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 산마을 이야기] (41) 경남 함양군 마천면 백무동
 

함양군 마천면 백무동은 지리산 주능선 상의 세석과 장터목으로 길이 닿아 늘 등산객들로 분주하지만 옛날 옛적엔 천왕봉에서 기도를 올리려는 무당들로 붐볐던 곳이라고 한다. 백무동이란 이름도 ‘100명의 무당이 살았다’는 뜻의 ‘백무(百巫)’였다가 무관이었던 전주 이씨가 들어오면서 백무(白武)로 그 뜻이 바뀌었다.


 
▲ 사진 위에서 시계방향으로 해바라기 곱게 핀 백무동 마을 풍경, 장터목펜션을 운영하는 이봉수씨, 장작으로밥을 짓는 아궁이.


지금은 22가구쯤 살고 있으며 3분의2가 민박과 식당을 겸한다. 그중 원주민은 절반도 안 되는데 “장사할 줄 몰랐다.”는 게 그 이유. 주로 머루, 오미자, 당귀 등을 채취하며 살았던 원주민들은 뒤늦게 민박 대열에 합류했다. 산행인구가 늘어난 건 1980년대 중후반부터였지만 자연보호구역으로 묶여 시설 확충을 하지 못하다가 김대중 정부 때 취락지구로 변경, 약 4년 전부터는 펜션단지로 조성되다시피 했다.  


마을이름 百巫→무관가문 白武로  


백무동의 대표적 등산로는 한신계곡과 하동바위 코스로 각각 나뉜다. 약 6.5㎞의 한신계곡은 첫나들이폭포, 가내소폭포, 한신폭포 등을 품고 있어 여름철 계곡산행 코스로 인기가 높다. 청류와 어우러진 가을 단풍도 멋스럽고 북사면 특유의 겨울 설경도 손색이 없다. 하지만, 석대피소를 앞둔 1㎞가 바위너덜로 이뤄진 급경사여서 오르는 데 곤욕을 치르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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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터목대피소로 이어진 하동바위 코스는 길이 5.8㎞로 등산로 중간에 하동바위가 있어 그런 이름이 붙었다. 남쪽의 중산리 코스와 더불어 천왕봉을 오르려는 등산객들로 사시사철 붐비는 길이다. 계곡은 거의 없이 무던한 능선길에 가깝다. 식수는 중간 지점의 참샘에서 보충할 수 있다. 몇 해 전 동서울터미널에서 출발하는 심야버스가 생기면서 새벽 산행을 즐기려는 이들이 부쩍 늘었다.
그 외 한신계곡의 가내소폭포 즈음 해서 장터목까지 오르는 한신지계곡이 있지만 현재는 비법정탐방로로 묶여 산행을 할 수 없다.
어느 코스든 주능선까지 오르려면 넉넉히 4시간은 잡아야 한다. 특히 요즘은 쑥부쟁이와 구절초가 절정을 이루고 있어 산행의 즐거움을 더해 준다.
전주 이씨의 후손으로 6대째 백무동에 살고 있는 이봉수(52)씨는 어린 시절 동네 어른한테 전해들었던 호랑이에 관한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어디선가 ‘사르르’ 하는 바람소리와 함께 긴 꼬리의 호랑이가 동네에 자주 나타났다. 아주 더울 땐 밤중에라도 계곡에 내려가 친구들과 물장구를 쳤는데, 어른들이 물동이를 시끄럽게 두들기며 내려와 아이들을 데려갔다. 그럴 때마다 길 위로 올라와 계곡을 내려다보니 바위 위에 호랑이가 앉아 있더라는 것. 아이들 노는 걸 구경했는지, 아니면 먹잇감으로 생각한 건지, 커다란 불덩이(안광)가 덩실 춤을 추다 산으로 올라가곤 했단다.  


펜션 편리함·초가집 흙냄새의 어울림


18년째 택시기사로 일하는 이봉수씨는 백무동 한쪽에 ‘장터목펜션’을 열었다. 몇 해 전만 해도 신축 허가가 나지 않아 묵혀 뒀던 땅이다. 쥐 오줌이 얼룩진 옛 민박집에 비하면 요즘의 백무동은 그야말로 최신식이다. 먹고 자고 씻는 일이 편해져 하룻밤 묵어가기 좋다. 특히 이씨의 펜션에 주차를 하고, 그의 택시로 성삼재 이동, 주능선 종주를 마친 다음 다시 백무동으로 하산, 역시 이씨의 펜션에서 식사까지 한 후 차량 회수를 해가는 이들이 많아, 이씨도 산행객들도 편해진 게 사실이다.
아파트 생활에 익숙한 현대인들에게 펜션으로 바뀐 민박집이 좋은 건 분명하지만, 그래도 굳이 불편을 감수하며 낡은 흙집을 찾는 이들도 있다. 초행이라면 찾기도 힘든 백무동 골목 안 ‘초가집’은 상호 그대로 60년된 초가집이다. 짚으로 얹은 지붕엔 아직도 굼벵이가 산다. 건강 때문에 내려왔지만 이제는 각처에서 찾아오는 산사람이 좋아 평생 머물기로 작정했다는 초가집 내외는 펜션보다 훨씬 저렴한 숙박료를 장점으로 꼽는다. 그러나 단골 산꾼들은 돈보다 ‘격의 없이 친근함’을 이 집의 최고로 친다.  


글 사진 황소영 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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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수유는 잎이 떨어져야 그 붉은 열매가 도드라진다.
산수유는 햇볕 없이는 그 붉은 열매가 도드라질 수 없다.
잎은 남아 있었고 해는 구름 속에 있었다.
열매를 수확하는 사람들의 작업 모습은 추워보였다.
나무 그늘 속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그러나
잎이 떨어지지 않아도,
햇볕이 없어도 산수유는 붉은색이었다.
산수유는 이른 봄에 꽃을 피우고 그 열매는 가장 늦게 수확한다.
한 해의 시작과 끝이 가장 긴 나무다.
붉은색은 긴 파장의 빛을 반사할 때 나타나는 色이다.
산수유 꽃은 향이 없다.
산수유 열매는 맛이 떫다.
그리고
그러나
나는 산수유의 그 오랜 버팀을 존경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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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연대가 산으로 가고 지금 저 도로(19번국도)에
12연대 트럭들이 쫙 서서는 산山하고 박격포니 뭐니 전쟁이 벌어졌지.
그때 삼촌이랑 아부지랑 들판에 함께 있었는데
머리 위로 총알이 날아다니니께 정용이 삼촌이 그러더만.
‘형, 닭 한 마리만 삶아 묵읍시다.’
이왕 죽는 거 닭이라도 한 마리 삶아 묵자고.
그때는 닭 한 마리 삶아 먹기도 쉽잖았거등."

지난여름에 나는 최샘 댁에서 토종닭 2마리와 오골계 1마리를 삶아 먹었다.
사료 값 비싸다고 그날 그랬었지.

'형, 닭 한 마리 삶아 묵읍시다.'

귓전에 계속 맴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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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한 충만감.
이를테면 따뜻한 밥을 먹을 수 있거나
뽀송한 잠자리에서 잠을 잘 수 있거나
갈아 입을 속옷을 가지고 있거나…
사뭇 진지하고 복잡해 보이는 일상의 노동과 고민들은
사실 이런 것들을 얻기 위한 것인데,
정작 이런 단순한 것들을 행복하게 받아들이는 것에는 인색하다.
그래서 가끔 스스로 묻는 것이다.

"이게 도대체 뭐하는 짓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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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밥 숟가락 놓자 밖에서 소리가 들려 나가보니
마을 할머니들이 차를 부탁하신다.
어두운 밤길을 달려 읍내로 나간다.

"하이고 머슬 쪼까 발라야쓰것는디…
낯빤덕이 찢어져불란디."

이곳에 잠자리를 마련한지 3년이 되어가는데
여전히 언어 소통은 쉽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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