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추를 심었다.
한 판에 오천 원 주고 모종을 사 왔다.
알배추와 청배추 각 한 판씩이다.
모두 해서 일백 팔십 개 정도다.

"심어보고 우리 준다고 혀. 남을지 모자랄지."

생각보다 모종이 많이 들어가서 거들어 주신
아주머니들에게는 스무 개 가량 넘어가는 모종을 넘겨 드렸다.
개수는 적지만 보기에 가장 예쁜 놈들로 골라 와서 그런지
모두 사무실 배추모종에 대해 덕담을 한 마디씩 해주신다.
하룻밤 지나고 아침에 만난 배추 모종은 힘차고 싱싱하다.
의기양양해서 아주머니들에게 물었다.

"물은 며칠 안줘도 되겠죠?"
"배추 허는 행동보고."

배추가 하는 '행동'이라…
참 낯선 표현이다. 하지만 그 표현 속에
살아 있는 생물이란 느낌이 물씬하다.
그렇게 비가 많이 왔지만 어린 배추모종들에게
한낮의 햇살과 거친 가을바람은 견디기 쉽지 않은 조건이다.
땅 속 깊은 곳에서 수분을 끌어올리기엔 힘이 모자란 것이다.
한 낮 세 시간 동안 배추는 말라 죽어버릴 듯한 모양새로 바뀌어버린다.

"일단 물을 조금만 줘. 해그름에 좀 더 주고."

불과 십여 분 지나서 싹들이 다시 머리를 쳐들기 시작한다.
그래 다시 배추의 '행동' 이란 표현은 참으로 타당하단 생각이 드는 것이다.
배추의 '행동'은 지금 땅 속에서, 햇살이, 바람이 자신에게 작용하는
모든 에너지에 그대로 반응하며 살기 위한 치열한 몇 시간을
오롯하게 보여주었다.
모니터 너머로 배추 모종을 자꾸 흘깃거리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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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추 모종 옮기기 전,
너무 긴 비에 덩어리진 채 딱딱해진 발고랑에 호미질을 해야 했다.
뙤약볕이지만 제법 시간이 걸리는 일이라 토닥거리고 있자니
한 분 두 분 품앗이로 모여들었다.
'사무실이 농사일을 뭐 알겄어.' 라는 여론은 워낙에 확고하다.
지난주에 뿌려 둔 무우는 싹이 확실하다.
모두들 지리산닷컴의 무우 고랑을 칭찬하느라 침이 마른다.

"근데 약을(농약) 안 한담서?"
"예. 그냥 재미삼아 하는 텃밭이고 제 입으로 들어갈 것이라."
"그래도 한 두어 번은 해줘얄 텐디.
안 그럼 일일허니 손으로 벌레를 잡아줘얀당께."
"잡지요 뭐. 얼마나 넓다고 못 하겠습니까."

이런 수작들을 나누고 있는데 지천댁이 이상하리만큼 조용하다.
농약 이야기 나오면서부터 그랬던 것 같았고 자세히 보니 삐죽하니
웃고 있는 듯 도 하다. 가만 가만…

"지천 엄니, 혹시…"
"쪼까했어. 새벽에 약 앵기고 들어오다가 벌거지가 보이길래…
아 그거 한번 정도는 암시랑토 안 혀."

내일은 밭고랑에 DMZ용 철조망을 설치할 생각이다.
이제 동지들과의 전쟁이다.
경고판도 설치할 생각이다.

"한 번만 더 나으 밭고랑에 약한다고 손대불믄
그 엄니 호박 구댕이에 석유를 확 부서불랑게!"

끄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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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고에 대해 비판하는 사람이 많을 거다.
화이트 칼라나 재벌에 대해 집유를 내려 많은 비판 제기될 것을 감안했다.
스스로 비판을 달게 받겠다. 재판 결과 정당성에 대해 확신한다.
모든 책임을 지겠다. 잘못이 있으면 달게 받겠다.
경청해 주셔서 감사한다."

- 현대·기아차 정몽구 회장에 대한 항소심 선고에서
  이재홍 수석부장판사 -


밭고랑 사이에서 빠져나가지 못하고 있는
물길 만든다고 삽질하면서 혼자 중얼거렸다.

"개새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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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부터 지천댁 목소리가 유난히 쩌렁쩌렁 울린다.
대문은 활짝 열려 있고 마당에 승용차도 두 대가 들어서 있다.
아들, 딸, 손자, 손녀, 사위, 며느리 모두 다 모였다.
손자들 꾸짖는 소리조차 활달하다.

"아, 시끄러워서 일을 할 수가 있나!
이 할머니가 오늘 왜 이리 기세등등하시나?"

마당으로 들어서며 따님들과 웃음으로 인사했다.
오늘이 영감님 기일이다.
지난 장부터 제물 사들이고 마당의 채소 돌보기가 예사롭지 않았다.
그래 그렇게 먼저 가신 분은 이런 날 할멈 목에 힘 한번 주라고
그렇게 정해 놓고 가신 모양이다.
지금은 없지만 존재했으니 기억하기 위해 자손들이 모여들고
모처럼 마당은 왁자하다.
제삿날이 잔칫날 되지 말란 법 있나.
죽은 자가 산 자를 위해 베푸는 잔칫날이다.
음복飮福.
복福을 마신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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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닷컴 사무실이 놓여 있는 땅의
백여 평 밭을 나누어서 배추랑 무우를 심기로 했다.
여름내 잡초 무성했던 땅은 일요일 아침에 트랙터로 갈아서 엎었다.
배추와 무우를 함께 갈아 먹을 동지들 모시고 읍내 종묘상 가는 길에
깜박 잊고 음악을 끄지 않았다.
게이코 리Keiko Lee의 I will wait for you가 나오고 있었다.
뒷좌석의 대평댁이 결국 한마디 하신다.

"뭔 놈에 노래를 디져불 모냥으로 해쌌냐?
살기 오지게 힘든 모냥이네."

읍내 종묘상에서 육천 원 주고 무우 씨를 구입했다.
조합 것이 좋다, 종묘상 것이 좋다 말씀들이 분분했고
저마다 자신의 믿음을 양보할 것 같지는 않았다.
믿음의 근거는 공통적인데 작년에도 그 씨들이 '참말로' 좋았단 것이었다.
돌아와서 사무실 입구 감나무 아래에서 즉석 구두 임원회의가 열렸다.
배추는 운암댁과 지천댁 네 모종 남는 것을 좀 얻기로 하고
지리산닷컴은 대평댁이 조금 전에 구입한 무우 씨 절반을 나누어 갖기로 했다.
대구댁 역시 운암댁이 며칠 전 조합에서 구입해 둔 것을 나누어 갖기로 했다.
아침에 정수 씨가 트랙터로 사무실 앞 잡초 밭을 뒤집어 준 것에 대한 보답은
운암, 대평, 대구댁, 지리산닷컴이 오천 원씩 분담하여 해주기로 했지만
정수 씨가 극구 받지 않기로 하는 바람에 모두 이구동성으로
정수 씨를 칭송하는 것으로 마감했다.

"그러면 제가 대평 아주머니께 삼천 원 드리면 되는 겁니다."
"글제. 원래 이런 것은 정확혀야 혀."

트랙터 값 이만 원을 나 혼자 내겠다고 아침에 말씀드렸다가
집중포격을 받은 다음이라 나는 고분고분해졌다.
원래 이런 것은 정확해야 한다.
돈 만 원 우습다는 듯 베풀고자 하는 호의는 결코 호의가 아닌 것이다.
또 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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