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들은 가라~, 애들은 가!
초등학교 때였다. 어머니는 방학만 되면 어김없이 나를 남쪽 바닷가로 내려보냈다. 바닷가에서 외로이 생활하는 할아버지와 할머니를 만나라는 이유에서였다. 서울역에서 통일호 열차를 타고 남쪽으로 남쪽으로 내려가 다시 몇 번 더 버스를 갈아타면 고향집에 도착할 수 있었다.
오랜만에 고향으로 내려온 손자를 위해 할아버지는 ‘매번 똑같은’ 행사를 준비해 놓았다. 산소에 가기, 동네 어른들께 인사하기, 장터에 가기. 이 행사 말고 겨울 방학 때는 할아버지가 손수 만든 ‘연’이 보너스로 준비되어 있었다. 산소에 가서 절을 하고, 산소에서 내려오는 길에 동네 어른들께 인사를 하면, 그 다음은 장터로 향했다. 장터로 갈라치면 고향집에서 20여 분을 걸어 나가 버스를 타야 했다. 읍내의 장터에는 언제나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할아버지가 장터를 찾은 이유는 특별히 무슨 물건을 사기 위해서는 아니었다. 읍내 장터에서 이모는 채소와 야채를 팔았다. 할아버지가 오랜만에 고향에 내려온 손자를 데리고 장터에 간 것은 첫째는 이모를 만나게 하기 위해서였고, 그 다음에는 친구들과 막걸리 한 잔을 하기 위해서였다. 옛날의 장터는 요즘의 마트와는 아주 다른 곳이었다. 물론 요즘도 ‘재래시장’이 있어 텔레비전 속에서나마 그 훈훈한 풍경을 엿볼 수는 있다. 장터와 마트의 가장 큰 차이는 물건 값이나 시설의 편의성 등에서 생기는 것은 아니었다. 장터에는 있고, 마트에는 없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인간관계였다. 시골 장터에서 장사를 하는 사람들이나 물건을 사러 나오는 손님들이나 어찌 보면 한 사람 건너면 모두 친분이 있을 정도로 끈끈한 지역 공동체의 일원들이었다.
할아버지 역시 장터 상인들과 친했다. 할아버지가 장터에 나간 것은 좌판에 펼쳐놓은 물건을 고르기 위해서라기보다는 일주일마다 한 번씩 서로의 소식과 안부를 묻기 위한 일종의 ‘마실’이었다. 이런 장터에 그 지역 사람들이 아닌 외지인들이 가끔씩 좌판을 펼쳐놓기도 했다. 그 대표적인 외지인이 바로 약장수였다. 약장수는 약만을 팔지는 않았다. 약장수는 약을 팔기 전에 다양한 이벤트를 준비했다. 손님을 끌어들이기 위한 호객 행위인 셈이었다. 음악을 연주하기도 하고, 접시를 돌리기도 하고, 덤블링을 하기도 하고, 때로는 독사를 잡아채는 기술을 선보이기도 했다. 쇼가 끝나면 입심 좋은 사회자가 드디어 약을 선전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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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아~자아~, 애들은 가라, 애들은 가. 날이면 날마다 오는 게 아녀. 사고 싶다고 매일 살 수 있는 게 아녀. 저기 가는 아저씨 일단 한 번 앉아 봐. 저기 가는 아줌마, 눈치 보지 말고 일단 한 번 앉아 봐. 안 사도 뭐라고 안 해. 일단 한 번 구경이나 해봐. 이게 말로만 듣던 그 만병통치약이여. 이거 한 통만 일단 잡숴봐. 며칠만 지나봐. 몸이 불끈불끈 하고 난리가 날 것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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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기심 반, 의심 반이지만 몇몇 사람들은 약장수가 선전하는 ‘만병통치약’을 샀다. 그 약이 정말 만병통치약이라 생각하고 구매한 사람들이 과연 몇이나 있을까. 장터에 모인 사람들은 약장수의 화려하고 달달한 언변에 빠져들어 약을 구매했다. 약을 산 사람들 자신이 구매한 약이 정말 만병통치약은 아니더라도, 그래도 몸에 좋은 것이겠거니 하고 약을 구매하는 것은 아니었을까. 또한 약을 구매한다기보다 약장수들이 펼쳐놓은 여흥판에 대한 일종의 답례는 아니었을까.
약장수가 판매한 그 만병통치약이 진정 몸에 좋은 약인지 아닌지는 차치하고서라도 검증도 되지 않은 약을 이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사고파는 관행이나 문화는 과연 어떻게 형성된 것일까. 약장수가 팔았단 그 ‘만병통치약’은 언제부터 등장한 것일까. 특별히 아프지도 않으면서 행여나 하는 질병과 죽음에 대한 공포를 떨쳐버리기 위해 일상적으로 약을 복용하는 행위는 과연 언제부터 일상적인 우리네 삶의 한 방식이 되었던가. 더 나아가 사람들이 약의 효능보다는 약장수의 화려하고 달콤한 언변이나 제약회사의 선정적인 과대광고를 통해 약을 구매하게 된 것은 언제부터일까.
시골 장터에서 활약했던 약장수의 모습을 통해 우리는 전근대적 장터 문화나 약 판매 관행을 이해할 수도 있지만, 더 크게는 근대 의학과 제약 산업의 형성 배경을 묘파할 수도 있다. 그리고 이러한 과정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서구에서 태동한 근대 의학과 근대 초기 조선에서 위생담론이 형성되는 과정을 추적하지 않을 수 없다. 약장수는 어느 날 갑자기 등장한 직업이 아니다. 약장수가 등장하기 까지는 서구의 근대 의학과 제약 산업, 그리고 조선의 전통적 의료 시스템인 한의학과 서구 의학의 대결 등이 얽히고설켜 있다. 따라서 식민지 조선의 장터 곳곳에서 활약했던 약장수들이 등장한 배경과 그들의 삶의 편린들을 살펴보기 위해서는 한참을 에둘러 가야만 한다.
점성술을 모르는 의사는 바보다?
〈물장수〉란 글에서 근대 초기 ‘물 시장’과 ‘위생’의 관계에 대해서 잠깐 언급했지만, 근대 초기 조선은 ‘건강’에 대해서 집요하리만치 강박적인 사회였다. 건강한 삶을 사는 것이야 아주 오래된 인간의 욕망이었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영웅 서사시이자 ‘최초’의 신화라고 불리는 ‘길가메시 서사시’의 길가메시 왕이 모험을 떠났던 것 또한 ‘불멸의 꿈’, ‘영생의 욕망’을 실현하기 위해서였다. 길가메시 왕이 불멸을 꿈꾸고 영생을 바랐던 것은 인간은 언젠가는 죽는다는 두려움 때문이었다. 그러나 죽음에 대해서 인간이 느끼는 공포는 일상적인 문제라기보다는 아주 막연한 문제였다.
건강한 삶을 영위하고 죽음의 공포를 떨쳐버리기 위한 인간의 욕망이 ‘의학’을 만들어냈는지도 모른다. 학문으로서의 ‘의학’이 아니라 인간의 신체에 침입하는 질병의 고통을 해결하기 위한 노력은 고대시대에도 분명 있었으나 그때의 ‘의학’은 지금과 같은 기술적인 학문은 아니었다. 의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히포크라테스로부터 내려오던 신체와 질병에 대한 인식은 자연철학을 밑바탕으로 한다.

히포크라테스는 신체 내부의 운동을 우주의 순환과 동일한 것으로 파악했다. 신체 내부의 운동과 우주의 순환을 파악하기 위해 히포크라테스가 중요하게 생각한 것은 ‘점성술’이었다. 히포크라테스에게 천제의 움직임을 살피는 점성술은 인간의 맥박(별들의 순행)을 관찰하는 준거가 되었다. 그에게 질병은 체액 간의 균형이 무너진 상태를 의미했다.
체액설은 엠페도클레스의 자연철학 이론을 인체라는 소우주에 접목시킨 것이다. 엠페도클레스의 자연철학은 자연의 구성 요소를 물, 불, 공기, 흙 등의 4원소로 파악하는 것이었다. 히포크라테스는 인체에는 자연의 4원소에 대응하는 혈액, 점액, 흑담즙, 황담즙이라는 네 가지 종류의 체액이 존재하는데, 건강은 이 구성 요소들이 양적/질적으로 정확한 비율로 혼합되어 있을 때 달성된다고 생각했다. 히포크라테스에게 건강이란 신체가 조화를 이루고 있는 상태이며, 질병이란 그런 조화가 깨진 상태를 말하는 것이었다. 결국 질병이란 네 가지 체액 가운데 어느 한 요소가 모자라거나 넘칠 때, 혹은 몸 안에서 따로 떨어져 서로 융합이 잘 되지 않을 때 생기는 현상을 말한다. 이러한 관점은 세계와 인간을 대우주와 소우주로 이해하고 이들 사이의 통일적 관계를 설정하는 총체론적 입장이라 말할 수 있다. 그래서 히포크라테스는 ‘점성술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은 의사가 아니라 바보’라고 단언했다.
그러나 18~19세기에 들어서면서 이제점성술을 믿는 의사야말로 ‘바보’가 되었고, 체액설에 근거한 의료 행위를 하는 의사야말로 ‘사이비 의사’로 지목받게 되었다. 의학은 철학이 아니라 ‘과학’이 되었다. 파스퇴르와 코흐에 의해 세균설과 감염설이 확립되면서 의학은 진정한 ‘과학’의 영역으로 들어섰다. 질병은 더 이상 몸의 내부/외부적 균형이 깨진 상태가 아닌, 세균의 감염에 의해서 발생하는 것으로 인식되기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