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국절? 차라리 8·29를 '문명절'이라 해라"
  [기고] 그들이 '광복'을 싫어하는 이유
 
  2008-08-04 오전 8:40:20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모를 작은 소동이 벌어지고 있다. 광복절의 명칭을 버리고, 그 날을 건국절로 하겠단다. 1919년(기미년)부터 민국 연호를 셈하기 시작하겠다고 말했던 이승만도 놀랄 만한 일이다.
  
  광복과 건국은 절대로 서로 경쟁하는 개념이 아니었다. 이승만이 왜 하필 8월 10일도 아니고, 20일도 아니고, 8월 15일을 정부 수립일로 정했겠는가. 그것은 바로 우리 민족이 일본 제국주의로부터 해방이 된 8월 15일의 의미를 이어받아 정부 수립을 더욱 뜻깊게 하려고 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광복을 지우고 '건국'만을 내세우겠다니. 참으로 뉴라이트들이 하는 짓이란….
  
  그들은 '간절하나 허망한 욕심'을 역사라 주장한다
  
  솔직히 이런 글을 쓰는 것조차 민망하기 짝이 없다. 역사를 공부하다 보면, 모든 역사적 사실을 쓸 수 있는 것이 아니고 거기서 일어나 특정 사건들을 취사선택하는 것이기 때문에, 보는 이의 관점에 따라 서술하고자 하는 역사의 내용이 달라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이런 견해의 차이는 우리의 역사 이해의 수준을 높여주고, 건설적인 토론을 가져온다.
  
▲ 역사를 공부하다 보면, 모든 역사적 사실을 쓸 수 있는 것이 아니고 거기서 일어나 특정 사건들을 취사선택하는 것이기 때문에, 보는 이의 관점에 따라 서술하고자 하는 역사의 내용이 달라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지금 뉴라이트들이 내놓는 얘기는 역사를 공부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대응을 하기조차 민망해진다.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수립 경축식 전경. ⓒ건국60주년 기념사업위원회

  그런데 지금 뉴라이트들이 내놓는 얘기는 역사를 공부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대응을 하기조차 민망해진다. 지금 이 소동은 견해 차이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다. 역사를 서술하다 보면 실제 일어난 일이 있고, 그것을 바라보는 나의 이야기가 있고, 너의 이야기가 있고, 그들의 이야기가 있을 수 있다. 이런 차이를 갖고 상호 토론하고 교류하면서 역사 인식이 진화된다. 그런데 여기, 엉뚱한 자들이 종종 끼어든다. 그들은 실제 일어난 일을 자신의 관점으로 해석하는 것이 아니라, '이래었었었드랬으면…'이라는 "간절하나 허망한 욕심"을 갖고 그것을 역사라고 주장한다. 참, 같이 놀아주기 난감한 사람들이다.
  
  '광복'과 서로 대립하거나 배제하는 것은 아니지만, 경쟁이라면 경쟁할 수 있는 용어로 우리가 떠올릴 수 있는 것은 '해방'이다. 그 차이가 심하다고 할 수는 없었지만, 그래도 해방은 좌파 쪽에서 조금 선호했고, 광복은 우파 쪽이 조금 선호한 용어였다. 빼앗긴 것을 되찾는다는 의미에서 광복이 호소력이 있었지만 좀 복고적인 냄새가 난다는 의미에서 진보적인 사람들은 해방을 선호했다.
  
  독립 운동 진영의 우파들이 광복이라는 말을 선호했음은 임시정부가 조직한 군대의 이름이 광복군이었고, 임시정부에 참여한 제 당파가 모인 연합체가 '한국광복진선'이었고, 해방 후의 정부(건국 후)가 이 날을 광복절로 삼았고, 독립운동가 출신들이 모인 최대의 단체가 광복회인 점에서 잘 나타난다. 또한 좌파가 해방을 조금 선호했음에도, 광복이란 용어를 거부하지 않았음은 1936년 김일성이 조직한 연합전선체의 명칭이 '조국광복회'였던 것에 잘 나타난다.
  
  나 자신도 해방이나 광복이란 말이 꼭 건국과 대립되는 용어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민족 해방 운동가들과 일제의 압제 속에서 고통 받던 대중들이 꿈꿨던 해방, 또는 광복이란 일본 제국주의의 굴레를 벗어나는 것도 있지만, 우리 손으로 우리가 꿈꿨던 정부와 사회를 건설하는 것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건국 60주년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면 임시정부를 완전히 부인하는 것이라고 주장하지만, 임시정부도 대한민국을 완전히 '건국'했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임시정부가 '건국 강령'을 채택한 것 아니겠는가. 건국은 해방 또는 광복의 마무리 작업이라 할 것이다. 그런 점에서 광복과 건국은 절대로 배타적인 개념이 아니다.
  
  그들이 '광복절'을 싫어하는 이유
  
  그런데, 왜 저들은 수십 년간 아무 탈 없이 잘 사용해온 광복절의 명칭을 바꾸자며 황당한 일을 벌이고 있을까. 우리 민족 대다수에게 건국과 광복은 대립되는 개념일 수가 없지만, 몇몇 사람들, 그리고 그들의 생물학적 또는 정치적 후예들에게는 해방이나 광복의 의미가 전혀 다르게 다가올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광복'하면 누가 떠오르겠는가. 이승만 정부가 제정한 광복절 노래에도 나와 있듯이, "기어이 보시려던 어른님, 벗님", 즉 독립 운동 과정에서 스러져간 선열들을 떠올리게 됨은 너무나 당연한 일 아니겠는가. 순국선열들을 떠올리게 되면, 그 반대편에는 당연히 친일파가 어른거리게 마련이다.
  
  순국선열에 대한 묵념을 빠트릴 수 없는 광복절은 당연히 친일파를 떠올리게 되는 날이다. 악질 친일파들에게 우리가 광복절이라는 이름으로 기념하고 있는 1945년 8월 15일은 정말 죽을 뻔했던, 기분 나쁜 날이다. 민족 구성원의 대다수는 일제의 압박에서부터 벗어났지만, 극소수의 친일 세력은 자신들의 기득권을 박탈당했을 뿐만 아니라 생사가 어찌될 지를 가늠할 수 없는 불안의 구렁텅이로 빠진 날이었다.
  
  그들에게는 참으로 '다행히'-민족 전체에게는 엄청난 불행이었지만 분단이 됐고, 외세가 들어왔다. 그런 혼란 속에서 친일파는 살아남았다! 그냥 살아남은 게 아니다. 보통 친일파가 아니라 친일파 중에서도 가장 악질이라고 할 수 있는 민족 반역자들이 일제 잔재를 청산해야 한다고 주장하던 민족적 양심을 가진 세력을 거꾸로 청산하고 살아남은 것이다. 얼마나 감격스러웠을까. 그래서 그들은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 수립 기념일을 건국절이라는 이름 아래 기념하려고 한다.
  
  국가 정체성? 제헌 헌법이나 읽어보시지
  
  지금 광복절을 건국절로 바꾸자는 해괴한(건국절이라는 용어가 해괴한 것이 아니라, 그들의 속셈이 참으로 해괴한 것이다) 짓을 벌이는 자들은 입만 열면 대한민국의 국가 정체성을 내세운다. 그런데 솔직히 저자들이 대한민국 제헌 헌법이나 제대로 읽어보고 국가 정체성을 떠벌이는지 의문이다. 대한민국 국가 정체성의 뿌리를 우리가 어디에서 찾을 수 있겠는가. 그것은 대한민국 임시 정부와 제헌 헌법이 아니겠는가.
  
  잘 알려진 바와 같이 우리 제헌 헌법은 3.1운동의 정신을 계승한다는 것을 헌법 전문에서 분명히 했고, 또 부칙에서는 친일 반민족 행위자 처벌에 대한 헌법적 근거를 마련했다. 우리의 제헌 헌법은 오늘날 우리가 촛불 집회에서 즐겨 노래하듯이 '대한민국은 민주 공화국이고, 대한민국의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자유민주주의 원칙을 천명했다.
  
  그리고 경제면에서는 지금 뉴라이트들이 떠들어대는 시장 만능주의 내지는 민영화 지상주의가 아니라 사회주의적 통제 경제에 가까운 경제 민주주의를 원칙으로 삼았다. 중요 산업 국유화, 토지 국유화, 무상 교육, 무상 치료와 같은 대한민국 임시 정부의 건국 강령-임시정부 뿐 아니라 해방 전야 모든 민족 해방 운동 세력의 공통된 약속 등-을 골자로 한 것을 이어받았기 때문에, 대한민국은 좌파는 물론이고 백범 김구 선생과 같은 중간파(남북협상파)가 참여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이와 같은 진보적인 내용을 헌법에 담고 있었던 것이다. 이것이 대한민국의 정체성이다.
  
  이 정체성에 입각할 때 광복과 건국은 절대로 대립하지 않는다. 그리고 이렇게 수립된 대한민국의 첫 번째 과제는 역시 친일 반민족 행위자의 청산이었다. 그러나 대한민국 '건국' 1년이 채 안 된 1949년 5월과 6월, 남노당 프락치 사건, 반미특위 해산, 백범 김구 선생의 암살 등 반민족 행위자들이 주축이 된 친위 쿠데타가 일어났다. 이들은 대한민국의 핵심 과제였던 친일 잔재 청산을 좌절시켰다. 그리고 이들이 장악한 대한민국에서 국가보안법은 초헌법적 지위를 차지하게 됐다. 저들이 입만 열면 떠들어대는 국가 정체성이란 제헌 헌법에 기초한 정체성이 아니라 바로 '국가보안법 정체성'이다.
  
  그 '아버지'들조차 쑥스러워할라
  
  광복절을 건국절로 바꾸자고 주장하는 자들은 현재의 근현대사 교과서가 자학사관에 빠져있다면서, 이른바 "대안교과서"라는 화려한 '쉬래기'를 내놓았다. 저들은 객관적인 역사를 서술한다고 표방했지만, 사실 군사독재정권 시절 국정 국사교과서보다도 훨씬 더 편향적인 이데올로기에 사로잡혀 있다.
  
  1970~80년대의 국정 국사교과서는 친일파 민족 반역자들에 대한 언급을 회피했다. 저들이 감추고자 했던 친일 문제를 자꾸 들춰내면, "말 많으면 빨갱이"라고 탄압을 받았다. 그러나 그 시절, 친일의 혐의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던 군사정권의 실력자들은 자신들의 친일 경력을 감추려고 했을지언정 감히 그것을 미화할 엄두를 내지는 않았다. 그게 그들의 최소한의 미덕이라면 미덕이었다.
  
  그런데 지금 저들은 친일을 대놓고 미화하려 하고 있다. 저들에게 박정희는 산업화의 아버지, 이승만은 건국의 아버지, 친일파는 현대 문명의 아버지였다. 어쩌면 이완용은 '실용의 아버지'일런지도 모른다. 너무 많은 아버지를 가진 저 자들은 그 '아버지'들조차 쑥스러워할 그런 짓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일본 제국주의의 한국 지배에 연연하지 말고, 독재 정권 아래에서도 법정에 끌려가 애국가를 부를만한 자유가 있었다고 감격해야 한다는 뉴라이트들이여, 차라리 솔직하게 그렇게 광복절을 지워버리고 싶으면 광복되기 이전 독립운동가들이 국치일로 아프게 기억했던 8월 29일도 이름을 바꿔야 하지 않겠는가. 당신들의 아버지들이 그 자랑스러운 현대 문명을 받아들인 '문명절'로.

   
 
  한홍구/성공회대 교양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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