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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인 심청 - 사랑으로 죽다
방민호 지음 / 다산책방 / 2015년 1월
평점 :
![](http://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15/0529/pimg_7858471461214554.jpg)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은 믿지 못하는,눈에 보이지 않는 힘으로는 세상을 바꿀 수 없다고 믿은 우리들 현대인의 어리석음에 관한 것이다.(중략) 상상적인 것,환상적인 것,마음속에서만 작용하는 것,이것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 작가의 말에서
오늘날은 돈과 물질이 백행지본이 아닐까 할 정도로 부모에 대한 보은과 효성심이 많이 희박해져 가고 있다.부모들 역시 고마운 마음을 담은 선물보다는 실속 있는 돈을 더 원하는 것이 현실이고 세태이다.그분들 역시 당장 돈이 있어야 공과금도 대고 생활도 하며 사람들을 만나고 병원에도 가야 하기에 돈이 더 절실할 것이다.다행히 경제적 소득이 좋은 자녀를 둔 부모는 낳고 기른 정에 대한 보답을 톡톡이 받겠지만 그렇지 못한 가정은 부모와 자식이 서로 떨어져 살아야 하면서,심한 경우에는 자식이 부모를 구박하고 학대하는 비극적인 상황이 벌어지기도 한다.
한국인의 내면 속의 유전자에는 아직도 부모 및 어른들을 공경해야 한다는 유교적인 세습이 남아 있다.개인적인 생각이지만 한국 전쟁후 태어난 베이비 붐 세대(1950년대부터 1970년대 초반)는 부모에 대한 보은과 제사 지내기를 해야 한다는 교육을 받고 그렇게 실천하려고 하는 것 같다.그런데 시류인지 풍습인지 현대 사회는 유교적인 체제에서 벗어난 간소한 가정의례를 선호하게 되는데 부모가 돌아가시면 대개 화장하는 것이 통례이고 제사도 집안에서 가장 큰 어르신의 기일을 기준으로 한 날 모든 제사를 치르기도 한다.예전 같았다면 1년에 제사를 치르는 회수도 셀 수 업을 정도였고,종가집 큰며느리의 경우에는 시집 제사 치르느라 허리가 휘었을 것이다.그에 비하면 현대 사회의 주부들은 제사 치르는 일 만큼은 신경이 부담이 덜 쓰이게 되었음은 부인할 수가 없다.이것은 시대의 흐름,사조,습속의 영향을 받기도 한다.
조선시대 판소리에서나 들을 법한 고전 소설 심청전에 대한 첫 기억은 국민학교 2학년 봄 날 누나와 함께 극장에서 상영하던 심청전을 보면서 심청이와 심봉사,효심이라는 것을 인지하게 되었다.철없던 어린 나이인 나는 시종일관 애잔한 배경음악을 들으면서 심청이와 심봉사 그리고 조연들의 연기를 뚫어지게 감상했다.심봉사가 노름판에 갔다 오다 실개천에서 넘어지는 것을 스님이 발견하여 부축하던 모습,인당수(印塘水)에 빠지고 대가로 공양미 삼백석을 절에 시주하게 되면 아버지 심봉사의 눈이 뜨이게 된다는 말을 듣고 심청은 결연하게 실행하게 되는 모습,그리고 중국 선박의 무사 항해를 기원하는 의미에서 자신의 몸을 기꺼이 망망대해에 던지던 모습,뺑덕 어미가 돈을 바라고 심봉사에게 알랑거리던 모습 등 몇 장면은 40여 년이 흘렀어도 장기 기억으로 남아 있다.스크린의 화질은 그다지 선명하지는 않았지만 전달하려는 취지는 관객들의 마음을 울리게 되는데,나는 심청이가 아버지 심봉사에게 이실직고하면서 중국 배가 있는 몽금포로 달려 가고,앞을 못보는 심봉사는 구슬프게 청이를 가지 못하게 절규한다."청아,네가 이렇게 나를 두고 떠나게 되면 나는 어떻게 살라고 그러냐,가지 말아라,돌아와라!고 울부짖던 장면에서 나는 슬픔을 가누지 못하고 이슬과 같은 뜨거운 눈물이 절로 볼을 타고 내렸다.옆에 있던 누나도 수건으로 눈물을 훔치는 것이 아니겠는가.청이는 태어나자마자 어미를 여의고 이웃집 아주머니에게 젖 동냥을 통해 양육되고,생계를 위해 이웃 대감집 등에서 받아 온 삯바느질과 같은 일거리로 생계를 유지하던 심청,그녀는 효(孝)가 백행지본이라는 것을 그대로 실천한 마음 속의 연인이다.
판소리의 전형으로 삼고 있는 춘향전,흥부전,심청전,토끼전,적벽가는 근래 매체에서 보기가 어려워졌다.이유는 모르겠지만 빠른 템포와 현란한 현대 음악이 판소리와 같은 고전 소설을 외면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이렇게 고전 소설에 대한 무감각과 무관심이 심화되어 간다면 한국 고유의 색깔의 정체성은 어느 세대에서는 완전 멸종할지도 모른다는 우려와 걱정이 앞선다.특히나 판소리와 같은 소리 음악은 조상들의 고단한 삶을 치유해 주던 힐링 역할의 대명사였던 것으로 전통 소리,음악을 문화재 보존 차원에서 정부는 아낌없는 지원과 대책을 강구해야 하지 않을까 한다.
국민학교 2학년 봄날 누나와 함께 심청전 영화를 보던 기억이 가물가물하면서도 몇 장면은 뚜렷하게 남아 있는 가운데,이번 《연인 심청》은 방민호 저자의 꼼꼼한 각색과 이해하기 쉬운 어조로 효(孝)의 진정한 의미와 가치를 재발견하게 되었다.효는 아들이 늙으신 부모님을 업고 가는 모습을 본뜻 회의문자로 여유없고 각박하게 사는 현대 가족관에 대해서도 재고해 보는 계기가 된 것이다.게다가 사자소학에 나오는 비유선조 아신갈생(非有先祖 我身曷生)이라는 문구도 연상케 한다.즉 '조상이 계시지 않았더라면 내 몸이 어찌 태어났으리오'인데 자식에게 소홀히 하려는 부모는 없다.단지 경제적 여유,교육 방법 등이 자식에게 제대로 미치지 못할 뿐이지 자신이 뿌리고 낳은 자식은 인생에 있어 한없는 선물이고 자산인 것이다.그런데 가깝고 다정해야 할 부모와 자식 관계가 오로지 돈으로 해결하려는 풍조와 의식이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이다.돈으로 해결해야 할 부분도 있지만 마음과 마음으로 다가서야 할 부분은 돈과 물질 이상의 가치를 지니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귀덕과 귀덕 엄마,장 상서 댁 큰아들 윤상,주막집의 뺑덕 어미,화주승,개경에서 온 애랑이,뱃사람,교꾼,용왕 등이 출연한다.뱃전에 서서 긴 숨을 들이 쉬고 인당수의 제숙이 되었던 심청은 뭍에서 아버지께 보여 준 효심이 연꽃으로 화하면서 뱃사람들에게 의해 이것을 용궁에 전달한다.이것으로 상서로운 조짐이 이어진다.전국에 사는 봉사들을 위한 용궁 잔치에 초청하게 된다.심봉사 역시 어렵사리 용궁에 도착하면서 죽은 줄만 알았던 딸 심청과의 극적인 해후를 한다.국민학교 2학년 때 심청전을 보던 때의 느낌은 진짜 용궁이 있고 심청이는 신비에 쌓인 신적인 존재라는 것만 모호하게 알았는데,사리와 이치를 알게 되면서 심청전과 같은 얘기는 비록 인간의 눈에는 보이지 않은 비현실적이고 상상력에 의존하는 것이지만 효성심의 전형을 보여 주는 한국 사회의 집단 무의식과 신화적 가치가 있는 것으로 해석하게 되었다.뭍에서 심청과의 혼인을 이루지 못한 윤상은 용궁에까지 와서 청이와의 간절한 만남을 고대했지만 만날 수 없는 비극적 운명으로 막을 내린다.앞을 못보던 심봉사는 청이의 효심이 전해졌는지 광명천하를 되찾았고 심청은 고려국으로 다시 돌아갈 것을 간청하면서 이야기는 막을 내린다.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을 이루려 했던 윤상과 심청은 죽어 영혼의 세계에서 재회했을 게 틀림없다.효를 귀찮고 신경 쓰이고 부담스러운 것으로 여기는 현대인의 의식 구조는 분명 사회의 전반적인 분위기와 제도에서 기인하는 것도 큰 원인이다.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고 오로지 자신만을 위해 살아가려는 이기적인 사고 방식과 배금(拜金)사상에서 부모에 대한 효심이 사그라들고 있지는 않는지 모두 인륜 측면에서 재고해야 할 사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