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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팔이 한의사는 가라!
서구에서 태동한 근대 의학과 생체 권력은 19세기 조선에도 유입되었다. 유길준, 서재필 등을 비롯한 많은 계몽 사상가들은 문명국가 건설의 일환으로 서구 의학의 중요성을 설파했다. 국민의 건강이 곧 막강한 국력의 밑받침이 된다는 것이 계몽 사상가들의 논리였다. 계몽 사상가들은 서구의 의료 시스템을 갈망했지만, 그 갈망이 조선 사회에서 곧바로 실현되지는 않았다. 조선 사회에 서구식 의료 시스템이 도입된 것은 개신교의 의료 선교 덕택이었다.
조선에서 기독교가 선교 활동의 자유와 함께 국가로부터 보호와 지원을 받게 된 것은 다름 아닌 선교사 알렌이 갑신정변 때에 그의 ‘뛰어난’ 의술로 민영익을 사경에서 구출했기 때문이었다. 이 일이 계기였다. 알렌은 민영익의 생명을 구한 공로를 인정받아 고종을 알현하게 된다. 이때 알렌은 고종으로부터 서울에 서구식 병원의 설립을 약속 받는다. 이후 1885년 한국 최초의 서구식 병원인 광혜원이 설립된다.

여기에는 최초의 서구식 병원이 설립되었다는 것 이상의 큰 의미가 있었다. 조선 정부가 미국 선교사들과 그들의 선교 활동의 자유를 암묵적으로 인정한 것이다. 그러나 개신교의 의료 선교를 통해 유입된 서구의 근대 의학은 이미 몇백 년에 걸쳐 내려온 조선식 전통 의학인 한의학과 대결을 펼쳐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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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의학 체계는 주로 중국의 의학 체계이며 중국에서 들어온 것이다. 뜸을 자주 놓기 때문에 조선 사람을 벗겨 보면 어떠한 통증을 고치기 위해 뜨거운 뜸을 놓은 자리가 없는 사람을 본 적이 없다. 침도 뜸만큼 자주 놓는데 때로는 침이 더러워 원래의 병보다 더 심한 병을 일으킬 수가 있었다. 언젠가 나는 침을 사용하여 매우 슬픈 결과가 일어난 경우를 본 적이 있다.
그 일은 나와 아주 가까이 지낸 어느 늙은 관리의 가족에게 일어났던 일이다. 그의 외아들은 7대 독자였는데 미남자였고 건강했으며 나이는 약 21세였다. 하루는 뒷머리가 아프다고 했더니 그와 같이 있던 친구 한 사람이 침을 맞도록 권했다. 한의사를 높이 평가하지 않는 이 나라에서는 교육 받은 사람이라면 누구나가 의료 행위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그 청년의 어머니는 병풍 뒤에서 침을 맞고 아픈 것을 멈추게 하라고 재촉했다. 아들이 이에 동의하고 그의 친구가 대담하게 환자의 목 뒤에 침을 꽂았다. 그러나 잘못되어 침이 골수를 꿰뚫어 젊은이는 입에서 거품을 뿜으며 쓰러져 죽고 말았고, 몇 시간 내에 그의 어머니도 충격으로 죽고 말았다. 그리하여 나의 불쌍한 늙은 친구는 아들과 단 하나밖에 없는 부인을 한꺼번에 잃고 말았다. 그는 나의 조선인 친지 중에 한 명의 부인을 가진 몇 사람 중의 한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 H. N. 알렌 지음, 신복룡 역주, 〈조선견문기(Things Korean)〉, 집문당, 1999(1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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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였던 알렌의 회고에도 등장하지만 조선의 전통 의료 시스템 중 하나인 ‘침술’은 알렌뿐만 아니라 수많은 서구인들로부터 야만적인 의료 행위로 지탄을 받았다. 알렌이 보기에 조선의 ‘침술’은 과학적으로 검증되지 않은 의료 행위였을 뿐만 아니라 생명을 위협하는 ‘사이비 의술’에 가까웠다. 침술과 뜸으로 상징되는 조선의 한의학에 대한 비판은 알렌과 같은 서구의 의사에게서만 나온 것은 아니었다. 1896년 민중 계몽의 일환으로 창간된 독립신문에는 비과학적인 의료 행위에 대한 강한 비판이 자주 게재되었다. 역시 미국에서 의사 면허를 딴 필립 제이슨(서재필)이 창간한 신문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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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된 의원은 민간에 큰 화다. 조선 사람 중에 의원 때문에 죽는 사람이 일 년에 몇천 명이니 의원이 없었다면 이 사람들이 이렇게 죽을 리가 없다. 무식한 의원의 학문 없는 약과 침 까닭에 불쌍한 인생이 목숨을 많이 잃었으니 어찌 불쌍하지 아니 하리요. 외국에서는 사람이 의원이 되려면 적어도 일곱 해를 날마다 학교와 병원에서 각종 병을 눈으로 보고 다스리는 법을 공부한 후에 대학교 교관들 앞에서 시험을 친 후, 다시 의원 노릇을 하려면 그 동리 판윤 앞에 가서 상등 의원들을 청하여 다시 시험 보고 그 사람이 내치 외치와 부인병과 아이병과 해산 하는데 관계되는 학문과 화학과 약물학과 약 만드는 법을 다 시험을 친 후에야 판윤이 인가장을 주어 비로소 민간에 나아가 의원 노릇을 하는 법이라. 의원이 이 학문들을 모르고 책을 보고 의원인 채 하는 사람은 세계에서 제일 위태한 사람이라.
근일에 들으니 소위 의원이라 하는 자들이 사람에게 침을 놓아 죽은 사람이 많이 있다니 침이라 하는 것은 당초에 학문이 없는 물건이라. 외국에서는 의원이 사람의 살을 기계를 가지고 건드리려면 그 기계를 더운물에 넣고 끓여 그 기계에 있는 박테리아(독물)가 다 죽은 뒤에 다시 약물에 넣어 아주 염려 없는 후에 비로소 살도 베고 오장을 열고 다시 기워 매면 그 사람이 몇 날이 못 되어 도로 살아나는 것이 묘리이다. (……) 조선 의원은 첫째 사람이 어떻게 생긴 것도 모르는 것이 의원 공부할 때에 죽은 사람을 해부해 본 일도 없으니 어찌 각종 혈관과 신경과 오장육부가 어떻게 놓여 있으며 그것들이 다 무슨 직무를 하는 것인지 그 중에 하나가 병이 들면 어떤 병증세가 생기는지 화학을 모른즉 약이 어찌 효험이 있는지 약을 쓰면 그 약이 어떻게 사람의 몸에 관계가 되는지 도무지 모르고, 덮어 놓고 약을 주며 덮어 놓고 침을 놓으니 이것은 곳 사람을 위태한 곳에다가 집어넣는 것이다. 정부에서 백성을 위하여 의학교와 병원은 아직 못 세워 주더라도 제일 침놓는 법은 금하여 불쌍한 목숨들이 살터이요. 또 사람이 병이 들면 조선서는 무당과 판수로 굿을 한다, 넋두리를 한다, 하여 병인이 편안히 잠잘 수도 없게 하며 또 그 굿하던 음식을 병인에게 먹게 하여 병이 더치게 하며, 그 까닭에 죽은 사람들도 많이 있으니, 우리 생각에는 한성 판윤과 경무사가 백성을 위하여 사업을 하려면 침쟁이와 무당과 판수와 재 올린다는 중들을 엄금하면 그 까닭에 사는 사람이 몇만 명일 터이요. 또 이 노릇 하여 벌어먹는 사람들은 당장은 좋지 않다고 할지라도 얼마 되지 않아 감격한 생각들이 있을 것이니, 불쌍하고 무죄한 인생들을 속이고 돈을 뺏으며 목숨을 잃게 하는 것이 사람의 마음에 불평할지라. 그것을 금하여 주니 어찌 감사치 아니 하리요. 사업이 다른 것이 아니라 여러 사람을 위하여 이롭고 편하도록 하여 주는 것이 사업이니 여간 몇이 원망한다고 상관할 것 없이 몇 가지를 경무청과 한성부에서 하기를 우리는 믿고 바라노라.
― “논설”, 〈독립신문〉, 1896년 12월 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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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의료 선교는 조선인들의 세계관과 의학 사상적 인식과는 무관하게 과학과 문명이라는 무기를 앞세워 한의학과 민간 의료를 비과학과 야만의 이름으로 끊임없이 주변부화 시켰다. 이로써 ‘기독교(의료 선교)-과학-문명’의 도식이 성립하게 된다. 기독교를 종교로서보다는 문명개화의 힘으로 받아들인 근대 초기 조선의 지식인들에게 기독교를 통해 들어온 서구 근대 의학은 매우 설득력 있게 다가왔다. 한의원은 악의 상징으로 서구의 의사는 생명을 구하는 명의로서 부각된다.
한의학/한의원이 위험한 존재로 비판 받은 것은 의학에 대한 지식이 부족하며, 의료 기구를 비위생적으로 관리하며, 해부학적 경험의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더구나 한의원의 의료 행위를 무당과 판수와 같은 ‘미신’을 믿는 것과 동일선상에 배치함으로써 조선 사회의 전통적 사유 체계에 대한 부정과 함께 서구의 과학과 합리적 치료 체계에 대한 믿음을 정당화한다. 이로써 전통적 사유 체계는 주변부화 되어 하나하나 지워져나가고 서구의 과학적 의료 체계를 통한 신체에 대한 인식이 그 자리를 대신하게 된다.
*<사라진 직업의 역사> 설 연휴 연재 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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