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교
박범신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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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비터 문>의 이야기 구조(로만 폴란스키 감독, 1993)...-62쪽

생은 결과적으로 내게 아무런 위로도 주지 않았다. 나는 언제나 조심했고, 억눌러 견디었다. 시가 감정의 분출을 받아쓰는 것이라고 여긴 일은 한 번도 없었다. 감정은, 일종의 얼룩에 불과했다. 싸구려 얼룩들을 지워야 맑은 유리 너머로 참된 세계 구조가 보일 거라는 게 나의 시론이었다. 그것을 '내 시론'이라고 믿었다. 그러나 그것은 정말 내 것이엉ㅅ나. 아무것도 이루지 못하면서, 나는 다만 전투적으로 나를 억압하고 산 것뿐이었다. 이를테면 囚人으로서 나는 시간을 거의 다 써버렸다고 할 수 있었다.-130쪽

(골프를 빗댄 필연과 우연에 대한 대화 이후..) 다른 일행까지 이상한 낌새를 느끼고 뛰어오기 시작했다. 내가 먼저 달려들어 선생님의 머리를 안아 올렸다. 머리가 내 품으로 들어오는 순간, 선생님이 눈을 반짝 떴다. 장난기가 가득 담긴 눈이었다. 그리고 곧 한 쪽 눈을 찡긋하더니, 내 귀에 대고 재빨리 속삭였다. "나한테 팔씨름 진 거, 이것으로 원수 다 갚았지?"-19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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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산주유소 - 가격보다 확실한 감동
문성필 지음 / 시간여행 / 201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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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영업자 600만 명의 시대.

자기 분야에서 최선을 다해, 일가를 이룬 저자의 삶이 스토리텔링 형식으로 친근하게 서술한 책을 읽다.

'행복하지 않은 사람은 다른 사람을 행복하게 하지 못한다. 자신의 삶을 가치가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다른 사람의 삶을 이해하지 못한다. 품격이 있는 서비스로 고객을 감동시키기 위해서는 우선 직원들의 품격이 있어야 한다. 간절한 바람이 있는 사람이 다른 사람의 간절한 희망이 무엇인지 이해하기가... 쉽다. 고객의 바람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이해하고 접객할 수 있다.'(123쪽)

주유를 하면서, 우리는 주유원분들의 신분을 가볍게 생각하기 쉽다. 그런데 주유소 식구들을 '우선'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솔선수범이 최고의 주유소를 만든 요인이 아닐까..

사람이 모든 일의 중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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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또한 즐겁지 아니한가 - 제주 애월에서 김석희가 전하는 고향살이의 매력
김석희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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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애월(涯月)...

물가 涯에 달 月

'물가에 어린 달'이라는 뜻이다.

 

제주 애월은 시오노 나나미의 역작 <로마인 이야기>를 비롯하여, 쥘 베른 걸작 선집 등을 직접 번역한, 대한민국 번역계에서 일가를 이루신 김석희 선생의 고향이다. 그가 제1회 한국번역상 대상을 수상한 경력만을 보아도 번역계에 이바지한 그의 노고를 가늠할 수 있다. 또한 그는 작가로 데뷔하여 <이상의 날개> 등의 소설을 발표하기도 했다.

 

이 책은 타향살이 40년을 접고, 고향 애월에 귀향한 김석희 선생이 온라인 카페에 '애월통신'이라는 연재한 '귀향살이 3년의 기록'이다. 작가 스스로 '그렇다고 귀거래사를 읊거나, 귀농일기 같은 땀의 흔적을 담거나, 자연과 세상에 대한 성찰이나 담론을 보탠 것은 아닙니다. 아니, 오히려 그런 것과는 거리가 먼, 마음이 가고 시선이 가는 대로 마음과 눈길에 붙잡힌 평범한 일상의 소소한 풍경을 그려보려고 했습니다.'라고 이야기한다. 그러나 40년만에 귀향한 노작가의 혜안이 감춰질 수는 없겠다.

 

'제주 여행은 언제가 좋으냐는 질문을 받으면, 나는 망설이지 않고, 10월 말에서 11월 초라고 대답합니다. 이유는 여러 가지 생각할 수 있지만, 억새와 고등어 때문입니다..(중략)..바다를 뒤덮는 물결과 들판을 휩쓰는 억새의 물결. 자연 풍광을 묘사할 때 쓰는 표현은 다양합니다만, 나는 아직도 제주 가을의 산야를 어떻게 묘사할지, 그 적당한 표현을 찾아내지 못했습니다..(중략)..소싯적엔 구이와 조림이 고등어를 먹는 방식이었지만, 이제는 생선회로도 먹을 수 있게 되었지요. 특히 가을이 들면서 살이 통통해지고 거기에 기름기가 배어, 그 느끼하면서 고소한 맛이 실로 각별합니다. 이 맛을 제주에서는 '배지근하다'고 표현하는데, 표준어로 말하면 '감칠맛'에 가깝습니다.'(139쪽)

 

고향에서의 기억과 일상을 다시 회복하고 향유하는 작가의 모습이 부러울 따름이다.

 

출판계의 지나온 궤적을 어슴프레하게나마 짐작할 수 있는 입장에서 볼 때, 우리나라의 번역 현실은 매우 척박했다. 번역을 단지 하나의 '기술'로 치부하던 시절이 있었고, 번역 작가의 위상은 인정받지 못한 시기가 그리 먼 옛날의 일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번역서를 고를 때 먼저 번역자를 확인해보는 정도로, '번역은 제2의 창작'이라는 번역에 대한 인식이 점차 확대과정을 거치고 있다. 근대화 시기 서양문물을 수용하는 동아시아 3국(한국,중국,일본)의 향후 역사전개 과정을 비교하는 작가의 글을 통렬하기도 하다. 또한 평생을 책과 함께 한 작가의 '책'에 대한 다음과 같은 문장은, 비록 타인의 문장을 옮겨온 것이지만 깊이 새겨볼만 한다.

 

'책이란 무엇인가?
아르헨티나의 시인이자 소설가인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는 책을 '인간이 상용하는 여러 가지 도구들 가운데 가장 놀라운 발명품'이라고 말했다. 다른 것들은 신체의 확장에 불과하다. 현미경과 망원경은 시각의 확장이고, 전화는 음성의 확장이고, 칼과 쟁기는 팔의 확장이다. 그러나 책은 다른 것이다. 책은 기억의 확장이며 상상의 확장이다.'(149쪽)

 

고향 제주에서(그가 평생 몸담은 분야가 '번역'이다 보니, 앞으로도 지역적인 제한이 없다는 점이 장점일 터인데..) 작업을 이어가는 노 작가의 모습이 책을 통해 그려진다. 또한 더 맑은 시선으로, 좋은 작품을 지속적으로 소개해주시길 기원한다.

 

'아침 여섯 시경 먼동이 트고, 그 희붐한 햇살에 저 멀리 한라산도 시야에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떠났던 고향. 떠나고 싶어 했던 고향에 돌아온 것입니다. 금의환향은 아니지만, 타향에서 낙오자 신세로 갈 곳이 없어 낙향한 것은 아니니, 그것만으로도 고맙고 다행한 일이지요.'(6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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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침없이 제주 이민 - 제주 이주자 15인 행복 인터뷰
기락 지음 / 꿈의지도 / 201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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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레길 조성으로 인해 제주를 찾는 사람들이 부쩍 늘었다는 이야기는 이미 오래 전 이야기다.('오래 전'이라는 말 속에 세월을 감지하는 정도는 사람마다 차이가 있겠지만, 여하튼 서명숙님의 <놀멍 쉬멍 걸으명 제주 걷기 여행>은 어느 정도 올레길 조성이 본격적인 궤도에 오른 2008년 9월에 출간된 책이다)

 

이 책은 제주도로 귀향하거나, 새로 입도(入島)한 15명의 제주 정착기이다.

게스트하우스, 무인카페, 사설도서관, 공인중개사, 감귤농장, 레스토랑, 만화가, 공동생활가정, 된장 농사꾼 등.. 그들의 정착방식도 실로 다양하다. 특히 귀향이 아닌 새로운 입도의 경우에는, 낯선 제주의 환경과 문화가 여러 면에서 걸림돌이었을 것 같다. 그러나 이 책에서 저자가 서술하고, 그리고 주인공들이 실감하는 '정착'의 의미가 시쳇말로 이야기하는 '성공'과는 다른 '충만'의 의미를 간직한다고 볼 때, 매우 의미있는 간접경험이다.

 

이러한 책의 출간은 그만큼 관심을 반영한 것이라고 볼 때, 제주도에 대한 관심의 증가는 이후에 입도를 꿈꾸는 사람들에게 '정착'은 점점 더 쉽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을 들게 한다. 최근 기사에 따르면 중국 등 외국인의 제주도 토지 구매(특히 관광지 조성관련)가 활발하다고 하지 않은가. 그러나 제주에서 스스로 행복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늘어난다는 점이 제주를 지켜가는데 일조할 것이라는 점에서 반가웠던 책이다. 그리고 저자인 기락의 탄탄한 문장력이 부러웠던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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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제동이 어깨동무 합니다 - 더불어 함께 사는 세상을 꿈꾸며
김제동 지음 / 위즈덤경향 / 201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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밑줄 그어놓은 몇 구절을 통해, 김제동 씨가 만난 사람들과 나눈 대화를 되새겨보고자 합니다.

 

'역사에선 죽음을 이렇게 정리해요. 죽은 자를 위한 장례가 있고 산 자를 위한 장례가 있죠. 천수를 누리고 죽은 사람을 위한 장례가 전자라면, 4.19나 5.18, 장자연 사건 등은 산 자를 위한 장례죠. 전태일의 장례를 쌍용에서 다시 치르는 것처럼.'(서해성)

 

'어떻게 보면 이 정권 들어와서 사람들이 조금 더 사회의식을 회복하고, 옳고 그른 것을 분별하며 살아야겠다고 생각하게 된 것 같아요. 그런 면에서는 오히려 고맙죠.'(백낙청)

 

'강물이 얼마나 빨리 흐르는지 아는 방법은 뛰어드는 수밖에 없어요. 계획이 아니라 가슴이 따라가는 대로 하면 그게 다 이어지고, 실패 경험조차도 자신의 인생을 지탱하고 만들어준다고 봐요.'(안철수)

 

'그 누군가가 나로 인해 웃을 수 있고, 잠시 행복할 수 있다는 건 큰 기쁨이다. 그럴 때마다 이 일을 정말 잘 시작했다는 생각이 새록새록 든다. 나 하나 망가뜨려서 여러분들이 웃을 수 있다면... 그래, 이건 내 운명이다.'(문재인 인터뷰 이후 김제동 씨의 후기)

 

'등록금이 없어졌으면 좋겠어요. 졸업과 함께 빚을 갚는 것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해야 하는데.. 다른 나라엔 등록금 없이 운영되는 곳도 있다고 그러던데요. 그런 걸 제가 소원으로까지 빌어야 하나 생각하면 갑갑하죠.'(아르바이트 대학생 윤호산)

 

'내가 뭔가를 하면서 그로 인한 대가를 지불하지 않으려 하기 때문에 문제가 생기거나 그 일을 못하는 거야. 뭘 하는데 대가를 지불할 의사가 있다면 그것을 감수하는 거야.'(김어준)

 

'이젠 현실을, 이 세상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를 눈 부릅뜨고 볼 거예요.'(조수미)

 

그리고...

 

'스파이더맨이 줄 쏘는 능력이 있다고 노래방에서만 줄 쏘고 슈퍼맨이 나는 능력이 있다고 안방에서만 날아다녀야 되겠습니까.'(경향신문 신동호 기자가 인터뷰한 김제동)

 

인터뷰이가 된 김제동 씨는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그래도 마음속에 그런 생각이 들죠. 돌아가신 분 노제에 가서 사회 보는 게 빨갱이인가? 그럼 빨갱이 할게. 등록금 대출 서류와 즉석복권 옆에 놔두고 자살하는 여대생, 등록금 때문에 냉동 창고에서 일하다 죽는 학생, 이런 사람이 더 생기지 않도록 같이 노력해 보자는게 빨갱이라면 난 기꺼이 좌빨 할게..(중략).. 저희 첫번째 매형, 산업재해로 돌아가셨습니다. 회사 측에서도 어떤 사정이 분명히 있었겠지만 그래도 더 힘 가진 쪽이 조금만 더 배려해 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것이 빨갱이라면 나 빨갱이 맞다, 빨갱이 할게..(중략) 들어만 달라, 이거 아닙니까. 그런데 말하지도 말라고 하고 듣기고 싫다고 하는 건 좀 문제가 있지 않느냐고 말하는 게 빨갱이라면 나는 빨갱이 할게. 그런 거죠.'(김제동)

 

너무 많이 인용한 듯 합니다. 그러나 이 책을 통해 이렇듯 교감하고, 진실되게 소통하는 일이 이 시대에 부족한 탓에 이 책의 의미가 더 큰 것이 아닐까 합니다. 게다가 바로 전에 발간한 '김제동이 만나러 갑니다'의 인세 대부분을 아름다운 재단 '환상의 짝궁 기금'에 기부한 실천까지 생각한다면 더욱 그렇겠지요.

 

중간고사를 앞두고 경황없는 아이들의 시험이 끝나면, 아이들이 좋아하는 김제동 씨의 이 책을 같이 보고 이야기해보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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