딴따라라서 좋다 - 오지혜가 만난 이 시대의 '쟁이'들
오지혜 지음 / 한겨레출판 / 2006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예술가과 딴따라...

책을 펼치며 한방 맞은 듯한 얼얼함이 먼저 다가온다. 흔히들 머리말 말미에는 당연히 '이 책이 나오게끔 도와주신 누구누구에게 감사한다'는 말이 철칙처럼 새겨진다. 가족에게든, 도움을 준 분들에게든... 저자 오지혜도 그 철칙에서 벗어나진 않는다. 감사의 마음을 표현하는 미덕이기 때문에 어색하지 않다. 그러나  '책머리에'서 저자는 마지막 구절을 이렇게 적고 있다. '...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합니다. 참! 이 책을 읽겠다고 펼쳐드신 당신께도 감사드립니다. 2006년 봄 오지혜'...  이런 기억이 있었을까 돌아보아도 미처 몇 권을 헤아리지 못한다. 그리고 그런 책들이 전해준 감동은 언제나 다른 책들에 비해 모자람이 없었다. 독자에게도 '감사'할 줄 아는 글쓴이의 마음가짐이나 배려 덕분에 읽는 내내 즐거웠다. 

그래서 책을 덮으며 이 친절한 저자는 왜 이 책의 제목을 '딴따라라서 좋다'로 정했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예술가와 딴따라. 어찌보면 두 말 모두 그 말이 쓰여짐에 따라 축적된, 고정적인 이미지를 갖고 있다. 그 말을 '우리가 사는 동네'라는 일상적인 삶과의 거리로 측정해본다면 전자는 그 동네에서 벗어나 마치 내려다보듯, 관조하듯 행위하는 '고매한' 사람들에게 부여되는 모종의 '지위'를 인정하는 느낌이 강하고, 후자는 그 동네 골목골목을 돌아다니며 신명을 일으키고, 반추하는 힘과 활력을 일으키는 '이웃'의 느낌이 강하다. 아니 좀더 솔직하자면 은연중 우리는 '아랫것'이라는 의식도 갖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여기에 짧은 분량의 꼭지에 담긴, 그래서 아쉬운 글들에서 우리는 예술의 '전선'에서 온몸으로 뛰는 '전사'의 모습을 보기도 하고, 삶에 대한 남다른 열정을 쉽게 찾아볼 수도 있다. 이미 언어의 감옥에서 굳어진 이미지가 해체되고 있는 것이다. '딴따라'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기 위해서, 아니 '예술'을 일상의 삶으로 되돌려놓기 위해서 붙인 제목이 아닐런지. 인터뷰 대상이 되었던 분들 하나하나가 그러한 가능성들을 각각의 면모로 보여주고 있고, 이만큼 이 시대의 '예술인'들은 예전과는 많이 다르다는 것을 이 책을 통해 새삼 느낀다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그래서 더욱 반갑고 고마운 책이다.

<콘트라베이스>, <늙은 창녀의 노래>로 바빴던 당시에 뵈었던 명씨 아저씨는 잘 계시는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딴따라라서 좋다 - 오지혜가 만난 이 시대의 '쟁이'들
오지혜 지음 / 한겨레출판 / 2006년 4월
장바구니담기


(문소리) 연기를 위해 만났다가 친구가 됐다는 장애인 '언니'들이 영화(오아시스)를 봤다기에 그들의 소감이 궁금했다. 조심스레 건넨 그녀의 질문에 그들의 대답은 '재밌다' '감동적이다' 따위가 아닌 '현실적이다'였다고 한다..(중략) 특히 판타지 장면들이 인상적이라면서 자기네들이 그렇게 지하철 같은 데서 벌떡벌떡 일어나는 상상을 하는 걸 어떻게 알았느냐고 하더라는 그녀의 말에 우리 모두 잠시 숙연해졌다.-21쪽

(김윤아) 인간은 타인에게 인정받기 위해 세상을 살아간다. 정신병원에 입원한 수많은 환자들의 공통점은 사랑하는 사람에게 인정받지 못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라고 한다. 보통 사람의 인생이 그런데 관객의 박수를 먹고사는 딴따라들의 삶은 말해 무엇하랴. 배우인 나 역시 평생 관객을 짝사랑하는 마음으로 살고 있다. 매 공연 때마다 관객이 많기를 바라는 이유 역시 그들을 즐겁게 해주기 위해 연습했는데 아무도 와주지 않으면 배우로서의 존재의미가 사라지기 때문이다. 물론 그들이 내 '재주'를 보고 웃고 울고 하는 걸 보면서 갖는 쾌감, 결국 그 쾌감을 잊지 못해 계속 이 짓을 하는 것이며 내가 여태까지 만난 딴따라들 어느 누구도 다른 이유를 대는 사람이 없었다.-43쪽

(이상우) 차이무 공연 팸플릿에 실린 글들은 공연 못지않게 재밌다. 글도 글이지만 배우와 배후(스태프)들의 이력을 쓰는 난이 참으로 신선하다. 출신 학교들을 다 초등학교만 쓰는 거다. 제작에 돈을 댄 기업의 대표도, 나이 지긋한 평론가들도 차이무 공연 팸플릿에는 최종 학력 대신 출신 초등학교 이름만 달랑 나온다. 초등학교 이름만 봐서는 배우들의 연기에 선입견을 가지려야 가질 수가 없으니 이 얼마나 신선하고 즐거운 짓인가. 물론 아이디어 역시 (머리 말고) 그의 가슴 속에서 나온 것이다. 그만큼 그는 권위와 폭력과 선입견, 특히 편견을 싫어한다.-51쪽

(이호재) 10년 넘게 라디오에서 한 프로를 진행하면서 거의 매일 각 분야의 전문가들을 만나 '맞장'을 떴던 것과 타고난 역마살 때문에 틈만 나면 짐을 싸서 길을 떠났던 것이 자양분이 됐던 걸 게다. 여행 하면 나도 할 얘기가 많은지라 어디어디를 다녀왔냐 물으니 한참을 세다가 안 가본 나라를 세는 쪽이 더 빠를 것 같다며 또 '귀엽게' 웃는다. 그것도 배낭 하나 달랑 메고 떠나는 진정한 여행자로서 지구 곳곳을 누볐으니 그 옆에 있으면 항상 바람소리가 났던 건 바로 그 때문이었나 보다.-80쪽

(이정은) (배우 최광일 등과 함께) 얼마 전에 직접 제작을 했다가 망했다는 얘길 들은 터라 도대체 이번에 또 망하면 어쩌려고 그러느냐는 대안 없는 내 걱정에 그녀는 편한 얼굴로 안 그래도 빚이 잔뜩 있지만 하고 싶은 건 해야겠기에 하는 거란다. 마흔 넘어서 하면 좀 웃길 거 아니냐고 키들거리면서... 빚? 많지만 딸린 식구도 없고 몸 건강한데 그거 못 갚겠느냐는 거다. 다른 '동지'들도 다 같은 생각이란다. 그녀와 그녀의 '동지'들은 이 공연이 끝난 후나 공연 중인 지금도 각자 학습지 교사와 생수 장사 등으로 살아갈 구멍들을 마련해놓은 상태다.

휴우....-86쪽

(이정은) 우리나라에 없는 게 석유 말고 '괜찮은 남자'라고 누가 농담을 한 적이 있는데, 하나 더 있다. '공부하는 프로'다. 경력이 10년 이상 된 '프로'들이 그네들처럼 겸손하게 공부하는 자세로 일을 한다면 석유쯤은 안 나와도 국력이 빵빵해지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1년만 하면 너도나도 다 전문가요, 남의 일에 훈수만 두려 할 뿐 자기 일에 있어서는 더 이상 '배우려' 하지 않는 사람들투성이다.
영화, 텔레비젼 종사자들에게 상을 주는 화려한 시상식장에서 거지적선하듯이 찔끔찔끔 주던 연극상이 점점 없어져서 이제 연극 연기상을 주는 곳은 한 군데도 없다고 한다. 이런 젊은 배우들이 원하는 것은 부귀영화가 아니다. 돈 안 되는 손바닥만한 트로피라도 하나 손에 쥐어주면서 '우리가 너희 지켜보고 있다. 잘한다. 열심히 해라' 하고 응원해주는 작은 관심이다. 아무도 관심 가져주지 않아서 이런 이들이 사라지게 된다면, 우리 문화의 미래도 없다는 걸 명심해야 할 거다. 누가? 우리 모두가!-88쪽

(방은진) 난 이제 막 입봉 감독 출사표를 던진 남자와 함께 살고 있다. 배우 부모를 두고 태어나서 배우들 틈에 자라 배우를 업으로 삼다가 스태프와 결혼을 한 나는,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1차 생산인 시나리오 작업을 옆에서 보아 오면서 그 끝없는 고행의 연속에 구경만 하는데도 진이 빠져 있던 차였다. 세상에 존재하지도 않는 갑남을녀들을 등장시켜 그럴듯한 '뻥'을 만들고 그걸로 사람들에게 재미와 감동을 주는 일은 보통 사람들이 상상도 못할 인고의 시간을 필요로 하는 것이다.

생계유지는 주말에 하는 교통방송이 전부인 채 쓰는 일에만 매달려 왔다고 하지만 그녀는 틈틈이 이라크 파병 반대 일인시위, 새만금 지키기 삼보일배 같은 평화운동에 참여해왔다. '당연히' 해야 하는 일이라면서 딴따라는 관객의 사랑을 먹고사는 것만으로 살아서는 안 된다, 인간은 어차피 서로 도우며 살게 돼 있으니 그런 일도 적극적으로 해야 한다고 말한다. 아, 든든한 나의 딴따라 동지 방은진!-115쪽

(성지루) 엔간히 벌었을 텐데 좀 쓰지 그러냐니까 뜨기 전과 뜬 후가 달라진 거라곤 차 한 대 생긴 거밖에 없고 전부 빚투성이라 빚 갚느라 허덕이고 있다고 한다. 하긴 영화에 얼굴 좀 내밀었다고 뭐가 엄청나게 달라지는 게 아니라는 걸 누구보다도 잘 아는 내가 왜 쿠폰 좀 써먹은 걸 쪽팔려했을까. 그러고 보니 섭외 전화를 하기 위해 영화사로 전화번호를 물어보려다가 혹시나 해서 5~6년 전에 내게 가르쳐 준 번호를 눌러봤는데 그동안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전화를 받던 며칠 전이 생각나서 피식 웃음이 났다.

(형님의 사고) 그 덕에 그는 자동차 박사가 됐고 그 후 아내와 아이를 먹여 살리기 위해 그는 보험 맨이 된다. 고객 관리는 환상적이었다. 사고가 나면 연결만 해주면 그만인데 사고처리 완결 후에도 마치 가족안부 묻듯 '싸가지 캡'으로 '관리'를 했고 당연히 잘 나가는 보험 맨이 되었다(그의 고객 중엔 소문을 듣고 찾아온 큰 절의 주지스님도 있었다). 그러다가 그 정점에서 그는 갑자기 다시 대학로로 돌아온다. '진짜 보험 맨'이 되고 돈맛을 보면 배우를 못하게 될까봐 겁이 났다는 거다. 아! 딴따라여! 이 철딱서니 없는 종자들이여!

영화쟁이들이나 언론쟁이들은 하나같이 그를 '발견'했다고 떠들어댔다. 태곳적부터 존재했던 인디언들의 땅 아메리카를 '발견'한 콜럼버스의 역사가 어디까지나 서구 제국주의의 입장일 뿐이듯이 성지루는 그들이 '발견'한 배우가 아니라 원래부터, 오래 전부터 이미 하루도 쉬지 않고 무대 위에서 관객을 감동시키며 살고 있었다. 참으로 오만한 시선이 아닐 수 없다. 송강호가 그랬고 설경구가 그랬다. 그들은 '이미' 좋은 배우였고 일반 대중들은 '이제야' 눈치 챘을 뿐인 거다.-122쪽

(박광정) 그리고 그때 연출을 하면서 개인적으로 제일 좋아했던 장면은 '서울에서 평양까지'(내가 개량한복을 입고 나와 '서울에서 평양까지'를 부르고 남자배우들이 옆에서 관광 춤을 추는 장면이다)였는데, 그 이유가 '광주보다 더 가까운'이라는 가사 때문이었다는 거다. 연극을 만드는 작업으로 세상과 소통하고자 하는 그에게 '광주보다 더 가까운 평양'도 숙제였지만 '광주' 역시 숙제였기 때문이다. 그의 고향은 빛고을 광주다. 그리고 80년 5월, 그는 거기 있었다.-134쪽

(류승범) 예수가 열심히 노력해서 구세주가 된 것이 아니라 이미 구세주의 운명을 갖고 태어난 자신의 정체성을 모르고 살아오다가 어느 날 그 사실을 스스로 '발견'한 것처럼...-147쪽

(홍기유) 옛날에야 뜻있는 사람들끼리 주머니 돈 털어서 무대 올리고 그저 보러 와주면 고마워했다지만 이젠 영화에 비하면 '애들 장난'인 연극마저도 웬만큼 아쉽지 않게 공연 하나를 올리려면 '억' 소리가 나는 세상이 됐다. 이젠 연극도 프로듀서 시스템이 되어야 한다. 더 이상 연극은 보는 사람만 보는 '고매한 예술'이어선 안 된다. 연극의 본질이 '하는 놈과 보는 놈'일진대 관객을 유치시킬 경쟁력이 없으면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인가. 그렇게 볼 때 홍기유 같은 똑똑한 프로그래머들은 작금의 위기에 놓인 한국 연극판에 없어서는 안 될 보석 같은 인재가 아닐 수 없다.

마지막으로 꿈이 뭐냐 물었다. 조선일보에는 기사 내지 말자고 직원들한테 큰 소리 쳐보는 거란다. 에고, 가슴 아파라. 하지만 난 그가 한국연극 개혁의 핵심에 있다는 것, 그리고 그 개혁이 성공하리라는 걸 믿는다. 그리고 그의 개혁이 성공하면 조선일보 문화란은 더 이상 기웃거리지 않아도 되는 날이 꼭 오리라는 것도 믿는다.

원래 새치가 가득했던 그의 머리가 며칠 전 술자리에서 보니 아예 백발 수준으로 변해 있기에 '선생님'이라고 부르며 놀렸더랬다. 딴따라들과 관객들을 어떻게 하면 멋지게 만나게 해주나 고민하는 것이 그의 일상이니 머리가 허옇게 새는 것도 무리가 아니지 싶다. '연극열전'이 대학로 관객 다 뺏어간다고, 상업적인 기획이라고 그를 흉봤던 분들! 이 세상에 돈 받고 하는 공연치고 상업적이지 않은 공연이 있나요? 그리고 관객은 '뺏어간' 게 아니라 '찾아온' 게 아니었을까요? 연극만 아는 이 청년에게 박수 좀 쳐주시면 안 될까요?-153쪽

(기주봉) 40대 초반까지는 가족이 굶든 말든 연극배우의 '가오'를 지키는 것이 최고라고 생각했다. 그러던 어느 날 굴러다니는 잡지를 주워 뒤적이는데 '인생지마 새옹지마 우리 한 번 같이 잘 살아봅시다. 월 200 보장'이라는 광고 문구가 눈에 확 들어온다. 정수기 외판원을 모집하는 광고였고, 그는 그 길로 배우를 버리고 정수기 외판원이 된다. 사이비 종교집단처럼 새벽마다 모여서 구호를 외치는 동안 물은 반드시 정수를 해서 먹어야 한다고 세뇌가 됐다(지금도 그의 집엔 정수기가 설치되어 있다). 하지만 세뇌는 됐는데 고객 앞에만 가면 '구라'가 안 되서 실적은 처절했다. 사람들 앞에만 서면 신이 나서 어디서든 나서길 좋아하던 꼬마 기주봉이었지만 노는 게 아니라 돈을 벌려고 하니 입이 안 떨어졌다.-182쪽

(황정민) 그래서 그렇게 연기만 죽어라 하는 것이 행복한가 물어봤다. "무대 위에 있을 땐 행복 그런 거 잘 몰라요. 역할에 집중하느라 정신이 없어서요. 사실 연습도 괴롭고, 공연 준비하는 것도 괴롭고, 다 힘들고 괴로워요. 근데 어느 한순간 행복을 느낄 때가 있긴 해요. 커튼콜 박수 받을 때요. 그럴 땐 내가 이 사람들에게 뭔가를 전달했구나, 잠깐이나마 내가 이 사람들을 즐겁게 해줬구나 싶어서 기분이 좋아져요." 자신이 출연한 연극을 보고 한 명이라도 자신의 삶을 되돌아볼 수 있는 계기를 갖는다면 너무 행복할 것이지만 그건 너무 큰 바람이고 그저 잠깐의 재미를 준 것만으로도 만족한단다. 그 험한 고생을 하고서 관객에게 많은 걸 건네주는 그녀가 정작 관객에게 바라는 건 박수뿐이라니 왠지 불공평하다는 생각이 들었다.-189쪽

(윤민석) '부자 아빠'라는 잔인한 광고 카피가 이 땅의 많은 가난한 아빠들의 기를 죽였던 적이 있다. 그도 그중 하나였다고 홈펭지에 고백했다. 섬뜩하더란다. 나중에 딸아이가 자라서 자신이 하고 싶었던 걸 제대로 해주지 못한 부모를 원망할까봐 두렵지만 좋은 일 하느라 그랬다고 설명해줄 것이고 그런 부모를 자랑스러워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러면서 애국하는 일과 좋음 부모됨이 상충되지 않고 애국하는 일과 효도하는 일이 상충되지 않는 세상이 빨리 왔으면 좋겠다고 한다.-196쪽

(이항) 원래 의대생일 때부터 연극을 광적으로 좋아하기도 했지만 보름에 한 명꼴로 자기 손에서 아이들이 죽어나가는 일은 의사가 아니면 상상도 할 수 없는 스트레스라면서 일이 아닌 예술에 미쳐 있지 않으면 견딜 수 없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럴 거다. 사람의 목숨을 다루는 일을 직업으로 택한다는 것은 보통 용기로는 불가능했으리라. 아이의 죽음을 부모에게 알리는 일을 30년 동안 해오지만 매번 가슴이 찢어질 것 같다고 하는 그의 속내를 들으면서 연극을 연출하고 영화에 출연하는 일은 그에게 구원과도 같은 것이겠구나 싶었다.

(화가인 미망인에게) 작업은 하고 계시느냐 했더니 아직 '일어난 일'로부터 도망가느라 바빠서 작업을 할 엄두가 안 난다는 거다. 정면으로 바라볼 수가 없어서 남편 모르는 분들만 만나고 있다고 하는 그녀의 말을 듣는 순간, 아까부터 어금니가 부서져라 참고 있던 울음이 터지고 말았다. 진심으로 미안했고 당황했다. 정신없이 "죄송합니다"를 연발하며 울음을 그쳐보려 애써봤지만 수습이 되질 않아 민망하기 그지없는 통화가 되고 말았다.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그녀의 목소린 이미 떨리고 있었지만 애써 참으며 나를 다독여줬다.-207쪽

(이은미) 내 20대 속에는 뮤지컬은 연극이 아니라는 아버지 말씀에 대들다가 집에서 쫒겨날 뻔했던 기억이 있다. '다른' 것을 '틀린' 것으로 간주하고 심지어는 그것을 남에게도 강요하는 것이 아티스트의 자세냐고 다분히 버르장머리 없이 대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생각은 지금도 변합이 없다. 한데 어느 날 나는 내가 현존하는 대한민국 최고의 디바라고 믿었던 이은미 그녀가 텔레비젼 인터뷰에서 "립싱크하는 가수는 가수가 아니다"라고 하는 것이 아닌가.

적이 많으시겠어요, 하니 당연하죠, 라는 대답이 오버랩으로 날라온다. 반면 자신을 끔찍이 아껴주는 음악인들과 팬들도 많기 때문에 그 힘으로 살아간다고 한다. 그렇게 적을 스스로 생산하며 가는 곳마다 '붕어'들을 혼내는 삶이 피곤할 법도 해서 계란으로 바위 치기 아닐까요, 하고 물으니 "그래도 바위에 계란 물이라도 묻잖아요"라고 대답한다. 그러면서 자긴 여전히 무대 위의 가수로서 꿈을 꾸고 있고 그 꿈을 잃게 되는 날은 가수를 그만두는 날이 될 거라고 했다.

큰 극장 하나 지을 돈으로 작은 극장 여러 개를 지어달라, 한꺼번에 수천 명을 매회 채울 가수는 우리나라에 서너 명밖에 안 된다, 그럼 그밖에 가수들은 어디 가서 노랠 하란 말인가, 지방 사람들에게도 노래를 라이브로 듣는 것이 얼마나 즐거운 일인지를 경험하게 해주는 것이 진정한 문화혁명 아니겠느냐고, 왜 이 좋은 극장들의 빗장은 이리도 쓸데없이 무겁냐고.-229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개인비서를 뒀다 월급은 900원…

휴대전화에 숨은 비서기능 100% 활용하기
가까운 식당, 값싼 주유소 GPS 활용해
척척 알려줘 “정보이용료는 미리 확인을”

휴대전화 ‘알뜰족’이 되자. 시도 때도 없이 울리는 휴대전화, 가끔씩 요금 때문에 깜짝 놀라기도 하지만 휴대전화에는 유용한 알뜰 정보가 많다. 길 찾기 서비스는 이젠 기본. 휴대전화 인터넷 서비스에는 이 밖에도 온라인 경매, 모바일 쿠폰, 주유소 찾아주기, 공짜 전화번호 안내 등 다양한 생활정보가 가득하다. 기왕 무선인터넷 정액 서비스를 이용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벨소리 다운로드나 동영상 보기만 할 게 아니라, 짭짤한 생활 정보를 100% 활용해 보자.

◆뭐든지 물어봐=KTF의 ‘**114’ 서비스는 휴대전화로 전화번호를 검색할 수 있다. 전화번호는 물론, 주소, 지도보기 등이 제공된다. 또 GPS(위치추적장치)를 활용해 사용자의 위치에서 가장 가까운 식당이나 영화관 등도 알아서 척척 찾아준다. 게다가 9월까지는 서비스 출시 기념으로 정보 이용료와 데이터 사용료가 완전 무료다.

LG텔레콤은 현재 위치에서 가장 가깝고 기름값이 싼 주유소를 찾아주는 주유 정보서비스를 실시하고 있다. 무선인터넷 이지아이(ez-i)를 통해 주유 정보를 검색하면 반경 1.5㎞ 이내의 주유소를 가격이 싼 순서대로 알려준다. 가까운 주차장과 세차장 찾기 서비스도 가능하다. 1개월 정보이용료는 900원. LGT는 지하철 노선도, 첫차·막차 시각, 출구 정보 등을 알려주는 ‘지하철 플러스’ 서비스도 제공하고 있다. 월 정보이용료 1500원.


◆모바일 경매·쿠폰 서비스=SK텔레콤은 무선인터넷 경매 ‘네이트옥션’ 서비스를 하고 있다. 판매자는 휴대전화 카메라로 제품 사진을 찍어 언제 어디서든 편하게 경매에 붙일 수 있고, 구매자 역시 낙찰 여부 등을 문자 메시지로 받을 수 있다. 거래 수수료도 2%로 저렴한 편이며, 특히 연말까지는 거래 수수료와 물품 등록비가 무료다. ‘**4989’+네이트 버튼을 눌러 접속한다.

SKT는 모바일 쿠폰 서비스도 제공하고 있다. 모바일 쿠폰은 사용하기 위해 미리 챙겨두어야 하는 종이 쿠폰과 달리, 휴대전화만 있으면 언제든 사용이 가능하다. ‘**333’+네이트 버튼을 눌러 접속하면 된다. SKT는 고객의 휴대전화로 다양한 이벤트 정보를 무료로 알려주는 ‘아이러브 이벤트’ 서비스, 백화점·쇼핑몰 등의 할인행사를 속보로 알려주는 서비스도 제공하고 있다.

휴대전화 무선인터넷 서비스 중에는 이 밖에도 재미있는 서비스가 많다. 예를 들어 SKT는 간단한 메모나 행사 관리 등을 할 수 있는 모바일 가계부와 모바일 상품 가격 비교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KTF는 모바일 부동산 매물·시세 등 각종 부동산 정보를 제공하고 있고 LGT는 북한 미술품 경매 사이트도 운영하고 있다.


◆통화료와 정보 이용료를 미리 확인=무선인터넷 서비스를 이용하려면 통화료와 해당 서비스 이용에 대한 정보 이용료가 이중으로 든다. 정보 이용료가 없더라도 데이터 통신에 따른 통화료는 내야 하기 때문에 아무 생각 없이 무선인터넷 서비스를 이용했다간 낭패를 볼 수 있다. 따라서 데이터 통화료를 아끼려면 매달 일정액을 요금으로 내는 정액제 서비스를 이용하는 게 좋다. 특히 하루에 한 번 이상 무선인터넷을 이용하는 사용자라면 무제한 요금제(업체별로 월 1만~2만6000원 안팎)를 사용하는 게 좋다. 또 해당 서비스를 이용할 때에도 휴대전화 창에 뜨는 안내 문구를 꼼꼼히 읽어서 정보 이용료가 어느 정도인지 먼저 확인해야 한다.

조형래기자 hrcho@chosun.com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콜금리(Call Rate)가 서민 경제에 미치는 영향 조회 : 2,048   추천 : 4

“한국은행에서 콜금리를 또 올렸다며? 큰일이구만.. 대출 받아 놓은 게 아주 걱정이야..”
“콜금리가 올라가면 대출이자가 올라가나? 그럼 예금이자도 올라가는거 아냐? 나야 좋지뭐..”

우연히 들렀던 삼겹살집의 옆테이블에서 중년의 남자분들이 이런 얘기들을 하십니다.
하루가 다르게 금융시장이나 경제상황이 급변하고 있습니다.그 중심에는 ‘금리’라는 단어가 늘 함께하고 있습니다.하도 들어서 초등학생들도 들어는 봤다지만 그 뜻을 정확히 알고 있는 사람이 드문 게 바로 ‘금리’의 기준이라고 할 수 있는 ‘콜금리’입니다.

 

얼마 전 한국은행이 경기하락 우려에도 불구하고 콜금리를 0.25% 인상하여 4.25%로 결정했다는 기사가 있었습니다.이유는 경기하강의 우려보다는 시중유동성 흡수, 경기 침체기에 대비하여 '금리실탄확보'에 비중을 두었다고 합니다.그리고 버냉키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 의장의 추가 금리인상 시사 발언도 영향을 미쳤을꺼라고 합니다.전세계적으로 금리가 상승세에 있으며 일본도 제로금리를 포기했고 미국도 당분간은 금리의 상승에 대한 예상이 지배적인 게 최근의 시장환경입니다.

 

그렇다면 콜금리(Call Rate)가 정확히 무언지 알아보겠습니다.

콜금리는 금융기관간 영업활동 과정에서 남거나 모자라는 자금을 30일 이내의 초 단기로 빌려주고 받는 것을 '콜'이라 부르며, 이때 은행, 보험, 증권업자 간에 이루어지는 초 단기 대차에 적용되는 금리가 바로 '콜금리'입니다.

 

콜을 빌려주는 입장에서는 '콜론 (call loan)', 빌리는 쪽에서는 '콜머니(call money)' 라 합니다.최장 만기는 30일이지만 실물거래에 있어서는 1일물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통상 콜금리는 1일물(overnight)금리를 의미하며 단기 자금의 수요와 공급에 의하여 결정됩니다.

콜금리 변동이 시중 은행의 금리에 미치는 영향은 크게 전반적으로 금리인상(대출 및
예 적금)을 들 수가 있습니다.여기에 파생되어 시중 은행의 금리가 통화량에 미치는 영향은 금리인상이 대폭 오를 경우는 통화량이 감소한다고 볼수가 있겠습니다.


예적금 금리가 놓아지므로 안정적인 수익을 기대하는 수요가 증가하므로 그만큼 돈이 은행에 묶이는 것입니다.
우리나라의 경기 상황에서 금리 인상이 이루어질 경우 나타날 현상을 예측해 보면 대출금리가 인상되어 서민들에게는 큰 부담으로 작용할듯합니다.


특히 최근 몇 년 사이 주택담보대출이 폭발적으로 증가하여 지난 6월말 현재 대출금액이 200조 7559억원 이라고 하고 이중에서 시중금리와 연동되어 금리가 변경되는 변동금리의 대출이 80%가 넘는다고 하니 금리상승에 따른 중산층 이하의 서민들에게 큰 부담이 아닐 수 없습니다.

콜금리는 금융기관간 적용되는 금리지만, 사실상 한국은행의 콜금리 목표수준에 의해 크게 영향받고 있습니다.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는 매달 한 차례씩 정례회의를 열고 그 달의 통화정책방향을 정합니다. 경기과열로 물가가 상승할 가능성이 있으면 콜금리를 높여 시중자금을 흡수하고, 경기가 너무 위축될 것 같으면 콜금리를 낮추어 경기활성화를 꾀합니다.

 

다른관점에서 살펴보면 콜금리에 관한 정책의 변화로 나타나는 긍정적 영향과 부정적 영향 등으로 나누어 볼 수가 있습니다.


콜금리는 재정자금의 동향이나 개인 기업의 현금수요 등을 배경으로 한 금융시장의 수급사정에 의해서 변동하는데, 사실상 중앙은행인 한국은행이 통제합니다.따라서 경기과열로 물가가 상승할 가능성이 있으면 콜금리를 높여 시중 자금을 흡수하고 경기가 너무 위축될 것 같으면 콜금리를 낮추어 경기를 활성화시키는 방안을 세우는 등 매달 통화정책 방향을 결정하고, 통화안정증권이나 국채를 시중은행과 사고 파는 방식으로 시중의 자금량을 조절합니다.


그럼 이러한 콜금리를 이용하여 한국은행에서는 지금 우리의 경기침체 현상을 극복해 보려고 노력하였는데 콜금리의 인하가 경제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지 부정적 측면에서 바라보는 입장과 그에 대해 반박하면서 콜금리의 긍정적 영향을 이야기하는 이들의 입장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2006년 6월 9일기준 콜금리 추이 및 은행별 예*금리 동향)


콜금리 인상의 부정적 영향

 

우선 부정적인 영향들은 금리 생활자들의 고통 가중, 인플레 가능성으로 요약 할 수 있습니다.또한 우리경제가 대외여건에 많이 의존하고 있기 때문에 미국, 일본의 경기회복이 전제되지 않으면 금리를 인하해도 도움이 안되며 오히려 부작용을 유발할 수 있습니다.

 

우선 금리 생활자들을 보면 콜금리 인상이 금융권에의 대출금리인상으로 이어질 것입니다.콜금리 인상은 국고채 등 장기 시장금리도 올릴게 분명해 콜금리 인상 이후 3개월짜리 CP(기업어음)금리, 3년 만기 국고채 금리가 올라갑니다.시장금리가 올라가면 금융회사는 자금 조달 비용과 운용수익률이 그만큼 높아지므로 그에 맞춰 여수신 금리를 올리게 됩니다. 따라서 여신금리도 시장금리 연동대출 비중이 높아지면서 자연스럽게 상승하게 됩니다.이와 같은 각종 금리의 상승은 가계의 저축유인을 높여 소비를 감소시키는 동시에 기업의 자금조달 비용을 높임으로써 생산과 투자가 줄어드는 등 경기축소 효과를 나타냅니다.


아울러 시중의 부동자금의 안전한 예적금등의 자산으로의 이동으로 인해서 주식시장에도 악영향을 미칠 것으로 판단됩니다.

 

콜금리 인상의 긍정적 영향

 

한국은행에서 콜금리를 인상해서 정기예금(1년 만기 기준) 금리는 연 5%대 초반까지 올라갈 것으로 예상됩니다.이자소득세(16.5%)를 떼고 소비자물가상승률(5%선)을 감안하면 실질 금리가 완전히 마이너스 상태인 현재의 상황에서 그나마 예적금 가입자들에게는 힘이 되는 소식이 아닐 수 없습니다.이러한 상태에서는 노령층의 이자생활자의 소득이 늘어나게 되는 희망적인 예상이 나올 수 있습니다.


 이렇듯이 콜금리 인상에 대한 기사나 뉴스를 접했을 때 이런 생각들을 할 수가 있습니다.
최소한 대출을 지금보다도 더 늘리거나 새롭게 무리한 대출을 받아서는 안되겠습니다. 대출을 받아서 주택을 구입할 때도 신중해야 하고 신용대출도 가급적 줄여야 한다는 뜻입니다.만약 대출을 줄여나가지 못한다면 가계의 수지가 악화되거나 현금유동성이 떨어져 삶의 질이 상당 부분 저하될 수 밖에 없을 듯 합니다.

 

이렇듯이 콜금리 인상 하나에 여러 가지 현상들이 이어지면서 금융,경제상황들의 변화가 나타납니다.따라서 어떠한 금융관련 기사나 현상에 대해서 현재의 상황대비 각 분야별 어떻게 변할지에 대해서 늘 관심을 가지고 항상 고민하는 습관을 갖는 게 무엇보다도 중요한 점이라고 할 수가 있겠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북한 미사일 발사와 한반도 정세
이희옥 | 한신대 중국지역학과 교수, 정치학

국제사회의 우려와 경고에도 불구하고 북한은 미사일 발사라는 카드를 실행에 옮겼다. 이를 두고 북한은 '자위적 국방역량을 강화하기 위한 군사훈련의 일부'이며 주권국가의 합법적 권리라고 주장하고 있으나, 국제사회는 즉각 '북한위험'을 부각시키면서 다양한 제재에 착수했다. 나아가 미국과 일본은 이 사태를 미사일방어체제의 당위성을 강화하는 구실로 내세웠으며, 그나마 유지되던 남북관계의 동력도 크게 떨어지면서 동북아는 군비경쟁의 긴장이 고조될 가능성이 커졌다. 이런 점에서 북한의 선택은 현명하지 않다고 할 수 있겠다.

그러나 이러한 상황을 예상하면서도 북한은 왜 미사일을 발사했을까? 몇가지 측면에서 추정해보자. 첫째, 미국의 '악의적 무시정책'으로 답답한 상황이 지속되는 것보다는 핵운반 능력을 과시하면서 상황을 스스로 벼랑끝으로 몰고가 국면전환을 시도한 것이다. 여기에는 1998년 대포동 1호 미사일을 발사한 이후 페리 프로쎄스를 통해 미국과 협상했던 경험도 고려됐을 것이다.

둘째, 중미간의 균열대(fault line)를 좀더 넓혀 자국의 입지를 확대하고자 한 것이다. 미국과 중국은 미사일 문제에서 이익상관자(stake holder)이다. 하지만 미국은 북한과의 직접대화를 회피한 채 중국을 활용해 자신의 부담을 줄이는 전략(burden-cut strategy)을 구사해왔다. 이런 상태에서 북한은 1/6의 지분으로 참여하는 현재의 불리한 6자회담의 틀을 흔들어보려고 한 것이다.

셋째, 현재의 남북관계에 대한 불만의 표출이다. 한국은 2005년 '경주선언' 이후 미국과 조건부 전략적 유연성에 합의하고 한미FTA 조기협상에 착수하는 등 흔들렸던 한미관계를 빠르게 복원하고 있다. 반면 남북관계는 해상경계선 재설정, 역사문제, 한미연합사 훈련 등 '근본문제'에 대한 아무 진전 없이 교착국면이 넓게 형성되어온 것이다.

여기에 미국이 6월부터 괌 인근에서 '용감한 방패' 작전을 실시한 데 이어 사실상 북한을 가상적국으로 상정한 채 베트남전 이후 최대 규모의 '2006 환태평양' 훈련을 시작한 상황을 환기시키고자 한 측면도 있다. 그리고 미사일 국면이 한창 고조되는 동안에도 주변국가들이 '(북한이) 합리적 행위자라면 미사일 발사를 하지 못할 것'이라는 현실론에 경도되자 군부의 요구를 수용해 의표를 찔렀을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북한이 미사일을 발사함으로써 활은 시위를 떠났다. 하지만 미사일 정국은 북한의 의도대로 전개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미국은 '나쁜 행동에는 보상할 수 없다'는 입장을 재확인하면서 북한 길들이기에 나서고 있다. 크리스토퍼 힐 미 국무부 차관보의 "아무 일이 없던 것으로 해서는 안된다"는 언급도 이러한 입장의 연장선상에 있다. 현국면을 군비증강과 팽창주의의 호기로 삼고자 하는 일본은 유엔에 대북제재 결의안을 내고 선제공격까지 주장하는 등 기다렸다는 듯이 대북 강경책을 내놓고 있다.

한편 중국은 '예방외교'의 한계를 드러내면서 '외교적 체면'을 손상한 뒤로 나름의 건설적인 역할을 하겠지만 북한에 대한 부담을 떨치기 어려울 것이다. 또한 한국정부는 5.31 지방선거 패배 이후 정치적 추진력에 한계를 노출하면서 입지가 더욱 위축됐으며 이로 인해 남북관계의 동력도 제약받고 있는 실정이다.

그렇다면 이 국면을 어떻게 타개할 것인가? 감정적 대응보다는 이성적 성찰이 필요함은 물론이다. 위기의 고조는 종종 설계가 아니라 사고에 의해 발생한다. 한반도와 동북아 평화에서 '대화' 외에 뚜렷한 대안이 없다는 것은 그동안의 경험이 말해준다. 물론 북한의 잘못된 행동에 대해서는 강력한 경고가 필요하다. 필요하다면 대화의 속도를 조절할 수도 있다. 통일부 성명처럼 "북한이 그들의 행위로 인해 실질적인 부담을 안을 수밖에 없는 조치를 검토하여 추진"하는 것도 배제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미국이나 일부 여론에 떠밀려 인도적 지원이나 대북경협의 축소와 쉽게 연계할 경우 한반도의 긴장은 고스란히 우리의 부담으로 다가올 것이다. 더구나 중국이 미일 경제제재에 참여할 가능성이 적은 상태에서 대북 강경책을 고수한다면 향후 남북관계에서 운신의 폭을 크게 제약당할 것이며 이에 따라 남북관계의 냉각은 불가피해질 것이다. 제1차 북핵위기 당시 북미간 제네바합의로 화해국면이 조성됐으나 남북관계는 4~5년간 냉각기간을 거쳐야 했던 선례도 참고할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 대북 강경책은 동북아판을 흔들어 체제안전을 확보하려는 북한 강경세력의 입지를 확대해줄 뿐 아니라, 남북관계를 다시 악화시켜 한미관계를 재조정하는 데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주게 될 것이다.

다행스럽게도 국제사회는 위기의 고조보다는 외교적 해법에 동의했다. 특히 중국은 "현재의 국면을 긴장시키거나 복잡화하는 행동을 취해서는 안된다"고 강조하면서 유엔의 대북한 제재에도 부정적인 입장을 보였다. 또한 이미 비공식 6자회담을 제의하고 미사일 발사 이후에도 6자회담의 계기를 살려나가는 외교적 노력을 강조한 것도 눈여겨볼 대목이다.

물론 외교적 해결에 대한 각국의 인식차이는 크다. 그러나 그 핵심은 긴장국면을 협상국면으로 바꾸는 것이다. 강한 사람의 양보는 유연성으로 설명할 수 있지만, 약한 사람의 양보는 굴복으로 비치는 것이 오늘날 국제관계의 현실이며 북미관계도 이러한 구도 속에서 작동한다. 북한을 제외한 5자회담을 통해 북한을 회담장으로 강제로 불러내기 어려운 이유도 여기에 있다.

따라서 6자회담의 틀 속에서 다양한 협상의 통로를 마련하는 현실적 고민이 필요하다. 출구를 마련하지 않은 강경책은 정치적으로는 무책임한 행위다. 상대를 추측하거나 상상력으로 문제를 풀게 될 때에는 해법이 없다. 남북 장관급 회담이나 고위 접촉창구 등을 통해 북한을 압박하는 지혜가 필요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사실 이번 파국은 서로에 대한 가치관과 문법이 달라 예견된 일이었다. 이 기회에 끊임없이 '당신은 누구냐?'고 물으며 적과 동지를 구분하는 일방주의로는 국제관계의 민주화가 불가능하다는 교훈도 새겨둘 필요가 있다.


필자 소개 이희옥
한신대 교수. 저서로 《중국의 새로운 사회주의 탐색》《동북아 신질서의 모색》(공저)《한반도 평화체제의 모색》(공저) 등이 있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