핑퐁
박민규 지음 / 창비 / 200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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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남았다고 해서 인류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어딘가에선 힘없는 인간이 맞아죽고, 어딘가에선 힘없는 민족이 폭격을 당한다. <퍼헵스 러브>와 같은 노래를 아무리 불러도, 세계의 키워드는 여전히 약육강식이다. 인류의 2교시를 생각한다면, 생존이 아니라 잔존이다. 지난 시간의 인간들이, 그저 잔존해 있는 것이다.' - <작가의 말>에서..

글자의 크기가 달라지고, 마침표 없이도 행간이 바뀌는 형식실험이 있다. 박민규이기 때문에 가능할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그리 중요하지 않다. '인류의 운명을 언인스톨할지'에 대한 내기를 걸고 한 판 승부를 벌이는 중학생들, 그들이 바라보는 세상과 그들이 절실하게 되묻는 질문들에서 생각 키우는 것은 '왜 이 작가는 이렇게 독자들을 불편하게 하는가?'이다. 그러다 생각이 바뀐다. 이 소설을 불편하게 생각하는 '나'는 무엇인가?

이 작품은 흔히 '다수'라고 불려지는, 평범한 일상을 사는 대부분의 사람들에 대해 질문한다. 일상의 안위에서 한 걸음도 벗어나지 못하고, 진정한 의미에서 스스로를 '가두는' 대다수는 과연 온전한 삶을 살고 있는가 라고 하는 근본적인 질문이다. 그것도 무의식적으로(또는 자동적으로) 폭력에 순응하는 왕따 중학생의 시각에서 되묻는다.  

"적응이 안돼요

다들 결국엔 자기 할 말만 하는 거잖아요

얘길 들어보면 누구도 틀렸다고는 할 수 없어요

왜 그럴까요? 왜 아무도 틀리지 않았는데 틀린 곳으로 가는 걸까요

내가 이렇게 사는 건 누구의 책임일까요

무엇보다

그걸 용서할 수 없어요

60억이나 되는 인간들이

자신이 왜 사는지 아무도 모르는 채

살아가는 거잖아요

그걸 용서할 수가 없어요"

 

이러한 질문에 답을 구하려 애쓰면서도, 그 경쾌한 줄거리를 따라갈 수밖에 없었던 복합적인 감정을 남겨준 소설이다.  숱한 은유와 상징 속에서, 어쩌면 주인공의 독백 속에서 숨어 있는 박민규는 이렇게 이야기한다.

"내 맘대로 썼으니 마음대로 읽으시오."(어느 일간지 기사)

내 곁에서 잠들어 있는 아이의 미래를 생각할 때 상상하기 싫은 불편함이 있지만, 그 내면을 파고드는 그의 질문은 누구에게나 집요하고 근본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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핑퐁
박민규 지음 / 창비 / 200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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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쪼록 그 사실을, 나는 알고 있었다. 반팔 아래의 삼두박근을 손바닥으로 감싼 채- 나는 시간이 지나기만을 기다렸다. 다수의 결정이다. 참고, 따라야 한다. 에취, 뒤에서 누군가 심한 재채기를 했지만, 이내 버스 속은 잠잠해졌다. 인간은 누구나 다수인 척하면서 평생을 살아간다.

; 이 작품의 핵심 코드인 '다수'의 의미...-29쪽

평범하게 사는 것이다. 따 같은 거 당하지 않고, 누구에게도 피해를 주지 않고, 다수인 척 세상을 살아가는 것이다. 그게 전부다. 일정하게, 늘 적당한 순위를 유지하고, 또 인간인만큼 고민(개인적인)에 빠지거나 그것을 털어놓을 친구가 있고, 졸업을 하고, 눈에 띄지 않게 거리를 활보하거나 전철을 갈아타고, 노력하고, 근면하며, 무엇보다 여론을 따를 줄 알고, 듣고, 조성하고, 편한 사람으로 통하고, 적당한 직장이라도 얻게 되면 감사하고, 감사할 줄 알고, 이를테면 신앙을 가지거나, 우연히 홈쇼핑에서 정말 좋은 제품을 발견하기도 하고, 구매를 하고, 소비를 하고, 적당한 싯점에 면허를 따고, 어느날 들이닥친 귀중한 직장동료들에게 오분, 오분 만에 갈비찜을 대접할 줄 알고, 자네도 참, 해서 한번쯤은 모두를 만족시킬 줄 아는 그런 사람. 나도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그런 사람이 되면

행복할 수 있을까?

; 이러한 중학생 주인공의 생각과 이 책을 읽는 개개인의 생각은 얼마나 다른가?-34쪽

결국 벌판엔 그래서 모아이와 나만이 남게 되었다. 라켓과 물품을 정리하고, 우리는 한동안 소파에 몸을 묻었다. 다들... 잘하고 있는 걸까? 내가 물었다. 토론... 말이야? 토론... 같은 거. 토론으로 이기지 못할걸. 누구를? 인류가, 인류를.-77쪽

적응이 안돼요

다들 결국엔 자기 할 말만 하는 거잖아요

얘길 들어보면 누구도 틀렸다고는 할 수 없어요

왜 그럴까요? 왜 아무도 틀리지 않았는데 틀린 곳으로 가는 걸까요

내가 이렇게 사는 건 누구의 책임일까요

무엇보다

그걸 용서할 수 없어요

60억이나 되는 인간들이

자신이 왜 사는지 아무도 모르는 채

살아가는 거잖아요

그걸 용서할 수가 없어요-117쪽

(경기가 끝나고)

그리고 우리는 헤어졌다. 벌판의 끝을 향해 걸어가는 모아이에게 나는 손을 흔들었고, 그 모습이 보이지 않을 때쯤 발길을 돌렸다. 핑퐁, 경쾌한 소리가 마음을 울릴 만큼 숲의 공기는 상쾌했다. 천천히

나는 학교를 향해 걸었다.
-25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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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디안텀 블루
오사키 요시오 지음, 김해용 옮김 / 황매(푸른바람) / 2006년 9월
평점 :
절판


이 책을 덮으며 떠올린 생각. 리뷰 쓰기가 어려울 것 같다는 생각, 바꿔 말하면 '판단 유보'이다.

이제 50대로 접어든 작가 요사키 요시오. <9월의 4분의 1>이 국내에 소개된 것이 2003년 9월(도서출판 황매)이란다. 그후 소개된 작품이 <파일럿 피쉬>와 이 책이다. 다른 리뷰에서 확인한 바로는 이 책은 <파일럿 피쉬>의 후속작이라고 한다. 뒤늦게야 확인했다. 그런데 책을 읽으면서 이 책에 다른 전작의 후속작이란 느낌은 전혀 받지 못했다. 옴니버스 형태의 소설인가? 이 작품만을 놓고 보면, 후속작이라는 의문은 없다. 그만큼 독립적인 완결성을 갖는다는 이야기일 것이다.

그런데 이 작품의 줄거리는 시한부 선고를 받은 여인과 그녀를 사랑하는 남자가  죽음을 받아들이는 과정에 대한 서술이다. 문학작품에서 매우 자주 차용되는 소재이다. 그렇기 때문에 시대에 따라 삶/죽음, 사랑 등을 어떻게 받아들이는가에 대한 관심 때문에 그러한 소재를 찾게도 되는 것이다. 물론 가장 보편적인 주제이기 때문에 갖는 관심이기도 하지만...

매우 차분하게 읽히는 소설이다. 그러나 주인공인 사진작가와 편집자(일본에서는 그리 불편하지 않은 소재일 수도 있겠지만, 여하튼 이들은 포르노잡지 관련 종사자들이다^^;)라는 사회적 관계나 그 속에서 보여지는 '세계에 대한 적응방식 내지 통찰'은 그리 중요하게 다뤄지지 않는다. 그런 면에서는 내 나름으로 표현하자면 '70년대식'인 것이다. 당 시대에 대한 소통이 그리 부각되지 않으니...

그래서 더욱 궁금하기도 하다. 전작인 <파일럿 피쉬>는 이 작품과 어떤 연계를 갖고 있는지... 관심이 유지되면 다시 읽어볼 일이다. 최근 일본작가에 대한 소개가 매우 활발하다. 개중에는 (개인적인 코드이겠지만) 관심이 가는 작가들도 꽤 있다. 연령으로 구분해볼 때 뒤늦게 소개되는 작가 요사키 요시오에 대해 관심이 유지될지는 단지 내 판단일 뿐이다. 작품들을 일별해보니 한 출판사에서 모두 소개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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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죽이는 걸 써보고 싶었다
[오마이뉴스 2006-09-22 17:35]    
[오마이뉴스 조은미 기자] 그는 새까만 고글을 쓰고 나타났다. 고글의 고무줄이 그의 머리 뒤로 둥그렇게 돌아가 뒤통수를 단단하게 껴안았다.

머리는 길었다. 등줄기를 타고 내려가는 긴 머리를 질끈 묶었다. 최근 <카스테라>를 낼 때만 해도 뽀글뽀글 볶아 펑키하게 부풀렸던 주홍색 머리는 다시 얌전한 생머리로 돌아갔다.

하얀색 티셔츠 위에 그려진 그림이 강렬했다. 까만색 그림 속 인간들은 어딘가를 가리켰다. 그 그림 위에 하얀 아이팟이 매달려 꼼짝도 안 했다. 복잡했다.

"완전 칩거죠. 글을 쓰는 거 외에는 기타, 하고 그 외엔…."

그는 특유의 느릿느릿한 말투로 말했다. 말은 느릿느릿, 생각하는 듯, 할 말이 없는 듯, 뭔가 물으면 "으음…" 스타일로 포즈를 잡고, 받아적기 너무나 좋게 천천히 말했다. 강렬한 이미지와 느리고 참한 말투가 묘하게 충돌했다.

어째, 말투가 누굴 닮았네…. 곰곰이 생각하다 엘리베이터에서 퍼뜩 생각났다. 맞다. 전유성이다. 물론 전유성보단 굵고 저음이지만.

ⓒ2006 이장욱(창비)
진득진득한 암울한 위로 핑.퐁.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으로 대번에 팬클럽을 거느린 박민규가 돌아왔다. 아니, 또 사고를 쳤다. 이번엔 <핑퐁(창비)>이다.

맞다. 탁구를 가리키는 핑퐁이다. 그렇다면 탁구 선수들의 애환과 좌절과 로망을 그렸느냐? 물론 아니다. 이번엔 '왕따'다. 그것도 덜 자란 중학생이다. 이 어린 남학생이 꾸는 꿈은 섬찟하다. 다수인 척 세상을 살아가는 것, 그게 꿈이다.

그런데 왜 하필 왕따일까? 그것도 10대 이야기를? 혹시 어린 시절 경험일까? 아니면 뉴스를 보다가? 아니면 그가 처음 소설을 쓰게 만들었다고 누차 말한 것처럼 이종격투기를 보다가?

"우연이었죠. 커피 마시고 있는데, 음악이 '퍼햅스 러브'가 나오는데, 앞에 통유리가 길쪽으로 나있었어요. 그걸 보고 있는데 이 앞에서 누가 맞고 있으면 분위기가 희한하겠다. 중학생 누군가 맞고 있으면….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그럼 생각만 하고 요즘 중학생에 대한 취재는 전혀 안한 거?

"취재하면 더 잔인한 일이 많을 거예요."

어쨌든 이 <핑퐁>도 잔인하다. 왕따 소년 '못'과 '모아이'(둘 다 별명이다)는 못 볼 꼴을 당한다. 이야기는 탁구공처럼 핑. 퐁. 어디로 튈지 모르게 튀지만, 그 밑바닥엔 진득진득한 암울함이 물먹은 카펫처럼 좌악 깔려있다.

"남 비판할 만한 자격은 못 되고요. 저를 포함해서 다 죽어야 된다고 생각했어요. 안될 거 같아요. 인류라는 게. 그렇잖아요. 전쟁도 할 만큼 많이 했고, 해봤고, 종교문제 여러 가지 2000년 동안 해봤잖아요. 지금은 선진국도 많고, 잘 살고, 하지만 잘 사는 민족이나 못 사는 사람이나 왜 사는지 알고 사는 사람이 아무도 없잖아요. 아무리 잘 살아도. 왜 사는지 모르고 살잖아요. 안 된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이렇게 죽여주는 이야기를?

"다른 이야기는 많은 희망을 가지잖아요. 누가 살아남고…. 정말 다 죽이는 걸 한 번 써보고 싶었어요. (두 주인공이) 동성이니 2세가 태어날 확률도 없잖아요. 희망 아니죠."

이렇게 절망적일 수가. 그렇다면 그는 항상 날마다 이렇게 죽고 싶은 생각만 할까?
"아니죠. 평소에 절대 그런 얘기 안 하죠. 평소 잘 살아야겠다 싶죠. 그래서 죽여야겠다 생각한 거구요."

야구 다음은 탁구?

 
ⓒ2006 이장욱(창비)
그런데 신기하다. 그가 낸 첫 장편은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이다. 한 마디로 야구다. 단세포적으로 나누면 야구 이야기다. 그런데 이번엔 <핑퐁>이다. 바로 탁구다. 그렇다면 왜 탁구일까? 축구는 <아내가 결혼했다>의 박현욱이 이미 써버려서?

"왜 그랬을까요. 진짜."

그가 되물었다. 자기도 정말 모르겠다는 듯이, 아주 어눌한 목소리로. 그리고 또 덧붙였다. 알 수 없다는 듯이.

"다른 것도 많잖아요."

그러게 말이다. 다른 근사한 종목 다 놔두고 왜 하필 탁구였을까? 삼미 슈퍼스타즈가 한물 간 야구구단이었듯이 탁구도 한물 가서, 아무도 그 "핑. 퐁." 소리를 기억하지 않으며, 급기야 '우리의 옛것을 찾아서'에 곧 출연할 듯한 종목을?

"이런 이유가 아니었을까요. 만날 두들겨 맞는 중학생이 당구를 하나 축구를 하기도 그렇고 야구를 하기도 그렇잖아요. 그런 점이 많이 작용한 거 같아요. 축구나 야구는 혼자 여러 명 상대로 하잖아요. 몇 명 공격수가 볼 주고받거나 기회 균등하지도 않잖아요…. 하지만 탁구는…. 유일하게 내가 한번 치면 저쪽에서 한번 치고 그런 경기 같아요. 세상에 이견이 발생하는데…. 스포츠와 비슷해요. 한 명 상대로 여러 명이 상대하잖아요. 탁구는 근데 특별 케이스이구요…."

소설가 박민규 하면 이야기되는 게 꼭 있다. 스타일이다. 박민규식 스타일. 단락을 나누기보다 행간을 마구 나눠버리는 스타일? 또는 딱히 뭉뚱그려지지 않는 독특한 스타일? 그렇다면 얼핏 스타일리스트같이 느껴지는 그가, 지금 스타일을 바꿔볼 생각 같은 건 안 할까?

"굳이 '바꿔야겠다' 해서 그런 생각 없어요. 쓰고 싶은 대로 계속 쓸 거고 스타일 억지로 바꿔야지 한다고 바뀌나 싶기도 하고…. 음악하는 사람은 스무 살 때 데뷔곡 가지고 평생 불러야 하잖아요. 작가는 행복한 거예요. 스타일 바꾸기보다 인간이 바뀌지 않을까 생각해요."

그럼 이 인간은 어찌 바뀔까?

"모르겠어요. 희망이 있을지. 별 기대는 안 하는데 고만고만 하겠죠."

"행간 띄우는 거, 처음엔 몰랐어요"

 
ⓒ2006 창비
그래도 그렇지. 그는 어떻게 이렇게 독특한 스타일을 만들 생각을 했을까? 글 쓰는 이의 강박 같은 엄밀한 단락 나누기를 해체할 생각을 했을까?

이번 <핑퐁>도 특이한 스타일이 등장한다. 지금껏 콩알만하던 글자는 갑자기 주인공인 '나', 별명이 '못'인 '나'가 혼자 독백할 때마다 깨알만한 크기로 바뀐다. 진짜다. 글자 크기가 깨일만 하다. 신기하다. 그리고 재밌다.

"이런 거 (글자) 작게 하고 행간 띄우고…. 처음엔 몰라서 그랬던 거예요. 처음 등단했을 때, 원고 가지고 '문학동네'인가? 편집자가 이렇게 하는 게 아니라고 하더라고요. 왜 이렇게 하는 게 아닌지 알 수 없었어요. 원래 다 붙이는 거래요. 생각해보니 왜 이리 하면 안 되는지 알 수 없었어요."

처음에 그렇게 다 붙이는 건지 몰라서 띄었고, 그 다음엔 왜 다 붙여야 하는지 알 수 없어서 붙이지 않았다니. 이렇게 싱거울 수가 없다. 그런데 이상하다. 그가 그걸 모르다니. 그는 대학에서 문예창작을 전공했다. 대학에서 글쓰기를 전공한 그가, 글쓰기의 기본인 그걸 몰랐다는 게 말이 될까? 아니면 소가 될까?

"그게 참 부끄러운 건데 내가 대학갈 인간이 아니에요. 고등학교 때 15등급까지 있었는데 진짜 15등급이었어요. 문창과(문예창작학과) 다닐 때 수업 거의 나간 적 없어요. 사람은 배워야겠다 생각하는데, 돌이킬 수 없는 거잖아요.

그거, <카스테라> 내고 알았어요. 전지적 작가 시점, 3인칭 시점…. 누가 '왜 1인칭만 쓰느냐?' 그래서 '1인칭이 뭐예요?' 그랬더니 '나'를 쓰는 거래요. 그래서 충격 받았어요. 다른 소설 보니까 '나'가 없어요. 사람은 정말 배워야 해요. 후회 되지만, 한편으론 '다행이다' 생각해요. 문교부 교육 받지 않아서요. 어차피 독학이었으니까, 요즘 열심히 혼자 나름대로 노력 많이 해요."

신기한 건 그뿐만 아니다. 이번 그가 낸 장편소설 <핑퐁>에는 특이한 게 더 있다. 소설 속에 소설이 등장한다. 존 메이슨이란 소설가가 썼다는 소설이다. 그런데 그게, 이런 말 해서 미안한데, '뻥'이다. 최근 진짜 소설가나 진짜 브랜드 이름이 심심치 않게 등장하는 이 마당에, 그의 소설 속에 등장하는 소설가나 소설은 '뻥'이다. 그것도 다 그가 만든 거다.

페드로 알모도바르 영화 속 주인공들이 영화관에서 보는 영화가, 사실 또 그가 따로 만든 가짜 영화를 끼워넣은 것처럼? 소싯적 배운 소설 기법을 들먹여서 말하면 액자 구성이랄까? 그런데 그는 어떻게 그런 생각을 했을까? 어찌 보면 식상하지만, 소설 읽어보면 기발하다는 생각이 물결치는 그런 생각을?

"처음, 그걸 구성이라 부르나? 그런 얘기를 같은 축으로 쓰면 어울리겠다. 처음 거기 사용한 존 메이슨 소설부터 썼어요. 인용할 수 있게. 그걸 골라서 넣었어요."

그런데 그는 다른 작가 책은 안 읽나?

"읽죠. 책 많이 읽어야지. 배운 게 없으니까. 책을 통해 배워야죠. 최근에 김사인 시집 <가만히 좋아하는>을 새벽에 읽다가 울고 그랬어요. 시집 많이 읽는 편이에요."

그는 시인에 대한 환상을 갖고 있다고 했다. 언어로 할 수 있는 가장 큰 영역이 시라나? 그래서 작가들이 모인 술자리에서도 소설가들만 있을 때는 방만하게 있다가 시인이 계시면 예의를 갖추고 공손하게 대한다고도 했다.

"전 고유명사 그냥 지어진 게 없다 생각해요. 시는 받아쓰기다 생각해요. 인간 쓴 게 아니고. 진짜 시인이 쓴 시는…. 가짜 시인 많지만. 소설은 한문 '小' 자 쓰잖아요. 시에 비해 분량은 많은데 처음 의아했어요. 써보니 알겠더라고요. 소설은 작은 이야길 길게 쓰는 거예요. 그냥 수다떠는 거요. 진짜 이야긴 시라 생각해요."

ⓒ2006 이장욱(창비)
이렇게 시를 흠모해 마지않는다면 과연 그가 시를 읽고만 있을까? 시를 "꿈같은 거"니 "멋진 영역"이니 온갖 찬사를 쏟아붓는 마당에? 그가 쑥스러운 듯이 사뭇 빨라진 어투로 말했다.

"사실은 지금도 몰래 쓰고 있어요. 습작이지만."

그럼 기타는? 무규칙이종소설가인 박민규는 가끔 밴드로 무대에도 섰다. 역시 무규칙이종예술가이며 <황신혜밴드>리더인 김형태와 같이. 그 밴드, 지금은 안 하나?

"어릴 때 꿈이 락밴드 가지는 게 꿈이었어요. '여생'이라 그러잖아요. 주어진 삶 살 동안 열심히 글 쓰고 나중에 여생 온다면, 머리 희끗희끗한 양반들 모아가지고 락밴드 하는 게 꿈이에요. 그 때까지 10년 남았나, 20년 남았나…. 매일 기타 연습해요. 기타 학원 다니고…. 기타 가방 메고 고삐리 애들하고 '중주주중' 이거 하고…. 네. 밤에."

성실하고 착한 무규칙이종 소설가

신기하다. 한편으론 오늘이라도 그래야할 듯이 "다 죽어야 한다"고 말하는 그가, 아름다운 내일을 위해 오늘도 기타를 치다니? 인생에 희망이 없다는 듯이, 꿀 꿈이 없다는 듯이 말하는 그가 꾸는 노년의 꿈이라? 이거 어째 앞뒤가 안 맞는 거 아닌가? 이렇게 열심히 살아도 되는 건가? 이런 말이 가당치 않지만.

"누구나 열심히 살지 않나요? 글…. 매일 써요. 쓰다 망치기도 하고. 애초 시작이 작가로 시작한 게 아니고…. 일반 직장 생활 8년 하다 하는 거라서요. 매일 8시간 일하는 게 당연하다 느껴져요."

무규칙이종소설가 박민규가 너무나 성실하고 착한 목소리로 말했다.

"직장인도 일, 좋아서만 하나요? 아니잖아요. 글 쓰는 것도 마찬가지예요. 지겨울 때도 있구요. 그러다 깨지기도 하고. 작가도 잘못 써서 깨지기도 하고 그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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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노아 2006-09-25 16: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작가 너무 재밌어요. 이거 퍼갈게요~

2006-09-26 08:08   URL
비밀 댓글입니다.
 

중 69·일 80·제주 85만원… 한국 가격경쟁력 약세

중국 웨이하이 - 호텔에서 자고 배불리 먹고… 만족도 1위
일본 규슈지방 - 음식값 비싸지만 이국적 볼거리 많아
제주도 - 관광지 입장료 부담… 別味 체험은 즐거워

직장을 다니는 평범한 회사원 3명, 느닷없는 휴가를 받았다. 주말을 포함해 2박3일. 조선일보 기자 3명이 이들을 대신해 고민을 해결해봤다. 목적지는 제주도와 중국 산둥성 웨이하이(威海), 그리고 일본 규슈지방 후쿠오카와 벳푸. 서울에서 1시간~1시간30분 거리에 있는 곳이다. 객관적인 비교를 위해서 각 관광지에서 관광객들이 가장 일반적으로 택하는 교통·숙박·식사를 선택했다. 결과는? 비용은 웨이하이 압승. 만족도는 규슈와 웨이하이 판정승. 제주도는 비용 면, 만족도 면에서 3등이었다.

◆항공요금은 제주도가 경쟁력

우선 항공요금. 지난달 중국 산둥성과 인천을 왕복하는 각 항공사가 항공요금을 20만원대로 50% 인하했다. 유류세와 세금을 합하면 총 요금은 30만원대. 여행사를 통해 구입한 아시아나항공 인천~웨이하이 왕복요금은 34만1100원이었다. 인천~규슈 왕복은 대한항공의 경우 39만2500원. 주말요금과 주중요금이 차이가 나는 제주도 왕복요금은 총 16만5800원이었다. 제주도의 ‘가격 우위’는 딱 여기까지.

◆현지 교통비는 웨이하이 KO승

웨이하이는 “위해에서 닭이 울면 인천 앞바다 덕적도에서 들린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가까운 곳. 공항에서 셔틀버스와 택시를 갈아타고 40㎞ 거리 호텔에 도착했다. 버스요금 15위안(1800원)에 택시비 10위안(1200원) 합계 3000원. 2박3일 동안 택시를 대절하며 들인 교통비는 총 6만5350원이었다. 일본 후쿠오카에서 지하철과 고속버스 등으로 벳푸까지 2박3일 동안 돌아다니는 데 8만5250원. 렌터카 여행이 기본인 제주도에서 쓴 돈은 기름값, 주차비 등 포함해 26만500원이었다. 웨이하이-규슈-제주도 순(順).

◆하룻밤 7만원 안 되는 웨이하이 4성 호텔

다음, 숙박. 웨이하이의 4성급 시뷰가든호텔에서는 택시가 도착하면 자그마치 ‘5명’이 마중을 나와 문을 열어주고 경례를 하고 로비로 인도하고 가방을 들어주는 ‘황제’ 대접을 받았다. 1박 투숙비는 550위안, 2박에 13만2500원(1100위안)이 들었다. 숙박비가 상대적으로 비싼 일본. 하지만 그럭저럭 묵을 만한 ‘예쁜’ 호텔이 첫날에는 1만엔(8만5000원), 둘째날은 1만2000엔(10만2000원)이었다. 합계 18만7000원.

펜션이 주종을 이루는 제주도에서는 첫날 23평형 10만원, 둘째날 25평형 12만원 합계 22만원. 체력단련장, 식당 등 각종 편의시설을 감안하면 웨이하이와 제주도는 비교대상이 되지 못한다. 일본보다 비싸다.

◆현지 별미는 중국-일본-제주 순

해안도시인 웨이하이. 해산물 천국이다. 먹기만 하고 와도 본전을 뽑을 수 있는 곳이다. 2박3일 동안 먹은 음식 종류는 전복스프, 가자미찜, 야채, 조개살구이, 공기밥, 닭고기, 어죽, 마파두부, 해물스프, 계란탕, 쇠고기찜, 오징어찜, 토마토계란찜, 전복볶음밥, 쇠고기철판찜, 두부, 해물스프…. 다 먹는데 5만6560원 들었다.

제주도. 두 사람이 2박3일 동안 먹은 음식은 갈치조림, 황돔회, 오분작뚝배기, 제주흑돼지 등 제주 별미. 황돔회는 자그마치 8만3000원! 다음날 아침은 라면을 끓여먹어야 했다. 모두 16만5000원 들었다. 일본에서는 별미인 생라면, 온천도시 벳푸의 온천수 달걀, 초밥과 일본 정식 등등 먹었다. 총 비용 9만2500원. 자, 미식(美食) 비용은 웨이하이 1등, 규슈 2등, 제주 꼴찌.

◆제주, 관광지 입장료 부담

웨이하이는 진시황이 불로장생약을 찾아 어린 남녀 3000명을 동방으로 떠나보냈다는 곳이다. 19세기 말 청일전쟁 당시 격렬한 해전도 벌어졌던 곳이다. 장보고 장군 유적이 있는 곳이기도 하다. 2박3일은 이들 관광지를 다 돌아다니기는 벅찬 일정. 진시황 유적지인 천산터우(成山頭)와 청일전쟁 유적지인 류공다오(劉公島)를 중심으로 돌아다녔다. 천산터우에는 진시황과 신하들의 동상, 중국의 동쪽 끝 바다임을 알리는 자연석 표지판이 서 있다. 입장료는 60위안(7230원). 류공다오는 30위안(3610원). 깨끗한 풍경은 나무랄 데가 없었다. 거대한 수석(壽石)처럼 떠 있는 바닷가 기암괴석과 박물관인 화반채석풍경구도 볼 만했다. 입장료는 30위안. 입장료가 든 곳은 이 세 군데뿐. 2만1650원 들었다. 백조호수와 시내관광, 해변산책은 공짜.

일본 벳푸는 온천으로 유명하다. 색깔과 생김새가 희한해 ‘구경하는’ 온천도 엄청나게 많다. 특히 벳푸 옆 유후인 마을은 작은 노천온천과 아기자기한 풍경으로 인기를 끄는 곳이다. 후쿠오카 시내관광과 벳푸 온천 구경, 유후인 마을 관광에 든 입장료는 모두 5만800원이었다.

제주도. ‘관광수입의 3분의 1은 과속위반차량 범칙금이, 3분의 1은 입장료 수입’이라는 우스개가 있다. 테디베어박물관, 용머리 해안, 섭지코지 안에 있는 드라마촬영장 올인하우스, 성산 일출봉, 분재예술원 등 모두 입장료를 받았다. 남들 다 가는 곳만 가며 들인 입장료는 모두 3만4500원이었다. 중국 1등, 제주 2등, 일본 3등. 하지만 유료 관광지 가운데 “이런 곳에서 입장료를 내야 하나” 하는 느낌이 드는 곳도 있었다.


◆총 비용은 웨이하이 1등, 규슈 2등, 제주 3등

2박3일 동안 웨이하이 관광에 들어간 총 비용은 70만7160원. 규슈 여행 경비는 80만8050원. 제주 여행에 든 돈은 85만8800원이다. ‘평균적인 직장인’들이 현지에 가서, 딱히 더 쓴 것도 없고 덜 쓴 것도 없이 쓰고 온 비용이다.

한·중·일 여행 비교 특별취재팀=웨이하이=박종인기자 seno@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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