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를 위하여 나는 무엇이 될까 - 시인 정호승이 쓴 작은 사랑이야기
정호승 지음, 우승우 그림 / 해냄 / 2004년 6월
평점 :
품절


우리 주변을 보면 '따뜻한 이야기' 보다는 항상 '각박하고 험한 이야기'가 더 자주 언론에,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편이다. 그렇기에 '미담기사'는 편집자 입장에서는 항상 반기는 기사 소재가 되곤 한다.

그러나 따뜻한 이야기가 원래 드문 것은 아니다. 그것을 꼭 기승전결의 논리구조를 갖추고 있는 이야기로 한정짓지 않는다면 우리 주변에서 쉽게 만날 수 있다. 그것은 아이의 순진무구한 말 한마디에서도, 어른들의 인생이 묻어나는 경험담 한마디에서도, 선인들의 명언 한마디에서도 묻어나오기 마련이다.

그러한 따뜻한 이야기를 접하면 산속 옹달샘에서 솟는 샘물을 만난 듯 하고, 무더운 여름날 느티나무 아래로 부는 선선한 바람을 쐬는 듯도 하다.

그 따뜻함 속에 잔잔한 인생의 진리마저 담겨져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을 것이다. 정호승 시인의 신작 이야기책인 『너를 위하여 나는 무엇이 될까』에 담겨져 있는 이야기들이 그렇다. 정 시인은 모두 48편의 짧은 사랑이야기를 또 한 권의 책으로 묶어 내었다.

‘아버지와 신발’을 보면 항상 한두 치수 큰 고무신을 사주시는 아버지 얘기가 나온다. 먼 훗날 아버지는 그 이유가 단지 신발을 알뜰하게 신기 위함이 아니었다고 말한다. 자기 발에 꼭 맞는 신발을 신고 정신없이 뛰어다니며 바쁘게 세상을 사는 것보다는, 조금 헐거운 신발을 신고 좀 여유 있게 걸어 다니며 세상을 사는 게 더 낫지 않겠느냐는 것이 아버지의 이유였다. 신발 하나에서 여유로운 인생이라는 화두를 건져 올리는 정 시인의 '사물을 새롭게 보는 눈'이 묵중한 울림으로 다가오는 대목이다.

‘가장 아름다운 꽃’이란 이야기도 그렇다. 이것은 임신 중에 남편을 잃고 세상을 원망하게 된 아내의 이야기다. 어느 날 시아버지는 이 안쓰러운 며느리에게 이런 이야기를 들려준다. "우리가 정원의 꽃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꽃을 꺾어 꽃병에 꽂듯이, 하느님도 가장 아름다운 인간을 먼저 꺾어 천국을 장식한단다. 얘야. 이제 너무 슬퍼하지 말거라."

정 시인의 따뜻한 이야기는 남다른 점이 있다. 전개되는 이야기 내용 자체가 따뜻하다기보다는, 평범한 이야기 속에서도 우리가 껴안고 살아가야 할 삶의 화두를 따뜻하게 이끌어내고 있다는 점이 큰 특징이다. 그 화두에 대한 답을 짧은 이야기를 통해서 간단하게 내놓을 때 읽는 독자는 잠시 "아!" 하는 탄성을 지르지 않을 수 없다. 이야기 자체가 따뜻하다는 것과 평범한 이야기 속에서 따뜻함을 이끌어내는 것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다. 그것은 소설과도 같은 이야기를 가지지 못한 사람들도 주변에서 삶의 따뜻함을 건져올릴 수 있다라는 생각을 던져주고 있기 때문이다.

모든 글이 10매 내외의 짧은 글이라 읽기에 부담이 없지만, 그렇다고 내용마저 그런 것은 아니다. 책 제목에서도 드러나듯, 정 시인이 얘기하는 사랑은 항상 희생을 다른 한 면으로 하고 있는 사랑이기 때문이다. 그런 사랑의 대가가 항상 옳게 돌아오는 것도 아니다. ‘군밤장수를 찾습니다’ 등과 같은 글에서는 남을 도와준 대가로 피해를 입는 이야기도 나온다. 그렇다고 그러한 ‘희생 위의 사랑’이 씁쓸하게 다가오지만은 않는다. 그러한 숨어있는 사랑이 있기 때문에 우리 세상이 그나마 밝은 것이라는 느낌으로 다가오는 것은 바로 정 시인 글의 힘이 아니지 않을까 싶다.

올 여름, 무더위를 이기는 방법은 여럿 있을 것이다. 그 중 청량제 같은 따뜻한 글을 읽는 것도 좋은 방법 중 하나가 아닐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