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에서 보낸 산야초 이야기 지리산에서 보낸 시리즈
전문희 지음, 김문호 사진 / 화남출판사 / 2003년 10월
평점 :
절판


책 안의 매화차 사진 한 장. 찻잔 속에서 꽃망울을 톡 터뜨리고 있다. 꽃잎이 망가지지 않게 한 송이 한 송이 조심스럽게 따서 젓가락으로 집어 한지 위에 넌 후 시루에 살짝 쪄내기를 세 번 반복했다던 매화꽃이기에, 찻잔 안에서 그 빛 그대로 그 모양 그대로 되살아나 있다.

차의 향은 덖기 전 생잎의 상큼한 향내를 많이 품고 있을수록 좋다고 한다. 그 향내만이 아니라 빛과 모양마저 찻잔 안에 옮겨졌다면 더할 나위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 이상의 즐거움이 따로 있었다.

<지리산에서 보낸 산야초 이야기>의 저자 전문희씨는 산야초차를 마실 때마다 그것을 채집한 장소, 그 때의 아름다운 풍경, 자신의 심경, 나무와 산이 어우러져 내는 바람소리가 다시 떠오른다고 한다. 산야초를 통해 자연의 생명력을 전달받을 뿐만 아니라, 산야초차 향을 통해 산 내음까지 느끼는 저자에게 산야초차는 자연과 교감을 나누는 한 방법처럼 보인다.

저자는 어머니의 죽음 이후 지리산에서 새 삶을 얻었다. 우리 산야에 가까이 다가서면 설수록 자연은 그 속살을 내비쳤고, 저자는 그 속살을 헤치면서 차츰 주변의 산야초로 우리 차를 만드는 일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이 책에 소개된 백초차, 칡꽃차, 으름차, 연잎차, 뽕잎차, 인동초차 등 수많은 우리 차는 그렇게 몸으로 건져 올린 소중한 이야기들이다.

그 이야기 속에서 우리 삶에서 어느 순간 괴리되어버린 산야초를 복원해내고 있다. 우리 삶에 가까이 있었던 여러 나무와 꽃들을 알아보고, 가까이 두고, 지켜보는 것만이 복원은 아닐 것이다. 채취하고 섭취하면서 음미하는 것이 그저 관상하는 것보다 한 차원 더 높은 복원일 수 있다. 그러할 때 오히려 우리 가까이 다가오게 된다. 황대권씨가 야생초를 복원해냈다면, 전문희씨는 산야초와 그것으로 만든 산야초차를 복원해낸 것이다.

저자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다 보면 전통찻집 메뉴판 위에 올려져 있는 여러 차는 이제 더 이상 ‘건강’이나 ‘전통’의 의미로만 읽힐 수 없다. 그 차에는 우리 산야의 바람과 햇볕이 묻어나 있고 그렇기에 ‘자연’의 의미로 느껴질 것만 같다.

차를 만들고 음미하는 것이 자연과의 교감을 나누는 과정일 수밖에 없기에 이 책은 단순히 차에 대해서만 써놓은 책이 아니다. 저자가 지리산과, 그 자락에서 자라나는 여러 나무와 꽃들과, 또 그 안에서 살아가고 있는 몇몇 사람들에 대한 얘기들을 풀어놓고 있기도 하다. 산야초차는 그 속에서 나오는 얘기이지 이들과 분리되어 나올 수 있는 얘기도 아닐 것이다.

한 사람의 진솔한 삶은 다른 사람들을 움직일 수 있다. 그 변화는 서서히 오되 강렬한 힘을 가지고 있다.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은 저자의 진솔한 삶, 그 자체이지 않을까 싶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