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병찬칼럼] 송아지 값, 청년 값
곽병찬칼럼
 
 
한겨레 곽병찬 기자
 








 

» 곽병찬 논설위원
 

 
올 들어 개봉된 한국 영화는 <워낭소리>가 유일하다. 침체를 넘어 공황 상태지만, <워낭소리>가 보여준 우리 영화인의 저력은 위안 삼을 만하다. 비탈밭과 천수답을 가꿔 9남매를 기른 80살 농부와 40살 소의 삶과 죽음을 담은 기록물이다. 생명에 대한 지극한 정성과 헌신은, ‘유년의 우리를 위해 고생하신 부모님과 소에게 바친다’는 평범한 헌사마저 눈물샘을 자극했다.

불과 한 세대 전이다. 부모에게 가장 큰 희망은 자식이었고, 재산은 소였다. 가장 듣기 좋은 소리는 “아이들 목으로 밥 넘어가는 소리와 마른논에 물 들어가는 소리”였다. 소는 자식 다음으로 귀했으니 마찬가지다. 그러던 것이 지금 소와 장성한 자식은 우리 시대의 절망을 상징한다.

육우라도 큰 놈 한 마리면 대학 등록금과 1년 하숙비가 너끈했다. 지금 육우 수송아지는 씨받이 값도 안 되는 3만원에 내놔도 가져가질 않는다. 10만원에 수매해 2만원에 주겠다는 지자체도 나왔다. 수송비 2만원은 거저라니, 공짜다. 키워 봤자 사료값도 못 건지니, 나설 이가 별로 없다. 그러나 이보다 더 추락한 것이 청년이다. 고졸 84%가 대학에 진학하니, 청년은 곧 대학생이다. 대학에 들어가기까지 사교육비만 평균 4000여만원, 대학 4년에 등록금 평균 3500여만원이 든다. 요즘엔 취업용 사교육비까지 든다. 그러나 절반 넘는 이들이 졸업 후 제시받는 몸값은 시급 4000원(최저임금) 수준이다.

그마저 준다. 지난 12월 신규 취업자는, 40대 이후는 조금이나마 늘었지만, 20~30대는 20만여명 이상 줄었다. 청년 실업자 35만명, 구직 포기자 15만명, 취업 준비자 60만여명을 합치면 110만명이다. 체감 실업률은 20%에 이른다. 여기에 청년 비정규직 200만여명까지 합치면, 청년의 절반은 불완전고용 상태다. 스물다섯 청년이 비정규직으로 사회에 진출해 10년 동안 비정규직으로 일하면, 주택청약저축도, 자가용도 없고, 결혼도 못하는 3무 인생이 된다고 한다.

그런데도 사회의 시선은 차갑다. 한편에선 대통령부터, 등 따습고 배부른 직장만 찾으니 그렇다고 힐난한다. 다른 쪽에선 사회적 정의감이나 소명감도 없이, 그저 학점과 취업, 가벼운 연애질이나 한다고 핀잔한다. 사실 그들만큼 촛불시위 때 무관심한 세대는 없었다.

그렇다고 그들 탓은 아니다. 그들은 이 사회의 문법에 충실히 따랐다. 기어다닐 때부터 정글에서 살아남는 기술을 연마했다. 소설 시집 한 권 제대로 읽지는 않아도, 토플 점수, 인턴 연수, 봉사활동 등 최고의 취업 조건을 갖췄다. 하지만 사회는 대졸자 중 단 10%에게만 안정된 일자리를 제공한다. 아무리 발버둥쳐도 나머지 90%는 비정규직 혹은 주변부 신세다. 처음엔 비정규직을 피하려 알바를 전전하지만, 오히려 막장 신세를 재촉한다.

그 원인은 효율과 경쟁을 신성시하는 권력과 자본이 제공했다. 주주 이익만 생각하는 주주 자본주의, 산업자본의 금융자본화, 노동시장 유연화,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양극화와 중소기업의 몰락, 10%를 위한 교육제도, 부실한 직업교육, 공공부문의 위축 등. 엊그제 정부의 실업 대책도 기존의 일자리 유지 차원이지, 2월에 쏟아져 나올 50여만, 겉도는 110여만, 비정규직 200만명 등 청년용은 아니다.

권력과 자본에 선처를 기대해선 안 된다. 최저임금마저 깎으려 하는 게 그들이다. 나머지 90%가 결혼조차 못 해도 눈 하나 깜짝 않는다. 자신을 옭아맨 주술에서 벗어나야 한다. 새봄 농부가 그러하듯, 그들도 제 논과 밭, 그리고 의식을 갈아엎어야 한다. 그래야 제 결실을 거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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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5억 김은혜는 모른다



  • 글쓴이: 이상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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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회수 : 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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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09.01.22 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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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5억 김은혜는 모른다
“과격시위 끊으라”는 청와대 부대변인…70대 철거민은 왜 죽었을까?
 
 
 

"용산에서 셋방살이하던 가난한 사람들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이명박 정부는 지금 진심으로 반성하고 있을까?" 어제 저녁 촛불집회에도 참가할 겸 참사 현장을 둘러보고 경찰들의 변함없는 강경한 태도를 보면서 얼핏 든 생각이었다.

아침신문과 방송을 보고 내린 결론은 "진심으로 반성하지 않는 것 같다"다. 철거민은 물론 부하 경찰관까지 죽게 만들고도 진압작전이 정당했다고 강변하는 용산경찰서장이나, 경찰청 차장의 발언. '불법시위 단호 대처'가 핵심 내용인 국무총리 담화문. "철거민 저항에 도시 테러적 성격이 있었다"는 한나라당 진상조사단장 장윤석 의원의 발언….

부동산 재산을 보면 그 사람을 알 수 있다

그 가운데서도 나는 청와대 김은혜 부대변인이 했다는 말이 목에 자꾸 걸린다. 보도에 따르면 김 부대변인은 어제 "지금까지의 사고를 보면 시위의 악순환이 계속됐다"며 "이번 사건을 계기로 과격시위의 악순환을 끊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 김은혜 청와대 부대변인
문제가 커질 조짐이 일자 곽경수 춘추과장이 40분 뒤 청와대 기자실에 나타나 "김 부대변인의 발언은 개인 의견으로 정리됐다"고 양해를 구했다고 한다. 사실관계를 따지자면 김은혜 부대변인은 자신의 발언을 취소하지 않고 '개인 의견'으로 계속 주장하고 있는 셈이다.

MBC 9시 뉴스데스크 앵커로 이름을 날리던 김은혜 기자가 이명박 대통령의 입노릇을 하러 청와대에 들어간다고 했을 때 언뜻 이해가 되지 않았던 적이 있다. 약력을 보면 1971년생이니 아직 젊은 나이에 그것도 아주 잘 나가는 여성이 왜? 그 뒤 내 '아하, 그렇구나' 했던 건 다른 게 아니라 김은혜 부대변인의 재산공개 목록을 보고서였다.

인터넷에서 쉽게 확인할 수 있는 정부 관보 2008년 5월 7일자를 보면 김 부대변인의 재산은 모두 97억 원으로, 이 중 95억 원이 부동산이다. 강남구 대치동에 88억 짜리 빌딩을 한 채 갖고 있고, 강남구 논현동에 6억이 넘는 고가 주택도 있으며, 경기도 일산에 땅도 소유하고 있다. 청와대에서 이명박 대통령 다음으로 부동산 재산이 많다.

물론 당시 김부대변인이 언론에 해명한 것을 종합해보면 ‘부동산 재산이 많은 남편을 만났을 뿐’이라는 얘기인데, 어쨌든 그녀의 부동산 재산을 보고 그녀가 왜 이명박 정부의 입노릇을 하게 됐는지 고개가 끄덕여졌던 건 사실이다.

나의 한국사회 부동산 계급 구분법에 따르면 김 부대변인은 부동산 1계급이니, 부동산 1계급을 대변하는 이명박 정부에 참여하는 것은 매우 자연스러운 일 아닐까.

70대 할아버지의 죽음을 95억 부동산 부자가 이해할 수 있을까?

김 부대변인은 아마 지금쯤 어제 용산 참사 희생자 중 일흔이 넘은 이 아무개 할아버지 사연을 보고 들었을 것이다.

이 할아버지는 진압 현장 뒤편 건물에서 30년 넘게 식당을 운영하다 지난해 호프집으로 바꿨는데, 재개발 때문에 생존권이 벼랑에 몰리자 막내 아들(36)과 함께 농성에 참여했다가 졸지에 ‘테러리스트’로 몰려 불에 타 죽어야 했고, 아들도 크게 다쳤다고 한다.

보도에 따르면 이 할아버지의 큰 아들(45)은 "아버지께서 원한 것은 조그만 공터에서라도 장사를 하게 해달라는 것"이었고, "당시 아버지는 망루에 계셨고 동생은 건물 벽에 매달렸다가 떨어진 것 같다. 농성자들은 밑으로 떨어지든지, 죽든지 두 길밖에 없었다"며 강제진압을 비난했다고 한다.

이번 발언도 나는 그녀의 부동산 재산으로 이해하려 한다. 100억 가까운 부동산을 소유한 부동산 부자가 이 할아버지의 삶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겠는가. 부동산 부자들의 재산을 불려주는 뉴타운 재개발을 반대하는 과격시위요 도심 테러로밖에 달리 볼 수 없다고 한다면 지나치게 단순화한 것일까.

이런 점을 생각해보면 김 부대변인은 매우 솔직한 사람이고, 그 발언을 취소하지도 않은 셈이니 줏대도 있는 사람이다. 그 줏대의 코드가 부동산 부자들하고만 연결돼 있으니 문제지만.

뉴타운 재개발은 한나라당 장기집권 프로젝트

내가 보기에 한국사회는 부동산으로 계급을 이루고 있는 부동산 계급사회이기 때문에 한국정치도 부동산 정치고, 선거도 부동산 선거이며, 심지어 재판도 부동산 재판이다.

지난 번 헌재의 종합부동산세 판결 당시에도 부동산 재산이 많은 재판관일수록 부자들에게 종부세를 많이 내게 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판결했고, 부동산 재산이 적은 사람들 일부만 부자가 종부세를 내는 게 옳다고 했지 않은가.

이명박 대통령이 단군 이래 최대 개발공약인 한반도 대운하를 대표 공약으로 당선된 것이나, 지난 총선에서 한나라당이 서울 수도권을 휩쓴 비결이 다름 아닌 뉴타운 공약이었단 점에서 한국의 선거도 부동산으로 이해하는 게 빠르다.

이명박 대통령이 서울시장에 당선될 때 내세운 공약으로 시작된 뉴타운 재개발이 급속히 확산되는 데는 건설재벌에게 큰 돈 벌이가 되고, 집주인과 건물 주인들도 재산을 불릴 기회가 되는 경제적 배경이 있는 게 맞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주로 빈곤층이나 경제사정이 그리 좋지 않은 서민층이 주로 사는 동네를 대상으로 하는 뉴타운 재개발이 서민들을 서울 밖으로 내몰고 그 자리를 중산층 이상의 계층으로 교체하는 결과가 되고 있다. 용산 참사는 생생한 증거다.

그런데 재개발된 값비싼 아파트에 입주한 여유 있는 사람들이 아파트값이 계속 오르기를 희망하게 되고, 정치세력 중에서는 아파트값을 가장 많이 올려줄 한나라당을 선택한다는 점에서 문제는 매우 복잡해진다.

이런 식으로 가다가는 수도 서울은 계급적으로는 중산층 이상 상류층만 사는 도시가 되고, 정치적으로는 한나라당의 굳건한 지지 기반이 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아니 이미 그렇게 가고 있다.

"뉴타운 재개발이 결과적으로 한나라당의 장기집권 프로젝트가 되는 셈인가." 섬뜩한 비약일 수도 있겠지만, 서울을 대부분 한나라당이 석권하고 서울에서 밀려난 서민들이 사는 남양주 등 경기도 일부에서 야당의원이 가뭄에 콩 나듯 당선되는 지난 총선 결과를 보면 근거가 아주 없는 비약만은 아니란 생각이 든다. 그것도 모르고 야당의원들까지 너도나도 뉴타운 공약을 내세웠다가 떨어지기도 했지만 말이다.

진실로 참회할 때 용산 참사와 같은 어처구니없는 일은 재발되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정치권이나 권력 핵심부의 움직임을 보면 참회란 말은 어울리지 않는 분위기다. 셋방살이를 한 죄밖에 없는데 끔찍하게 목숨을 빼앗기고 과격시위니 도심테러니 하는 무시무시한 누명까지 써야 하는 고인들을 생각하면 너무나 부끄러운 일이다.

다시 한 번 두 손 모아 이 할아버지를 비롯한 고인들의 명복을 빈다.

* 이 글은 오마이블로그 '손낙구의 세상공부'에 올라온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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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아침, 서울로 현지출근하다가 강변북로 양화대교부터 꽉 막혔다는 소식에 신수동 뒷길로 해서 마포로 돌았더니, 역시 공덕사거리도 꽉 막혀서 모처까지 두 시간이 넘게 걸려서 도착했다. 그 시간 얼마전 용산로 일대가 완전차단된 상태에서 특공대 진압작전이 있었단다. 무려 여섯 명이 불에 타고 물에 젖은 싸늘한 시체로 돌변한 사실을 빠져나와서야 알았다. 차 막힌 것을 푸념하는 내 옹졸함이란...

다시 돌아오는 공안정국,  

이러한 결과를 예상치 못했던 고인들의 명복을 빕니다.  

도대체 이 정부는 국민들을 어떻게 보는건지 새삼 이를 앙다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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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겹도록 고마운 사람들아 - 이소선, 여든의 기억
오도엽 지음 / 후마니타스 / 2008년 12월
절판


"엄마, 정말 안 올래요?"
"안 간다, 그랬잖아."
크게 소리 지르니까 태일이가 집에서 나와 고개를 넘어 큰길에까지 나서 갖고 나를 이렇게 쳐다보고 서있어.
"정말 안 오지요?"
"못 간다 했잖아."
그라니까 내가 서있으니 저도 서서 나를 쳐다봤어. 왜 저렇게 오늘 깨끗이 입었을까, 계속 그 생각이 나. 나는 죽는다는 생각은 못 하고 어디 가려나 보다 했어. 나를 쳐다보고 서있길래, 내가 빨리 가라고 손짓하니까, 저도 손을 흔들면서 가더라고.
다음 날이 금요일이지. 그게 1970년 11월 13일 아니냐. 구역예배 보러 갔는데, 나를 부르러 사람들이 왔길래, 뭔 일이냐고 물어보니까, 집에 가면 안다고 그래. 집으로 오는데 스피카에서 소리가 나는데.... 그 시절엔 테레비도 잘 없었어. 가난하고 무허가고 그라니까. 테레비 있는 집도 없었어. 국수집에 테레비 조그만 것 하나 있었는데, 밤에 테레비 본다고 애들이 국숫집에 몰려가고 그랬지. 근데 국수 가게 스파카서 막 소리가 나는데, 도봉구 쌍문2동 208번지 전태일이가 뭐 기름을 붓고 불을 붙였다고, 그런 소리가 막 나와. 가슴이 와르르 무너지고 시퍼런 하늘이 폭삭 내려앉는 거야.
-79쪽

기어이, 기어이 기름을 붓고 말았구나!

(눈자위가 붉어지며 옷가슴을 여며 잡더니 미간을 찌푸리고 고개를 숙인 채 숨을 크게 내쉬며 한동안 말을 잃는다... 한참 뒤 안경을 벗고 수건을 눈에 대고 꾹 누르고 있더니 뿌연 안경알을 닦는다.)-80쪽

"학생들하고 노동자들하고 합해서 싸워야지 따로따로 하면 절대로 안돼요. 캄캄한 암흑 속에서 연약한 시다들이 배가 고픈데, 이 암흑 속에서 일을 시키는데, 이 사람들은 좀 더 가면 전부 결핵 환자가 되고, 눈도 병신 되고 육신도 제대로 살아남지 못하게 돼요. 이걸 보다가 나는 못 견뎌서, 해보려고 해도 안 되어서 내가 죽는 거예요. 내가 죽으면 좁쌀만한 구멍이라도 캄캄한데 뚫리면, 그걸 보고 학생하고 노동자하고 같이 끝까지 싸워서 구멍을 조금씩 넓혀서 그 연약한 노동자들이 자기 할 일을, 자기 권리를 찾을 수 있는 길을 엄마가 만들어야 해요."

"내 죽음을 헛되이 말라."

"그래 아무 걱정 마라. 내 몸이 가루가 되어도 니가 원하는 거 끝까지 할 거다."

"엄마, 배가 고프다..."

그게 태일이 마지막 말이었어. 배가 고프다. 그 말을 들으니 기도 차지 않았어. 그 말이 얼마나 가슴을 쥐어뜯던지 나도 정신을 잃었어.-83쪽

(헌옷가지를 팔아) 돈이 생기면 이소선은 조합으로 달려가 끼니를 거른 조합 간부들에게 라면을 끓여 주었다. 평화시장 옥상에다 큰 들통을 걸어 놓고 나무를 지펴 물을 끓였다. 땔감으로 쓰기 위해 신진철이 동대문시장을 돌아다니며 주워 온 생선 궤짝은 축축해서 불이 잘 붙지 않았다. 햇볕에 한참 말리거나 석유를 뿌려야 불을 지필 수 있었다. 라면을 끓이면 라면냄새보다는 궤짝이 타서 뿜는 생선 냄새가 평화시장 옥상에 가득했다. 라면 여덟 개를 가지고 열여섯 사람이 먹는 것은 보통이고 많을 때는 스물네 명이 먹기도 했다. 한창 젊은 스물 초반의 이들에게는 간에 기별도 가지 않았다. 이소선은 국물이라도 배불리 먹게 일부러 물을 많이 넣고 끓였다. 면도 퉁퉁 불 때까지 삶았다.-109쪽

'배가 고프다'며 죽어 간 전태일. 한번 배불리 먹고나 죽자며 석유통을 옆에 두고 갈비탕을 시켜 먹던 청계 조합원들. 그리고 38년이 지난 오늘,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사람답게 살고자 곡기를 끊고 공장 앞에서 천막 농성 중이다. 강산이 서너 번 바뀔 만큼 시간이 흘렀지만 아직도 고통받고 소외받는 사람의 신음이 끊이지 않는 이 현실에, 시큰하게 아려 오는 뼈마디를 주무르며 이소선은 밤마다 끙끙 앓는다.-129쪽

(수사관)"북한에서는 모두들 김일성을 아버지라고 부르고, 남한에서는 모두들 이소선을 어머니라고 부르니, 김일서과 똑같은 빨갱이 아니오."
이소선은 어이가 없었다.
"아, 그게 말이냐 막걸리냐. 수준 이하다. 내가 수준도 안 되는 니들하고 무슨 말을 하냐. 같잖은 것들이 내 앞에서 꼴값을 떠네. 어차피 빨갱이 만들어 죽일 테니, 말해서 뭐햐냐. 어서 죽여라. 썩을 것들아!"-189쪽

"어머니, 이렇게 기쁜 날 춤 한번 춰야지요."
문익환 목사가 춤을 추라고 부추겼다. 문 목사는 이소선보다 나이가 열한 살이나 더 많다. 하지만 늘 어머니라 부르며 존대했다. 전태일이 세상을 깨우고 나를 깨우치게 했으니 당연히 전태일의 어머니는 노동자의 어머니고 자신의 어머니라고 했다. 그럴 때마다 이소선은 민망해 몸 둘 바를 몰랐다.-213쪽

(86년 구로 신흥정밀 박영진 분신항거)
이소선은 소리 나는 쪽으로 갔다. 검게 타서 팅팅 부은 얼굴, 머리카락은 홀랑 타버리고 눈은 제대로 뜨지도 못하고 있다. 부어터진 입술 사이로 하얀 이가 살짝 드러났다.
"나, 태일이 엄마다."
"저, 정말이야? 전태일 엄마 맞아?"
박영진은 떠지지 않는 눈을 꿈틀거렸다.
"그래, 태일이 엄마다. 왜 이랬어?"
이소선은 타버린 몸을 이리저리 만졌다.
"와! 나는 진짜 운 좋은 놈이다."
가쁜 숨을 몰아쉬며 박영진이 들뜬 목소리로 말했다.
"다 죽게 생겼구만 뭐가 운이 좋냐?"
"엄마, 태일이 형한테 가면 할 말이 있잖아."
"살아서 싸워야지, 태일이한테 뭐하러 가냐."
"나 태일이 형 만나면 엄마 열심히 싸우고 있다고 말할 거야."-221쪽

한울삶 벽에는 독재에 맞서 항거한 자식들의 얼굴이 커다란 액자에 담겨 걸려 있다. 이소선은 그 액자 바로 밑에서 잠을 잤다. 유가협 어머니들은 한울삶에 오면 액자 속에 있는 자기 자식들과 한참을 이야기했다. 마치 산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는 것 같다. 웃기도 하고 울기도 했다. 이소선은 전태일만이 아니라 액자 속에 담긴 자식들 누구하고도 이야기를 나눴다. 유가협에 처음 온 사람들은 이 모습을 보고 깜짝 놀라기도 했다.
"언젠가 너거한테 맺힌 한을 풀어 줄게. 좋은 세상 올 때까지 열심히 우리가 싸워서 너거가 원하는 세상을 이 엄마가 꼭 만든다고 약속할게."
이소선은 액자 속 자식들을 보며 약속했다.-26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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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겹도록 고마운 사람들아 - 이소선, 여든의 기억
오도엽 지음 / 후마니타스 / 2008년 12월
평점 :
절판


'지겹도록 고마운..'이라는 책 제목은 생소하다. 고마움이 지겨울 정도라니... 하지만 이 책을 다 읽고 나서 그 의미는 확연하게 가슴에 새겨진다. 어떠한 수사보다 더 강렬한 어머님만의 표현이 새겨진다.

대한민국 현대사의 질곡을 오직 한 길로 헤쳐나오신 우리들의 어머니, 오직 아들과의 약속을 위해 팔십 평생을 살아오신 전태일 동지의 어머니 이소선님. 그 분의 육성기록이 오도엽 시인의 글을 통해 책으로 태어났다.  

진보하는 역사의 주체가 일하는 사람이기에, 어머니의 구술은 대한민국 현대사 한 가운데를 관통하고 있다. 아니, 언제나 그 선봉에 계셨던 분이다. 매 순간의 현장에 계셨던 어머니의 목소리를 통해 현대사를 다시 만나보는 일은 감격스러운 일이다. 

이제 '지팡이를 절대 짚지 않겠다던 이소선은 결국 지팡이를 짚을 수밖에 없'고,  '눈에 백내장이 끼였다고; 하며, 수술을 하려 해도 '당뇨와 혈압이 높아 수술을 할 수 있을지는 아직 알 수 없'고, '처음 만날 때 두 주먹이었던 약이 세 주먹이 되'었다고 한다.(에필로그에서 인용) 책을 읽고 난 뒤, 어머니의 육성을 이렇게 남겨둘 수 있는 것이 참 고맙고 다행스러운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 기록이 몇 번이라도 콧물을 훌쩍이며 눈물을 찍어내게 만드는 요인은 진실, 그리고 가없는 실천이 주는 감동의 파장 때문이 아닐까.  내 삶이 때로 어렵게 느껴질 때면 이 책을, 그리고 <밑줄긋기>에 옮겨놓은 글귀를 통해 나를 추스릴 수 있을 것이다. 책이 나오고 얼마 되지 않은 때, 우연한 기회에 오도엽님을 한 번 뵌 적이 있다. 혹여 다시 만날 수 있다면 찬 소주라도 한 잔 나누고 싶다.  

이 땅 모든 사람들의 어머니이신 작은 선녀님, 부디 오래 강령하시길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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