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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영 이별 영이별
김별아 지음 / 해냄 / 2014년 2월
평점 :
품절
지난 역사를 되돌아 보면서 역사적 사건과 인물의 심리를 감성적인 차원으로 그려 놓은 역사 소설을 읽다 보면 나도 모르게 작중 인물 속으로 빠져 들 때가 있다.섬세한 필체에 풍부한 감성력을 글 속에 뿌려 놓은 글이라면 독자 누구든 가하는 쪽보다는 (억울하게)당하는 쪽에 동정과 연민의 정을 싣곤 한다.이것은 인간의 정서상 보편적으로 갖게 되는 감정 기제가 아닐까 한다.특히 여성이 작중의 주인공인 경우에는 동성이라는 힘이 작용하여 작중 주인공 속으로 빠져 들게 되면서 감정의 변화를 보이기도 한다.김별아작가는 이러한 작품을 연속 작품화하여 독자들의 매마른 감성을 촉촉히 적셔 주고 있는 셈이다.그런데 역사 소설은 작가의 상상력과 통찰력이 가미되어 있기에 취사선택의 몫은 독자에게 있기에 이야기 전부를 믿어서는 안 될 것이다.
조선 시대는 성리학이 국가의 정체,사회의 전반을 아우르는 규범이 되었기에 남존여비,장유유서 이념과 사상이 큰 축을 이루었다.또한 수많은 왕권쟁탈,사화,사색당파,세도 정치 등으로 인해 국가의 기반이 흔들리기도 했다.국가의 지속적인 발전을 위해서는 카리스마 넘치는 정치 지도력도 중요하지만 문과 무의 균형적인 인사배치와 양인과 상인의 계층간 위화감,허약한 왕권을 대신한 왕의 인척과 세도가들의 권력 전횡은 조선시대를 관통해 왔던 낡고 썩은 시대였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조선을 세운 태조 이성계 후손들이 거의 왕권을 계승하는데 주로 적장자를 내세우는 것이 원칙이고 관례였던 것으로 보여진다.혹 적장자에게 인격적,정치적인 허물이나 오류가 있을 경우에는 신하들의 의견과 중론을 참작하되 인사결정은 생전에는 왕이 내리거나 유훈으로 남기기도 했다
문종의 아들이었던 단종은 12세에 왕으로 등극하게 되지만,왕의 찬탈을 노리던 그의 숙부 수양대군은 정치적 걸림돌이고 방해세력으로 여겼던 김종서,황보인,남지 등을 척결한다(계유정난 1453년).나아가 그의 정적이면서 형제였던 안평대군 유배를 보내면서 왕이 되기 위한 본격적인 수순을 밟는다.물론 이것은 정치적 쿠데타이면서 사변이기도 했다.어린 단종은 숙부 수양대군의 거침없는 정권욕을 알아 차리고 스스로 상왕으로 물러 나고 수양대군에게 선위(禪位)를 하게 된다.수양대군은 왕 세조로 찬극하면서 단종을 노산군으로 강등시키고 강원도 영월로 유배를 보낸다.이러한 가운데 성삼문 등 사육신은 단종의 복위를 내세우다 처참하게 희생되고 동생 금성대군도 복위를 꾀하다 관노의 고변에 의해 발각되어 사사되고 만다.수양대군이 만일 세종의 장남이었다면 조선의 역사는 어떻게 되었을까? 하고 되뇌어 본다.
단종의 부인이면서 송현수의 여식인 정순왕후(定順王后)는 남편 단종이 노산군으로 강등되고 정순왕후는 서인으로 강봉되는데,현재 동대문 근처 영미교(永尾橋) 근처에서 석별의 정을 나누었다고 한다.이에 착안하여 김별아작가는 영미교에서 헤어졌다 해서 언제 만날지 모르는 둘의 헤어짐을 영이별,영영이별로 이야기를 풀어 나가고 있다.정순왕후가 남편 단종과 헤어지고 서인으로 생을 마감하는 날까지의 과정을 당시의 사건과 추리,상상력을 가미하여 애잔한 필치를 들려 주고 있다.정순왕후가 남편 단종과 헤어지고 단종의 뒤를 이은 세조부터 예조,성종,인조,명종,연산군,중종에 이르기까지 7대의 왕들의 행적을 알고 있었다는 듯 들어서 알고 있다는 듯이 죽음을 맞이하는 희미한 기억의 순간에서 남편 단종에 대한 사랑과 애정이 식지 않았음을,죽어서도 다시 만나고 싶어 하는 사모의 정념이 한많은 여인의 심중에 붉게 물들어져 있다.
사랑하는 사람을 만들지 말고
미워하는 사람도 만들지 말라.
사랑하는 사람은 못 만나 괴롭고,
미워하는 사람은 만나 괴롭다 『법구경』 -P54
지아비를 잃은 정순왕후는 서인으로서 갖은 오욕을 견디면 살아남아야 했던 것은 죽고 싶어도 죽지 못해 살아 남아야만 했던 생존력이 아니었을까 한다.권력은 달콤하지만 권력에서 서인으로 강봉되면 그 삶은 위리안치 되었던 유배인이 형극의 길을 걸어야 했던 것과 다름 아니었을 것이다.지아비였던 단종과 헤어지고 혼자 살아야만 했던 64년의 세월은 영겁의 세월 앞에서는 찰라와 같지만 부부로서 달콤한 행복에 젖어 들기도 전에 독수공방 긴 세월을 오매불망했던 정순왕후 그 여인의 삶은 개인의 삶이 아닌 조선 왕조의 비극이었다고 되뇌어 본다.정치권력의 맛은 달콤하기 이를데 없지만 그 맛이 다하게 되면 소태보다 더할 것이라는 생각이 절로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