약(賣藥)’이었다. 약종상은 약품을 판매할 수 있는 허가를 지닌 사람이었으며, 제약자는 약품을 제조하여 판매하는 사람을 뜻했고, 매약업자는 매약으로 제조된 제품을 판매하는 사람이었다. 매약이란 의사의 처방전에 따라 조제한 약이 아닌, 주치병과 약효를 붙여 포장된 약품을 뜻한다. 지금으로 말하면 ‘활명수’와 같은 ‘일반의약품’을 뜻한다. 이 매약만을 판매할 수 있는 사람을 매약업자 혹은 매약상(賣藥商)이라 한다. 국내에서 개발된 매약도 있었지만, 일본에서 수입된 매약이 많았다. 매약 제조사들은 특정한 주치병에만 효과가 있는 약을 마치 만병통치약인 것처럼 과대광고를 했다. 신문은 ‘사실’을 전한다고 믿었던 당시의 분위기 속에서 사람들은 약 광고 또한 많은 부분을 사실로 받아들였다.
일례로 건뇌환(健腦丸)을 복용하면 두통, 졸증, 중풍, 변비, 이명, 건망증, 우울증, 신경병, 뇌막염, 뇌충혈 등 각종 질병에 효과가 있다는 선전은 거의 ‘만병통치’의 개념에 가까운 것이었다. 이 뿐만 아니라 제약회사들은 근대적인 ‘과학’과 전근대적이라 불리는 ‘비과학적인 초월의 세계’를 결합하는 방식으로 광고를 만들어 하나의 약을 복용하면 마치 장생불사하고 회춘보원(回春保元)할 수 있는 착각을 불러일으키게 만들었다. 약 광고에는 ‘신약(神藥)’, ‘영약(靈藥)’, ‘묘약(妙藥)’, ‘기사회생(起死回生)’과 같은 자극적인 문구가 꼭 들어가 있었다.
1910년 9월 2일자 〈매일신보〉 광고에는 화평당의 ‘팔보단(八寶丹)’, ‘소생단’, ‘회생수’를 비롯한 다양한 약 광고가 실렸는데, 그 광고의 중심에 ‘기사회생’이란 큼지막한 문구를 박아 놓았다. 화평당은 ‘기사회생’이란 말로는 도저히 ‘팔보단’의 효험을 선전하기에 부족하다고 생각했던지 1911년에 이르면 시각적 이미지를 동원한다. 일단 광고 문구를 보면 다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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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명한 오늘날 교통기관으로 제일 중요한 철도를 알지 못하는 자는 있을지라도 우리 화평당의 팔보단을 알지 못하고 사용하지 않는 사람은 어디 있으리오.
― “광고”, 〈매일신보〉, 1911년 1월 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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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고에는 증기를 내품는 시커먼 기차가 그려져 있고, 기차의 몸통에 ‘팔보단’을 적어 넣었다. 기차의 이름이 ‘팔보단’인 셈이었다. 기차라는 근대 과학의 총아와 팔보단이 결합하고, 더 나아가 팔보단이 기차보다 더 유명하다는 것을 알리는 화평당의 광고 전략이었다. 화평당만 그랬던 것은 아니었다. 신정약방의 ‘인단(仁丹)’ 광고에는 근대식 공장 이미지가 들어갔고, 청심보명단 광고에는 양복을 입은 신사가 조선인들이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비행선을 가리키는 모습의 이미지를 사용했는데, 비행선에 ‘청심보명단’이 새겨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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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행선은 지상에서 이륙하여 억천만리(億千萬里)의 공중을 정복하고, 보명단은 해우(海隅)에서 나와 억천만인(億千萬人)의 위병을 정복한다.
― “광고”, 〈매일신보〉, 1911년 4월 2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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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서구를 따라잡았다고 생각했던 일본에서 생산된 매약인 ‘인단’의 광고 역시 비과학적이고 비합리적이긴 마찬가지였다. 제약회사에서 설명하는 인단의 효능은 멀미, 두통, 현기증, 복통, 소화불량, 구취제거, 과음 후 각성 효고, 감기, 전염병 예방 등이었는데, 거의 만병통치약 수준이었다. 이처럼 제약회사들은 자신들이 개발한 약의 효능을 과대해서 광고하거나 부분적으로는 허위 광고를 하는 것을 주저하지 않았다. 많이 팔면 그만이었다.

제약회사들은 자신들이 판매하고 있는 약을 선전하기 위해서 ‘만병통치’의 개념과 ‘신약’, ‘묘약’, ‘영약’이라는 초월적인 세계에서나 사용될 법한 문구를 사용했으며, 함께 이것이 마친 근대적이고 과학적이고 문명적인 것처럼 기차와 비행선과 공장의 이미지를 겹쳐놓았다. 그리하여 이러한 약들의 ‘만병통치’라는 효능이 마치 과학적 연구의 산물인 것처럼 소비자들을 오해하게 만들었다. 더군다나 이들 제약회사에서 명명한 약의 이름 또한 소비자들을 초월적인 세계로 빠져들게 하는, 마치 불로장생의 세계로 진입할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일본에게 인단이 있었다면 식민지 조선에게는 팔보단, 청심보명단이 있었는데, 이 약명의 공통점은 ‘단(丹)’을 사용했다는 점이었다. ‘단’이란 일반적으로 수은이나 유황 등이 함유된 광물성 약제로 가열과 서 가열과정, 승화 과정을 거치 만든 화합 제제를 뜻한다. 하지만 이 ‘단’자는 불로장생을 의미하는 ‘선단(仙丹)’ 세계의 환유적 소재였다.
매약 전쟁 속에서 살아남기 위한 제약회사들의 광고 전략은 도를 넘는 것이었다. 총독부가 앞장서서 제약회사들의 과대/허위 광고를 문제 삼았지만, 제약회사들의 약 광고 관행은 쉽사리 바뀌지 않았다. 또한 약을 구매하는 소비자들은 언제나 ‘건강 염려증’에 걸릴 준비가 되어 있었다. 인단, 청심보명단, 팔보단 등은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갔다. 소비자들은 당대의 인기 있는 약을 구매하기 위해 제약회사의 지정 판매처인 약방으로 발걸음을 옮겼지만, 이러한 약들을 약방에서만 구입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매약행상이 전국을 떠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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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약청매업(賣藥請賣業)은 본업을 삼아도 넉넉히 될 수 있으나 부업으로 가정의 부인이 능히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양약국(洋藥局)을 내는 데는 세 가지가 있습니다. 즉 제약사(藥劑師)가 경영하는 양약국과 약품만을 파는 양약국과 그 외에 매약―이 매약이라는 것은 의사나 약제사의 설명이 필요 없고 그대로 복용할 수 있는 즉 다시 말하면 봉지나 갑에 넣어서 설명서와 정가가 박혀 있는 것―을 판매하는 매약청매업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물론 별다른 면허도 영업세도 필요하지 않고 누구든지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우선 한 50원 이나 100원만을 가지고 시작한다면 그대로 보통 집에서 별다른 설비도 할 것이 없이 마치 한방약국(漢方藥局) 같이 그대로 자기가 거처하는 방안에다 여러 가지 약품을 사다가 두고 대문에 조그만 간판을 붙이고 할 수 있고(……)
― “아무 가정에서나 할 수 있는 신식 부업 몇 가지, 200원 자본으로 매월 90원 수입되는 매약청매업”, 〈별건곤〉, 1929년 4월 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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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 기관이 부족한 식민지 조선에서 매약은 누구나 팔 수 있었다. 일반의약품이었던 매약을 판매한다고 해서 특별한 규제나 처벌을 받는 것은 아니었다. 매약회사의 약을 도매로 받아다가 소매로 팔면 그만이었다. 매약 판매는 수익이 좋은 편이었다. 그래서 너도나도 매약에 손을 대는 경우가 흔했다. 매약회사에서는 각종 신약이 출시되었고, 매약상인들은 이 약을 떼다 팔았다. 수익이 많이 나는 장사였기 때문에 고학생들이 학비를 벌기 위해서 매약행상을 하는 경우도 있었고, 학교의 경비가 부족하자 교장이 교사들을 데리고 매약행상을 떠나는 경우도 있었다. 이런 경우에는 전문적인 매약행상이 아니었다. 학교의 자금부족, 학비 부족, 어려운 가정 형편 등으로 인한 궁여지책이었다. 이와는 달리 전문적으로 매약행상을 하는 경우가 있었다. 이들은 매약상회 소속의 매약행상들이었는데, 매약을 가지고 전국 팔도를 누비며 약을 팔았던 약장수였다.
시골 장터의 약장수들은 손풍금을 켜기도 하고 바이올린―당시의 말로는 깽깽이―을 켜며 호객 행위를 했다. 가끔 텔레비전을 통해 볼 수 있는 노래도 하고 북도 치고 서커스도 하며 호객 행위를 하는 약장수는 그다지 많지 않았다. 시골 사람들은 약장수의 손풍금과 바이올린 소리와 재치 있는 입담에 넘어가 약을 구매했는데, 이렇게 약을 파는 약장수는 그래도 ‘좋은 약장수’였다. 약장수, 즉 매약행상이 사회적으로 주목을 받은 것은 그들의 판매 전략이 사람들에게 유흥판을 제공했기 때문이 아니라 불법행위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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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위 행상매약청매업자들이 경향 각처로 출몰하면서 강압적으로 매약을 하는 동시에 더욱이 극빈자 농민의 고혈을 착취하는 불법행동이 비일비재한 현상에 이르러 경찰당국에서도 매우 단속에 머리를 앓는 터인바 이제 그들 청매업자의 가증한 행동을 적발하건대 그들 청매업자는 그 수가 전 조선에 2, 3천명에 달하는 터로 (……) 그들은 음력으로 정월 초순경이면 각각 소속된 상회에서 20전 짜리 약을 약 7전에 사가지고 각각 지가의 배치할 곳을 찾아 떠나는데, 방방곡곡에 어느 곳에 그들의 발길이 가지 아니하는 곳이 없는 터이며 더욱 민지가 깨지 못하고 세상 물정을 자세히 알지 못하는 촌 중에서도 두메산골을 찾아가 가증한 수단으로 1원짜리 약포를 주인이 없거나 있거나 관계없이 아무 말 없이 약을 던져주고 호주의 성명을 기입하여 두며 더욱이 촌사람들이 약을 받지 않으면 그 때에는, 이것이 어떤 약인줄 아느냐! 이것은 면소(面所)에서 배치하는 것이다. 또 군(郡)에서 경찰서에서 위생을 보급하기 위하여 주는 것이라고 한 후 어리석은 촌민의 마음을 두렵게 하여 강제로 약을 맡긴 후 한 여름을 지나고 가을이 되면 약 값을 받게 되는 터인바 그때에는 두 세 사람씩 때를 지어가지고 강제로 약값을 징수하며 만약 약 값을 내지 않는 사람이 있으면 심하면 구타까지 가하며 그 집안에 있는 물건을 아무 것이나 뺏으며 잔인무도한 행동을 하는 터인바이라. (……) 약품도 상당히 효과가 있는 약품이면 어느 방면으로 보아 묵과할 수 있을지 모르나 가령 예를 들면 금계랍(金鷄蠟)에 밀가루를 넣어 팔며 (……) 말할 수 없는 부정 매약 행동이 많다.
― “전조선 농촌을 무대로 부정 매약상 발호”, 〈중외일보〉, 1928년 1월 3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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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 기관의 턱없는 부족은 매약상이 활개 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했다. 약장수는 의료 혜택을 제대로 받지 못하는 농어촌을 돌면서 약을 팔았다. 물론 정직하게 약을 판매한 약장수들도 있었겠지만, 순진한 시골 사람들의 속여 폭리를 취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렇지만 부정한 수단으로 폭리를 취한 약장수들은 대부분 유령단체에 소속된 약장수들이 많았다고 한다. 서울에는 조선매약상회, 조선상회, 판본제약소 등 거대 매약상회가 있었다. 사실을 확인할 수는 없지만 이 회사들은 자신들이 고용한 매약행상들은 불법적으로 매약 판매를 하지 않는다고 못 박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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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창원군 청가면 속선리 19번지에 본적을 두고 각처로 약을 팔며 돌아다니는 조병식은 충남 논산군 강경면 북정에 사는 김현순과 공모하여 ‘와세링’에 붉은 물감을 섞은 후 그것을 조가비에 넣어 가지고 상처 난 곳과 기타 여러 가지 종처에 효험이 많은 곰의 기름이니 두꺼비의 기름이니 하여 지난 달 28일에 안주군 율산리 거리에서 감언이설로 4원 50전을 편취하다가 안주 경찰서 경찰에게 체포되어 취조한 결과 두 사람은 신의주에서도 그와 같은 방법으로 기기한 일이 판명되어 지난 5일에 안주지청 검사국으로 서류와 함께 압송되었다더라.
― “주의할 매약상”, 〈동아일보〉, 1922년 7월 1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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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장수들의 불법행위로 인해 피해를 보는 사람들이 많아졌을 뿐 아니라, 엉터리로 제조한 약을 먹고 죽는 사람까지 생겨났다. 조선매약상회를 비롯한 나름대로 이름을 알린 매약상회들도 불법 매약행상들을 단속해야 한다고 연일 목소리를 높였다. 경찰도 나서서 불법 매약행상을 단속했지만, 검거된 불법 매약행상은 미미했다. 또한 매약에 대한 규제가 엄격하지 않아서 검증받지 않은 약재로 매약을 만들어 파는 매약행상도 등장했으며, 기존의 매약에 다른 첨가물을 넣어 소비자를 속이는 매약행상도 한 둘이 아니었다. 공권력이 불법 매약행상 단속에 나섰지만 불법 매약행상의 활동은 좀처럼 줄어들지 않았다. 쉽게 돈을 벌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우리는 기억하고 싶은 것만을 기억하는지도 모른다. 우리는 다양한 쇼를 보여주며 관객들을 즐겁게 해주던, 시골 장터 놀이판을 주름잡았던 ‘추억’ 속의 ‘약장수’만을 기억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시골 장터를 떠돌며 ‘만병통치약’을 팔았던 약장수의 그 ‘만병통치약’에 우리는 실소를 보내지만, 그 만병통치약이란 개념을 만들어낸 것은 떠돌이 약장수가 아니라 근대 제약회사였다. 그 제약회사야말로 진정한 허풍선이 ‘약장수’가 아니겠는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