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igner  어린이 그림책의 언어는 문자가 아니라 이미지다.
꿈을 이루기 위한 출판. 재미마주의 이호백 사장
 


재미마주를 설립하기 전 어떤 일에 주로 관심이 있었으며, 어린이 책 분야에 뛰어든 특별한 이유는?
나는 산업과 경제는 있었지만 문화가 없었던 80년대에 학교를 다녔다. 서울미대 재학시 미대학보사 일이나 월간 <디자인> 대학생 모니터, 그후 월간 <디자인>의 객원기자로도 활동하며 디자인 이론에 대한 비판의식을 키웠고, 시각문화의 현상과 본질에 대해 다루는 인문사회과학 쪽 분야에 심취해 있기도 했다. 그때는 사회에서 디자이너의 인식을 정립하자는 사명감에서 열띤 토론을 펼치기 좋아하는 비평적 성향의 청년이었던 것 같다. 하지만 간혹 형수님이 운영하시는 유치원에서 아이들을 돌보는 것도 내 적성에 잘 맞았다. 내 안에 공존하고 있었던 문제의식과 아름다움과 동심을 동경하는 순수한 감성은 이 아이들을 위해 한국의 디자이너로서 할 일을 생각하게 된 계기가 된 것 같다. 동화책에는 온통 외국 캐릭터와 외국적 이미지가 넘쳐나고 있던 당시 우리 아이들에게 줄 수 있는 우리만의 비주얼이 없을까 고민했고, 그때의 고민이 지금의 내가 하고 있는 일로 이어졌다.

그런 의식에서 언젠가 신문에 “아이들에겐 어릴 적 보는 책에서 문화적 DNA가 전해진다.”는 말을 했으리라 생각된다. 어린이 책에 대한 철학이 있다면 구체적으로 무엇인가?
어린이를 교육시키려 하지 말고, 학습과 논리보다는 놀이와 예술, 시각적으로 정제되고 자연스러운 세계에 다가가게 해주자는 것이다. 나는 어린이를 특별한 존재로 규정한 뒤 그 눈높이에 모든 메시지와 조형적 원리를 맞추려는, 말하자면 ‘어린이 책은 자고로 이러이러하면 된다’라는 선입견에 의한 가공적 상품개발을 부정한다. 어린이와 함께 이미지를 통해 대화하기 위해서는 어른과 아이가 함께 느끼는 동시적인 삶에 대한 생각과 우리의 역사와 정서 속에 흐르는 통시적 생각 없이는 불가능하다는 각성을 했다. 예를 들어 우리나라 조선시대의 미감을 책에서나마 어린이들과 또 이 시대를 사는 어른과 같이 호흡할 수 있는 그런 책을 만들고 싶다.

지금까지 재미마주와 일한 그림작가가 동양화과 출신인경우가 많아서 그런지 재미마주의 책에는 수묵화나 진채화 등 전통 그림의 스타일을 많이 엿볼 수 있다. 어린이 동화 일러스트레이션도 어떠한 트렌드가 있다고 생각하는가?
정확하게 말한다면 우리나라의 경우엔 없다고 본다. 선진국의 경우엔 그런 것이 있다고 보여지는데, 왜 그런지를 아주 간단히 말하자면 유럽이나 미국 같은 서양의 선진국들은 미술이 대중예술이고 그렇기 때문에 미술과 대중문화가 발맞추어 갈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오랜 시간 미술과 대중이 격리되어 왔고, 지금도 예술을 대중문화로 즐길 여유가 없는 사회이다. 어린이 동화 일러스트레이션이란 분야도 사실 없는 분야다. 말이 존재하고, 직업이 존재하고, 기능이 있다고 해서 그 말의 존재 의미가 충족되는 것은 아니다. 어쨌거나 사회의 변화 속에 대중적 미감의 변화는 매우 중요한 것인데, 대중들에게 좋은 자양분을 제공하는 일이 선행되어야 한다.

동화 일러스트레이터로 일하고자 하는 후배에게 선배로서 조언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그러니 제발 동화 일러스트레이션이란 말은 하지 말아 달라! 그림 그리는 일을 즐기고, 이를 책으로 만들어보고 싶고, 이런 일로 성공한 사람들 이야기를 들으면 가슴이 뛰는 그런 후배들이라면 자연스럽게 알게 될 거다. 동화 일러스트레이션이란 말은 없다는 사실을.

국내 어린이 도서 시장의 규모와 전망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우리나라 어린이 책 시장 규모는 세계적이다. 선진국의 출판 기업들이 탐을 낼만한 그런 폭발성을 가지고 있는 시장이라고 본다. 지금까지는 어린이 학습지 및 관련 도서 시장이 전체 도서 시장을 이끌어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는데, 아무래도 시간이 흐르면서부터는 정서와 예술, 그리고 인간적 교감을 생각하는 수준 높은 선진 교육의 이념과 노하우에도 관심을 기울여 나갈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리고 그림책이야 말로 이런 정신의 교육에 딱 맞는 학습지이기 때문에 이 시장은 튼튼한 시장이라고 생각한다.

재미마주는 1997년부터 올해까지 매년 볼로냐 국제어린이도서전에 참가한 유일한 한국출판사이다. 해외 도서전의 참가 이유나 해외시장에 대한 재미마주의 전망은 무엇인가?
재미마주는 초반부터 출판시장을 좀더 넓게 보고, 어린이 책 분야의 대선배격인 선진국들에게 오히려 책을 팔아보겠다는 당찬 욕심이 있었기에 책 한 권, 한 권 국제성과 지역성의 균형을 고려한 품질 향상에 최선을 다해 왔다. 해외 도서전에 참가하는 이유는 개인적으로 그곳에 가면 다양한 자유를 느낄 수 있고, 외국의 여러 출판 관계자들이 내가 만든 책에 대해 보여주는 조그만 감상들이나 다채로운 반응들을 즐길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꾸준히 참가하다 보니, 해외시장 진출의 기회도 얻을 수 있었다. 현재 <노란우산>을 미국에서 발행하고 있는 케인밀러 출판사도 볼로냐 도서전을 통해 우리 책을 알게 되었다.

재미마주는 책 많이 안 만들고 천천히 만드는 출판사로 유명하다. 출판사 경영자로서 특별히 마케팅에 대한 원칙과 소신이 있다면?
모든 기업들은 매출규모에 상관없이 대량광고를 통해 자신들의 상품을 알리고자 한다. 물론 광고비용은 저마다 형편에 따라 다르겠지만 일단 고객이 모이는 곳에 광고를 뿌려대는 이런 형태를 그물식 마케팅이라고 한다면, 내가 생각하는 그림책 마케팅은 계단식 마케팅이라고 할 수 있다. 회사가 나름대로 책 한 권, 한 권을 낼 때마다 그전보다는 좀더 나은 상품을 만들며 한쪽에서 계단을 쌓아올리는 것이다. 무심히 지나가다 그 계단에 발을 디딘 소비자는 한 계단 한 계단 올라가며 상품을 경험하는 맛에 계속 그 계단을 오르게 된다. 어쨌든 많은 고객이 계속 재미마주라는 계단 위에 머물게만 된다면 그걸로 충분히 매출은 발생될 수 있을 것이다. 결국 이 이론도 내가 만드는 책의 수준이 어떤 방면으로든 더 높은 쪽으로 가야 가능할 수 있을 것이며, 문화라는 분야는 이렇게 늘 새로운 꺼리와 감상적 기분의 상승이 필수적인 것이 아닐까.

당신이 생각하는 디자인 기획에 의한 출판사업은 무엇이며 항후 모델로 삼고 있는 출판계의 인물이 있다면?
세계적으로 디자인 기획으로 출판계를 평정한 회사로는 다큐멘터리의 대중화에 성공한 영국의 ‘DK’사를 들 수 있다. 출판대국이라 불리는 일본마저도 디자인기획에 의한 출판물의 세계적 성공사례는 아직 없다고 할 수 있다. 어린이 출판은 무궁무진한 그래픽의 세계이다.

나는 이미지도 하나의 언어라는 생각에서 어린이 그림책은 문학적 측면보다는 디자인 기획을 통한 조형 및 이미지의 매체로 접근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작지만 성공사례를 하나씩 만들어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출판계에서도 이제 누구나 투자해서 좋은 책을 만들면 그 책 하나로 충분히 사업이 될 수 있다는 사례들이 나오고 있다. 더이상 디자이너가 문제해결자로만 안주해서는 안된다. 2평자리 사무실에서도 디자인 기획만으로 충분히 아이덴티티를 지닌 디자인 출판물을 생산할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서 디자이너들은 좀더 조형에 대한 고민을 해야 하고, 사회적으로는 문화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독서를 즐길 수 있는 문화적 공간이나 도서관 등의 문화적 환경과 분위기가 대중들 속에 만개되는 가운데 그림책 문화의 미래가 있다. 환경과 분위기에 30년 정도 투자하고 40년째부터 돈을 벌어도 늦지 않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내가 모델로 삼고 있는 많은 출판인 중에 특히 출판 기획과 일러스트레이션 모든 분야에서 엄청난 족적을 남긴 러시아의 예술가 로잔 코프스키나 단 20여 권의 토끼 그림책으로 영국 한 주의 환경 재단을 이끄는 프레데릭 완 같은 출판사야말로 신화라고 할 수 있다.


<도대체 그동안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 (이호백 글.그림) 이호백 사장이 직접 쓰고 그린 이 책은 가족들과 키웠던 애완용 토끼로부터 영감을 얻어 아이들의 시선과 상상력으로 만들어낸 귀엽고 환상적인 토끼의 모험담을 그린 동화책이다. 이 책은 재미마주의 <노란우산>에 이어 <뉴욕타임즈> 2003 올해의 우수 그림책 10권에 선정되었다.

이호백. 도서출판 재미마주의 꿈을 이루기 위한 출판

출처: 디자인 하우스

 

7,80년대에 유소년기를 보낸 세대라면 기억할 것이다. 코흘리개 그 시절 부모님이 사다 주신 세계명작동화나 전래동화책들을 읽으며 상상의 나래를 펼쳤던 것을. 그리고 그 세대는 이제 자신의 자녀들에게 동화책을 사주는 본격적인 부모 세대가 되었다.

소중한 자녀를 위한 동화책 한 권을 고르기 위해 들른 대형서점의 수많은 동화책 더미 속에서 그들은 혹시 알아차릴 수 있을까? 그들이 성장할 당시에는 좀처럼 볼 수 없었던 동화책, 바로 우리나라의 단편 창작동화를 고를 수 있다는 새로운 사실을 말이다.

 

90년대 중반부터 아동출판물 시장에는 작지만 의미 있는 변화의 조짐이 보였다. 바로 전질 위주로 구성된 외국 고전 번역물이나 위인전, 전래동화책이 아닌 평범한 우리일상의 크고 작은 에피소드를 잔잔하게 그려낸 창작동화들의 등장이다.

즉, 공장식 대량 생산에 의한 한꺼번에 묶어팔기식 판매에 의지하기보다는 순수한 창작 단행본의 정선된 글과 그림의 품질을 통해 시장에서 승부하고자 하는 아동 출판계의 자존심 강한 모험들이 시작된 것이다.

 

제대로 된 동화책 한 권 만드는 데 기본적으로 2년 이상 걸리고, 일년에 단 두어 권의 동화책 발행으로 회사를 운영하더라도 세계 아동 출판시장에 “국산 창작동화” 라는 명함을 당당히 내놓을 수 있는 책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재미마주의 이호백 사장도 우리 아동 출판계의 지형을 서서히 바꾸고 있는 몇 안되는 실천가 중 하나다.

서울미대 응용미술학과와 고려대 신문방송학과 대학원을 나와 파리2대학 커뮤니케이션 이미지 인스티튜트IMAC를 수학하며 10여 년간 한국 문화 이미지의 실체화, 우리 시각문화의 정체성 등을 고민해온 이호백 사장. 동화책 작가이면서 출판기획자, 출판사 대표인 그가 자신의 출판 비즈니스와 동화 작품을 통해 구현하고자 했던 한국적이면서 동시에 국제적인 그림책의 모형들이 무엇인지 재미마주만의 독특한 그림책들을 통해 살펴 본다.

한국 어린이의 감성유전자에 꼭 넣어주고 싶은 한국의 미감을 담은 책을 만들자.

어릴 적부터 외국에서 살며 외국식단에 길들여진 어린이는 체구나 식성도 외국인과 다름없다. 미감도 마찬가지 아닐까. 국적불명의 이미지에 온통 둘러싸여 자라고 있는 한국의 어린이들도 어릴 적부터 한국 고유의 미감을 많이 접하며 자랄 수 있다면 커서도 뭔가 한국적 감수성을 갖고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



1. <토끼의 소원> (윤열수, 이호백 기획.글) 재미마주와 민화전문박물관인 가회박물관이 함께 만든 민화시리즈의 첫 번째 출판물인 이 책은 이호백 사장이 한국의 뛰어난 전통적 이미지를 세계에 알리려는 전략이 담긴 야심찬 기획물이다. 세계적으로 가치를 인정 받기 시작한 조선 민화가 이집트 벽화처럼 온 세계 어린이들이 감상하며 기억하는 이미지가 되는 날을 기대하며, 우리 옛 그림에 숨은 상징들을 재미있는 이야기를 통해 즐길 수 있게 하였다.

2. <세상에서 제일 힘센 수탉> (이호백 글/이억배 그림) 1997년 브라티슬라바 일러스트레이션 비엔날레(BIB) 선정작으로, 한국화 기법으로 참신하게 그려진 한 수탉의 일대기를 통해 우리 할아버지들의 이야기를 전해준다. 현재 일본의 신세켄 출판사에 의해 4개 국어(일어, 영어, 포르투갈어, 스페인어)로 번역, 출판되고 있다.


학급문고에는 초등학생들의 일상적 리얼리티가 숨쉬는 책들을 꽂아보자.

유아용 책은 너무 유치하고, 청소년용 책을 읽기엔 아직도 글보다 그림이 더 좋은 저학년 초등학생들. 무겁고 딱딱한 하드커버 대신 교과서만큼 가볍고 부담 없이 제본되어 아이들 손에, 책가방 속에 쏙 들어가는 우리 초등학생들만의 그림책은 없을까?



1 학급문고 1 <내짝꿍 최영대> (채인선 글/정순희 그림) 왕따라는 현실적 문제에 감동적인 스토리를 얹고, 그 누구보다 한국 어린이를 가장 한국 어린이답게 표현했다는 그림까지, 그동안 그림책 일러스트레이션에서 보기 힘들었던 ‘리얼리티’를 거의 완벽하게 순화시켜 보여주고 있다는 평을 받으며 문단의 문제작으로 등장한 재미마주의 ‘학급문고’ 시리즈 중 1탄이다.

2 학급문고 2 <삼촌과 함께 자전거 여행> (채인선 글/김동성 그림) 글과 그림, 사실과 환상이 절묘한 수작을 이루었다는 평의 이 책은 우리 곁에 살아있던 자연이 도시에서 사는 우리 아이들에게 환타지가 되어버린 아쉬움을 전하고 있다.

3 학급문고 5 <똥줌오줌> (김영주 글/고경숙 그림) 학급문고가 이미 기량 있는 작가들을 발굴하고 개발하는 창구로 인식됨에 따라 많은 신인들이 학급문고를 내고 싶어한다. 자유스러운 드로잉 선만으로도 리얼하고 따뜻한 느낌의 완성도를 유감없이 보여주는 김영주, 고경숙 콤비의 4부작 중 하나이다.

4 학급문고 6 <나머지 학교> (이가을 글/임소연 그림) 지금은 책 박물관이 된 영월의 작은 학교가 이 이야기의 배경이다. 폐교가 된 전국의 2,800여개의 초등학교를 나온 수많은 부모님들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이제 그림책 안에 읽고 보는 즐거움 외에 듣는 즐거움까지 추가해 볼까.

예쁜 소나타 같은 책 속에 글 대신 음악이 흐른다면... 구수한 할머니가 들려주는 옛 이야기처럼 흥겨운 판소리 가락으로 동화책을 읽어준다면... 아마도 책 읽기가 두배쯤 즐거워 지지 않을까.



1 <재미네골> (중국 조선족설화/홍성찬 그림) 최초의 창작 판소리 그림책으로 무척 실험적인 작품이다. 오디오와 책이 하나로 묶여있는 이 책은 마치 할머니나 엄마가 자기 전에 들려주던 옛이야기를 듣듯이 아이들에게 판소리로 중국 조선족 설화 속의 ‘재미네골’ 이라는 마을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국내 그림책 화가 1세대인 홍성찬 씨가 옛 조상들의 생활과 문화를 충실한 고증으로 원로작가의 원숙함과 관록을 드러낸 이 책 역시 일본의 신세켄 출판사에 의해 4개 국어로 번역, 해외로 수출되고 있다.

2 <노란우산> (류재수 글.그림/신동일 작곡) <뉴욕타임즈>의 2002년 올해의 우수 그림책 10권으로 뽑힌 이 책은 미국의 케인밀러 출판사에 의해 출간된 이후 여러 언론의 주목을 받으며 미국 전역에 소개되었다. 비 오는 등교길의 빗소리와 촉촉한 공기, 컬러풀한 우산들의 행렬 등 ‘노란우산’을 통해 작가가 보여주려 한 조형성과 그림, 음악의 매칭이라는 독특한 형식이 미국의 어린이 책 전문가들에게 높은 호응을 받았다.
간혹 어린이 마니아들을 위한 하드코어풍의 동화책도 필요하다.


간혹 어린이 마니아들을 위한 하드코어풍의 동화책도 필요하다.

마치 컴퓨터 게임을 하듯 텔레비전 만화를 보듯 그 재미에 흠뻑 빠져들게 만드는 동화책은 왜 없을까? 어른들에겐 멀미나는 그림이라도 우리는 다 이해할 수 있는 그런 신나는 그림책이 보고 싶을 땐 어떡하면 좋지?



1.2 <생각만해도 깜짝벌레는 정말 잘 놀라> (권윤덕 글.그림) <혼자서도 신나벌레는 정말 신났어>, <씹지않고 꿀꺽벌레는 정말 안씹어> 등 글자벌레 3부작 중 마지막 권이다. 조형이나 언어적인 면에서 기존 동화책의 규범이나 편견을 송두리째 날려버리는 이 책은 재미있고 특색있는 우리말을 이야기 전개의 중요한 모티프로 삼고 한지에 붓그림으로 추상적인 표현과 기호, 게임판들을 퓨전적 표현 방식을 통해 보여준다.



이호백 1994년 어린이책 기획회사인 재미마주를 설립하여 1995년 길벗어린이 출판사 내부의 전문기획팀을 거쳐 1996년에 도서출판 재미마주로 독립했다. 1997년부터 <세상에서 제일 힘센 수탉>, <학급문고 시리즈>등으로 아동 출판계의 새바람을 일으켰고 <노란우산>과 <도대체 그 동안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로 2002년, 2003년 연속으로<뉴욕타임즈> 올해의 우수 그림책 10권에 선정되기도 하였다. 매년 볼로냐 국제어린이도서전에 참여하고 있으며, 다수의 책이 번역되어 일본, 미국 등의 해외에서 출간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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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리소설의 전설’ 그녀는 죽지 않았다
애거사 크리스티 타계 30주기
성경, 셰익스피어 다음으로 많이 팔린 책… 장편 66편, 단편 20편 등 총 20억부 넘게 판매

▲ 애거사 크리스티
‘추리소설의 여왕’ 애거사 크리스티의 타계 30주년을 맞아 세계적으로 애거사 크리스티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오는 1월 12일이 30주기다.

크리스티는 한 사람이 일생에서 그렇게 많은 작품을 쓸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수많은 작품을 남겼다. 장편 66편, 단편 20편, 희곡 18편, 추리소설이 아닌 일반 소설 6편, 기타 시집과 중동에서의 체험담, 자서전 등이 그녀의 작품 목록이다. 작품의 양만 놓고 보면 크리스티는 마치 신에게서 ‘많은 작품으로 사람들을 즐겁게 하라’는 사명을 부여받은 것이 아닌가 싶을 정도다.

이처럼 애거사 크리스티 여사는 대중성에 관한 한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그녀의 작품은 셰익스피어보다 14개가 더 많은 103개의 언어로 번역됐고 지금까지 20억부 넘게 팔린 것으로 알려졌다. ‘성경과 셰익스피어의 작품 다음으로 많이 팔린 책의 저자’라는 표현은 이래서 나온 것이다. 이런 그녀의 인기는 어디에서 비롯된 것일까?

잔인한 장면 없어도 오싹한 소설

우선 그녀는 천부적인 이야기꾼이다. 추리소설작가 백휴씨는 “애거사 크리스티는 ‘구성의 천재’라는 말이 딱 들어맞는 작가”라고 평했다. 크리스티의 독특하고도 천부적인 재능은 그녀가 기본적인 요소들, 즉 작품 속 인물과 상황설정을 교묘히 다루는 데 있다. 그러한 요소들은 공격과 전율을 느끼게 하는 범죄와는 달리 진정한 추리소설의 틀을 구성한다.

호기심을 끄는 방법에서 본다면 그녀의 모든 이야기는 어느 시대의 배경에도 맞는다. 그녀는 특정시간에 제한받지 않는다. 자신이 성장하면서 함께 보아온 관습이나 규범을 통해서 합리적이고 적절한 것을 표현하는 것이다. 따라서 그녀는 많은 사람의 호감을 받게 되고, 그것은 오늘날의 젊은이들이 경험하는 과거에 대한 강한 향수를 불러일으키게도 한다.

그러나 줄거리만 재미있게 끌어간다고 해서 문학작품이 오랫동안 사랑받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추리소설 전문출판사 해문출판사의 이경선 사장은 “크리스티의 추리소설이 세대를 뛰어넘어 사랑받는 이유는, 물론 치밀한 구성과 뛰어난 아이디어도 있지만 내면 깊숙한 곳까지 꿰뚫는 인간 본성에 대한 통찰력이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인간 본성에 관한 문제는 세월이 지나도 공감을 얻어내며, 끊임없이 문제로 대두된다. 특히 그녀의 작품에는 극한 상황에서 인간이 어떻게 행동하는지를 잘 표현해주고 있다. 그녀의 심리 묘사는 다른 추리소설처럼 분석적이라기보다는 무릎을 탁 칠 수 있는 직관에 충실한 심리묘사라고 할 수 있다. 게다가 각각의 캐릭터가 살아숨쉬듯 생생하다. 그렇기 때문에 작품의 줄거리를 좇아가다가도 각각의 인물과 그 특징에 자연스럽게 빠져들게 되는 것이다.

▲ 1920년에 출간된 애거사 크리스티의 데뷔작 `스타일 저택의 죽음`.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가 대표적인 예다. 이 작품은 탐정이 사건을 해결하는 추리소설은 아니다. 긴박하게 진행되는 스토리에 등장인물들의 자세한 묘사, 그리고 그들 각각의 위험한 사정들. 이 모든 것이 한데 어우러져 결말에 이르게 된다. 사람들은 대개 이 작품의 기가 막힌 반전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그러나 이 작품은 그러한 반전에 머물지 않고, 극한 상황에서의 인간 본성을 소름 끼치도록 잘 표현하고 있다.

이러한 인간 본성에 대한 통찰력은 그녀의 수많은 작품에서 유감없이 발휘된다. 그녀는 수많은 사람의 상황과 심리 등을 어떻게 생각해내는 것일까? 크리스티는 “당신은 주인공들을 실생활로부터 이끌어냅니까?”라는 질문을 주변에서 반복해서 받곤 했다. 이에 대해 그녀는 이렇게 대답한다. “그렇지 않아요. 나는 그들을 창조해내고, 그들은 완전히 내 것입니다. 그들은 나로부터 생명을 얻었기 때문에 내가 원하는 대로 행동하고, 존재하며, 내 성격과 매우 흡사합니다. 그러나 때로는 그들도 그들 생각을 나름대로 가지고 있는데, 이것은 내가 그들을 매우 사실적으로 표현했기 때문이지요.”

그녀가 작품의 구성을 생각해내는 다른 방법은 설거지 등과 같은 평범한 가정의 일로부터다. 이런 일을 할 때 그녀는 마음이 들뜨게 된다고 말했다.

크리스티의 작품에서 또 하나의 묘미는 충격적인 결말이다. 추리소설은 원래 대부분이 결말에 반전의 요소를 가지고 있지만, 크리스티의 작품은 늘 독자에게 기대감을 가지게 한다. 크리스티는 1962년 데일리 메일지(紙)의 세실 윌슨과 대담을 갖고 “추리소설에서 절대 금기사항은 결말부분에서 안이한 끝맺음을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크리스티의 작품에는 또 잔인한 범죄수법이 안 나오는 게 특징이다. 예컨대 사람이 죽은 장면을 묘사할 때도 ‘총에 맞아 죽었다’는 정도로만 묘사하지, 살해수법이나 사망상태를 자세히 묘사하는 법이 없다. 이로 인해 그녀의 작품은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모두에게 사랑받는 대중성을 확보하는 데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고 있다.

크리스티는 다른 작가가 그 이전이나 이후에 아무도 시도해보지 않을 살인사건을 생활 속에서 가깝게 느낄 수 있도록 엮어놓았고, 흥미있는 체스 게임, 또는 만족스러운 크로스워드 퍼즐 정도의 모험 이상을 넘지 않는 범위로 살인사건 자체를 변형시켜 글을 썼다.

이는 추리소설작가에게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그녀의 천성 때문이다. 전 생애에 걸쳐 그녀는 폭력과 피를 몹시 싫어했으며, 자신은 살인에 사용되는 수단이나 기구에 대해 전혀 아는 바가 없다고 항상 고백했다. 또한 말년에 이르러서는 그녀가 아는 한 한번도 살인자를 만나본 적이 없다는 사실을 얘기했다.

▲ 영화로 만들어진 애거사 크리스티의 작품들. 왼쪽부터 나일강의 죽음, 깨어진 거울, 백주의 악마, 오리엔트 특급살인.

“나는 피스톨 권총과 리볼버 권총에 대해서 아는 바가 전혀 없어요. 그렇기 때문에 나는 보통 내 책의 주인공들을 둔기로 죽인답니다. 그렇지 않으면 기껏해야 독약을 쓰지요. 독약은 사실 아주 흥미를 돋우면서도 깔끔하다는 점 외에…. 나는 얼굴이 잔인하게 난도질당한 것은 차마 볼 수 없답니다. 그래서 독약에 흥미를 갖고 있는 거지요. 그리고 나는 보통 시체가 되기 일쑤인 최후의 순간을 묘사하지 않는답니다.”

주인공 명탐정 포와로의 죽음

추리소설에는 탐정이 나온다. 매력적인 탐정은 추리소설의 재미를 높이는 양념 같은 존재다. 크리스티의 작품에도 매력적인 탐정이 나온다. 그녀가 만들어낸 탐정 중 대표적인 인물이 에르큘 포와로와 ‘미스 마플’로 불리는 제인 마플 양(孃)이다. 형사 출신의 벨기에인 에르큘 포와로는 추리소설사에서 코넌 도일의 셜록 홈스에 필적하는 명탐정으로 꼽힌다. 그는 암탉이 크기가 다른 계란을 낳은 것을 못참아 할 정도로 균형성(symmetry)에 대한 열정을 가진 인물로 묘사된다. 생활습관 또한 규칙적이어서 아침식사로는 초콜릿과 크로와상을, 점심은 반드시 12시30분과 1시 사이에 먹기를 고집했으며, 저녁식사는 7시에 마치는 것을 신조로 삼고 있었다. 간호사 출신의 미스 마플은 안락의자에 앉아 평소 관찰한 현상을 바탕으로 사건을 풀어나가는 새로운 유형의 탐정이다.

그러나 크리스티는 말년에 이렇게 매력적인 주인공인 포와로를 죽여버린다. 여기에는 사연이 있다. 그녀의 책을 출판하던 윌리엄 콜린스 출판사의 윌리엄 콜린스 경(卿)은 크리스티의 작품 두 편 중에서 판권 하나를 얻기 위해 그녀를 만나러 갔다. 그것은 명탐정 에르큘 포와로가 죽는 내용의 작품인 ‘커튼’과 그녀의 작품 중 마지막으로 출판된 ‘잠자는 살인’이었다.

▲ 한글로 번역된 애거사 크리스티의 작품들.
처음에 크리스티 여사는 두 작품을 그녀가 죽을 때까지는 출판하지 않겠다고 강력하게 버텼지만, 윌리엄 경은 그녀를 설득했다. 그녀가 자기 손으로 에르큘 포와로를 죽이지 않는다면, 그녀가 죽은 뒤에 다른 작가들이 그를 다른 작품에 이용할지도 모른다는 것이었다. 한 예로 킹슬리 에이미스가 이언 플레밍의 주인공 제임스 본드를 내세워서 소설을 쓰지 않았는가 하는 것이었다. 그녀는 그 말을 듣고도 여전히 생각에 잠겨 있었지만, 결국 포와로가 기괴한 통속소설에서 단역으로 나올지도 모른다는 윌리엄 경의 말에 겁을 먹고는 ‘커튼’의 출판을 허락했다.

사실 이 작품은 1910년대 중반쯤 크리스티가 1차 세계대전 중에 종군 간호사로 있으면서 써놓았던 작품이다. 크리스티는 포와로를 죽인 이유를 다음과 같이 말했다. “포와로는 너무 귀엽기 때문에 내가 죽은 뒤에 다른 사람이 그를 등장시키는 것이 싫어요. 포와로는 제임스 본드와는 다릅니다. 내가 죽은 뒤에 포와로가 등장하는 작품이 나와서는 안 됩니다.”

크리스티는 사망하기 한 해 전인 1975년에 발표한 ‘커튼’에서 포와로를 숨지게 한다. 여기서 포와로는 처음으로 소설에 등장했을 때와 똑같이 관절염으로 약간 절뚝거리는 데다 얼굴에는 주름이 많이 생긴 채 등장한다. 포와로가 젊었을 때의 영광을 나타내는 유일한 것은 그의 전매특허인 번쩍거리는 검은색 머리카락(‘커튼’에서는 염색을 한 것이지만)뿐이었다. 그러한 그가 혈압을 떨어뜨리는 아밀질산염이 들어 있는 작은 주사액 병을 침대에서 치워버렸다는 것을 헤이스팅스에게 알려 자살을 암시했을 때, 50년 동안이나 이 용감한 벨기에인을 작품 속에서 보아온 전세계의 수많은 독자들이 눈물을 흘리면서 슬퍼했다고 한다.

미스 마플은 그녀가 등장한 마지막 소설인 ‘잠자는 살인’에서 포와로보다는 융숭한 대접을 받았다. 크리스티는 자신이 총애하는 이 등장인물을 세인트 메어리 미드 마을에서 활발히 활동을 계속하는, 재치가 번뜩이고 현명하며 예리한 모습으로 남겨두었다.

크리스티가 1920년에 ‘스타일즈 저택의 죽음’을 발표한 이래, 현재까지도 수많은 팬이 있었고 계속 그녀의 독자들이 생겨나고 있다. 이러한 저력은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추리소설이라는 특징적인 장르 안에 탄탄한 줄거리, 인간 본성에 대한 예리한 통찰력 등이 녹아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다.

그러나 크리스티는 자신을 단지 인생을 즐겁게 보낼 수 있는 재능이 있는 사람으로서만 볼 뿐, 결코 문학가로 여기지 않았던 겸손한 사람이었다. 그녀는 “나는 내가 하는 일을 결코 중대하다고 여기지 않아요. 그저 남을 즐겁게 하기 위해서 출발하는 것뿐이지요. 내가 죽은 지 10년쯤 지나면 아무도 나에 대해 말할 사람이 없다는 것을 확신해요”라고 말했다. 추리소설작가 백휴씨는 “크리스티가 확립한 추리소설의 대중성은 그녀의 사후에도 전혀 훼손되지 않았으며 앞으로도 그러할 것”이라고 말했다.

박영철 주간조선 기자(ycpark@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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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시장 일류(日流) 바람
‘냉정과 열정 사이’ 등 꾸준한 인기... 2005년 6월 교보 베스트셀러 100위 중 27권 차지, 한국소설 앞질러

TV드라마, 영화, 가요에 있어서는 ‘한류(韓流)’ 바람이 거세지만 소설 분야에 있어서는 ‘일류(日流)’가 강세다. 그 선봉에는 작가 에쿠니 가오리, 요시모토 바나나, 무라카미 하루키 등이 있다.

먼저 에쿠니 가오리가 쓰지 히토나리와 함께 쓴 ‘냉정과 열정 사이’는 2000년 초판 발행 이후 지금까지 약 80만권이 팔렸다. 이 작품은 이탈리아 피렌체에서 중세회화 복원사로 일하는 준세이와 밀라노에 사는 여인 아오이의 슬픈 사랑을 그렸다. 에쿠니 가오리의 소설을 꾸준히 내고 있는 소담출판사의 이장선 차장은 “남녀가 서로 다른 시각에서 사랑을 풀어내 독립된 2권의 책으로 펴낸 것이 독자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데 한몫했다”고 밝혔다.

▲ 교보문고 '일본소설' 코너에 많은 여성 독자들이 몰리고 있다.

또 지난 10월 발간된 에쿠니 가오리의 ‘도쿄 타워’는 초판으로만 2만권을 찍었고 지금까지 약 11만권이 판매됐다. 이밖에도 ‘반짝반짝 빛나는’ ‘울 준비는 되어있다’ ‘당신의 주말은 몇 개입니까’ ‘낙하하는 저녁’ 등이 독자의 사랑을 받고 있다.

요시모토 바나나의 ‘키친’은 1999년 발매 이후 지금까지 약 25만권이 팔렸다. 1988년 일본에서 초판을 찍은 ‘키친’은 18개국에서 번역됐다. 이 작품은 여대생 미카케가 자신의 유일한 가족이었던 할머니마저 떠나보낸 뒤 겪는 상실감을 꽃집 청년 유이치의 도움으로 극복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바나나의 소설을 담당하고 있는 민음사 문학팀의 이소연씨는 “요시모토 바나나의 경우 꾸준히 매니아층을 확대하고 있어 차기작을 내는 데 큰 부담감이 없다”고 말했다. 국내에서 큰 인기를 얻은 그녀의 작품으로는 ‘불륜과 남미’ ‘히치의 마지막 연인’ ‘하드보일드 하드럭’ 등이 있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에쿠니 가오리, 요시모토 바나나보다 먼저 한국에 상륙했다. 1980년대 말 발간된 ‘상실의 시대’는 매년 3만권 정도씩 꾸준히 팔려 지금까지 약 50만권이 판매됐다. ‘해변의 카프카’ ‘어둠의 저편’도 각각 20만부 이상 팔려나갔다. ‘해변의 카프카’는 뉴욕타임스가 선정한 올해(2005년)의 책 10권에도 포함됐다. 하루키 소설을 펴내고 있는 문학사상사의 정종화 단행본 팀장은 “애틋한 사랑을 하면서도 고독을 느끼는 현대 젊은이의 상실감이 잘 반영돼 꾸준한 인기를 얻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밖에도 오쿠다 히데오의 ‘공중그네’ 가타야마 코이치의 ‘세상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치다’ 등이 2005년 국내 독자로부터 큰 사랑을 받았다. 이들의 선전에 힘입어 2005년 6월에는 교보문고 소설분야 베스트셀러 100위 안에 든 작품수에서 일본 소설(27권)이 한국 소설(22권)을 앞지르기까지 했다.

일본 소설의 이러한 강세는 한·일 합작 소설까지 만들어냈다. 12월 발간된 ‘사랑 후에 오는 것들’(전 2권ㆍ소담출판사)은 한국 작가 공지영과 ‘냉정과 열정 사이’의 공동 저자 쓰지 히토나리가 함께 쓴 것이다. 한국 여성 홍이와 일본 남성 준고의 순수한 사랑을 담은 이 작품은 광복 60년, 한·일 국교 재개 40년, 양국이 정한 ‘한·일 우정의 해’ 기념작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일본 소설이 한국 독자, 특히 10~30대에게 인기를 얻고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첫째는 요즘 젊은이의 고민과 관심사를 주제로 해서 독자가 주인공에게 감정이입 하기가 쉽기 때문이다. 출판 칼럼니스트 한미화씨는 “한국에서 인기를 얻고 있는 일본 소설은 대부분 연애를 주제로 한다”면서 “특히 신세대 여성이 ‘이건 내 이야기’라고 여기며 책 읽는 재미에 빠져들고 있다”고 말했다. 대학생 양민아(21)씨는 “에쿠니 가오리의 소설을 읽을 때는 내가 주인공이 된 것 같은 착각이 든다”고 말했다.

둘째는 무거운 사회적 이슈보다는 개인의 가벼운 일상을 소재로 해서 쉽게 읽어내려갈 수 있기 때문이다. 대학생 최지황(25)씨는 “한번 손에 잡으면 물 흐르듯 책이 읽혀나간다”면서 “어려운 주제들을 잊고 잠시나마 머리를 식힐 수 있어서 좋다”고 말했다.

셋째로는 전문번역가들의 매끄러운 문체를 들 수 있다. 에쿠니 가오리, 요시모토 바나나, 무라카미 하루키의 작품 대부분은 일본문학 전문 번역가인 김난주씨가 맡아오고 있다. 취업을 준비 중인 조원혁(28)씨는 “번역 김난주라는 이름만으로도 믿고 책을 고를 수 있다”면서 “일본어를 한국어로 번역한 느낌이 하나도 들지 않을 정도로 문체와 묘사가 뛰어나다”고 말했다.

그러나 일본 소설들이 영화로 만들어져 한국에 들어왔을 때는 대부분 흥행에서 참패했다. ‘냉정과 열정 사이’ ‘도쿄 타워’ ‘도쿄 데카당스’ ‘토니 타키타니’ 등이 영화로서도 ‘일류(日流)’를 노리다가 쓴잔을 마셨다.

한편 일본 소설의 약진에 비해 한국 소설의 일본 진출은 미비하다. 1970년 이후 한국문학번역원, 대산문화재단 등의 지원으로 일본에서 출간된 한국 문학은 100권 정도이며, 일본 베스트셀러 순위에 든 것은 1990년대 초반 ‘즐거운 사라’(마광수 작)가 유일하다고 한다.

서일호 주간조선 기자(ihseo@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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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만화] 온라인과 눈 맞은 만화 ‘신바람’
2000년 이후부터 인기몰이 하면서 단행본 출판·영화제작에 각종 만화상도 휩쓸어
다양한 스토리에 시장규모도 4년새 3배로... 세계서 유례없는 장르 개척, 독보적 위치

▲ 인터넷 연재후 책으로 묶은 순정만화(왼쪽)와 위대한 캣츠비.

‘인터넷만화’ ‘웹만화’라고 불리는 장르의 만화가 몇 년 전부터 국내에서 인기를 모으고 있다. 인터넷만화가 단행본으로 다시 출판돼 몇십만 부, 심지어는 백만 부 이상을 판매했다는 기사부터 비싼 가격으로 해외에 판권이 팔렸다, 영화화가 결정되어 제작에 착수했다는 등의 기사가 매스컴을 타고 있고, 또 각종 만화상을 인터넷만화가 휩쓰는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과연 인터넷만화는 무엇이고, 또 왜 이처럼 갑자기 주목을 받고 있는 것일까?

인터넷만화란 말 그대로 인터넷상에 게재된 만화를 가리킨다. 우선적으로 인터넷에 올릴 계획을 갖고 제작된 만화도 있지만, 처음부터 인터넷에 게재할 목적으로 만들어진 작품이 아니더라도 출판된 단행본 만화책을 스캔(그림을 컴퓨터 파일로 변환하는 것)해서 서비스하는 ‘스캔만화’ 서비스 역시 인터넷만화의 중요한 시장이다. 다음이나 네이버, 야후 등 대형 인터넷 포털사이트는 어느 곳이나 스캔만화를 중요한 서비스로 초기화면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곳에 배치하고 있다.

최근에는 모바일만화시장, 즉 휴대전화에서 볼 수 있는 소위 ‘모바일만화’도 중요한 시장으로 등장하고 있다. 휴대전화도 온라인이므로 인터넷만화를 포함해 넓은 의미로 온라인 만화라고 할 수 있다.

‘모바일만화’도 중요시장으로 부상

▲ 파페포포 메모리즈.
단행본 스캔만화가 아닌 인터넷 전용 만화는 초기엔 웹페이지에 올리는 그림일기에 가까운 내용과 형식이 많았다. ‘스노우캣’(권윤주 작)과 ‘파페포포 메모리즈’(심승현 작) 등이 그것이다. 하지만 2003년 10월 강풀(본명 강도영)이란 작가가 ‘순정만화’를 연재하면서 거의 매일 인터넷상에서 업데이트되는 형식의 장편 스토리만화를 연재할 수 있다는 가능성이 현실로 드러났다. ‘순정만화’는 폭발적 인기를 끌며 단행본으로도 출간되었고, 지난해에는 일본에 계약금 1억원이라는 거액으로 수출되며 화제를 모았다. 이는 2004년 당시까지 한국만화 사상 최고액 수출가 기록이었다. 또한 최근에는 ‘순정만화’가 강풀 작가의 다른 세 작품 ‘순정만화 시즌2- 바보’ ‘아파트’ ‘타이밍’ 등과 함께 모두 영화화 판권 계약을 맺기도 했다. ‘순정만화’는 연극으로도 선보였다.

‘순정만화’의 인기로 말미암아 온라인 만화에 있어서도 스토리만화의 연재가 가능하다는 점이 명백해졌고, 이는 2004∼2005년을 이어오며 인터넷만화의 획기적인 변화를 가져오게 된다.

한국문화콘텐츠진흥원의 2005년 ‘대한민국 만화대상’ 수상작은 바로 인터넷만화 ‘위대한 캣츠비’(강도하 작)였다. ‘위대한 캣츠비’는 지난해 8월 인터넷에서 연재를 개시했고, 단행본으로도 출판돼 올해 8월부터 현재 3권까지 나왔다. 이 작품은 ‘1001’(양영순 작)과 함께 지난해부터 한국 온라인만화에 중요한 변화를 가져왔다. 강풀 작가가 ‘순정만화’에서 시도했던 온라인만화의 특징적인 종(從)스크롤(화면을 위에서 아래로 내리는 것) 구성, 즉 세로로 마냥 길게 이어지는 화면 구성 기법을 발전시켰고, 뛰어난 연출력과 호소력 있는 스토리로 완성시킨 것이다.

마우스 스크롤 통해 독특한 연출

‘위대한 캣츠비’나 ‘1001’의 경우 최근 PC용 마우스의 기본이 되어 있는 ‘휠마우스’의 휠을 이용해 세로로 스크롤을 해가면서 읽어보면, 대사가 아예 없는 중간 부분에서는 특히나, 대사를 읽을 필요가 없으므로 빠른 속도로 스크롤이 가능하다. 언뜻 보기에는 불필요한 듯 보이는 배경 컷이 다수 배치되어 있는데, 마우스의 휠로 스크롤하면서 보면 마치 ‘애니메이션’처럼 보이는 효과가 느껴진다.

세로로 길게 대사만으로 이어진 빈칸이나 배경만으로 채워진 컷은, 잡지에 연재되는 종이 만화에서였다면 불필요한 공간 낭비, 혹은 작가의 게으름에 의한 편법으로 치부되는 것들이다. 하지만 온라인 만화에서는 이것이 스크롤을 통해 독자에게 독특한 느낌을 가질 수 있게 하고 있는 하나의 연출기법으로 인정되고 있다.

▲ 강도영(필명 강풀), 양영순, 심승현, 원수연(왼쪽부터).

문제는 이러한 인터넷만화의 새로운 시도들이 한국 만화의 긴 역사 속에서도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는 데 있다. 한국만화가협회에 따르면 한국 만화의 시작은 1909년 6월 ‘대한민보’에 실린 이도형의 1칸만화라고 한다. 이것이 한국 신문만화의 효시라고 하는데, 그렇게 따지면 한국 만화의 역사는 무려 100년에 가깝다.

100년에 가까운 역사 속에 한국 만화는 수많은 명작과 인기작을 낳으며 대중의 사랑을 받았다. 신문만화, 대본소(만화가게)만화, 잡지만화, 단행본만화, 그리고 현재의 인터넷만화에 이르기까지 여러 가지 매체를 통해 다양한 걸작이 등장했다. 하지만 한국 만화가 작품으로서가 아니라 만화를 만드는 기법의 측면에서 완전히 색다른 창조를 해낸 적은 매우 드물다. 당초에 신문에 연재된 풍자만화는 영국이나 미국 신문만화의 영향에서 비롯되었고, 이후 대본소만화나 잡지만화 역시 일본의 극화나 잡지 연재만화에 기법적 측면에서 지대한 영향을 받았다. 즉 펜과 먹물을 써서 만화를 그린다는 가장 기초적인 부분에서부터 사용하는 원고용지의 형태, 자나 컴퍼스를 사용하여 선을 긋는 방식, 당초 인쇄용으로 사용되던 ‘스크린톤’이란 용구를 도입하여 흑백원고에서 색채표현을 시도한 것 등, 만화를 그리기 위한 기법 중 한국에서 개발된 것은 없다시피 하다. 또한 ‘말풍선’을 사용한 대사의 표현이나 컷과 화면 분할, 영화적인 연출의 도입, 심지어는 ‘개그만화’ ‘학원만화’ ‘판타지만화’ ‘요리만화’ 등 장르의 개척에 이르기까지 한국 만화의 거의 모든 부분은 해외만화의 영향하에 이루어졌다고 할 수 있다.

이는 신문만화나 카툰이 한국보다 먼저 유럽과 미국에서 만들어져 발전됐고, 일본에서는 흑백만화를 잡지에 장편 연재하는 시스템이 1950년대부터 이미 확립, 1960년대를 거치면서 엄청나게 번성했다는 점에서 비롯된다. 이미 완성된 시스템이 다른 나라에 의해 구축되어 있었기 때문에, 뒤늦게 출발한 한국으로서는 그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 인터넷상에 스캔돼 올려진 김성모의 만화.
하지만 인터넷만화는 다르다. 2005년 현재, 세계에서 인터넷 포털사이트에 만화가 이만큼 대량으로 연재되고 소비되고 있는 국가는 한국밖에 없다. 한국보다 인터넷 사이트 수가 더 많다는 미국이나 일본에서도 아직까지 인터넷만화는 개인이 자신의 홈페이지에 취미로 올려놓는 수준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다만 일본에서는 근래 마이니치신문이 만화전문 포털사이트를 구축했고, 최근에는 온라인 전문 만화잡지가 만들어지기도 하는 등 여러 가지 초보적인 시도는 계속되고 있다.)

그러므로 당연히 한국 이외에 인터넷만화가 이만큼 다량으로 만들어지고 있는 국가는 없으며, 따라서 인터넷만화 특유의 실험적 연출이나 기법적 시도 역시 한국을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인터넷만화의 초기에는 미국이 세계 인터넷 시장의 중심이었기 때문에 미국에서 이루어진 성과가 한국에 그대로 전파되기도 했으나, 최근 3~4년 사이에 한국 인터넷만화의 발전은 실로 눈부시다 아니할 수 없다.

“세계 시장을 주도하라”

조금 과장을 섞어 표현하자면 한국 만화 100년 역사 속에 처음으로 한국 만화가 세계를 주도해나아갈 기회를 잡았다고도 할 수 있다. 물론 인터넷만화라는 장르가 세계적으로도 한국에서만큼 일반화·대중화될 수 있을지는 아직 단언할 수 없다. 하지만 지난 12월 6일자 일본 아사히신문은 한국과 중국, 인도네시아 등지에서 온라인을 중심으로 만화시장이 확장되고 있다는 내용의 기사를 실었다. 이 기사에는 필자의 다음과 같은 코멘트가 들어있다. “만화는 우선 잡지에서 연재한다는 일본식 모델이 한국에서는 무너지기 시작하고 있다. 인터넷만화는 앞으로 아시아 전체에 퍼질 것으로 생각된다.”

2001년 한국문화콘텐츠진흥원의 조사에서 169억원 수준이던 인터넷만화 시장이 지난해에는 350억원 규모로 2배 이상 늘어났다고 업계에선 본다고 한다. 지난 12월 5일자 동아일보 보도에 따르면, 올해에는 인터넷만화시장 규모를 450억원 이상으로 예측하고 있다.

이처럼 확장일로에 있는 한국의 인터넷만화 시장은 새로운 연출에 대한 실험과 색다른 시도를 통해 많은 변화를 겪어왔다. 이와 같은 변화가 시작된 것은 길게 잡아 2000년, 실질적으로는 2003년부터였다. 겨우 2~3년밖에 지나지 않은 셈이다. 하지만 그 2~3년 동안 한국의 인터넷만화는 세계에서도 유례가 드물 만큼 빠른 속도로 성장을 거듭해왔다. 그리고 그 성장 속에 한국 인터넷만화가 구축해놓은 경험은 세계 만화시장에 인터넷만화가 본격적으로 대세를 이룰 즈음에는 분명히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과연 한국의 인터넷만화가 세계 만화시장에서 주류로 편입할 수 있을지, 또 한국식 인터넷만화 제작기법이 세계에서도 통용될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선정우 만화칼럼니스트·만화기획사 코믹팝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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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및인쇄진흥법' 3년, 과연 무엇을 남겼나
작성자 : 관리자 작성일 : 2006/03/06

인터넷서점 종합 베스트셀러 상위에 올라있는 책들을 한번 살펴보라. 신간은 10% 할인과 2-30%의 마일리지, 출간된 지 1년이 지난 구간은 30% 할인과 5% 안팎의 마일리지가 기본이다. 여기다가 할인 쿠폰, 경품, 한 권을 더 끼워주는 1+1은 선택사항이다. 게다가 쿠폰 금액은 갈수록 올라가고 있고, 수만 원을 호가하는 화장품이 몇 만개씩 뿌려지는 경품도 있다. 어떤 베스트셀러는 책값보다 비싼 다이어리를 받기 위해 책을 산다는 쓰라린 이야기도 들린다. 1+1에 끼워주는 책은 자사의 베스트셀러이기 십상이다. 어디 이뿐인가? 신문, 라디오, 지하철에 광고도 해야 하고 자잘한 판촉품과 블로그 운영도 해야 한다.

물론 이런 종류의 할인만 있는 것이 아니다. 논술을 겨냥한다는 어떤 시리즈는 64-70쪽 안팎인데도 정가가 6,500원이나 한다. 외국의 작은 출판사가 펴낸 이 책은 원래 다른 출판사에서 한 권으로 펴내려고 했었다. 만약 한 권으로 펴냈다면 학생 독자를 의식해 15,000원 이상의 정가는 붙이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한 권으로도 족할 책을 15권으로 펴내면 정가는 15,000원에서 97,500원으로 뛰어버리니 무려 6배 이상이다. 물론 이 시리즈는 앞으로 홈쇼핑에 등장할 것이고 50% 이상 할인되면서 소비자를 유혹할 것이다. 그래봐야 3배 이상이다. 이런 경우 마케팅비용은 몽땅 소비자 부담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책은 어떤가? 소설은 초판 3천 부 팔기도 어렵고, 시집은 1-2천 부로 줄어들었다. 인문서는 당연히 1천 부를 넘기기가 어렵다. 신문에 대서특필되어도 서점에서는 미동도 하지 않는 책이 태반이다. 그러니 어쩌겠는가? 일단 신간이라도 늘려야 하지 않겠는가? 이러다 보니 2005년에 발행된 신간은 전년보다 23% 늘어난 4만 3585종이나 된다. 이것도 통계만 제대로 잡혔으면 6만 종이 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렇게 신간이 쏟아지니 도매상에서는 신간작업의 순서를 기다려야 할 판이다. 신간작업이란 도매상이 신간을 소매서점에 골고루 배본하는 것을 말한다. 그 다음 수순은? 대량반품을 받아야 한다. 도매상의 반품은 이미 40%를 넘어서고 있다. 그야말로 윗돌을 빼서 아랫돌을 괴는 꼴이다. 자전거를 탈 때 페달을 계속 밟지 않으면 자전거는 쓰러진다. 신간을 펴내 반품으로 비어버린 공간을 재빨리 메우지 않으면 출판사는 곧 도산한다. 일본에서는 이런 행태를 비유해 '자전거식 경영'이라고 불렀다. 반품의 속도가 빨라지자 이 말이 '프로펠러 경영'으로 바뀌기도 했는데 이제는 '우주선 경영'으로 바뀌어야 할 판이다.

그렇다면 쏟아지는 신간은 어떤가? 눈 씻고 보아도 좋은 책을 찾기란 어렵다. 나는 출판 전문 잡지를 펴내고 있는데 종종 집중서평을 실으려고 책을 고르다가 지쳐 나가떨어진 경험이 있다. 서평을 할 수 있는 책은 몇몇 출판사로 제한된다. 차라리 그런 출판사책만 다루고 싶다는 충동에 빠지기도 하지만 형평성에 어긋난다는 비난에 직면할 것이니 그리 할 수도 없다.

이것이 2003년 2월 27일부터 시행된 '출판및인쇄진흥법' 3년째의 참담한 '성과'다. 결국 그렇게 책을 팔고도 남는 게 있느냐는 탄식이 나오지 않을 수 없다. 대한출판문화협회에는 도서정가제 대책위원회가 구성되어 할인과 경품을 합쳐 5% 안팎으로 바꾸자는 안이 나와 설득력을 얻어가고 있다. 한국출판인회의에서도 유통대책위가 꾸려지는 분위기다.  

하지만 할인공세는 여전하다. 누구 하나 나서서 자정노력을 하자는 말을 하지도 않는다. 그러니 늘 불안하다. 또 대대적인 공세를 통해 대형 베스트셀러를 만들어놓고도 안심을 하지 못한다. 순위에서 내려가자마자 곧 독자의 뇌리에서 사라질 운명이니 말이다. 그러니 누가 사재기를 하는지 눈을 부라리고 난리다. 한국출판인회의가 사재기를 적발했다고 하자 한 대형서점이 이를 무시했다. 한국출판인회의는 대단히 화를 냈지만 대형서점은 말을 잘 듣지 않았다. 내가 대형서점 관계자라도 무시하고 말 것이다. 적발했다고 난리를 치는 사람들 중에 상당수가 조사기간인 작년 10월과 11월 두 달을 제외하고는 똑같은 짓을 했다는 데이터를 가지고 있으니 무시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할 것이다.

자존심이 상한 출판단체에서는 그 대형서점을 협박했다. 긴급하게 이사회를 소집했지만 뒤가 구린 사람이 많아서인지 아니면 그래도 양심적인 사람이 많아서인지 대책위 구성은 쉽게 통과되지 않았고 실행이사회로 위임되었다. 우여곡절 끝에 대책위가 꾸려지고 그 서점에 책을 공급하지 않겠다면서 신문에 그 사실을 광고하겠다고 으름장도 놓는다. 그러나 이것도 우습다. 내 식구가 일을 저질렀는데 옆집에 가서 집안 문제를 해결해 달라는 꼴이니 말이다.

지금 모든 문화계는 영화판을 부러워한다. 스크린쿼터를 지키겠다고 인기배우들이 줄줄이 1인 시위에 나서고 그 사실이 연일 매스컴에 오르내린다. 그렇다면 출판계에서도 잘 나가는 베스트셀러 저자나 출판사 대표가 도서정가제를 몸소 실천하겠다고 1인 시위라도 나서야 하지 않겠는가?

하지만 그럴 움직임은 아직 보이지 않는다. 나만 손해 볼까 두려워 서로 눈치만 보고 있으니, 앞날이 캄캄할 뿐이다. 나는 요즘 대한민국에서 가장 불쌍한 사람이 나라고 말한다. 책 좋아 출판평론가가 됐는데 바닥이 이러니 도통 신이 나지 않는다. 어느 때부터인가 새벽에 일어나 책을 읽는 것이 고역이 되었다. 차라리 예전에 나왔던 좋은 책들을 읽고 싶지만 늘 베스트셀러 분석을 해야 하고 출판의 흐름도 짚어주어야 할 처지니 그렇게 할 수도 없다. 그래서 이번 호에는 이런 하소연으로 종합베스트셀러 분석을 대신한다. 이 점 독자들이 충분히 양해해주시길 간곡히 부탁한다.  

기사게재 : <북새통> 3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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