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핑퐁
박민규 지음 / 창비 / 2006년 9월
평점 :
'살아남았다고 해서 인류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어딘가에선 힘없는 인간이 맞아죽고, 어딘가에선 힘없는 민족이 폭격을 당한다. <퍼헵스 러브>와 같은 노래를 아무리 불러도, 세계의 키워드는 여전히 약육강식이다. 인류의 2교시를 생각한다면, 생존이 아니라 잔존이다. 지난 시간의 인간들이, 그저 잔존해 있는 것이다.' - <작가의 말>에서..
글자의 크기가 달라지고, 마침표 없이도 행간이 바뀌는 형식실험이 있다. 박민규이기 때문에 가능할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그리 중요하지 않다. '인류의 운명을 언인스톨할지'에 대한 내기를 걸고 한 판 승부를 벌이는 중학생들, 그들이 바라보는 세상과 그들이 절실하게 되묻는 질문들에서 생각 키우는 것은 '왜 이 작가는 이렇게 독자들을 불편하게 하는가?'이다. 그러다 생각이 바뀐다. 이 소설을 불편하게 생각하는 '나'는 무엇인가?
이 작품은 흔히 '다수'라고 불려지는, 평범한 일상을 사는 대부분의 사람들에 대해 질문한다. 일상의 안위에서 한 걸음도 벗어나지 못하고, 진정한 의미에서 스스로를 '가두는' 대다수는 과연 온전한 삶을 살고 있는가 라고 하는 근본적인 질문이다. 그것도 무의식적으로(또는 자동적으로) 폭력에 순응하는 왕따 중학생의 시각에서 되묻는다.
"적응이 안돼요
다들 결국엔 자기 할 말만 하는 거잖아요
얘길 들어보면 누구도 틀렸다고는 할 수 없어요
왜 그럴까요? 왜 아무도 틀리지 않았는데 틀린 곳으로 가는 걸까요
내가 이렇게 사는 건 누구의 책임일까요
무엇보다
그걸 용서할 수 없어요
60억이나 되는 인간들이
자신이 왜 사는지 아무도 모르는 채
살아가는 거잖아요
그걸 용서할 수가 없어요"
이러한 질문에 답을 구하려 애쓰면서도, 그 경쾌한 줄거리를 따라갈 수밖에 없었던 복합적인 감정을 남겨준 소설이다. 숱한 은유와 상징 속에서, 어쩌면 주인공의 독백 속에서 숨어 있는 박민규는 이렇게 이야기한다.
"내 맘대로 썼으니 마음대로 읽으시오."(어느 일간지 기사)
내 곁에서 잠들어 있는 아이의 미래를 생각할 때 상상하기 싫은 불편함이 있지만, 그 내면을 파고드는 그의 질문은 누구에게나 집요하고 근본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