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및인쇄진흥법' 3년, 과연 무엇을 남겼나
작성자 : 관리자 작성일 : 2006/03/06

인터넷서점 종합 베스트셀러 상위에 올라있는 책들을 한번 살펴보라. 신간은 10% 할인과 2-30%의 마일리지, 출간된 지 1년이 지난 구간은 30% 할인과 5% 안팎의 마일리지가 기본이다. 여기다가 할인 쿠폰, 경품, 한 권을 더 끼워주는 1+1은 선택사항이다. 게다가 쿠폰 금액은 갈수록 올라가고 있고, 수만 원을 호가하는 화장품이 몇 만개씩 뿌려지는 경품도 있다. 어떤 베스트셀러는 책값보다 비싼 다이어리를 받기 위해 책을 산다는 쓰라린 이야기도 들린다. 1+1에 끼워주는 책은 자사의 베스트셀러이기 십상이다. 어디 이뿐인가? 신문, 라디오, 지하철에 광고도 해야 하고 자잘한 판촉품과 블로그 운영도 해야 한다.

물론 이런 종류의 할인만 있는 것이 아니다. 논술을 겨냥한다는 어떤 시리즈는 64-70쪽 안팎인데도 정가가 6,500원이나 한다. 외국의 작은 출판사가 펴낸 이 책은 원래 다른 출판사에서 한 권으로 펴내려고 했었다. 만약 한 권으로 펴냈다면 학생 독자를 의식해 15,000원 이상의 정가는 붙이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한 권으로도 족할 책을 15권으로 펴내면 정가는 15,000원에서 97,500원으로 뛰어버리니 무려 6배 이상이다. 물론 이 시리즈는 앞으로 홈쇼핑에 등장할 것이고 50% 이상 할인되면서 소비자를 유혹할 것이다. 그래봐야 3배 이상이다. 이런 경우 마케팅비용은 몽땅 소비자 부담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책은 어떤가? 소설은 초판 3천 부 팔기도 어렵고, 시집은 1-2천 부로 줄어들었다. 인문서는 당연히 1천 부를 넘기기가 어렵다. 신문에 대서특필되어도 서점에서는 미동도 하지 않는 책이 태반이다. 그러니 어쩌겠는가? 일단 신간이라도 늘려야 하지 않겠는가? 이러다 보니 2005년에 발행된 신간은 전년보다 23% 늘어난 4만 3585종이나 된다. 이것도 통계만 제대로 잡혔으면 6만 종이 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렇게 신간이 쏟아지니 도매상에서는 신간작업의 순서를 기다려야 할 판이다. 신간작업이란 도매상이 신간을 소매서점에 골고루 배본하는 것을 말한다. 그 다음 수순은? 대량반품을 받아야 한다. 도매상의 반품은 이미 40%를 넘어서고 있다. 그야말로 윗돌을 빼서 아랫돌을 괴는 꼴이다. 자전거를 탈 때 페달을 계속 밟지 않으면 자전거는 쓰러진다. 신간을 펴내 반품으로 비어버린 공간을 재빨리 메우지 않으면 출판사는 곧 도산한다. 일본에서는 이런 행태를 비유해 '자전거식 경영'이라고 불렀다. 반품의 속도가 빨라지자 이 말이 '프로펠러 경영'으로 바뀌기도 했는데 이제는 '우주선 경영'으로 바뀌어야 할 판이다.

그렇다면 쏟아지는 신간은 어떤가? 눈 씻고 보아도 좋은 책을 찾기란 어렵다. 나는 출판 전문 잡지를 펴내고 있는데 종종 집중서평을 실으려고 책을 고르다가 지쳐 나가떨어진 경험이 있다. 서평을 할 수 있는 책은 몇몇 출판사로 제한된다. 차라리 그런 출판사책만 다루고 싶다는 충동에 빠지기도 하지만 형평성에 어긋난다는 비난에 직면할 것이니 그리 할 수도 없다.

이것이 2003년 2월 27일부터 시행된 '출판및인쇄진흥법' 3년째의 참담한 '성과'다. 결국 그렇게 책을 팔고도 남는 게 있느냐는 탄식이 나오지 않을 수 없다. 대한출판문화협회에는 도서정가제 대책위원회가 구성되어 할인과 경품을 합쳐 5% 안팎으로 바꾸자는 안이 나와 설득력을 얻어가고 있다. 한국출판인회의에서도 유통대책위가 꾸려지는 분위기다.  

하지만 할인공세는 여전하다. 누구 하나 나서서 자정노력을 하자는 말을 하지도 않는다. 그러니 늘 불안하다. 또 대대적인 공세를 통해 대형 베스트셀러를 만들어놓고도 안심을 하지 못한다. 순위에서 내려가자마자 곧 독자의 뇌리에서 사라질 운명이니 말이다. 그러니 누가 사재기를 하는지 눈을 부라리고 난리다. 한국출판인회의가 사재기를 적발했다고 하자 한 대형서점이 이를 무시했다. 한국출판인회의는 대단히 화를 냈지만 대형서점은 말을 잘 듣지 않았다. 내가 대형서점 관계자라도 무시하고 말 것이다. 적발했다고 난리를 치는 사람들 중에 상당수가 조사기간인 작년 10월과 11월 두 달을 제외하고는 똑같은 짓을 했다는 데이터를 가지고 있으니 무시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할 것이다.

자존심이 상한 출판단체에서는 그 대형서점을 협박했다. 긴급하게 이사회를 소집했지만 뒤가 구린 사람이 많아서인지 아니면 그래도 양심적인 사람이 많아서인지 대책위 구성은 쉽게 통과되지 않았고 실행이사회로 위임되었다. 우여곡절 끝에 대책위가 꾸려지고 그 서점에 책을 공급하지 않겠다면서 신문에 그 사실을 광고하겠다고 으름장도 놓는다. 그러나 이것도 우습다. 내 식구가 일을 저질렀는데 옆집에 가서 집안 문제를 해결해 달라는 꼴이니 말이다.

지금 모든 문화계는 영화판을 부러워한다. 스크린쿼터를 지키겠다고 인기배우들이 줄줄이 1인 시위에 나서고 그 사실이 연일 매스컴에 오르내린다. 그렇다면 출판계에서도 잘 나가는 베스트셀러 저자나 출판사 대표가 도서정가제를 몸소 실천하겠다고 1인 시위라도 나서야 하지 않겠는가?

하지만 그럴 움직임은 아직 보이지 않는다. 나만 손해 볼까 두려워 서로 눈치만 보고 있으니, 앞날이 캄캄할 뿐이다. 나는 요즘 대한민국에서 가장 불쌍한 사람이 나라고 말한다. 책 좋아 출판평론가가 됐는데 바닥이 이러니 도통 신이 나지 않는다. 어느 때부터인가 새벽에 일어나 책을 읽는 것이 고역이 되었다. 차라리 예전에 나왔던 좋은 책들을 읽고 싶지만 늘 베스트셀러 분석을 해야 하고 출판의 흐름도 짚어주어야 할 처지니 그렇게 할 수도 없다. 그래서 이번 호에는 이런 하소연으로 종합베스트셀러 분석을 대신한다. 이 점 독자들이 충분히 양해해주시길 간곡히 부탁한다.  

기사게재 : <북새통> 3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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