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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과 세바스찬
니콜라 바니에 지음, 양영란 옮김 / 밝은세상 / 2015년 5월
평점 :
절판

전쟁의 참상은 눈을 뜨고 볼 수 없을 정도로 처참하다.인류 역사상 두 차례의 커다란 전쟁을 치른 가운데 인적.물적 손실은 가히 천문학적이다.세상의 현실은 결과가 중요하듯 전쟁에 패배한 나라들은 상응하는 대가를 치뤄야 함은 물론 국가의 위상,정치 역학 관계도 뒤바뀌게 된다.처참한 이미지의 전쟁 속에 푸근하고 따스한 화롯불과 같은 인간미가 넘치는 글은 무척 대조적이기에 오래 기억에 남게 마련이다.전쟁의 소용돌이 속에 한떨기 국화꽃과 같이 향기를 내뿜는 글을 오래간만에 접하게 되어 공허한 가슴이 벅찬 즐거움으로 바뀌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갈 무렵 독일과 프랑스는 밀고 당기는 접전이 지속되었다.양국 국경이 맞닿은 알자스,로렌,프랑스콩테 지역의 주민들은 총격전,양민 학살 등으로 하루 하루가 쥐죽은 듯 지내야만 했을 것이다.이념과 사상에 대치되면 연행,학살은 기본이었을 것인데,이것은 한국 전쟁에서도 피해를 입은 사람들이 부지기수이다.이야기가 다른데로 흘러 버렸는데,프랑스와 독일의 국경을 맞대고 있는 생마르텡 마을에서 벌어지는 전운이 감도는 전쟁의 와중에 한떨기 국화꽃이 피어나듯 그 향기는 멀리 멀리 퍼져가는 것 같았다.
알프스산맥을 지근거리에 두고 있는 생마르탱 마을은 깊은 산골에 있다.해뜨는 시간이 적은 겨울철에는 음산한 전쟁의 분위기 속에 생마르탱 마을 사람들의 일상은 살얼음판을 걷는 것과 같이 안절부절했을 것이다.높은 고개를 넘어 생마르탱 마을로 먹을거리를 구하러 오는 독일 장교와 병사들,사냥을 업(業)으로 생각하고 살아가는 세자르 그리고 빵가게를 운영하는 앙젤리나와 주인공인 세바스찬이 등장하고 있다.세바스찬은 일찍 어머니를 여의고 세자르 할아버지에게 입양되어 사냥일에 동참하고,나이 차이가 나는 누나 앙젤리나는 빵을 구우면서 살아간다.독일 병사들은 주식을 조달하기 위해 앙젤리나네 빵을 주문한다.이러한 공간적 장면을 연상하면 과연 총격전 속에 포연이 비상하는 것과는 상관없다는 생각마저 드는데...
사건의 발단은 포악하게 야성을 띤 늑대와 같은 개인 베트가 앙베르라는 주민을 덮썩 달려 들어 할퀴게 되자 마을 사람들은 개를 처치하자고 한다.그런데 세바스찬은 베트에게 양치기 기회를 주는데 양치기인 세바스찬이 자리를 비우게 되자 베트는 수많은 양들을 상처를 안긴다.세바스찬은 평소 동물에 대한 관심과 애정이 많았던지 베트와 친구가 되려 지극 정성으로 음식을 주고 호흡을 함께 한다.지성이면 감천이듯 사나은 야성을 띠던 베트는 점점 세바스찬에게 다가온다.세바스찬은 베트를 미녀라는 의미의 '벨(Belle)이라고 이름 짓게 된다.
한편 독일 장교인 브라운은 빵가게에 오고 가면서 앙젤리나 누나에게 호의를 표하고,의사인 기욤 역시 앙젤리나에게 마음이 가지만,앙젤리나는 현명하게 대처한다.세바스찬 개와 가까이 하는 일로 세자르 할아버지와 손자 세바스찬과 사이가 벌어졌지만 벨(개)이 사람의 말을 잘 따르면서 충성을 보이자 세자르 할아버지,앙젤리나 모두 벨을 좋아하게 된다.사냥꾼에게 먹잇감이 되지 않게 바스찬은 벨과 함께 호흡을 맞추면서 둘은 지하 통로로 몸을 숨기며 대피하기도 했다.후반부로 넘어가면서 독일군의 만행을 피하고자 프랑스 국경을 넘어 스위스로 가야 하는 절박한 처지에 놓이면서 생마르탱 마을 주민들은 하나 둘 국경을 넘는 비용을 지불하면서 꽁꽁 얼어붙은 국경의 고개를 넘어 간다.또한 독일군에 맞서기 위한 레지스탕스 조직 문제도 불거지면서 어린 세바스찬에게는 전쟁의 속뜻을 깊게 인식하지는 못하겠지만 그 트라우마는 오래 갈 것이다.자신의 생모가 그립고 보고 싶어 늘 마음 속에 엄마를 만나는 것이 소원이었던 세바스찬은 결국 만날 수 없게 된다.할아버지 세자르는 세바스찬의 생모가 죽었다는 말을 했다가는 어린 가슴에 상처를 안겨줄까봐 알프스 산을 넘어 엄마가 사는 곳이 아메리카라고 했지만 꼬치꼬치 캐묻는 세바스찬에게 더 이상 생모의 생사를 숨길 수가 없었다.
생사의 기로라는 전쟁의 와중에서 주인공 세바스찬이 전하는 동물과의 특별한 우정과 사랑이 담긴 이야기는 꽁꽁 얼어붙은 알프스 산자락을 녹여 가는 봄날의 따스함에 비견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