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전 10시쯤이나 되었을까?
좌측 방향에서 컨테이너 모서리부터 두드리고 오는 것을
보아하니 대평댁이다.

"여그 와서 괴기 좀 먹어."
"예? 아침부터 뭔 고기요?"
"아 잔소리 말고 언능 나와."

하던 일 접고 신발 신고 밭고랑 따라 쫄래쫄래 따라간다.
어제 잔칫집 다녀오셨는데 돼지수육이라도 얻어 오신 모양이다.
그래도 아침에는 부담스러운데…
대평댁은 꽃이 피지 않은 배춧잎을 몇 주먹 따서 앞선다.

"쌈 싸서 먹어면 괘안하겄네."

대평댁 부엌.
삼겹살이 프라이팬 위에서 가득하니 익고 있다.

"시방 아침부터 이것을 나보고 먹어란 말씀이신가?"(방백)
"어여 좀 들어."

눈앞이 캄캄해진다. 원래 아침을 먹지 않는데 고기를 구워 놓고,
그 양도 만만치 않다.
대략 몇 점 먹는 시늉하다가 일어서야겠다는 판단을 했다.

"엄니도 같이 듭시다."
"나는 방금 그만치 궈 먹었어. 자네 줄라고. 다 먹어."
"아니 저… -,.-"
"자, 배추 쌈하고이잉."

먹자. 이미 구워진 것을 어떻게 하겠나.
그런데 이거 양이 장난이 아니지 않나.

"밥도 좀 할란가?"
"아니요, 엄니 이따 점심 먹어얀께…"
"뭘 지금 벌인 김에 걍 다 해결해부러."
"그럼 아주 쬐끔만 주세요. 쬐끔요."

머슴밥이 담겨져 온다. 각오는 했지만 너무 가혹하다.

"먹고 모자라믄 더 달라고 혀."

오전 10시.
절반은 타버린 유럽풍 베이컨 스타일의 삼겹살.
그리고 고봉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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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천댁의 당면한 최대 화두는 손자의 훈련소 생활이다.

"책상하고 학교 밖에 모르던 놈인디 월매나 고생을 허는지….
부산도 춥다는디 가슴이 짠혀서 잠이 안 오네."

지천댁 손자는 다음 주면 훈련소 생활이 끝난다.
대평댁의 당면한 최대 화두는 전화를 받지 않는 둘째 아들네 일이다.

"아, 전화를 받들 안 한께 지난 밤엔 걱정되야서 환장하겠더만."

서울 사는 대평댁 둘째 아들이 전화를 받지 않은 것은
며칠 전 오후 딱 3시간 동안이었다.
강원도와 강화도 둘러 며칠 만에 사무실로 돌아오니 좌우에서 난리다.

"아, 어딜 가면 간다고 말을 하고 가야지. 운전하는 사람인게 걱정하자녀!"

다정도 병인 양하여 잠 못 들어 해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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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전체가 움직이기 시작한다.
겨우내 마을회관에 모여 있던 노인들은
경운기에 퇴비를 싣고 밭으로 향하고 있다.
죽은 듯 굳어 있던 땅은 낮은 풀과 꽃을 토해내고
심지어 나비까지 두어 마리 보았다.
고라니가 뜯어 먹은 배추는 아무래도 꽃을 피워 올릴 태세다.
다음 주에는 양파를 사무실 뒤편으로 옮겨심기로 했다.
지천댁이 비닐을 준다고 한다.

"겨울 다 갔는데 비닐 씌울 필요 있나요?"
"그라녀면 크들 안혀."

대꾸하지는 않았지만 비닐을 씌우지 않을 생각이다.
나도 헐벗고 양파도 헐벗는 것이 마땅한 일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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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근하려다가 지천댁 마당에서 나무 패는 소리가 들려 들어섰다.

"아, 하루 종일 어디에 있었소?"
"잉, 노인정에. 글고 말씨... 그 거시기 리모콘이... 아니제 그 거시기..."
"핸드폰?"
"잉, 핸드폰. 그거이 말씨, 손자가 만져가꼬 거시기가 나들 안혀."
"진동으로 했다고?"
"잉, 진동. 거시기를 좀 거시기 해 줄란가?"
"소리 들리게 바꿔 달라고?"
"글제, 당췌 전화가 오는지 알 수가 있남."
"그거 힘든 기술인데..."
"아, 좀 해 줘!"
"줘 보쇼."

진동 모드를 벨로 바꾸고 내 전화기에 입력된 지천댁 번호로
확인 전화를 한번 한다. 잠시 후 신호가 울리고 전화벨이 울린다.

"하이고, 요로코롬 간단한 거이..."
"간단하다니요. 이게 얼마나 힘든 기술인데!"
"염병허고 자빠졌네! 그거이 뭐가 힘들다고!"
"그래요. 앞으로 김치냉장고 안 열리고
테레비 리모콘 안되는거 나는 모르는 일이요!"
"호랭이 물가것네!"

도끼로 쪼갠 나무를 아궁이로 던져 넣는다.

"내일이 보름이요."
"그랴. 나물이라도 해 먹어야제. 혼자 살아도 그런 거이 다 챙겨 먹어야
사람 구실헌당께. 워쨔, 내일 나물해서 점심밥이라도 헐란가?"
"하이고 저희도 준비하네요. 엄니나 빠지니 말고 드세요."
"이장이 달집 태울 준비나 허는지 몰것네. 내일 보세."
"그래요.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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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일곱에 시집 와서 열아홉에 혼자되었다.
이듬해 어느 날 이웃집 아주머니는
열아홉에 혼자된 그녀에게 돈 백 원을 쥐어 주며
그날 밤 마을 정자 뒤편 강나루로 나오라고
조심스럽게 이야기했다.
다음 날 새벽이 밝아 오도록 열아홉에 혼자된 그녀는
옷 보따리를 꽉 쥔 손을 풀지 않았지만
결국 그대로 아침을 맞이했다.
세월은 흘렀고 열아홉에 혼자된 그녀는 일흔여섯이 되었다.

"그날 떠나시지 왜 남았습니까?"
"돌 지난 가이나 얼굴이 밟혀서 못 가겠더라고."

장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오히려 근원을 알 수 없는 불덩이가 가슴에서 일어날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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