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소리) 연기를 위해 만났다가 친구가 됐다는 장애인 '언니'들이 영화(오아시스)를 봤다기에 그들의 소감이 궁금했다. 조심스레 건넨 그녀의 질문에 그들의 대답은 '재밌다' '감동적이다' 따위가 아닌 '현실적이다'였다고 한다..(중략) 특히 판타지 장면들이 인상적이라면서 자기네들이 그렇게 지하철 같은 데서 벌떡벌떡 일어나는 상상을 하는 걸 어떻게 알았느냐고 하더라는 그녀의 말에 우리 모두 잠시 숙연해졌다.-21쪽
(김윤아) 인간은 타인에게 인정받기 위해 세상을 살아간다. 정신병원에 입원한 수많은 환자들의 공통점은 사랑하는 사람에게 인정받지 못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라고 한다. 보통 사람의 인생이 그런데 관객의 박수를 먹고사는 딴따라들의 삶은 말해 무엇하랴. 배우인 나 역시 평생 관객을 짝사랑하는 마음으로 살고 있다. 매 공연 때마다 관객이 많기를 바라는 이유 역시 그들을 즐겁게 해주기 위해 연습했는데 아무도 와주지 않으면 배우로서의 존재의미가 사라지기 때문이다. 물론 그들이 내 '재주'를 보고 웃고 울고 하는 걸 보면서 갖는 쾌감, 결국 그 쾌감을 잊지 못해 계속 이 짓을 하는 것이며 내가 여태까지 만난 딴따라들 어느 누구도 다른 이유를 대는 사람이 없었다.-43쪽
(이상우) 차이무 공연 팸플릿에 실린 글들은 공연 못지않게 재밌다. 글도 글이지만 배우와 배후(스태프)들의 이력을 쓰는 난이 참으로 신선하다. 출신 학교들을 다 초등학교만 쓰는 거다. 제작에 돈을 댄 기업의 대표도, 나이 지긋한 평론가들도 차이무 공연 팸플릿에는 최종 학력 대신 출신 초등학교 이름만 달랑 나온다. 초등학교 이름만 봐서는 배우들의 연기에 선입견을 가지려야 가질 수가 없으니 이 얼마나 신선하고 즐거운 짓인가. 물론 아이디어 역시 (머리 말고) 그의 가슴 속에서 나온 것이다. 그만큼 그는 권위와 폭력과 선입견, 특히 편견을 싫어한다.-51쪽
(이호재) 10년 넘게 라디오에서 한 프로를 진행하면서 거의 매일 각 분야의 전문가들을 만나 '맞장'을 떴던 것과 타고난 역마살 때문에 틈만 나면 짐을 싸서 길을 떠났던 것이 자양분이 됐던 걸 게다. 여행 하면 나도 할 얘기가 많은지라 어디어디를 다녀왔냐 물으니 한참을 세다가 안 가본 나라를 세는 쪽이 더 빠를 것 같다며 또 '귀엽게' 웃는다. 그것도 배낭 하나 달랑 메고 떠나는 진정한 여행자로서 지구 곳곳을 누볐으니 그 옆에 있으면 항상 바람소리가 났던 건 바로 그 때문이었나 보다.-80쪽
(이정은) (배우 최광일 등과 함께) 얼마 전에 직접 제작을 했다가 망했다는 얘길 들은 터라 도대체 이번에 또 망하면 어쩌려고 그러느냐는 대안 없는 내 걱정에 그녀는 편한 얼굴로 안 그래도 빚이 잔뜩 있지만 하고 싶은 건 해야겠기에 하는 거란다. 마흔 넘어서 하면 좀 웃길 거 아니냐고 키들거리면서... 빚? 많지만 딸린 식구도 없고 몸 건강한데 그거 못 갚겠느냐는 거다. 다른 '동지'들도 다 같은 생각이란다. 그녀와 그녀의 '동지'들은 이 공연이 끝난 후나 공연 중인 지금도 각자 학습지 교사와 생수 장사 등으로 살아갈 구멍들을 마련해놓은 상태다.
휴우....-86쪽
(이정은) 우리나라에 없는 게 석유 말고 '괜찮은 남자'라고 누가 농담을 한 적이 있는데, 하나 더 있다. '공부하는 프로'다. 경력이 10년 이상 된 '프로'들이 그네들처럼 겸손하게 공부하는 자세로 일을 한다면 석유쯤은 안 나와도 국력이 빵빵해지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1년만 하면 너도나도 다 전문가요, 남의 일에 훈수만 두려 할 뿐 자기 일에 있어서는 더 이상 '배우려' 하지 않는 사람들투성이다. 영화, 텔레비젼 종사자들에게 상을 주는 화려한 시상식장에서 거지적선하듯이 찔끔찔끔 주던 연극상이 점점 없어져서 이제 연극 연기상을 주는 곳은 한 군데도 없다고 한다. 이런 젊은 배우들이 원하는 것은 부귀영화가 아니다. 돈 안 되는 손바닥만한 트로피라도 하나 손에 쥐어주면서 '우리가 너희 지켜보고 있다. 잘한다. 열심히 해라' 하고 응원해주는 작은 관심이다. 아무도 관심 가져주지 않아서 이런 이들이 사라지게 된다면, 우리 문화의 미래도 없다는 걸 명심해야 할 거다. 누가? 우리 모두가!-88쪽
(방은진) 난 이제 막 입봉 감독 출사표를 던진 남자와 함께 살고 있다. 배우 부모를 두고 태어나서 배우들 틈에 자라 배우를 업으로 삼다가 스태프와 결혼을 한 나는,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1차 생산인 시나리오 작업을 옆에서 보아 오면서 그 끝없는 고행의 연속에 구경만 하는데도 진이 빠져 있던 차였다. 세상에 존재하지도 않는 갑남을녀들을 등장시켜 그럴듯한 '뻥'을 만들고 그걸로 사람들에게 재미와 감동을 주는 일은 보통 사람들이 상상도 못할 인고의 시간을 필요로 하는 것이다.
생계유지는 주말에 하는 교통방송이 전부인 채 쓰는 일에만 매달려 왔다고 하지만 그녀는 틈틈이 이라크 파병 반대 일인시위, 새만금 지키기 삼보일배 같은 평화운동에 참여해왔다. '당연히' 해야 하는 일이라면서 딴따라는 관객의 사랑을 먹고사는 것만으로 살아서는 안 된다, 인간은 어차피 서로 도우며 살게 돼 있으니 그런 일도 적극적으로 해야 한다고 말한다. 아, 든든한 나의 딴따라 동지 방은진!-115쪽
(성지루) 엔간히 벌었을 텐데 좀 쓰지 그러냐니까 뜨기 전과 뜬 후가 달라진 거라곤 차 한 대 생긴 거밖에 없고 전부 빚투성이라 빚 갚느라 허덕이고 있다고 한다. 하긴 영화에 얼굴 좀 내밀었다고 뭐가 엄청나게 달라지는 게 아니라는 걸 누구보다도 잘 아는 내가 왜 쿠폰 좀 써먹은 걸 쪽팔려했을까. 그러고 보니 섭외 전화를 하기 위해 영화사로 전화번호를 물어보려다가 혹시나 해서 5~6년 전에 내게 가르쳐 준 번호를 눌러봤는데 그동안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전화를 받던 며칠 전이 생각나서 피식 웃음이 났다.
(형님의 사고) 그 덕에 그는 자동차 박사가 됐고 그 후 아내와 아이를 먹여 살리기 위해 그는 보험 맨이 된다. 고객 관리는 환상적이었다. 사고가 나면 연결만 해주면 그만인데 사고처리 완결 후에도 마치 가족안부 묻듯 '싸가지 캡'으로 '관리'를 했고 당연히 잘 나가는 보험 맨이 되었다(그의 고객 중엔 소문을 듣고 찾아온 큰 절의 주지스님도 있었다). 그러다가 그 정점에서 그는 갑자기 다시 대학로로 돌아온다. '진짜 보험 맨'이 되고 돈맛을 보면 배우를 못하게 될까봐 겁이 났다는 거다. 아! 딴따라여! 이 철딱서니 없는 종자들이여!
영화쟁이들이나 언론쟁이들은 하나같이 그를 '발견'했다고 떠들어댔다. 태곳적부터 존재했던 인디언들의 땅 아메리카를 '발견'한 콜럼버스의 역사가 어디까지나 서구 제국주의의 입장일 뿐이듯이 성지루는 그들이 '발견'한 배우가 아니라 원래부터, 오래 전부터 이미 하루도 쉬지 않고 무대 위에서 관객을 감동시키며 살고 있었다. 참으로 오만한 시선이 아닐 수 없다. 송강호가 그랬고 설경구가 그랬다. 그들은 '이미' 좋은 배우였고 일반 대중들은 '이제야' 눈치 챘을 뿐인 거다.-122쪽
(박광정) 그리고 그때 연출을 하면서 개인적으로 제일 좋아했던 장면은 '서울에서 평양까지'(내가 개량한복을 입고 나와 '서울에서 평양까지'를 부르고 남자배우들이 옆에서 관광 춤을 추는 장면이다)였는데, 그 이유가 '광주보다 더 가까운'이라는 가사 때문이었다는 거다. 연극을 만드는 작업으로 세상과 소통하고자 하는 그에게 '광주보다 더 가까운 평양'도 숙제였지만 '광주' 역시 숙제였기 때문이다. 그의 고향은 빛고을 광주다. 그리고 80년 5월, 그는 거기 있었다.-134쪽
(류승범) 예수가 열심히 노력해서 구세주가 된 것이 아니라 이미 구세주의 운명을 갖고 태어난 자신의 정체성을 모르고 살아오다가 어느 날 그 사실을 스스로 '발견'한 것처럼...-147쪽
(홍기유) 옛날에야 뜻있는 사람들끼리 주머니 돈 털어서 무대 올리고 그저 보러 와주면 고마워했다지만 이젠 영화에 비하면 '애들 장난'인 연극마저도 웬만큼 아쉽지 않게 공연 하나를 올리려면 '억' 소리가 나는 세상이 됐다. 이젠 연극도 프로듀서 시스템이 되어야 한다. 더 이상 연극은 보는 사람만 보는 '고매한 예술'이어선 안 된다. 연극의 본질이 '하는 놈과 보는 놈'일진대 관객을 유치시킬 경쟁력이 없으면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인가. 그렇게 볼 때 홍기유 같은 똑똑한 프로그래머들은 작금의 위기에 놓인 한국 연극판에 없어서는 안 될 보석 같은 인재가 아닐 수 없다.
마지막으로 꿈이 뭐냐 물었다. 조선일보에는 기사 내지 말자고 직원들한테 큰 소리 쳐보는 거란다. 에고, 가슴 아파라. 하지만 난 그가 한국연극 개혁의 핵심에 있다는 것, 그리고 그 개혁이 성공하리라는 걸 믿는다. 그리고 그의 개혁이 성공하면 조선일보 문화란은 더 이상 기웃거리지 않아도 되는 날이 꼭 오리라는 것도 믿는다.
원래 새치가 가득했던 그의 머리가 며칠 전 술자리에서 보니 아예 백발 수준으로 변해 있기에 '선생님'이라고 부르며 놀렸더랬다. 딴따라들과 관객들을 어떻게 하면 멋지게 만나게 해주나 고민하는 것이 그의 일상이니 머리가 허옇게 새는 것도 무리가 아니지 싶다. '연극열전'이 대학로 관객 다 뺏어간다고, 상업적인 기획이라고 그를 흉봤던 분들! 이 세상에 돈 받고 하는 공연치고 상업적이지 않은 공연이 있나요? 그리고 관객은 '뺏어간' 게 아니라 '찾아온' 게 아니었을까요? 연극만 아는 이 청년에게 박수 좀 쳐주시면 안 될까요?-153쪽
(기주봉) 40대 초반까지는 가족이 굶든 말든 연극배우의 '가오'를 지키는 것이 최고라고 생각했다. 그러던 어느 날 굴러다니는 잡지를 주워 뒤적이는데 '인생지마 새옹지마 우리 한 번 같이 잘 살아봅시다. 월 200 보장'이라는 광고 문구가 눈에 확 들어온다. 정수기 외판원을 모집하는 광고였고, 그는 그 길로 배우를 버리고 정수기 외판원이 된다. 사이비 종교집단처럼 새벽마다 모여서 구호를 외치는 동안 물은 반드시 정수를 해서 먹어야 한다고 세뇌가 됐다(지금도 그의 집엔 정수기가 설치되어 있다). 하지만 세뇌는 됐는데 고객 앞에만 가면 '구라'가 안 되서 실적은 처절했다. 사람들 앞에만 서면 신이 나서 어디서든 나서길 좋아하던 꼬마 기주봉이었지만 노는 게 아니라 돈을 벌려고 하니 입이 안 떨어졌다.-182쪽
(황정민) 그래서 그렇게 연기만 죽어라 하는 것이 행복한가 물어봤다. "무대 위에 있을 땐 행복 그런 거 잘 몰라요. 역할에 집중하느라 정신이 없어서요. 사실 연습도 괴롭고, 공연 준비하는 것도 괴롭고, 다 힘들고 괴로워요. 근데 어느 한순간 행복을 느낄 때가 있긴 해요. 커튼콜 박수 받을 때요. 그럴 땐 내가 이 사람들에게 뭔가를 전달했구나, 잠깐이나마 내가 이 사람들을 즐겁게 해줬구나 싶어서 기분이 좋아져요." 자신이 출연한 연극을 보고 한 명이라도 자신의 삶을 되돌아볼 수 있는 계기를 갖는다면 너무 행복할 것이지만 그건 너무 큰 바람이고 그저 잠깐의 재미를 준 것만으로도 만족한단다. 그 험한 고생을 하고서 관객에게 많은 걸 건네주는 그녀가 정작 관객에게 바라는 건 박수뿐이라니 왠지 불공평하다는 생각이 들었다.-189쪽
(윤민석) '부자 아빠'라는 잔인한 광고 카피가 이 땅의 많은 가난한 아빠들의 기를 죽였던 적이 있다. 그도 그중 하나였다고 홈펭지에 고백했다. 섬뜩하더란다. 나중에 딸아이가 자라서 자신이 하고 싶었던 걸 제대로 해주지 못한 부모를 원망할까봐 두렵지만 좋은 일 하느라 그랬다고 설명해줄 것이고 그런 부모를 자랑스러워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러면서 애국하는 일과 좋음 부모됨이 상충되지 않고 애국하는 일과 효도하는 일이 상충되지 않는 세상이 빨리 왔으면 좋겠다고 한다.-196쪽
(이항) 원래 의대생일 때부터 연극을 광적으로 좋아하기도 했지만 보름에 한 명꼴로 자기 손에서 아이들이 죽어나가는 일은 의사가 아니면 상상도 할 수 없는 스트레스라면서 일이 아닌 예술에 미쳐 있지 않으면 견딜 수 없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럴 거다. 사람의 목숨을 다루는 일을 직업으로 택한다는 것은 보통 용기로는 불가능했으리라. 아이의 죽음을 부모에게 알리는 일을 30년 동안 해오지만 매번 가슴이 찢어질 것 같다고 하는 그의 속내를 들으면서 연극을 연출하고 영화에 출연하는 일은 그에게 구원과도 같은 것이겠구나 싶었다.
(화가인 미망인에게) 작업은 하고 계시느냐 했더니 아직 '일어난 일'로부터 도망가느라 바빠서 작업을 할 엄두가 안 난다는 거다. 정면으로 바라볼 수가 없어서 남편 모르는 분들만 만나고 있다고 하는 그녀의 말을 듣는 순간, 아까부터 어금니가 부서져라 참고 있던 울음이 터지고 말았다. 진심으로 미안했고 당황했다. 정신없이 "죄송합니다"를 연발하며 울음을 그쳐보려 애써봤지만 수습이 되질 않아 민망하기 그지없는 통화가 되고 말았다.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그녀의 목소린 이미 떨리고 있었지만 애써 참으며 나를 다독여줬다.-207쪽
(이은미) 내 20대 속에는 뮤지컬은 연극이 아니라는 아버지 말씀에 대들다가 집에서 쫒겨날 뻔했던 기억이 있다. '다른' 것을 '틀린' 것으로 간주하고 심지어는 그것을 남에게도 강요하는 것이 아티스트의 자세냐고 다분히 버르장머리 없이 대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생각은 지금도 변합이 없다. 한데 어느 날 나는 내가 현존하는 대한민국 최고의 디바라고 믿었던 이은미 그녀가 텔레비젼 인터뷰에서 "립싱크하는 가수는 가수가 아니다"라고 하는 것이 아닌가.
적이 많으시겠어요, 하니 당연하죠, 라는 대답이 오버랩으로 날라온다. 반면 자신을 끔찍이 아껴주는 음악인들과 팬들도 많기 때문에 그 힘으로 살아간다고 한다. 그렇게 적을 스스로 생산하며 가는 곳마다 '붕어'들을 혼내는 삶이 피곤할 법도 해서 계란으로 바위 치기 아닐까요, 하고 물으니 "그래도 바위에 계란 물이라도 묻잖아요"라고 대답한다. 그러면서 자긴 여전히 무대 위의 가수로서 꿈을 꾸고 있고 그 꿈을 잃게 되는 날은 가수를 그만두는 날이 될 거라고 했다.
큰 극장 하나 지을 돈으로 작은 극장 여러 개를 지어달라, 한꺼번에 수천 명을 매회 채울 가수는 우리나라에 서너 명밖에 안 된다, 그럼 그밖에 가수들은 어디 가서 노랠 하란 말인가, 지방 사람들에게도 노래를 라이브로 듣는 것이 얼마나 즐거운 일인지를 경험하게 해주는 것이 진정한 문화혁명 아니겠느냐고, 왜 이 좋은 극장들의 빗장은 이리도 쓸데없이 무겁냐고.-22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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