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 이야기
얀 마텔 지음, 공경희 옮김 / 작가정신 / 200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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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내가 이 책을 아마 초등학교6일때 쯤 사서 보기 시작했는데 드디어 다 읽어버렸다. 너무나도 오랜기간이 지나가버린것 같다.

  바다에 배가 침몰, 결국 혼자 살아남은 파이... 아니 파이와 그의 바다와 그의 리처드 파커라는 뱅골 호랑이가 있었다. 파이는 배의 침몰로 인해서 부모님을 잃었고 오랑우탄, 하이에나, 얼룩말, 호랑이와 함께 구명보트를 타고 가고 있었다. 그를 보호해 준것은 바로 보잘것 없이 생각했었던 호루라기였다. 호루라기로 리처드 파커의 서커스 본능을 일어나게 만들었고 리처드 파커는 파이가 더 높은 존재라는 것을 인식하게 된다. 그렇게 시작하는 그의 바다 여행은 참으로 끔찍하기만 했다. 살인 광기가 느껴지는 하이에나는 얼룩말에 오랑우탄을 죽였다. 나는 여기서 오랑우탄의 머리가 굴러다닌다라는 둥, 몸통이 없어진 얼룩말의 눈이 껌뻑이고 있다는 둥 참으로 생각하기 싫은 표현들이었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그 때의 상황을 아주 잘 표현할 수 있었을 것이다. 내가 이 책을 읽으면서 한때는 웃긴 부분도 있었지만 무섭거나 징그러운 부분도 있었다. 그런 자세한 표현들과 길고 긴 문장들, 그런 것 때문에 내가 1년이나 읽었던 것 같다.

  이 책을 읽을 때 너무나도 많은 시간이 걸려서 기억이 날랑말랑하기는 하다. 하지만 나는 이 책을 추천한다. 이 책의 저자 얀 마텔은 참으로 대단하다. 어떻게 생생한 표현력을 나타낼수 있을 지 궁금하다. 이런 표현들이 그렇다... 268쪽에 "여러 가지 바다가 있다. 바다는 호랑이처럼 포효했다. 바다는 비밀을 털어놓는 친구처럼 귀에 속삭였다. 바다는 호주머니에 든 동전처럼 쨍그랑댔다. 바다는 산사태가 무너지는 소리를 냈다. 바다는 사포로 나무를 문지르는 소리를 냈다. 바다는 사람이 토하는 소리를 냈다. 바다는 죽은 듯 고요했다."와 같이 말이다. 나도 이런 점들을 좀 닮았으면 좋겠다.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읽었으면 어떨까 싶다. 장편소설이라 400쪽이나 되는 아주 두꺼운 책이지만 이 책을 읽고 표현력을 늘릴 수 있고, 참으로 좋은 책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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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레스타인
조 사코 지음, 함규진 옮김 / 글논그림밭 / 200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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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팔레스타인, 이 땅을 대부분 저주받은 땅이라고 부른다. 그 이유는 폭력, 테러, 학살 등으로 많은 사람들이 죽어나가기 때문이다. 나는 그 누구도 이 싸움에서 영웅이나 악당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2000년 동안 살아오던 그 땅을 다시 빼앗으려고 하다니 팔레스타인으로서는 웃긴 얘기였다. 하지만 미국이 유대인들의 뒤를 밀어주자 입장이 바뀐 것이었다. 다시 말해 팔레스타인들이 오히려 도둑이 되어버린 꼴이었다. 이렇게 되자 팔레스타인들이 미국을 목표로 공격을 한 것이다. 그러니 지금으로서는 누구의 잘못을 따질 수 없는 상황이다.

  내 생각에 조 사코가 이 만화를 그릴 때 참으로 냉정하고 객관적인 눈으로 그렸다고 생각했다. ‘오리엔탈리즘’이라고 아는 가? 이것은 서구에 의해서 왜곡되고 신비화된 동방의 이미지를 말한다. 거의 모든 사람들이 팔레스타인들만 잘못했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조 사코는 그런 오리엔탈리즘에 얽히지 않고 이 만화를 썼다. 나는 이런 점에서 그를 존경한다. 이러한 그의 만화에 대해서 「오리엔탈리즘」라는 책의 작가 에드워드 사이드는 이런 만화를 그려줘서 감사하는 말을 보냈다고 한다. 이렇듯 조 사코의 책에서는 그 어떤 사람들을 악당으로 언급하지 않았고 그는 그의 눈으로 보고 경험한 것을 어떤 경우는 치의적으로, 동정적으로, 해학적으로 그렸다. 그는 왜곡된 사실과 다른 현실로 오리엔탈리즘과 우리들의 문제점을 가르쳐 주고 있다.

  내가 이 책을 읽을 때 3,4일 씩 읽었다. 내가 집중을 하지 못한 탓도 있었지만 너무나도 뜻이 깊은 만화였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어떤 책이던 간에 절대로 다른 사람의 의견이나 왜곡된 사실에 얽매이지 않고 책을 읽어야 하고 우리는 더더욱 비판적이고 냉정적으로 책을 읽어야 한다. 팔레스타인들이 나쁘다고 해서 그 의견 그대로 나쁘다고 생각하는 것이 아닌 다른 딱 중앙에서의 눈을 가져야 한다. 재판을 할 때도 재판관이 다른 사람이 잘못했다는 사람이 많다고 그 사람에게 벌을 주는 것이 아니라 공정히 재판을 내려야 한다. 드레퓌스 사건에서 드레퓌스도 잘못된 재판아래 감옥에 갇히지 않았는가? 이런 일들이 없어지려면 우리는 관심을 가지고 모든 입장을 생각해야 한다. 우리가 글을 쓸 대에는 에드워드 사이드가 알려주고 싶은 교훈처럼 우리는 비판적이고 냉정적으로 글을 쓰거나 읽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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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벌레 2008-11-02 14: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조금이라도 책 읽는 방법이랑 글 쓰는 방법을 고쳐야 할 것 같네요...
 
쥐 I
아트 슈피겔만 지음, 권희종 외 옮김 / 아름드리미디어 / 199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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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히틀러는 살아있는 살인병기였다. 그는 내가 말했다시피 유태인 600만 명을 죽였다. 누구도 600만 명을 죽였다고 한다면 믿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히틀러는 잔인한 방법으로 유태인들을 찢어 죽였다. 아무리 말을 한다고 해도 ‘찢어 죽였다’라는 표현은 쓰면 안 되기도 하지만 히틀러는 생체 실험을 하거나 노동을 시켜서 연로해지거나 몸이 쇠약해지면 가스실로 보내는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며 내 생각에 아트 슈피겔만이 참으로 잘 그렸다고 생각한다. 누가 유태인들과 독일인들을 쥐나 고양이로 표현할 생각을 했을 까? 어쨌든 나는 이 책을 읽고 유태인들의 참으로 고달픈 삶과 힘든 나날 이를 알 수 있었다. 만약 나와 우리 가족이 유태인들이었다면 너무나도 힘들어서 죽었을 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나는 내 가족과 떨어져 사는 게 되기 때문에 나는 어떻게 살아갈지 눈에 뻔했다. 그런 일들을 유태인들이 겪어냈다니 내 생각에는 참으로 신기하고 위로해주고 싶다.

  청소년들의 위한 만화,『쥐』. 이것은 진짜의 반의 모습을 보여준 책이었다. 실제로는 더 잔인하게 나치들이 유태인을 죽였다. 가스실에 유태인들을 보내거나, 생체 실험을 했고, 심심할 때 놀듯이 그들은 심심할 때 유태인들을 죽이는 것 같았다. 내가 어릴 적 보았던 「피아니스트」라는 영화에서 이 일을 보여준다. 어릴 적에 본 영화라서 기억은 잘 나지 않다만 나치들이 그들을 죽이는 것을 보았다. 주인공은 피아니스트로 내 기억에는 그 직업으로 살아남는다. 그 주인공도 유태인인데 살기위해서 갖가지 위험에서 벗어난다. 한번은 거리를 다니다가 죽을 뻔 했다. 내가 이 영화를 보면서 참으로 마음 안 좋게 본 장면은 나치들이 일어나지 못하고 휠체어에 앉아있는 유태인 할아버지를 창문 밖으로 던지는 것이었다. 그 장면을 보면서 그런 일이 많이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긴 나치들은 그들을 무시하고 잔인하고 나쁜 인간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일 것이다. 내 생각에 유태인들이 재산을 많이 가지고 있었고 자기 유태인들끼리 뭉쳐서 살았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그들을 나쁘게 보았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베니스의 상인」에서도 샤일록과 같은 유태인들은 참으로 고약하고 심술궂게 표현이 되었다. 나는 여기에 조금 아니라고 생각한다. 돈이 많이 가진 사람이 거의 심술궂기는 하지만 외모만 보고 판단한다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모두 다 똑같은 사람 아닌가? 하긴 여기에 나오는 아빠 쥐도 흑인 개가 타려고 하자 경악을 했다. 우리들 모두다 외모만 보고 판단한다는 것은 참으로 잘못된 생각이 아닐까? 나도 참으로 한심하게 그런 적이 있다. 이런 일이 있었을 때는 내가 초등학교 6학년 일 때 있었는데 길을 지나가다 교복을 입은 중학생 형들을 보고 무서워했던 적이 있었다. 하지만 이제 내가 교복을 입고 중학생이 되어 있다고 생각했을 때는 참으로 내가 잘못 생각하고 있었다고 생각한다. 지금 미국에서는 인종차별 때문에 많은 흑인 아이들과 어른들이 피해를 받고 있다. 내가 생각하기에는 특히 정신적인 충격을 받았으리라 생각한다. 피부색 하나 다르다고 따돌림을 당하거나 폭행을 당하다면 참으로 심한 일이다. 거기에다가 KKK같은 조직암살단에서도 살인을 일삼고 있다. 우리는 이런 점에서 흑인들을 보호해 주거나 아니면 관심을 더 가져야 한다.

  히틀러는 참으로 우리를 경악하게 만들 정도로 너무나도 잔인한 일을 저질렀다. 하지만 그것은 우리들의 잘못도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만약 더 관심을 가지고 유태인 학살에 반대했다면 어땠을 까? 우리나라도 공격의 목표가 될 수도 있었을 지도 모르지만 팔레스타인 사건과 비슷한 일도 없었을 것이다. 우리는 우리 주위에서의 일에 관심을 더욱더 가져야 한다. 그리고 우리는 인종차별에 대해서 더욱더 관심을 가져야 한다. 지금 이 글을 보는 이 시간에 어떤 사람이 피부색 때문에 상처를 받고 있을 수도 있다. 우리는 그런 일들을 막기 위해서 더욱더 열심히 글을 올리거나 반대를 해야 한다. 만약 자기 아들이나 딸이 피부색이 검다고 해서 상처를 받고 폭행을 당한다면 우리들의 마음을 어떨까? 마음이 찢어질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런 일들을 방지하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조금씩이라도 세상일에 관심을 가지는 태도를 가져야 한다. 그렇게 해야지 우리는 평화로운 삶을 살 수 있을 것이다. 이런 관심 속에서 우리는 이런 유태인 대학살과 같은 일들이 조금씩이라도 없어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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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위화 지음, 백원담 옮김 / 푸른숲 / 200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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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의 인생 곡선이라는 것을 아는가? 이 인생 곡선은 자신의 시절을 곡선으로 그려놓은 것인데, 보다보면 롤러코스터처럼 위로 한참 올라가더니 밑으로 내리꽂힐 때에는 깊숙이도 들어간다. 이와 같이 사람의 인생은 아찔한 롤러코스터를 타듯이 언제나 위험천만이다. 분명히 밑으로 내려갈 때에는 자신의 개인의 문제와 바깥에서 일어나는 문제가 일어나기 마련인데, 모든 사람들이 그렇듯 이러한 문제를 풀기 싫어하고 기분 안 좋은 일은 피하고 싶어 한다. 그렇다보니 다른 사람들에게 떠넘기는 것은 물론이고 결국 게으름쟁이가 되는 것이다. 이렇게 피하고 또다시 피하면서 살다보면 청소년 때의 푸구이 노인(책 주인공)처럼 시간을 버리게 되는 것이다. 만약 문제들과 부딪혔다면 처음에는 어렵고 힘들며 고달프겠지만 다음에 올 문제는 쉬워 지는 것이다. 이와 같이 인생에도 면역력이 있다는 것이다. ‘인생’이라는 책에서도 “위급함은 도와줄 수 있지만 가난은 도와줄 수 없다.”라고 말이다. 제아무리 위급함은 돈을 빌려서도 갚을 수 있지만 가난은 도와주더라도 계속 되는 것이다. 만약 ‘가난’이 닥쳐왔을 때 그 ‘가난’을 극복한다면 그 ‘가난’을 이겨낸 것이다. 그리고 다음에 올 ‘가난’은 이미 극복한 우리에게는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는 것이다. 하지만 가난이라는 것은 참으로 고독하고 힘들며 슬픔을 가져다준다. 내가 만약 한 사람의 가장일 때 가난이 닥쳐온다면 추위와 고통으로 점점 죽어가는 아이들과 부인, 배고픔에 시달리고 계신 부모님을 보고 있다면 정말 죽을 맛일 것이다. 자신의 핏덩이 같은 아이들이 죽어가는 데 괴로움을 어떻게 극복해낸단 말인가? 요즈음에 그런 일이 생기면 정부가 도와주고는 했지만 옛날에는 이런 일이 많았을 것이다. 그런 일을 ‘인생’의 주인공 푸구이 노인도 느껴보았다. 가난은 이처럼 많은 것을 빼앗아간다. 우리들은 그런 일을 견뎌내기 어렵고 힘들다.

  나는 푸구이 노인이 참으로 불쌍하게 느껴졌다. 자신이 싫어했지만 자신의 핏덩이인 인칭(푸구이 노인의 아들)이 죽고 난 뒤 푸구이 노인은 자신의 아내 자전과 펑샤(푸구이 노인의 딸)도 지키려고 했지만 펑샤는 시집간 후 아이를 낳다가 피를 너무 많이 흘려서 죽어버리게 된다. 결국 푸구이 노인의 부인도 숨을 거두게 되고 그의 곁에는 손자 쿠건만이 남아 있었다. 쿠건은 언제나 푸구이 노인의 곁에 있었고 그를 도와서 논일도 하였다. 푸구이 노인은 많은 것을 잃었다. 가난과 추위, 너무나도 무서운 병에 의해서 말이다. 추위는 가슴 깊은 속까지 후벼 파 놓고 가버린다. 추우면 제일 생각나는 것이 따뜻함일 것이다. 그 따뜻함은 우리를 치료해 주고 감싸준다. 하지만 이런 추위를 견뎌내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 예전에도 박스로 둘러싸인 곳에서 살고 있던 한 노인이 있었는데 박스 안에서 추위로 인해서 죽고 말았다. 그것이 한 프로그램에서 나왔다. 그 때에는 그 노인을 도와주었다면 어쩌면 살아있을 수도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그곳을 많이 지나다녔고 분명히 보았을 것이다. 이와 같이 추위는 참으로 참을 수 없는 것이다. 그리고 병은 한 번 걸려버리면 떨쳐내기 힘들다. 그렇기 때문에 이 병이 참으로 무서운 것이다. 하지만 이 병은 자신의 생활 습관이나 자신의 행동에 달려 있다. 자신이 계속 해서 담배를 핀다면 어쩌면 암에 걸릴지도 모르는 것이다. 또는 자기 주위의 환경에 달려있다. 제대로 영양소도 섭취하지 못하고 자라다가는 결국 쓰러지기 마련이다. 내가 요즈음 독서 수행평가로 인해서 ‘꿈꾸는 구두 5만 켤레’를 읽어보았는데 주인공이 지하철에 의해서 자신의 전부라고 생각했던 오른쪽 팔을 잃고 말았다. 하지만 그는 ‘오른쪽 팔 말고는 다 정상이 아닌가?’라는 생각을 가지고 자신의 의지로 왼팔을 이용하여 일을 하기로 결정한다.

  이와 같이 장애든 병이든 자신의 의지와 노력으로 반드시 극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헬렌 켈러도 시각, 청각에다가 벙어리까지 되었지만 자신의 노력과 주위의 환경으로 그것을 극복할 수 있게 된다. 옛날에도 이런 말이 있지 않는 가? ‘사람은 생각하기 나름이다'라고. 그리고 그 생각이라는 것을 다르게 생각하면 무서웠던 일도 무섭지 않게 되고 무엇이든지 할 수 있는 용기가 생긴다. 자신이 ‘이것은 위험하고 무섭고 하기 싫다.’라고 생각을 하면 하기 싫어지는 것은 당연해진다. 하지만 조금만 생각을 바꿔도 입장이 달라지는 것이다. 딱딱하고 높은 벽이 아닌 내가 힘을 다하면 뚫을 수 있는 그런 벽이 되는 것이다. 그렇다고 상대에게 방심하거나 하면 되는 것이 아니다. 사람은 생각을 할 수 있다는 것에서 동물과 다른 것이다. 사람이란 힘들겠지만 무엇이든 지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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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스카프 아침이슬 청소년 2
지앙지리 지음, 홍영분 옮김 / 아침이슬 / 200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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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이 문화 대혁명을 생각해 보면 정말 바보같은 혁명 같았다. 4가지 구악(낡은 사상, 낡은 문화, 낡은 풍속, 낡은 습관)중에는 중요한 것이 있고 아닌 것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단지 오래되었기 때문에 없앤다는 것이었다. 우리나라에도 풍습중에는 얼마나 아름다운 풍습이 있는 가? 대보름날에는 부럼을 깨물면 악귀가 나간다고 하여 대보름 날에는 딱딱한 밤을 안간힘을 써서 깨물어 부수곤 한다. 그리고 '차마고도'라는 프로그램에 보면 많은 순례자들이 티벳까지 절을 하면서 간다. 손바닥에는 슬리퍼를 끼우고 엎어지듯이 누워서 절을 하는 것이다. 이렇게 하는 이유는 불교를 전파하고 그 전통을 따르기 위해서 이다. 내가 예를 들었던 것처럼 자신에게 보람차고 추억이 되고 아름다웠던 것만이 아니라 다른 습관들도 지키고 필요없는 것은 없애야 하는 것이 마땅하다. 그러나 이 책처럼 오로지 4가지 구악을 없애기 위해서 부모들까지 신고를 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문화 대혁명 때문에 철학과 중국의 역사가 없어졌을 지도 모른다. 언제나 사람은 옳고 그름을 잘 판단해야 한다. 그야말로 잘못 판단 했다가는 되돌릴 수 없는 일이 일어나는 것이다.

  처음 내가 이 책을 읽으면서 4가지 구악을 없앤다고 하니 좋은 방향으로 갈 줄 알았다. 그렇게 되었으면 잘못된 법과 규칙, 그리고 문제가 많은 사상을 없앨 수 있으니 평화로울수 있지 않는 가? 그러나 이 4가지 구악을 없애는 것은 틀에서 벗어나는 것이었다. 나는 이 혁명이 너무나도 억지를 부리는 것 같았다. 46쪽에서도 보면 '전생을 추리하는 것'이 뭐 구악이라니 길게 기른 머리가 혁명에 맞지 않아서 구악이라니 참 유치하고 좀 치사한 생각까지 들었다. 그렇게 따지면 참으로 어린애들 말다툼이 아닌가?

  만약 이 4가지 구악을 없애자는 혁명이 계속되여 일어났다면 냉정시대에 들어간 스탈린의 공포정치와 다를바가 없었다. 이 책의 내용처럼 사람들은 모든 것을 바꾸고 새로운 것을 바라며 새로운 것이 언제나 옳은 줄 안다. 하지만 그런 것에는 시간, 타이밍이라는 것이 있다. 그리고 그 일을 시행할 때의 조건과 기준이 있어야 한다. 그런 상황에서 일을 시행하지 않는 다면 마오 주석과 스탈린의 공포정치와 또다시 비슷한 일이 일어나고 말것이다. 만약 자기 개인의 것을 취하기 위해서 권력을 잡거나 욕심을 낸다면 문제가 생기고 말것이다. 이런 권리 욕심, 조건과 기준을 잘 잡고 일을 시행한다면 시민들이 편하고 평등하며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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