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시에게 할 말? "MB 좀 데려가줘요"
  [현장] 부시가 오던 날, 다시 짓밟힌 민주주의
 
  2008-08-06 오전 8:59:02
 
   

 
 

  미국산 쇠고기 파동, 독도 영토 표기 파문 등이 가라앉지 않고 있는 가운데 5일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이 한국을 방문했다. 이날 서울 시내에서는 민주주의가 또 한 번 죽었다.
  
  경찰은 부시 대통령의 방한 일정 시작과 함께 최고 경계령인 '갑호비상령'을 선포했다. 부시 대통령 방한에 반대하는 집회와 시위가 예고된 가운데 경찰은 2만4000여 명을 동원해 이를 철저히 봉쇄하려 했다.
  
  그러나 1만여 명(대책회의 추산)의 시민들은 도심에서 경찰과 쫓고 쫓기는 가운데에서도 6일 새벽 1시 가까이 가두 시위를 벌였다. 강제 진압에 나선 경찰은 미성년자, 종교인을 가리지 않고 연행했고, 외마디 항의를 하거나 사진을 찍고 있었다는 이유 만으로도 연행했다. 연행자 수는 150여 명에 달했다.
  
  색소 섞인 물대포 발사…경찰 "도로교통법 위반이라서"
  
  이날 집회는 오후 5시 종로 보신각에서 광우병 국민대책회의, 파병반대국민행동, 한미 FTA 저지 범국민운동본부의 주관으로 시작됐다. 꽉 찬 인도에서 밀려나 도로 건너편에서 손피켓을 들고 구호를 외치던 700여 명의 시민들은 6시 30분경 청계광장으로 이동했다.
  
  경찰은 곧바로 행진을 따라와 뒤를 막았다. 행진이 도착한 청계광장은 이미 광화문 방면이 경찰버스로 봉쇄돼 있었다. 사방을 막아선 경찰버스와 부대로 인해 청계광장은 이내 공기가 답답하게 느껴질 정도로 폐쇄 상태가 됐다. 시간이 갈수록 참가자는 점점 늘어나 1만여 명이 됐다.
  
  7시 15분경 경찰이 청계광장으로 통하는 골목으로 첫 진입을 시도했다. '깃발'이 나가려했다는 이유였다. 한 시민은 경찰들 사이에서 소주병이 날아왔다며 격앙했다. 경찰은 "노약자, 어린이, 기자는 안전한 곳으로 이동해주길 바란다"며 최루액이 섞인 물대포를 쏘겠다고 경고했다. 또 경찰은 "비인간적이고 감정적인 불법행위를 중단하라"며 이전 촛불 집회에서처럼 시위대를 자극하는 방송을 내보냈다.
  
  이때는 아직 해가 지기 전. 집시법에 따른다고 해도 야간 집회로 볼 수 없는 상황이었다. 항의하는 시민들에게 경찰은 '묵비권'이라도 행사하듯 한결같이 입을 다물었다. 경찰은 "도로를 점거한 것은 도로교통법 위반에 따른 불법행위"라고 주장했다.
  
▲ 집시법에 따르면, 일몰 전에는 야간 집회로 간주할 수 없다. 그러나 경찰은 이날 '도로교통법 위반'이라는 이유로 참가자들에 대한 진압과 검거 작전에 나섰다. ⓒ프레시안

  
▲ 참가자들은 사진을 찍다가도 연행됐다. ⓒ프레시안

  "여기가 미국 땅이냔 말이야"
  
  7시 50분경, 청계광장에 모여 있는 집회 참가자를 향해 세 방향에서 동시에 경찰 부대가 진격해 진압을 시도했다. 경찰은 깃발을 들고 있는 이들을 집중적으로 연행했으며, 주변에서 항의하는 이들까지 막무가내로 연행했다. 비명소리와 카메라의 플래시가 사방에서 터졌다.
  
  퇴근길에 양복을 입고 이를 지켜보던 한 시민은 "이 쓰레기같은 XX들아"라며 울음으르 터트렸다. 곳곳에서 "저게 인간이냐"라는 항의가 쏟아졌다.
  
  8시경부터 종로구청 사거리 방면에서 경찰은 색소를 이용한 물대포 발사하겠다고 경고하며 진압과 일보 후퇴를 반복했다. 한 어머니는 아이에게 마스크를 씌워주며 "물대포 맞는다고 죽지는 않아"라며 달래기도 했다. 또 중학생으로 보이는 여학생 1명이 '너무한 것 아니냐'며 경찰에게 따졌다는 이유로 연행된 것으로 알려졌다. 참가자들은 "여기가 미국 땅이냔 말이야, 부시를 반대하는데 왜 이러는 거야", "아주 원시시대로 가는구나", "어째 노무현보다 더 못해"라며 경찰을 성토했다.
  
  경고 방송에 이어 경찰이 시범 발사하듯 물대포를 쏘며 진압을 시작했다. 이를 몸으로 막던 광우병 기독교대책위 소속 문대골 목사가 그 자리에서 쓰러져 응급차로 후송됐다. 이외 10여 명의 대책위 관련 목회자도 모두 연행됐다.
  
  참가자들은 청계광장에서 보신각으로 다시 이동했다. 경찰은 어김없이 종각 사거리 사방을 둘러쌌고, 9시 무렵 또 다시 동시 진압을 시작했다. 종로2가 방면에서는 색소가 섞인 물대포가 발사됐다.
  
▲ 경찰은 이날 색소 섞인 물대포를 참가자들에게 발사했다. ⓒ프레시안

  
▲ 물대포를 몸으로 막고 있는 문대골 목사. 그는 이후 갑자기 쓰러져 병원으로 후송됐다. ⓒ프레시안

  상점 안까지 난입해 연행 시도…"프레시안은 안 됩니다" 취재도 막아
  
  9시 40분경, 경찰이 물러간 도로에 강기갑 민주노동당 의원을 비롯해 시민들이 '모이자'를 연호하며 집결했다. 이들은 종로를 따라 행진을 시작했고, 이들과 일정한 거리를 확보한 경찰은 또 다시 뒤쪽에서 달려 나와 진압을 시작했다. 인도로 피한 2000여 명의 시민들은 "폭력 경찰 물러가라"며 차도를 점령한 경찰에게 외쳤다.
  
▲ 참가자들은 보신각 앞 사거리에서 한때 점거 농성을 벌였다. 그러나 곧 경찰이 사방에서 포위하며 진압 작전에 나섰다. ⓒ프레시안

  경찰은 차도에서 카메라를 찍고 있던 여성을 연행했다. 인도에 서서 구호를 외치는 여성에게도 "한 번만 더 하면 연행한다"며 협박했다. 인도에서도 한 대학생은 "밀지 말라"고 했다가 연행됐다. 이를 '집시법 위반'이라고 지적했다가 멱살 잡혀 연행될 뻔한 이도 있었다.
  
  10시경 종로 2가의 한 화장품 점포에서는 경찰의 진압을 피해 들어온 시민 7명을 끌어내려 경찰 부대가 난입하는 소동이 벌어졌다. 그 와중에 가게가 파손되자 점포 주인은 경찰에게 손해배상을 요구했다.
  
▲ 경찰은 상점 안으로 피신한 참가자들까지 연행하려 난입해 매장 안을 어지럽히는 등 물의를 빚었다. 항의하고 있는 매장 주인. ⓒ프레시안

  
▲ ⓒ프레시안

  언론에 대한 통제는 말할 것도 없었다. 경찰은 카메라를 든 기자들 앞에서도 아랑곳하지 않고 물대포를 발사했다. 연행 장면을 찍으려 하는 카메라는 노골적으로 제지당했다. 한 경찰은 진압이 벌어지는 봉쇄선 안으로 들어가려는 <프레시안> 기자에게 "프레시안은 안 됩니다"라며 막아서기도 했다. 또 진압 과정에서 <경향신문> 기자도 연행될 뻔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관 기동대와 전경 부대를 동원한 무력 진압이 계속되는 가운데 종로를 따라 후퇴하던 참가자들은 자정을 넘긴 시각, 명동성당 들머리로 자리를 옮겨 연좌 농성을 벌였다. 경찰은 이들까지 연행을 시도했다. 6일 오전 1시 무렵 남아있던 100여 명의 시민들이 집회를 마무리했다.
  
  "부시가 가는 어디에서든 이런 저항이 일어난다"
  
  강기갑 의원은 "자국 이익 위해서라면 전쟁을 불사하고, 세계화라는 명분을 내세워 '승자 독식 패자 몰락'하게 하는 장본인인 부시가 방한한다"며 "독도 표기 해결 방안 같은 건 가지고 오지도 않는 부시를 반대하며 당당하게 헌법적 권리를 요구하는 국민을 경찰은 토끼몰이식으로 연행해가고 있다"고 말했다.
  
▲ 종각 앞 도로에서 연좌 농성에 나선 강기갑 의원과 민노당 당직자들. ⓒ프레시안

  친구와 함께 집회에 참가한 중학교 3학년 이예슬(가명) 양은 "경찰이 연행하려고 인도에 있는 우리더러 도로에 있었냐며 물어보더라"며 어이없어 했다. 그는 부시 대통령에게 "정신 차려라, 명박이 좀 데려가라. 필요없다"고 말하고 싶다고 했다.
  
  전모(53) 씨는 부시 대통령에게 "일단 (미국산 쇠고기) 재협상을 해야 한다"며 "말로만 사과하거나 빙빙 돌릴 일이 아니다"고 못박았다. 그는 "사실 문제는 우리 정부가 더 심각하다"며 "재협상을 하면 끝날 걸 미국 눈치를 보면서 시간을 끌고 있고, 이러다가 진짜 반미도 나온다"고 경고했다.
  
  김 모(33) 씨는 "쇠고기로 촉발되긴 했지만, 언론 통제, 인터넷규제 등 이명박 정부 자체에 문제가 많다"며 "20년 전 풍경이 이랬겠구나 싶다"고 말했다.
  
  이날 참가자들 중에는 유독 외국인들이 많았다. 미국에서 왔다는 한 외국인은 "부시가 가는 어디에서든 이런 저항이 일어난다"며 "왜? 말이라고 묻나. 전쟁을 일으킨 범죄, 고문한 범죄, 가난을 심화시킨 죄 등 그의 죄목은 수도 없이 많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인도에서 온 한 참가자는 "아까 보수단체 집회도 갔었는데, 여기에는 더 다양하고 젊은 사람들이 모여있다. 이게 젊은 사람들의 생각 아니겠는가. 한국 정부는 이제 완전히 미국에 두 팔 벌려 환영하며 개방했다. 오늘 시위는 하나의 상징이지만, 그 뒤에 비정규직, 물가 등 수많은 사실이 존재한다"고 지적했다.
  
  포르투갈에서 왔다는 또 다른 외국인도 "부시가 온다면 우리 역시 이와 같은 시위가 일어날 것"이라고 덧붙였다.
  
▲ 이날 경찰은 색소가 섞인 물대포를 진압 과정에서 수 차례 발사했다. ⓒ프레시안

  
▲ 참가자들에 대한 무차별 연행에 나선 경찰은 깃발을 들거나, 항의했다는 이유만으로도 참가자들을 강제 연행했다. ⓒ프레시안

  
▲ ⓒ프레시안

  
서울시청, 보수단체 집회에 다시 개방…서울공항 앞 집회, 경찰 진압에 무산
  
  ■ 이날 서울시청 앞 광장은 촛불 집회로 인해 훼손된 잔디를 다시 심는다며 봉쇄된 이후 처음으로 보수 단체들에게 개봉됐다.
  
▲ 보수 집회에는 한나라당 각 분과별에서 제작한 부시 방한 환영 현수막이 내걸렸다. ⓒ프레시안

  한국기독교총연합회는 '촛불집회 중단, 독도 침탈 일본 규탄, 금강산 관광객 피살 사건 단호한 대처, 한미동맹강화' 등을 주장하며 '나라사랑 한국교회 특별기도회'를 열었다. 이들은 성조기와 태극기를 나란히 붙인 애드벌룬을 광장 한가운데에 띄워 부시의 방한을 환영한다고 밝혔다.
  
  이날 참석한 1만여 명의 시민들 역시 태극기와 성조기 모형 깃발을 나란히 들고 참석했다. 참가자들은 50~60대 연령층이 대부분이었으며, 조갑제 <월간조선> 전 대표가 나와 "우리는 미국을 반대하는 죄를 저질렀다"며 촛불 집회를 성토하기도 했다.
  
  해병대전우회가 군복을 입고 인도를 행진하는 등 한대 청계광장에서 열리는 촛불 집회 참가자들과의 충돌이 예상되기도 했으나, 이날 집회는 별다른 사고없이 마무리됐다.
  
  ■ 부시 대통령이 도착한 경기도 성남 서울공항 앞에서는 부시 대통령의 방한을 반대하는 집회가 진행될 예정이었으나, 경찰의 봉쇄로 열리지 못했다. 바로 전 날인 4일 국가인권위원회는 경찰의 집회 금지 결정이 부당하다며 긴급구제를 결정했지만, 경찰은 이를 정면 무시했다. 평화와 통일을 여는 사람들 관계자 등이 공항 근처에서 피켓을 들고 있었다는 이유로 무차별 연행됐다.
  
  

이에 반해 한국자유총연맹 회원 수백 명은 서울공항 입구에서 태극기와 성조기를 흔들며 부시 방한을 환영했다. 부시 대통령은 한국 경찰의 경호 가운데 서울시내 방향으로 차량으로 이동했다.
  
  


   
 
  강이현,손문상/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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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빛푸른고개 2008-08-06 09: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이야, 물대로 맞는다고 죽지는 않아."... 민주주의 장례식이라도 치뤄야 되지 않을까, 이 아침이 답답하다.
 
대한민국 상식사전 아고라
아고라 폐인들 엮음 / 여우와두루미 / 2008년 7월
평점 :
품절


어떤 사람들에게는 '아고라'를 통해 전개된 대한민국의 역동성을 확인하게 하고, 또한 모니터를 통해 실시간으로 참여하는 많은 사람들에게는 단편적인 기억들을 다시금 직조하게 하는 역할을 하는 책이다. 아니 '아고라'의 역동성이 이제 '책'이라는 고정관념까지 변화하게 만든다고 하는 표현이 더 적절하지 않을까. 담고 있는 내용의 의미를 온전히 전하고자 몇번이고 고치고, 다듬고 하는 방식보다 담겨진 목소리를 가감없이 인쇄매체에 담아내는 현장성. 진실과 정의가 있기에 가능하고, 그래서 이제 이 책의 활약상에도 기대를 갖게 하는 책이다.

이 책의 에필로그 한 대목을 옮겨보면,

'모든 것이 충돌하는 우정이요 디지털 시대의 민요이다. 중딩이 만들었는지, 고딩이 만들었는지, "0교시 하면 잠 못 자면 되고, 소구기 수입하면 광우병 걸리면 되고, 죽으면 대운하에 뿌려지면 되고~" 같은 촌철살인의 노래 같은 것. 그 현장에서 나는 확인한다. 미완성적 허기에 사로잡힌 어제의 의식은 낡은 개량 한복처럼 오늘의 몸에도 맞지 않음을. 대통령도, 국회의원도, 학자도, 연애인도, 학문도 예술도 문학도, 아, 문학도 나도 낡은 옷을 벗지 않으면 한낱 옛 추억의 그림자에 지나지 않는다. 그렇다면 지금 곁에 와 있는 것, 이것은 과연 문화폭발이란 말인가, 정치폭발이란 말인가?'

버전업이 아니라, 아고라의 전개과정을 축적해가는 후속권들이 계속되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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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느낌표' 추천 도서가 북한 찬양 도서라고?
[인터뷰] <지상에 숟가락 하나>의 작가 현기영이 본 '볼온서적'

  강기희 (gihi307)


 





 

천상천하 유아독존이 없고 아무리 초현실주의를 표방한 예술 작품이라도 그 뜻이 새로울 것은 하나도 없다고 했던가. 그러다 보니 복고풍이 유행을 하게 되고 오래 전에 잊혀졌던 노래와 영화가 새삼 리메이크 되기도 하는 세상이다. 

 

되살아 난 불온서적의 망령 이 시점에 왜? 

 







  
▲ 소설가 현기영.
ⓒ 민족문학작가회의



정치권력도 그러하던가. 요즘 이명박 정부 아래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을 보면 역사의 시계는 과연 돌고 돈다는 말이 실감난다. 그 일은 이명박 대통령을 향한 충성 경쟁에 불을 붙였고 각 부처에서는 연일 한 건씩 지난 역사를 리메이크 하고 있다.

 

문제는 리메이크를 할 때 사용되는 것이 모두 붉은색이라는 점이다. 아직도 붉은색으로 덧칠만 하면 먹히리라고 생각하는 이명박 정부 사람들 때문에 지금 전국민의 눈이 벌겋게 충혈되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이번에 국방부가 꺼내 든 카드도 붉은색이다. 충성 경쟁에 뛰어든 국방부의 불온서적 목록 공개도 한때 유행했던 금서목록이었다.

 

그것을 시대 파악도 못하고 과감하게 리메이크 했으니 국방부도 드디어 한 건을 하긴 했다. 하지만 노래나 영화도 아닌 것을 리메이크 한 자들의 머리속을 들여다 보면 하는 짓이 한심하다 못해 참으로 우습고 가히 용렬스럽기까지 하다. 그 이유를 들여다 보자.

 

최근 국방부는 23종의 책을 불온서적이라는 꼬리표를 달아 세상에 발표했다. 그 일의 근거가 '한총련이 군부대에 책보내기 운동을 계획하고 있다는 첩보'라니 이런 사실을 두고 울어야 할 지 웃어야 할 지 이번 일을 지켜보는 국민으로 혹은 작품을 쓰는 소설가로서 난망스럽기 짝이 없다.

 

불온서적, 즉 금서(禁書)는 그야말로 군부독재가 판치던 시절 유행하던 구시대의 유물과도 같은 것이었다. 국민들이 아는 것이 지나치게 많아지면 통제가 어려워지던 시절. 도색잡지는 용납해도 정신을 해롭게 만드는 서적은 용서가 되지 않던 그 시절. 전국민이 무의식의 상태에서 정권의 말말 듣고 살아야 한다고 강조하던 그 시절. 그 시기는 분명 임금님의 귀는 당나귀 귀였던 시절이었다.

 

금지 투성이의 세상에서 불온서적을 읽는 것은 무의식 상태에서 의식 상태로의 전환을 꾀하는 첫 출발과도 같았다. 당시 국민이 의식을 갖게 된다는 것은 정권으로서도 부담스러운 것이었고 가장 경계해야 할 일이었다. 그런 이유로 읽고 난 후 물음표를 떠올리게 만드는 책들은 죄다 불온서적으로 묶었다.

 

이제는 사라졌는가 싶었던 불온서적 망령이 되살아 나는 것은 어인 일일까. 이 세상엔 새로운 것이 없다는 진리를 이명박 정부의 정직한 군대인 국방부도 알았다는 것인가. 그리하여 불온서적이란 망령을 다시 꺼내 리메이크 하려는 것이란 말인가.

 

그런데 이왕하려면 제대로나 할 것이지 그 수준이 너무 낮다. 23종의 불온서적 목록을 살펴보니 '이게 과연 불온서적?'하고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드는 책들도 상당수 있다. 불온서적에 마땅히 포함되어야 할 <태맥산맥> 같은 책이 빠져 있는 것도 이상했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일까. 통치권자에게 잘 보이기 위한 국방부의 의도적 실수인가? 아니면 한총련이 선정한 책들이라 생각 없이 포함 시킨 것인가?

 

제주4·3 이야기가 북한 찬양 도서로 둔갑한 사연

 







  
<지상에 숟가락 하나> 겉그림.
ⓒ 실천문학사
현기영



답을 얻기 위해 1일 오후 볼온서적 명단에 오른 작가들과 전화 인터뷰를 하기로 했다.

 

그러나 불온서적에 포함된 문학작품 작가들은 현기영 선생을 제외하곤 모두 고인이 되거나 연락을 취할 수 없는 북한 작가(백남룡 <벗>)였다. 하여 <지상에 숟가락 하나>의 작가 현기영 선생과 전화 인터뷰를 했다.

 

현기영 선생으로서는 1978년 발표한 중편소설 <순이삼촌>이 금서목록에 오른 이후 무려 30년 도전 끝에 두 번째 작품을 불온서적 명단에 올린 영광(?)의 불온작가가 되었다. 먼저, 소설 <지상에 숟가락 하나>로 30년 만에 다시 불온작가 반열에 오른 기분이 어땠냐고 물었다.

 

"황당하지요. 지금이 어떤 세상인데 불온서적을 규정해요."

 

책이 출간된 후 MBC 프로그램인 <느낌표!>에서 권장도서로 선정되어 전국민의 사랑을 받았던 책 <지상에 숟가락 하나>를 국방부가 오독한 것은 아닐까 하고 다시 물었다.

 

"소설 내용 중에 제주 4·3 항쟁 이야기가 조금 나와요. 아마 그걸 문제 삼았던 것은 아닌가 그런 생각이 드네요. 국방부는 제주 4·3 항쟁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곳이거든요."

 

역시 무언가 꼬투리가 있기는 했다. 국방부가 현기영 선생의 책을 불온서적으로 묶은 이유는 제주 4·3 항쟁이었다. 민간인 학살의 원죄가 부끄러운 탓에 그런 내용을 똑똑한 요즘 군인들이 읽지 않기를 바랐다는 것이다.

 

더위 먹은 국방부 드디어 한 건 했다

 

그런데 불온서적으로 규정한 국방부의 발표는 조금 엉뚱하다. 소설 <지상에 숟가락 하나>가 북한 찬양 도서로 되어 있기 때문이었다. 그 이유에 대해 짐작이 가느냐고 현 선생께 물었다.

 

"국방부가 새로운 소설을 쓴 모양이지요. 그 책엔 북한 관련된 내용이 없어요. 그 사람들이 더위를 먹지 않고는 있을 수 없는 일을 하고 있다는 생각 뿐입니다."

 

현기영 선생께서 정답을 말했다. 국방부가 더위를 먹은 게 틀림없는 것 같다. 그렇지 않고서야 불온서적을 목록을 만들어 군장병들의 머릿속을 시멘트 칠 이유가 없지 않던가. 현기영 선생이 이어 말했다.

 

"과거로 역사를 되돌리려 하지만 그건 순간에 불과합니다. 억지로 되돌린 역사는 언젠가 되돌려진 역사 이상으로 진보하게 되어 있습니다. 지난 역사가 그걸 증명하고 있지 않습니까."

 

현기영 선생은 인터뷰 내내 "어리석은 사람들" 또는 "바보나 하는 짓이다" 등의 말로 자신에게 불온작가 꼬리표를 달은 국방부를 힐난했다.

 

"소설을 많은 분들이 읽었는데, 그렇게 되면 독자들도 불온한 독자들 아닙니까? 불온한 독자를 <느낌표!> 관계자들이 만들었으니 방송국도 불온하긴 마찬가지겠지요. 온 세상이 다 불온한데 저들만 깨끗하다고 하니 그게 더 이상한 일이지요."

 

전 국민을 불온하게 만드는 나라 국방부

 

현기영 선생의 소설은 <느낌표!> 권장도서일뿐 아니라 간행물윤리위원회 선정 추천도서이기도 했다. 그렇다면 그들과 신문까지 불온서적을 홍보 또는 찬양했으니 모두 불온한 사람들일 터였다. 소설을 읽은 독자들의 심장에는 이미 불온의 싹이 트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국방부의 발표는 소설을 읽을 모든 독자와 책을 선정하거나 홍보한 모든 사람을 모욕한 것과 다름 없습니다. 정권이 바뀌었다고 잣대가 그렇게 달라지면 표현의 자유와 사상의 자유, 창작의 자유는 사라지고 말 것입니다."

 

한때 문화예술진흥원장(현재 한국문화예술위원회)으로서 대한민국의 문화예술을 진일보 하게 만든 현기영 선생과의 전화 인터뷰는 그 말로 끝을 맺었다. 정권이 바뀌었다고 새로운 잣대가 생긴다면 지나온 시대가 만든 보편성은 아무런 가치가 없는 것이 되고 만다. 

 

국방부의 발표대로라면 나 역시 백남룡의 <벗>와 현기영의 <지상에 숟가락 하나>, 권정생의 <우리들의 하느님>, <김남주평전> 등의 불온 서적을 다수 보유하고 있다. 내 정신의 불온함을 국방부가 지적했으니 더 불온하게 살아야 할 듯싶다.

 

더불어 불온서적에 포함된 책들은 평소 아끼던 책이기도 해 빌려주지 않았는데, 이젠 그 책들을 주위 사람들에게 두루 읽게 해야 겠다. 그런 다음 김남주의 시가, 현기영의 소설이, 권정생의 글이 왜 불온서적이 되었는지에 대해 진지하게 토론해야 겠다. 



2008.08.02 18:09 ⓒ 2008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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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객 21 - 가자미식해를 아십니까?
허영만 지음 / 김영사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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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시절, 우리들 아지트였던 계단꼭대기 단칸방집. 대문을 열고 들어서면 1미터도 안되는 좁다란 복도 왼켠으로 화장실, 친구와 동생이 같이 쓰는 방, 다섯살배기 아이와 함께 내외가 쓰는 방, 회사에 다니는 노총각의 방, 그리고 협소한 거실을 두고 주인아저씨네 방이 있고, 그 옆에 친구 어머님과 누님 두 분이 함께 쓰는 방으로 구성된 집이었습니다. 복도의 오른켠은 낮은 블록담 너머로 서울시내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집. 비가 오면 신발을 쪽마루에 얹어두고 비닐을 덮어놓아야 했던 집.

친구 어머님께서는 일찍 홀로 되셔서 4남매를 어엿하게 성장시킨 자랑스러운 분이었습니다. 함경도 태생이신 어머님은 가끔 우리들에게 원산 명사십리의 경관과 함경도 특유의 문화나 생활습관들을 알려주셨지요. 친구들 가운데 학교에서 가장 가까운 집이라 우리는 늘 몇 개의 라면을 사들고, 찬 밥과 김치보시기를 비워버리곤 했습니다. 그릇을 비우고 설겆이를 하기 위해 가위바위보나 오뻥(!)을 하다보면 또 누군가 라면봉지를 들고 들어왔고, 그러나 어머니의 김치독은 항상 빈 적이 없었습니다.

어느 겨울날, 집에 가지 않고 친구의 방에서 뒹굴던 우리들에게 다들 건너오라고 하시면서 마련해주신 밥상에는 생전 못보던 음식이 놓여있었습니다. 항상 고향이 자랑스러우셨던 어머니께서 식해 먹을 줄 아느냐고 물었고, "누가 밥 먹을 때 식혜를 먹어요?" 하는 우리들에게 막 지은 뜨거운 밥, 김장김치와 함께 내놓으신 가자미식해. 그 맛이란!(그 다음부터 어머니께서는 철모르는 우리들을 위해 더 많이, 더 자주 식해를 담그셨지요) 

맛있게 식해를 먹는 우리들을 흐뭇하게 바라보시던, 돌아가신 친구 어머님의 모습이 그립군요.  

갖가지 음식마다 담긴 각각의 사연들을 이미 100화 이상, 그것도 어느 하나 부족함이 없는 스토리로 그려내신 허화백님의 <식객> 21권에서 다시 가자미식해를, 그리고 어머님을, 또한 친구들과의 옛기억을 흐뭇한 마음으로 떠올리게 됩니다. 내일 아침이면 몇 군데 전화를 넣어야겠다는 생각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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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빛푸른고개 2008-08-05 17: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을 읽은 뒤, 최인호의 <머저리 클럽>을 읽었고, 지금은 황석영의 <개밥바리기별>을 읽고... 무더위를 '추억모드'로 잊으려는 것보다는 창문밖 세상 한 귀퉁이가 70년대 같아서...
 

  "건국절? 차라리 8·29를 '문명절'이라 해라"
  [기고] 그들이 '광복'을 싫어하는 이유
 
  2008-08-04 오전 8:40:20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모를 작은 소동이 벌어지고 있다. 광복절의 명칭을 버리고, 그 날을 건국절로 하겠단다. 1919년(기미년)부터 민국 연호를 셈하기 시작하겠다고 말했던 이승만도 놀랄 만한 일이다.
  
  광복과 건국은 절대로 서로 경쟁하는 개념이 아니었다. 이승만이 왜 하필 8월 10일도 아니고, 20일도 아니고, 8월 15일을 정부 수립일로 정했겠는가. 그것은 바로 우리 민족이 일본 제국주의로부터 해방이 된 8월 15일의 의미를 이어받아 정부 수립을 더욱 뜻깊게 하려고 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광복을 지우고 '건국'만을 내세우겠다니. 참으로 뉴라이트들이 하는 짓이란….
  
  그들은 '간절하나 허망한 욕심'을 역사라 주장한다
  
  솔직히 이런 글을 쓰는 것조차 민망하기 짝이 없다. 역사를 공부하다 보면, 모든 역사적 사실을 쓸 수 있는 것이 아니고 거기서 일어나 특정 사건들을 취사선택하는 것이기 때문에, 보는 이의 관점에 따라 서술하고자 하는 역사의 내용이 달라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이런 견해의 차이는 우리의 역사 이해의 수준을 높여주고, 건설적인 토론을 가져온다.
  
▲ 역사를 공부하다 보면, 모든 역사적 사실을 쓸 수 있는 것이 아니고 거기서 일어나 특정 사건들을 취사선택하는 것이기 때문에, 보는 이의 관점에 따라 서술하고자 하는 역사의 내용이 달라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지금 뉴라이트들이 내놓는 얘기는 역사를 공부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대응을 하기조차 민망해진다.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수립 경축식 전경. ⓒ건국60주년 기념사업위원회

  그런데 지금 뉴라이트들이 내놓는 얘기는 역사를 공부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대응을 하기조차 민망해진다. 지금 이 소동은 견해 차이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다. 역사를 서술하다 보면 실제 일어난 일이 있고, 그것을 바라보는 나의 이야기가 있고, 너의 이야기가 있고, 그들의 이야기가 있을 수 있다. 이런 차이를 갖고 상호 토론하고 교류하면서 역사 인식이 진화된다. 그런데 여기, 엉뚱한 자들이 종종 끼어든다. 그들은 실제 일어난 일을 자신의 관점으로 해석하는 것이 아니라, '이래었었었드랬으면…'이라는 "간절하나 허망한 욕심"을 갖고 그것을 역사라고 주장한다. 참, 같이 놀아주기 난감한 사람들이다.
  
  '광복'과 서로 대립하거나 배제하는 것은 아니지만, 경쟁이라면 경쟁할 수 있는 용어로 우리가 떠올릴 수 있는 것은 '해방'이다. 그 차이가 심하다고 할 수는 없었지만, 그래도 해방은 좌파 쪽에서 조금 선호했고, 광복은 우파 쪽이 조금 선호한 용어였다. 빼앗긴 것을 되찾는다는 의미에서 광복이 호소력이 있었지만 좀 복고적인 냄새가 난다는 의미에서 진보적인 사람들은 해방을 선호했다.
  
  독립 운동 진영의 우파들이 광복이라는 말을 선호했음은 임시정부가 조직한 군대의 이름이 광복군이었고, 임시정부에 참여한 제 당파가 모인 연합체가 '한국광복진선'이었고, 해방 후의 정부(건국 후)가 이 날을 광복절로 삼았고, 독립운동가 출신들이 모인 최대의 단체가 광복회인 점에서 잘 나타난다. 또한 좌파가 해방을 조금 선호했음에도, 광복이란 용어를 거부하지 않았음은 1936년 김일성이 조직한 연합전선체의 명칭이 '조국광복회'였던 것에 잘 나타난다.
  
  나 자신도 해방이나 광복이란 말이 꼭 건국과 대립되는 용어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민족 해방 운동가들과 일제의 압제 속에서 고통 받던 대중들이 꿈꿨던 해방, 또는 광복이란 일본 제국주의의 굴레를 벗어나는 것도 있지만, 우리 손으로 우리가 꿈꿨던 정부와 사회를 건설하는 것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건국 60주년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면 임시정부를 완전히 부인하는 것이라고 주장하지만, 임시정부도 대한민국을 완전히 '건국'했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임시정부가 '건국 강령'을 채택한 것 아니겠는가. 건국은 해방 또는 광복의 마무리 작업이라 할 것이다. 그런 점에서 광복과 건국은 절대로 배타적인 개념이 아니다.
  
  그들이 '광복절'을 싫어하는 이유
  
  그런데, 왜 저들은 수십 년간 아무 탈 없이 잘 사용해온 광복절의 명칭을 바꾸자며 황당한 일을 벌이고 있을까. 우리 민족 대다수에게 건국과 광복은 대립되는 개념일 수가 없지만, 몇몇 사람들, 그리고 그들의 생물학적 또는 정치적 후예들에게는 해방이나 광복의 의미가 전혀 다르게 다가올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광복'하면 누가 떠오르겠는가. 이승만 정부가 제정한 광복절 노래에도 나와 있듯이, "기어이 보시려던 어른님, 벗님", 즉 독립 운동 과정에서 스러져간 선열들을 떠올리게 됨은 너무나 당연한 일 아니겠는가. 순국선열들을 떠올리게 되면, 그 반대편에는 당연히 친일파가 어른거리게 마련이다.
  
  순국선열에 대한 묵념을 빠트릴 수 없는 광복절은 당연히 친일파를 떠올리게 되는 날이다. 악질 친일파들에게 우리가 광복절이라는 이름으로 기념하고 있는 1945년 8월 15일은 정말 죽을 뻔했던, 기분 나쁜 날이다. 민족 구성원의 대다수는 일제의 압박에서부터 벗어났지만, 극소수의 친일 세력은 자신들의 기득권을 박탈당했을 뿐만 아니라 생사가 어찌될 지를 가늠할 수 없는 불안의 구렁텅이로 빠진 날이었다.
  
  그들에게는 참으로 '다행히'-민족 전체에게는 엄청난 불행이었지만 분단이 됐고, 외세가 들어왔다. 그런 혼란 속에서 친일파는 살아남았다! 그냥 살아남은 게 아니다. 보통 친일파가 아니라 친일파 중에서도 가장 악질이라고 할 수 있는 민족 반역자들이 일제 잔재를 청산해야 한다고 주장하던 민족적 양심을 가진 세력을 거꾸로 청산하고 살아남은 것이다. 얼마나 감격스러웠을까. 그래서 그들은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 수립 기념일을 건국절이라는 이름 아래 기념하려고 한다.
  
  국가 정체성? 제헌 헌법이나 읽어보시지
  
  지금 광복절을 건국절로 바꾸자는 해괴한(건국절이라는 용어가 해괴한 것이 아니라, 그들의 속셈이 참으로 해괴한 것이다) 짓을 벌이는 자들은 입만 열면 대한민국의 국가 정체성을 내세운다. 그런데 솔직히 저자들이 대한민국 제헌 헌법이나 제대로 읽어보고 국가 정체성을 떠벌이는지 의문이다. 대한민국 국가 정체성의 뿌리를 우리가 어디에서 찾을 수 있겠는가. 그것은 대한민국 임시 정부와 제헌 헌법이 아니겠는가.
  
  잘 알려진 바와 같이 우리 제헌 헌법은 3.1운동의 정신을 계승한다는 것을 헌법 전문에서 분명히 했고, 또 부칙에서는 친일 반민족 행위자 처벌에 대한 헌법적 근거를 마련했다. 우리의 제헌 헌법은 오늘날 우리가 촛불 집회에서 즐겨 노래하듯이 '대한민국은 민주 공화국이고, 대한민국의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자유민주주의 원칙을 천명했다.
  
  그리고 경제면에서는 지금 뉴라이트들이 떠들어대는 시장 만능주의 내지는 민영화 지상주의가 아니라 사회주의적 통제 경제에 가까운 경제 민주주의를 원칙으로 삼았다. 중요 산업 국유화, 토지 국유화, 무상 교육, 무상 치료와 같은 대한민국 임시 정부의 건국 강령-임시정부 뿐 아니라 해방 전야 모든 민족 해방 운동 세력의 공통된 약속 등-을 골자로 한 것을 이어받았기 때문에, 대한민국은 좌파는 물론이고 백범 김구 선생과 같은 중간파(남북협상파)가 참여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이와 같은 진보적인 내용을 헌법에 담고 있었던 것이다. 이것이 대한민국의 정체성이다.
  
  이 정체성에 입각할 때 광복과 건국은 절대로 대립하지 않는다. 그리고 이렇게 수립된 대한민국의 첫 번째 과제는 역시 친일 반민족 행위자의 청산이었다. 그러나 대한민국 '건국' 1년이 채 안 된 1949년 5월과 6월, 남노당 프락치 사건, 반미특위 해산, 백범 김구 선생의 암살 등 반민족 행위자들이 주축이 된 친위 쿠데타가 일어났다. 이들은 대한민국의 핵심 과제였던 친일 잔재 청산을 좌절시켰다. 그리고 이들이 장악한 대한민국에서 국가보안법은 초헌법적 지위를 차지하게 됐다. 저들이 입만 열면 떠들어대는 국가 정체성이란 제헌 헌법에 기초한 정체성이 아니라 바로 '국가보안법 정체성'이다.
  
  그 '아버지'들조차 쑥스러워할라
  
  광복절을 건국절로 바꾸자고 주장하는 자들은 현재의 근현대사 교과서가 자학사관에 빠져있다면서, 이른바 "대안교과서"라는 화려한 '쉬래기'를 내놓았다. 저들은 객관적인 역사를 서술한다고 표방했지만, 사실 군사독재정권 시절 국정 국사교과서보다도 훨씬 더 편향적인 이데올로기에 사로잡혀 있다.
  
  1970~80년대의 국정 국사교과서는 친일파 민족 반역자들에 대한 언급을 회피했다. 저들이 감추고자 했던 친일 문제를 자꾸 들춰내면, "말 많으면 빨갱이"라고 탄압을 받았다. 그러나 그 시절, 친일의 혐의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던 군사정권의 실력자들은 자신들의 친일 경력을 감추려고 했을지언정 감히 그것을 미화할 엄두를 내지는 않았다. 그게 그들의 최소한의 미덕이라면 미덕이었다.
  
  그런데 지금 저들은 친일을 대놓고 미화하려 하고 있다. 저들에게 박정희는 산업화의 아버지, 이승만은 건국의 아버지, 친일파는 현대 문명의 아버지였다. 어쩌면 이완용은 '실용의 아버지'일런지도 모른다. 너무 많은 아버지를 가진 저 자들은 그 '아버지'들조차 쑥스러워할 그런 짓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일본 제국주의의 한국 지배에 연연하지 말고, 독재 정권 아래에서도 법정에 끌려가 애국가를 부를만한 자유가 있었다고 감격해야 한다는 뉴라이트들이여, 차라리 솔직하게 그렇게 광복절을 지워버리고 싶으면 광복되기 이전 독립운동가들이 국치일로 아프게 기억했던 8월 29일도 이름을 바꿔야 하지 않겠는가. 당신들의 아버지들이 그 자랑스러운 현대 문명을 받아들인 '문명절'로.

   
 
  한홍구/성공회대 교양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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