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드라마, 영화, 가요에 있어서는 ‘한류(韓流)’ 바람이 거세지만 소설 분야에 있어서는 ‘일류(日流)’가 강세다. 그 선봉에는 작가 에쿠니 가오리, 요시모토 바나나, 무라카미 하루키 등이 있다.
먼저 에쿠니 가오리가 쓰지 히토나리와 함께 쓴 ‘냉정과 열정 사이’는 2000년 초판 발행 이후 지금까지 약 80만권이 팔렸다. 이 작품은 이탈리아 피렌체에서 중세회화 복원사로 일하는 준세이와 밀라노에 사는 여인 아오이의 슬픈 사랑을 그렸다. 에쿠니 가오리의 소설을 꾸준히 내고 있는 소담출판사의 이장선 차장은 “남녀가 서로 다른 시각에서 사랑을 풀어내 독립된 2권의 책으로 펴낸 것이 독자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데 한몫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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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교보문고 '일본소설' 코너에 많은 여성 독자들이 몰리고 있다. |
또 지난 10월 발간된 에쿠니 가오리의 ‘도쿄 타워’는 초판으로만 2만권을 찍었고 지금까지 약 11만권이 판매됐다. 이밖에도 ‘반짝반짝 빛나는’ ‘울 준비는 되어있다’ ‘당신의 주말은 몇 개입니까’ ‘낙하하는 저녁’ 등이 독자의 사랑을 받고 있다.
요시모토 바나나의 ‘키친’은 1999년 발매 이후 지금까지 약 25만권이 팔렸다. 1988년 일본에서 초판을 찍은 ‘키친’은 18개국에서 번역됐다. 이 작품은 여대생 미카케가 자신의 유일한 가족이었던 할머니마저 떠나보낸 뒤 겪는 상실감을 꽃집 청년 유이치의 도움으로 극복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바나나의 소설을 담당하고 있는 민음사 문학팀의 이소연씨는 “요시모토 바나나의 경우 꾸준히 매니아층을 확대하고 있어 차기작을 내는 데 큰 부담감이 없다”고 말했다. 국내에서 큰 인기를 얻은 그녀의 작품으로는 ‘불륜과 남미’ ‘히치의 마지막 연인’ ‘하드보일드 하드럭’ 등이 있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에쿠니 가오리, 요시모토 바나나보다 먼저 한국에 상륙했다. 1980년대 말 발간된 ‘상실의 시대’는 매년 3만권 정도씩 꾸준히 팔려 지금까지 약 50만권이 판매됐다. ‘해변의 카프카’ ‘어둠의 저편’도 각각 20만부 이상 팔려나갔다. ‘해변의 카프카’는 뉴욕타임스가 선정한 올해(2005년)의 책 10권에도 포함됐다. 하루키 소설을 펴내고 있는 문학사상사의 정종화 단행본 팀장은 “애틋한 사랑을 하면서도 고독을 느끼는 현대 젊은이의 상실감이 잘 반영돼 꾸준한 인기를 얻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밖에도 오쿠다 히데오의 ‘공중그네’ 가타야마 코이치의 ‘세상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치다’ 등이 2005년 국내 독자로부터 큰 사랑을 받았다. 이들의 선전에 힘입어 2005년 6월에는 교보문고 소설분야 베스트셀러 100위 안에 든 작품수에서 일본 소설(27권)이 한국 소설(22권)을 앞지르기까지 했다.
일본 소설의 이러한 강세는 한·일 합작 소설까지 만들어냈다. 12월 발간된 ‘사랑 후에 오는 것들’(전 2권ㆍ소담출판사)은 한국 작가 공지영과 ‘냉정과 열정 사이’의 공동 저자 쓰지 히토나리가 함께 쓴 것이다. 한국 여성 홍이와 일본 남성 준고의 순수한 사랑을 담은 이 작품은 광복 60년, 한·일 국교 재개 40년, 양국이 정한 ‘한·일 우정의 해’ 기념작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일본 소설이 한국 독자, 특히 10~30대에게 인기를 얻고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첫째는 요즘 젊은이의 고민과 관심사를 주제로 해서 독자가 주인공에게 감정이입 하기가 쉽기 때문이다. 출판 칼럼니스트 한미화씨는 “한국에서 인기를 얻고 있는 일본 소설은 대부분 연애를 주제로 한다”면서 “특히 신세대 여성이 ‘이건 내 이야기’라고 여기며 책 읽는 재미에 빠져들고 있다”고 말했다. 대학생 양민아(21)씨는 “에쿠니 가오리의 소설을 읽을 때는 내가 주인공이 된 것 같은 착각이 든다”고 말했다.
둘째는 무거운 사회적 이슈보다는 개인의 가벼운 일상을 소재로 해서 쉽게 읽어내려갈 수 있기 때문이다. 대학생 최지황(25)씨는 “한번 손에 잡으면 물 흐르듯 책이 읽혀나간다”면서 “어려운 주제들을 잊고 잠시나마 머리를 식힐 수 있어서 좋다”고 말했다.
셋째로는 전문번역가들의 매끄러운 문체를 들 수 있다. 에쿠니 가오리, 요시모토 바나나, 무라카미 하루키의 작품 대부분은 일본문학 전문 번역가인 김난주씨가 맡아오고 있다. 취업을 준비 중인 조원혁(28)씨는 “번역 김난주라는 이름만으로도 믿고 책을 고를 수 있다”면서 “일본어를 한국어로 번역한 느낌이 하나도 들지 않을 정도로 문체와 묘사가 뛰어나다”고 말했다.
그러나 일본 소설들이 영화로 만들어져 한국에 들어왔을 때는 대부분 흥행에서 참패했다. ‘냉정과 열정 사이’ ‘도쿄 타워’ ‘도쿄 데카당스’ ‘토니 타키타니’ 등이 영화로서도 ‘일류(日流)’를 노리다가 쓴잔을 마셨다.
한편 일본 소설의 약진에 비해 한국 소설의 일본 진출은 미비하다. 1970년 이후 한국문학번역원, 대산문화재단 등의 지원으로 일본에서 출간된 한국 문학은 100권 정도이며, 일본 베스트셀러 순위에 든 것은 1990년대 초반 ‘즐거운 사라’(마광수 작)가 유일하다고 한다.
서일호 주간조선 기자(ihseo@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