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사는 지금 ‘책읽기 캠페인’ 중
경향·조선·중앙·한국 등… 독서문화 확산· 신문구독률 제고 기대
2007년 05월 10일 (목) 15:06:45 안경숙 기자 ( ksan@mediatoday.co.kr)

   
   
 
신문사들이 잇따라 책읽기 캠페인에 나서고 있다.

중앙일보는 지난 2일부터 교육인적자원부, 여성가족부의 후원으로 동원그룹과 함께 ‘책꾸러기 운동’을 시작했다.

‘책꾸러기 운동’은 ‘어린이들이 어려서부터 책을 가까이하게 하자’는 취지에서 다달이 1000가정을 선정해 1년 동안 매달 한 권씩 12권의 어린이책을 무료로 보내주는 캠페인이다.

중앙은 캠페인 시작 첫 달인 5월에는 3000가구를 선정하는 등 올 한 해 동안 1만 가정에 모두 12만 권의 책을 보낼 예정이다.

인터넷 홈페이지(www.iqeqcq.com)를 통해 신청하고, 신청 가정의 사연을 심사해 당첨자를 선발하는데, 캠페인 사흘만에 신청자가 5000명을 넘어섰다는 후문이다.

신문사들의 책읽기 캠페인은 연초부터 시작됐다.

경향신문은 지난 1월2일부터 책읽기 문화의 확산을 위해 연중 시리즈 ‘책읽기 365’를 시작했다. 김지하 시인, 이해인 수녀, 강금실 전 법무부 장관을 비롯해 대학교수 등 각계각층의 인사들이 ‘서평식 독서칼럼’ 형식으로 책을 소개한다. 매주 월∼금에 걸쳐 1면에 한 권씩 소개해 온 것이 8일 현재 80여 권에 이르렀다. 한국일보도 지난 3월부터 ‘오늘의 책’ ‘책과 인생’ 등의 칼럼을 고정적으로 게재하고 있다.

경향과 한국이 특정 책을 선정해 소개하는 캠페인이라면, 조선은 중앙처럼 ‘책을 나눠주는’ 방식의 운동을 펼치고 있다.

조선은 지난 3월 대한출판문화협회와 함께 매달 730가구를 선정해 거실에 놓을 수 있는 보급형 서가와 책 10권 안팎을 보내주는 A형, 매달 10가구를 선정해 100만원 예산 안에서 거실이나 방 하나를 서재로 꾸며주는 B형의 ‘거실을 서재로’ 운동을 시작했다.

조선은 이 캠페인을 통해 올 한 해 동안 7400가구에 7만3000여 권의 책과 서가를 제공할 계획이다.

신문사들이 앞다퉈 진행하는 책읽기 캠페인은 독서 문화를 확산·정착시켜 좀 더 성숙한 시민사회를 만들어 가는 데 기여하겠다는 취지다. 특히, 읽기 문화가 사회 전반에 확산될 경우 해마다 떨어지고 있는 신문 열독률·구독률을 끌어올릴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도 무시할 수 없는 사업추진 동기이다.

신문업계에서는 지난해에도 국민일보가 대한출판문화협회·아침독서추진본부 등과 공동으로 ‘책은 내 친구-아침독서 운동’과 ‘학급문고 보내기 운동’ 등을 벌였고, 한겨레도 면 단위 초등학교를 대상으로 학교도서관 지원 프로그램을 실시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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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o] 장진 감독, “좋아하는 수다 떨듯 영화 만들죠”
“뇌경색으로 아이가 돼버린 아버지 보면서 가족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돼
한국서 영화 제작은 잭팟 기다리는 것과 비슷 위기가 한국 영화 옥석 가려낼 것”
일단 저한테 재미가 없으면 관객이 만족할 것같아도 그렇게 못 찍습니다.
목에 칼이 들어와도 그렇게는 못하죠.

장진(36) 감독이 변했다. 영화 ‘기막힌 사내들’(1998), ‘간첩 리철진’(1999), ‘킬러들의 수다’(2001), ‘아는 여자’(2004), ‘박수칠 때 떠나라’(2005), ‘거룩한 계보’(2006) 등으로 항상 집 밖에서만 맴돌던 장 감독이 영화 ‘아들’(5월 1일 개봉)을 통해 가정으로 돌아왔다. ‘아들’은 특별외박을 나온 무기수(차승원 분)가 고등학생 아들(류덕환 분)과 함께 보내는 하루 동안의 이야기를 담았다. 15년 만에 다시 만난 것으로 설정된 두 사람은 함께 밥을 먹고 거리를 달리며 사우나도 한다. 영화 후반부에 놀라운 반전(反轉)이 기다리고는 있지만 부자지간의 정을 오롯이 느낄 수 있는 수작(秀作)이다.


이처럼 장 감독이 가족의 이야기로 돌아오게 된 데는 아버지의 투병과 자신의 결혼(5월 23일)이 크게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6년 전부터 뇌경색을 앓고 있는 그의 아버지는 이번 작품에 카메오(깜짝출연)로 등장했다.


지난 4월 24일 저녁 서울 강남 시티극장 6층에 있는 와인바 ‘바인 시티’에서 장 감독을 만났다. 1년 반 만에 다시 만난 것이지만 서로 낯설지 않았고 자연스럽게 안부부터 물었다. 결혼을 앞둔 장 감독은 무척 즐거워 보였다. 예전에는 평생 혼자 살면서 글 쓰고 영화만 만들 것 같은 사람이었는데, 이제는 신혼을 준비하면서 ‘달콤한 피로’에 젖어 있는 것 같아 보기 좋았다.


▲ 영화 '아들'

영화 ‘아들’을 통해 당신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사랑하는 가족 구성원의 부재(不在)입니다. 우리는 아버지 혹은 아들이 항상 곁에 있다는 이유로 서로에게 소홀해질 수 있고 대화가 단절되기까지 합니다. 아버지 혹은 아들을 곁에 두지 못한 사람에게는 간절히 만나고 싶은 상대인데 말입니다. 대다수 사람이 늘 부를 수 있는 아버지라는 단어가 누군가에게는 죽을 때까지 숨막히도록 불러보고 싶은 이름일 수 있습니다. 극 중 아버지 역을 맡은 차승원은 하루 동안만 존재하려고 자신의 집에 옵니다. 그는 교도소에서 평생을 살아야 하기 때문에, 그 가정에는 이미 없는 존재입니다. 이 같은 상황을 통해 우리가 그냥 무심코 흘려 보내는 가족과의 하루가 정말 중요하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습니다.”


영화 ‘아들’에 말 못하는 무기수로 당신의 아버지도 출연했는데. “아버지는 1992년부터 간질환으로 5년 동안 고생하셨고, 지금은 뇌경색으로 투병 중이십니다. 언어구사는 잘 안 되지만 사람 얼굴은 알아보실 수 있습니다. 촬영하면서 제가 손뼉을 두드리며 ‘자, 아빠, 나 봐, 여기’를 반복해서 외쳤죠. 그래도 나중에 완성된 영화를 보니 아버지가 연기를 제일 잘한 것 같습니다. 그 동안 아버지와 함께 찍은 사진도 몇 장 없어서 늘 아쉬웠고, 제 영화에 아버지의 모습을 꼭 담고 싶었기에 이번에 출연시켜 드렸습니다.”


장 감독에게 아버지란 어떤 존재입니까.  “아버지는 매우 가부장적인 분이었습니다. 남성의 권위로서 가정을 통치하는 전형적인 한국 가장(家長)이었죠. 그런데 그런 아버지가 지금은 어린아이처럼 돼버렸습니다. 제게 가족이라는 애틋한 단어의 의미와 인생 자체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해주셨습니다.”

건강했을 때 장 감독의 아버지는 택시운전사였다. 1995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희곡부문 당선작인 ‘천호동 구사거리’, 연극 ‘택시 드리벌’ 등 장 감독의 작품에 택시운전사가 자주 등장하는 것도 바로 그 때문이다. 2남 중 막내인 장 감독은 현재 부모와 한 집에 살고 있다.


아버지와의 추억 중에서 가장 기억나는 것은. “고등학교 1학년 때 일입니다. 제가 포진(疱疹)을 앓게 됐는데, 그거 앓으면 옷도 못 입고 잠도 잘 못 자거든요. 너무 아파서 힘들어하니까 아버지는 당신이 알고 있는 민간요법을 사용하셨습니다. 그런데 그게 뭔 줄 아세요? 생쌀을 씹어서 제 환부에 붙여주는 것이었습니다. 당연히 효과가 없었죠. 하지만 제가 나을 거라고 기대하며 생쌀을 씹어 붙여주시던 아버지의 모습이 지금도 생생합니다.”


장 감독의 어머니는 아버지보다도 알려져 있지 않은데, 어머니는 어떤 존재입니까. “어머니는 너무 평범하세요. 평생 아버지와 저희들 뒷바라지만 하셨습니다. 문학적인 감수성과 상상력이 매우 풍부하셔서 책도 많이 읽으시고 글도 많이 쓰십니다.”
장 감독의 풍부한 감수성과 상상력은 어머니를 닮은 듯하다. ‘충무로 최고의 이야기꾼’으로 불리는 장 감독은 항상 자신만의 스타일로 리얼리즘과 판타지를 잘 조화시킨다. 영화 ‘아들’에서도 처음에는 리얼리즘을 강조하다가 점차 장진 특유의 유머가 구사되고, 판타지(사우나를 함께 하던 부자가 탕 속으로 잠수를 하며 각종 수중생물을 만난다거나 애니메이션으로 처리된 기러기들이 말을 하며 옥신각신하는 장면)가 적절하게 배합된다. 


“저는 기질적으로 관습적인 양식을 따라하기 싫어합니다. 그냥 제가 하고 싶으면 하는 스타일이죠. 남들이 만든 영화도 잘 안 보는 편입니다. 어느 해에는 세 편밖에 안 본 적도 있어요. 대신 책을 많이 읽고 사람들과 수다를 떠는 편입니다.”
장 감독은 원래 왼손잡이다. 담배를 물거나 컵을 손에 쥘 때도 왼손을 사용했다. 성장하면서 여러 번 오른손잡이가 되기를 강요 당했을 테지만 장 감독은 결국 양손잡이가 됐다.

아버지가 된다면 아이를 어떻게 키우고 싶습니까. “아들 딸 구별 없이 낳아 모두 아들처럼 키울 겁니다.”(웃음)
초등학교 때 ‘홍당무’라는 어린이극을 보고 감동을 받아 연극 대본을 쓰기 시작한 소년은 이제 새로운 가족 구성원에 대해 은근히 기대하고 있다.

올 봄 극장가에는 ‘아들’ ‘눈부신 날에’ ‘날아라 허동구’ 등 아버지와 아들을 소재로 한 영화들이 약속이나 한 듯이 잇따라 개봉됐는데, 왜 매년 겹치기 현상이 반복된다고 생각합니까. “그건 충무로의 미스터리예요. 영화의 기획기간도 다르고, 촬영기간도 다른데 이상하게 매년 반복됩니다. 제가 ‘간첩 리철진’을 만들었을 때는 ‘이중간첩’이 나왔고, 소방영화 ‘사이렌’과 ‘리베라메’도 비슷한 시기에 개봉됐습니다. 참 이상하죠?”

점점 감독의 연령층이 낮아지는 충무로의 현실 때문에 고참 대열로 향하고 있는 장 감독은 드라마 ‘모래시계’로 유명한 김종학 감독의 권유로 영화감독이 됐다. 1995년 대학로 소극장에서 장씨의 연극을 본 김종학 감독이 배우와 스태프에게 저녁을 사주었고 그 자리에서 장씨에게 “영화 해볼 생각 없냐?”고 물었다. 이후 김 감독의 연출부에 들어간 그는 열흘 동안 밤을 새워 ‘기막힌 사내들’이라는 시나리오를 썼다. 이를 읽어본 김 감독은 무조건적으로 장씨에게 감독권을 줬다. 연출부를 시작한 지 석 달도 안 돼 감독 데뷔 준비를 하게 된 것이다. 하지만 ‘기막힌 사내들’은 흥행에 실패했다. 그의 두 번째 연출작 ‘간첩 리철진’도 평단에선 칭찬을 받았지만 흥행은 실패에 가까웠다.


“마치 난도질 당하는 기분이었습니다. 감독 생명이 끝나는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제가 좋아하는 수다와 독서를 원천으로 새로운 이야기들을 만들 수 있게 됐고 결국 감독으로 살아남았네요.”
장 감독은 1999년 만든 문화창작집단 ‘수다’를 모태로 2003년 3월 ‘필름있수다’라는 영화제작사를 설립했다. 그 동안 자신의 영화에 출연했던 배우 정재영, 신하균 등과는 끈끈한 관계를 유지해 오고 있다.


정재영, 신하균 등이 소위 ‘장진사단’이라고 불리는데, 왜 아버지 역을 차승원에게 맡겼습니까. “송광호, 최민식, 한석규 등을 캐스팅하려고 했지만 실패했습니다.(웃음) 그래서 차승원에게 시나리오를 보여줬는데 보자마자 ‘좋다’는 말을 연발했습니다. 그는 ‘애들이 크니까 나도 이제 애들한테 보여주고 싶은 영화를 하고 싶다’면서 출연료를 반으로 낮추는 등 배역에 큰 애착을 보였습니다. 촬영할 때 차승원은 자신이 만족할 수 없으면 계속 한 번 더 찍겠다고 했습니다. 그 다음에는 제게 ‘선택하세요’라고 말하죠. 감독 입장에서는 너무 고마운 배우입니다.”


‘필름있수다’라는 영화제작사를 그대로 운영하면서 강우석 감독과 ‘K&J’라는 회사를 만들어서 두 집 살림을 하고 있습니다. 강우석 감독과 인연은 어떻게 맺어졌습니까. “1998년 부산영화제 때였습니다. 제 작품 ‘기막힌 사내들’을 본 강 감독님이 ‘한 번 만나자’며 연락을 해오셨습니다. 이후 강 감독님이 기획한 ‘간첩 리철진’의 연출을 제가 맡았습니다. ‘킬러들의 수다’ ‘아는 여자’ 등 제 영화 대부분을 강 감독님이 투자나 제작을 맡아주셨습니다. 이제 저는 강 감독님을 ‘오야붕’(보스를 가리키는 은어)이라고 부르죠.”

당신과 강우석 감독의 영화 속에서는 여자 주인공이 없거나 비중이 적은데. “강 감독님이나 저나 여자의 마음을 잘 모르겠어요. 그나마 여자 관객들은 강 감독님 영화보다 제 영화를 좋아하죠.”(웃음)


강우석 감독은 최근 저와 인터뷰에서 올해 한국 영화의 옥석이 가려질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이어 요즘 한국 영화가 위기에 처했다고도 하는데, 이 같은 위기를 탈출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까. “저는 위기라고만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한국 영화의 퀄리티와 완성도가 상향조정되는 기회라고 봅니다. 영화로 오지 말아야 할 돈까지 들어왔던 그런 시대는 빨리 지나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돈줄이 조금씩 말라 힘든 시기를 거치겠지만 결국 옥석은 가려질 것입니다. 극장에서 관객과 만나기 위해서는 제작진의 작품 업그레이드가 필요하겠죠.”


지난 번 인터뷰에서 당신은 ‘충무로에서 영화감독으로 살아남으려면 어쩔 수 없이 상업 영화를 만들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감독이나 제작자가 상업용 자본으로 영화를 만들었으면 반드시 도덕적 책임을 져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 돈으로 상업영화를 만들어야지 예술영화를 만들어서는 안 된다는 말이죠.

그런데 요즘 대중의 눈이 너무 높아졌어요. 대중에게 좀더 재미있고 나은 상업영화를 보여주려면 끊임없이 공부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몇몇 감독을 제외하고는 첫 영화가 유작이 되고 있지 않습니까. 대한민국의 감독이 수백 명인데 말입니다.”


직업란에 영화감독이라고 쓰지만 궁극적으로는 작가가 되고 싶다고 했는데. “영화와 연극은 모두 시장에서 평가를 받습니다. 그런데 사실 저도 그게 좋지만은 않아요. 대학 다닐 때는 철저하게 예술을 하고 싶었는데, 졸업하고 사회에 나오니까 시장의 평가에 의해서 내가 예술을 할 수 있나 없나가 결정됐습니다. 장래에는 정말로 시장과 상관없는 글을 제 마음대로 쓰고 싶습니다.”


지금까지 독특한 영화를 많이 만들었지만 흥행에서 꼭 성공한 것만은 아니었습니다. 상업영화가 무엇인지 잘 알면서도 자신의 스타일이 강하게 표출된 영화를 만들었는데. “최대한 타협만 한 거죠. 일단 저한테 재미가 없으면 관객이 만족할 것같아도 그렇게 못 찍습니다. 목에 칼이 들어와도 그렇게는 못하죠. 단지 제가 바라는 것은 제가 좋아하는 영화와 대중이 좋아하는 영화에는 분명히 차이가 있는데 그 사이가 줄어들기를 바랄 뿐입니다.”


인생에서 가장 어려웠던 때는. “지나고 나면 별 거 아니라고 생각하는 편입니다. 오래전부터 ‘필름있수다’를 만들어서 운영해 왔는데 ‘웰컴 투 동막골’ 제작할 때는 직원들 월급을 못 줄 정도로 쪼들렸습니다. 그때가 가장 힘들었습니다. 그런데 ‘웰컴 투 동막골’이 대박을 터뜨려 한번에 해결됐습니다. 그래도 ‘한국에서 영화 만들기’는 ‘카지노에서 잭팟 기다리기’와 비슷하다는 느낌이 듭니다. 두세 편이 망하더라도 네 번째 영화가 흥하면 확 일어섭니다. 이게 바로 도박 아닙니까.” 


‘웰컴 투 동막골’은 반미영화라는 공격도 많이 받았습니다. “반미영화라기보다 반전영화라고 하는 표현이 옳을 것 같습니다. 동막골에 모인 미군, 북한군, 한국군이 친구가 되지 않습니까.”


열 살 어린 예비신부(서울여대 디자인대학원 졸업)와 결혼 준비는 잘 하고 있습니까. “신부 측에서 열심히 하고 있어요. 4년 전 대형서점에 갔다가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는 그녀를 보고 첫눈에 반했습니다. 제가 일방적으로 따라다니다가 작년 말부터 정식으로 교제하기 시작했습니다. 아마도 그 친구가 라식수술을 하고 나서부터 저를 다르게 보기 시작한 것 같아요.”(웃음)


앞으로 계획은.  “군인영화, 팩션영화, 하이틴영화 등 4편의 영화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장 감독은 인터뷰를 마치고 ‘관객과의 대화’를 나누기 위해 같은 건물에 있는 시사회장으로 들어갔다. 박수와 함께 함성이 쏟아졌다. 장 감독을 따라 들어가 객석 맨 앞 줄에 앉았다. 무대 위의 장 감독은 실물보다 크게 보였다. 역시 대중예술인은 관객의 박수와 사랑을 먹고 사나 보다. 팬들의 에너지를 받으니 그가 거인처럼 보였다. ▒



생년월일  1971년 2월 24일
경력  서울예대 연극과 졸업
 1994년 ‘허탕’으로 예장문학상 희곡부문 당선
 1995년 ‘천호동 구사거리’로 조선일보 신춘문예 희곡부문 당선
 현재 ‘필름있수다’ 대표
수상  2000년 제36회 백상예술대상 영화부문 시나리오상(간첩 리철진), 2005년 대한민국 영화대상 각본상(웰컴 투 동막골)
주요 작품  방송-SBS ‘전파왕국’ ‘좋은 친구들’, 영화-1995년 ‘개 같은 날의 오후’ 각색, 1998년 ‘기막힌 사내들’ 연출, 1999년 ‘간첩 리철진’ 연출, 2004년 ‘아는 여자’ 연출, 2005년 ‘박수칠 때 떠나라’ 연출, ‘웰컴 투 동막골’ 각본, 2006년 ‘거룩한 계보’ 연출, 2007년 ‘아들’ 연출
희곡  1994년 ‘허탕’, 1995년 ‘천호동 구사거리’ ‘서툰사람들’ ‘허탕-네 팔로 가는 사람들’ ‘들통-보편적 상상력에 관한 저항’, 1997년 ‘택시 드리벌’
희곡집  1996년 ‘덕배랑 달수랑’
연극  1998년 ‘매직타임’, 1999년 ‘허탕’, 1999년 ‘아름다운 사인’
악극  1995년 ‘사랑에 속고 돈에 울고’



/ 서일호 기자 ihseo@chosun.com 나해진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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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헌책방과 열애에 빠진 사나이
  • 최종규씨, 전국 헌책방 얘기담은‘1인 잡지’창간
    충주 살땐 서울까지 자전거 왕복하며 헌책 사모아
  • 김수혜 기자 goodluck@chosun.com
    입력 : 2007.05.22 23:57
    • 전국 헌책방을 찾아 다니며 청춘을 불사른 33세 인천 청년 최종규씨가 1인 잡지를 냈다. 22일 첫 호를 낸 격월간지의 제호는 ‘우리말과 헌책방’(그물코). 뭘 다루는 잡지일까. 긴 말이 필요 없다. 제목 그대로 절반은 그가 보물 찾듯 탐험한 헌책방 이야기들이고, 나머지는 ‘감사의 말씀’ 대신 ‘고맙다는 말씀’이라고 하자는 식의 우리말 쓰기에 관한 내용이다. 잡지는 180쪽. 혼자 다 썼다. 괴력이다.

      최씨는 서문에 “내는 호마다 ‘이번이 마지막’이라는 마음으로 시작한다”고 썼다. 그러나 그가 ‘마지막 호’로 내심 염두에 둔 숫자는 무려 ‘100호’다. 한 해 6권씩 17년간 내야 100호가 된다.

      22일 저녁 7시, 어스름한 인천 금창동 헌책방 거리를 걸어가는 최씨를 전화로 불러내 “정말은 몇 호까지 낼 각오냐”고 물었다. 그는 “50호까지 쓸 이야기는 이미 제 속에 다 있다”고 했다. ‘경영’에 대해 물었건만, 그는 ‘내용’에 대해 대답했다. 참고로 이 잡지는 한 부에 6000원이다. 첫 호 600부를 찍는 데 200만원이 들었다. “몇 부씩 팔면서 몇 호까지 낼 요량이냐”고 다시 묻자, 그는 은근히 기분 나빠했다.

    • ▲낡은 종이 냄새 가득한 헌 책방이 그에게는 보물창고다. 어느 골목에 숨어있는 헌책방을 찾아 흡족한 표정을 짓고 있는 최종규씨. /더 바이크 제공

    • “잡지는요, 올곧게 만들면 찾는 분이 꼭 나와요. 돈 많이 써서 만드는 잡지는 나중에 헌책방까지 안 와요. 간직하는 사람도, 찾는 사람도 없죠. 돈 적게 들이고 1만부 밑으로 찍으면서 오래 나오는 잡지들을 보세요.”

      그는 잡지 첫 호에서 대를 이어 부자(父子)가 운영하는 서울 홍제동 대양서점을 다뤘다. 가게 묘사·주인 인터뷰·화보 등이 50쪽 넘게 이어지는 심층 르포다. 그는 오래된 골목이 뒤얽힌 동인천 주택가에서 “기찻길 따라 2시간씩 걷기도 하고, 배 타고 나가 영종도 한 바퀴 돌기도 하며” 자랐다. 헌책방은 그에게 ‘절판된 책을 보물처럼 찾아내는 곳’이었다. 헌책방에 대한 두툼한 단행본도 두 권 썼다.

      그는 여러모로 ‘괴력의 사나이’다. 일주일에 한 번씩 일 때문에 서울과 인천을 오갈 때 “열 번에 아홉 번은 자전거를 타고, 너무 힘든 날은 전철을 탄다”고 했다. 직장 때문에 충주에 살던 시절, 헌 책 사러 서울 갈 때도 세 번에 두 번은 서울에서 충주까지 자전거로 달렸다.

      직장에 다닐 때 그는 한 달에 120만원쯤 벌었다. 먹고 마시고 옷 사 입고 술 마시는 데 딱 10만원 쓰고, 나머지는 책 사고 사진 찍고 저축했다. 그 저축으로 그는 지난달 금창동에 20평짜리 살림집과 40평짜리 가게터를 세 냈다. 그는 이달 말 이 가게터에 사진집 도서관 ‘함께 살기’를 열고, 그 동안 모은 사진집 3000권을 내보일 생각이다. 도서관을 지키면서 이제 막 1호를 낸 1인 잡지 ‘우리말과 헌책방’ 다음 호를 줄곧 써나간다는 인생계획이다. 잡지 정기구독과 도서관 이용 문의는 최씨의 홈페이지(hbooks.cyworld.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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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만화방의 화려한 변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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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코믹커즐’을 아시나요?”

     학산문화사(대표 황경태)가 지난 3월 31일 개장한 만화 문화공간 ‘코믹커즐(코믹과 커피가 있어 즐거운 공간)’이 바로 그 장소. 코믹커즐은 국내 최초로 만화 판매 전문매장과 카페를 결합하는 시도를 한 곳이다.

     5월 들어서 만화 매출이 급증, 1일부터 22일까지 매출이 4월 전체 매출에 비해 130% 가량 올랐다. 주말에는 계산대에서만 한시간을 넘게 줄 서야 할만큼 정착 속도가 빠르다.

     서울국제만화애니메이션페스티벌(SICAF) 개막 기간인 23일부터 27일까지 5일 동안엔 만화 왕국 일본의 만화 전문서점 운영자들이 순차적으로 방문할 예정이어서 이 공간은 국제적 화젯거리가 될 전망. 만화 전문서점이 많은 일본에서조차 이같은 시도를 신선하게 여겨 “한국에 가면 코믹커즐을 둘러보라고 했다”고 할 정도인 것은 이 시도의 가능성과 희망을 시사한다.

     황경태 학산문화사 대표는 “IMF 이후 만화 대여점 급감에 따른 출판 만화 매출의 복구를 고민하다 복합 만화공간을 구상하게 됐다”며 코믹커즐의 설립 동기를 설명했다. 실제 출판 만화 시장은 2004년 2437억원, 2005년 2285억원, 2006년 1925억원으로 해마다 줄어들고 있는 것을 보면 분명 코믹커즐에는 뭔가 다른 것이 있다.

     황 대표는 “오프라인 만화 매장에서의 새로운 시도, 그리고 이것이 성공할 수 있다는 가능성과 희망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가 지난 2004년부터 3년간 일본을 드나들며 삼고초려 끝에 스카우트한 마사토 노다 점장이 도입한 구매시점(POP:Point of Purchase)관리 기법 등은 이미 총판과 타 만화 전문매장에서 배워가는 요소가 됐다. 책 배치도 단순히 출판사 순이나 장르 별이 아니라 소비자가 다양한 만화에 관심을 유도하도록 이뤄졌다. 소장 만화책이 2만권이 넘는 마사토 점장의 전문가적인 아이디어가 바탕이 됐다.

     일각에서는 출판사가 직접 서점을 운영하는 것을 부정적으로 바라보지만 그는 “코믹커즐을 프랜차이즈화 해 돈을 벌겠다는 생각은 없다”며 “이런 공간을 운영하고 싶어하는 사람에게는 언제든 노하우를 전수할 것”이라고 밝혔다.

     비록 만화책 한권이더라도 소비자가 읽고 싶고, 갖고 싶게 하려는 황 대표의 작은 시도가 위기의 오프라인 만화 산업에 대안이 될지 업계는 주목하고 있다.

     ?珦抉熾齋袖?전자신문, pero@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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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론, 생명과 인권에 더 많은 관심을”
    이시우 작가·미르북 사건 등 국보법 수사 논란 불구 ‘무관심’
    2007년 05월 23일 (수) 13:02:53 장우성 기자 jean@journalist.or.kr
    논란의 소지가 있는 공안당국의 국가보안법 관련 수사를 언론이 외면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일부 시민사회단체들은 주한미군 시설을 촬영해 인터넷에 올려 국가기밀을 누설한 혐의로 구속된 사진작가 이시우 작가 등의 사건을 언론이 제대로 보도하지 않았다고 주장하고 있다.

    국가보안법폐지국민연대 박래군 정책기획팀장은 22일 한겨레에 실린 기고에서 “세상의 관심이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의 보복폭행 사건에 쏠려 있을 때 남대문경찰서 유치장에서 이시우 작가가 단식 중이었지만 언론은 한 언론사의 전문기자인 그를 외면했다”고 밝혔다.

    이 작가의 부인인 김은옥씨는 “남편이 남대문경찰서 유치장에 수감돼 단식을 벌이고 있었으나 김승연 회장 사건을 취재하기 위해 나와 있던 수십명의 기자들은 아무런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고 밝혔다.
    김씨는 현재 서울지방검찰청 앞에서 매일 1인 시위를 벌이고 있다.

    이 작가는 지난달 19일부터 7일까지 남대문경찰서에 수감됐다. 그는 유치장에서 ‘국가보안법 철폐’를 요구하며 단식을 시작해 22일 현재 34일째를 맞고 있다.

    이시우석방대책위 측은 “검찰 송치 뒤에도 소수 인터넷언론을 빼고는 거의 취재요청을 받은 바 없다”고 말했다.

    대책위의 한 관계자는 “한 인간이 정치적 신념을 위해 목숨을 건 단식을 벌이고 있다”며 “국가보안법에 대한 찬반을 떠나 인권과 생명을 존중하는 의미에서도 언론이 주목할 만한 가치는 충분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공안당국은 이 작가가 미군시설에 대한 자료를 해외 인사들과 공유해왔다는 혐의를 뒀으나 변호인 측은 근거 사진 및 자료는 합법적이며 국가기밀로 볼 수 없다며 반발하고 있다.

    인문사회과학서적 전문 인터넷헌책방 ‘미르북’ 사건도 언론이 외면한 사례로 꼽히고 있다.

    경기경찰청 보안수사대는 3일 ‘미르북’ 김명수 대표를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체포해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김씨는 ‘꽃파는 처녀’ ‘민중의 바다’ ‘공산당선언’ ‘국가와 혁명’ ‘자본론’ ‘해방전후사의 인식’ 등 이적표현물을 팔았다는 혐의를 받았다. 그러나 이 책들은 시중에 합법적으로 유통 중인데다가 일부는 유명 대학과 언론의 추천도서로 꼽힌 바 있어 논란이 되고 있다. 출판계에서는 국가보안법으로 서점 대표가 체포된 것은 1997년 이래 처음이라고 밝히고 있다. 인문사회과학출판인협의회(인사회. 대표 양정수)는 17일 성명서를 발표한 데 이어 출판인들을 상대로 서명운동을 벌일 예정이다. 김씨는 15일 구속적부심에서 석방됐다.

    ‘인사회’ 소속인 출판사 책갈피 김태훈 대표는 “경찰이 일관된 기준을 적용한다면 이 책을 문제없이 팔아온 주요 대형서점이나 유명 출판사 관계자들도 모두 국가보안법으로 체포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 대표는 “노무현 정부 들어서 몇몇 국가보안법 논란이 있었으나 소수 좌파나 개인의 문제라고 보고 별다른 대응을 하지 않자 일반인의 자유에까지 범위가 확대되고 있다”며 “언론 및 사회의 관심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장우성 기자 jean@journalist.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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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달빛푸른고개 2007-05-25 19: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시우씨가 단식에 들어간 지 한 달이 넘었다. 온통 세상의 관심이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의 보복폭행 사건에 쏠려 있을 때 남대문경찰서 유치장에서 그가 단식 중이었지만, 언론은 한 언론사의 전문기자인 그를 외면했다.
    “국가보안법을 끌어안고 죽겠다.” 그가 서울구치소에서도 단식을 지속하는 이유다. 사진작가이기도 한 그는 카메라를 분단의 현장, 민통선에 들이댔다. 그의 이런 작업은 <민통선 평화기행>(창비)이란 이름을 달고 책으로 나왔고, 이 책은 지난해에 독일서 열린 국제도서전에 한국을 대표하는 책 100권으로 선정되어 소개되기도 했다. 어디선가 녹슨 채 땅에 꽂혀 있는 대인지뢰라든지, 철조망 안쪽 구석진 곳에 피어난 꽃을 조명한 사진, 그 옆에 뒹굴어 썩어가는 군화 사진을 통해 애잔한 느낌을 받은 기억이 있다면 당신은 아마도 공안당국이 이적표현물로 몰고 있는 이시우씨의 사진을 본 것일 게다.

    그는 ‘걸어 다니는 명상가’라는 별명답게 전국을 무른 메주 밟듯 돌아다니면서 주한 미군기지의 문제점이나 유엔사의 문제점들을 파헤쳤다. 기밀이 해제된 미국의 문서들과 미국 국방부 누리집 자료 분석을 통해서 수원과 오산, 청주의 미군기지에 열화우라늄탄 300만 발 이상이 보관되어 있으며, 한미연합사가 해체되는 상황임에도 오히려 유엔사는 강화하려는 미국의 의도를 폭로한 것도 그였다.

    그런 그가 국가기밀 누설과 이적표현물 제작·배포 등의 혐의로 구속되어 있는 것이다. 그의 예술혼이 깃든 필름들은 벌써 상당수 손상되었다고도 한다. 신학철 화백의 ‘모내기’ 그림 사건에 대해 유엔 자유권위원회는 그의 작품을 돌려주고 피해배상하라고 권고했지만 대한민국은 이 권고를 무시했고, 이제 다시 예술작업을 해 온 사진작가를 구속했다.

    이시우씨 사건만이 아니다. 지난 3일에는 수원에서 인터넷 서점 ‘미르북’을 운영하던 김명수씨가 구속되었다가 구속적부심에서 석방되었다. 공안기관에서는 이 인터넷 서점을 통해서 책을 구입한 60명의 명단과 주소를 파악하고 수사를 확대하겠다고 나서고 있다. 1997년 서점 압수사건이 마지막으로 있었던 때로부터 10년 만에 일어난 일이다. 언론에는 주로 북한 소설, 북한 원전을 판매한 것으로 보도되었지만, 카를 마르크스의 <자본론>과 같은 저명한 고전, 리영희 교수의 저작들이나 <해방전후사의 인식>과 같은 베스트셀러나 스테디셀러들도 이적표현물로 압수되었다. 70년대부터 90년대까지 이적표현물로 확정판결 받은 책들이라는 이유에서였다.

    지난해 말 이른바 ‘일심회’ 사건에서부터 팔순의 통일운동가 강순정씨 구속사건, 전교조 교사들 구속과 한총련 배후조직을 캔다는 이유로 구속한 사건 등 보안법을 들이댄 인권탄압이 줄을 잇고 있다. 독일서 귀국했다가 옥고를 치렀던 송두율 교수의 스승 하버마스가 했다는 “그 야만적인 나라에서 빨리 나오라”는 말이 떠오른다.

    남북의 철로가 이어지고, 한반도 평화체제가 논의되는 요즘, 책 한 권으로, 사진 찍고 언론에 기고한 문제로 구속되는 일이 일어나고 있다. 죽어야 할 것은 21세기에도 야만의 시대로 시계바늘을 되돌리려는 국가보안법과 공안기관들이다. 평화로 가기 위해서, 야만을 끝장내기 위해서도 국가보안법은 반드시 폐지해야 한다. 그 투쟁은 이시우씨만의 투쟁일 수는 없다. 이시우, 그가 있을 곳은 서울구치소가 아니다.





    박래군/국가보안법폐지국민연대 정책기획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