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겹도록 고마운 사람들아 - 이소선, 여든의 기억
오도엽 지음 / 후마니타스 / 2008년 12월
절판


"엄마, 정말 안 올래요?"
"안 간다, 그랬잖아."
크게 소리 지르니까 태일이가 집에서 나와 고개를 넘어 큰길에까지 나서 갖고 나를 이렇게 쳐다보고 서있어.
"정말 안 오지요?"
"못 간다 했잖아."
그라니까 내가 서있으니 저도 서서 나를 쳐다봤어. 왜 저렇게 오늘 깨끗이 입었을까, 계속 그 생각이 나. 나는 죽는다는 생각은 못 하고 어디 가려나 보다 했어. 나를 쳐다보고 서있길래, 내가 빨리 가라고 손짓하니까, 저도 손을 흔들면서 가더라고.
다음 날이 금요일이지. 그게 1970년 11월 13일 아니냐. 구역예배 보러 갔는데, 나를 부르러 사람들이 왔길래, 뭔 일이냐고 물어보니까, 집에 가면 안다고 그래. 집으로 오는데 스피카에서 소리가 나는데.... 그 시절엔 테레비도 잘 없었어. 가난하고 무허가고 그라니까. 테레비 있는 집도 없었어. 국수집에 테레비 조그만 것 하나 있었는데, 밤에 테레비 본다고 애들이 국숫집에 몰려가고 그랬지. 근데 국수 가게 스파카서 막 소리가 나는데, 도봉구 쌍문2동 208번지 전태일이가 뭐 기름을 붓고 불을 붙였다고, 그런 소리가 막 나와. 가슴이 와르르 무너지고 시퍼런 하늘이 폭삭 내려앉는 거야.
-79쪽

기어이, 기어이 기름을 붓고 말았구나!

(눈자위가 붉어지며 옷가슴을 여며 잡더니 미간을 찌푸리고 고개를 숙인 채 숨을 크게 내쉬며 한동안 말을 잃는다... 한참 뒤 안경을 벗고 수건을 눈에 대고 꾹 누르고 있더니 뿌연 안경알을 닦는다.)-80쪽

"학생들하고 노동자들하고 합해서 싸워야지 따로따로 하면 절대로 안돼요. 캄캄한 암흑 속에서 연약한 시다들이 배가 고픈데, 이 암흑 속에서 일을 시키는데, 이 사람들은 좀 더 가면 전부 결핵 환자가 되고, 눈도 병신 되고 육신도 제대로 살아남지 못하게 돼요. 이걸 보다가 나는 못 견뎌서, 해보려고 해도 안 되어서 내가 죽는 거예요. 내가 죽으면 좁쌀만한 구멍이라도 캄캄한데 뚫리면, 그걸 보고 학생하고 노동자하고 같이 끝까지 싸워서 구멍을 조금씩 넓혀서 그 연약한 노동자들이 자기 할 일을, 자기 권리를 찾을 수 있는 길을 엄마가 만들어야 해요."

"내 죽음을 헛되이 말라."

"그래 아무 걱정 마라. 내 몸이 가루가 되어도 니가 원하는 거 끝까지 할 거다."

"엄마, 배가 고프다..."

그게 태일이 마지막 말이었어. 배가 고프다. 그 말을 들으니 기도 차지 않았어. 그 말이 얼마나 가슴을 쥐어뜯던지 나도 정신을 잃었어.-83쪽

(헌옷가지를 팔아) 돈이 생기면 이소선은 조합으로 달려가 끼니를 거른 조합 간부들에게 라면을 끓여 주었다. 평화시장 옥상에다 큰 들통을 걸어 놓고 나무를 지펴 물을 끓였다. 땔감으로 쓰기 위해 신진철이 동대문시장을 돌아다니며 주워 온 생선 궤짝은 축축해서 불이 잘 붙지 않았다. 햇볕에 한참 말리거나 석유를 뿌려야 불을 지필 수 있었다. 라면을 끓이면 라면냄새보다는 궤짝이 타서 뿜는 생선 냄새가 평화시장 옥상에 가득했다. 라면 여덟 개를 가지고 열여섯 사람이 먹는 것은 보통이고 많을 때는 스물네 명이 먹기도 했다. 한창 젊은 스물 초반의 이들에게는 간에 기별도 가지 않았다. 이소선은 국물이라도 배불리 먹게 일부러 물을 많이 넣고 끓였다. 면도 퉁퉁 불 때까지 삶았다.-109쪽

'배가 고프다'며 죽어 간 전태일. 한번 배불리 먹고나 죽자며 석유통을 옆에 두고 갈비탕을 시켜 먹던 청계 조합원들. 그리고 38년이 지난 오늘,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사람답게 살고자 곡기를 끊고 공장 앞에서 천막 농성 중이다. 강산이 서너 번 바뀔 만큼 시간이 흘렀지만 아직도 고통받고 소외받는 사람의 신음이 끊이지 않는 이 현실에, 시큰하게 아려 오는 뼈마디를 주무르며 이소선은 밤마다 끙끙 앓는다.-129쪽

(수사관)"북한에서는 모두들 김일성을 아버지라고 부르고, 남한에서는 모두들 이소선을 어머니라고 부르니, 김일서과 똑같은 빨갱이 아니오."
이소선은 어이가 없었다.
"아, 그게 말이냐 막걸리냐. 수준 이하다. 내가 수준도 안 되는 니들하고 무슨 말을 하냐. 같잖은 것들이 내 앞에서 꼴값을 떠네. 어차피 빨갱이 만들어 죽일 테니, 말해서 뭐햐냐. 어서 죽여라. 썩을 것들아!"-189쪽

"어머니, 이렇게 기쁜 날 춤 한번 춰야지요."
문익환 목사가 춤을 추라고 부추겼다. 문 목사는 이소선보다 나이가 열한 살이나 더 많다. 하지만 늘 어머니라 부르며 존대했다. 전태일이 세상을 깨우고 나를 깨우치게 했으니 당연히 전태일의 어머니는 노동자의 어머니고 자신의 어머니라고 했다. 그럴 때마다 이소선은 민망해 몸 둘 바를 몰랐다.-213쪽

(86년 구로 신흥정밀 박영진 분신항거)
이소선은 소리 나는 쪽으로 갔다. 검게 타서 팅팅 부은 얼굴, 머리카락은 홀랑 타버리고 눈은 제대로 뜨지도 못하고 있다. 부어터진 입술 사이로 하얀 이가 살짝 드러났다.
"나, 태일이 엄마다."
"저, 정말이야? 전태일 엄마 맞아?"
박영진은 떠지지 않는 눈을 꿈틀거렸다.
"그래, 태일이 엄마다. 왜 이랬어?"
이소선은 타버린 몸을 이리저리 만졌다.
"와! 나는 진짜 운 좋은 놈이다."
가쁜 숨을 몰아쉬며 박영진이 들뜬 목소리로 말했다.
"다 죽게 생겼구만 뭐가 운이 좋냐?"
"엄마, 태일이 형한테 가면 할 말이 있잖아."
"살아서 싸워야지, 태일이한테 뭐하러 가냐."
"나 태일이 형 만나면 엄마 열심히 싸우고 있다고 말할 거야."-221쪽

한울삶 벽에는 독재에 맞서 항거한 자식들의 얼굴이 커다란 액자에 담겨 걸려 있다. 이소선은 그 액자 바로 밑에서 잠을 잤다. 유가협 어머니들은 한울삶에 오면 액자 속에 있는 자기 자식들과 한참을 이야기했다. 마치 산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는 것 같다. 웃기도 하고 울기도 했다. 이소선은 전태일만이 아니라 액자 속에 담긴 자식들 누구하고도 이야기를 나눴다. 유가협에 처음 온 사람들은 이 모습을 보고 깜짝 놀라기도 했다.
"언젠가 너거한테 맺힌 한을 풀어 줄게. 좋은 세상 올 때까지 열심히 우리가 싸워서 너거가 원하는 세상을 이 엄마가 꼭 만든다고 약속할게."
이소선은 액자 속 자식들을 보며 약속했다.-26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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