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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터넷 연재후 책으로 묶은 순정만화(왼쪽)와 위대한 캣츠비. |
‘인터넷만화’ ‘웹만화’라고 불리는 장르의 만화가 몇 년 전부터 국내에서 인기를 모으고 있다. 인터넷만화가 단행본으로 다시 출판돼 몇십만 부, 심지어는 백만 부 이상을 판매했다는 기사부터 비싼 가격으로 해외에 판권이 팔렸다, 영화화가 결정되어 제작에 착수했다는 등의 기사가 매스컴을 타고 있고, 또 각종 만화상을 인터넷만화가 휩쓰는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과연 인터넷만화는 무엇이고, 또 왜 이처럼 갑자기 주목을 받고 있는 것일까?
인터넷만화란 말 그대로 인터넷상에 게재된 만화를 가리킨다. 우선적으로 인터넷에 올릴 계획을 갖고 제작된 만화도 있지만, 처음부터 인터넷에 게재할 목적으로 만들어진 작품이 아니더라도 출판된 단행본 만화책을 스캔(그림을 컴퓨터 파일로 변환하는 것)해서 서비스하는 ‘스캔만화’ 서비스 역시 인터넷만화의 중요한 시장이다. 다음이나 네이버, 야후 등 대형 인터넷 포털사이트는 어느 곳이나 스캔만화를 중요한 서비스로 초기화면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곳에 배치하고 있다.
최근에는 모바일만화시장, 즉 휴대전화에서 볼 수 있는 소위 ‘모바일만화’도 중요한 시장으로 등장하고 있다. 휴대전화도 온라인이므로 인터넷만화를 포함해 넓은 의미로 온라인 만화라고 할 수 있다.
‘모바일만화’도 중요시장으로 부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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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파페포포 메모리즈. |
단행본 스캔만화가 아닌 인터넷 전용 만화는 초기엔 웹페이지에 올리는 그림일기에 가까운 내용과 형식이 많았다. ‘스노우캣’(권윤주 작)과 ‘파페포포 메모리즈’(심승현 작) 등이 그것이다. 하지만 2003년 10월 강풀(본명 강도영)이란 작가가 ‘순정만화’를 연재하면서 거의 매일 인터넷상에서 업데이트되는 형식의 장편 스토리만화를 연재할 수 있다는 가능성이 현실로 드러났다. ‘순정만화’는 폭발적 인기를 끌며 단행본으로도 출간되었고, 지난해에는 일본에 계약금 1억원이라는 거액으로 수출되며 화제를 모았다. 이는 2004년 당시까지 한국만화 사상 최고액 수출가 기록이었다. 또한 최근에는 ‘순정만화’가 강풀 작가의 다른 세 작품 ‘순정만화 시즌2- 바보’ ‘아파트’ ‘타이밍’ 등과 함께 모두 영화화 판권 계약을 맺기도 했다. ‘순정만화’는 연극으로도 선보였다.
‘순정만화’의 인기로 말미암아 온라인 만화에 있어서도 스토리만화의 연재가 가능하다는 점이 명백해졌고, 이는 2004∼2005년을 이어오며 인터넷만화의 획기적인 변화를 가져오게 된다.
한국문화콘텐츠진흥원의 2005년 ‘대한민국 만화대상’ 수상작은 바로 인터넷만화 ‘위대한 캣츠비’(강도하 작)였다. ‘위대한 캣츠비’는 지난해 8월 인터넷에서 연재를 개시했고, 단행본으로도 출판돼 올해 8월부터 현재 3권까지 나왔다. 이 작품은 ‘1001’(양영순 작)과 함께 지난해부터 한국 온라인만화에 중요한 변화를 가져왔다. 강풀 작가가 ‘순정만화’에서 시도했던 온라인만화의 특징적인 종(從)스크롤(화면을 위에서 아래로 내리는 것) 구성, 즉 세로로 마냥 길게 이어지는 화면 구성 기법을 발전시켰고, 뛰어난 연출력과 호소력 있는 스토리로 완성시킨 것이다.
마우스 스크롤 통해 독특한 연출
‘위대한 캣츠비’나 ‘1001’의 경우 최근 PC용 마우스의 기본이 되어 있는 ‘휠마우스’의 휠을 이용해 세로로 스크롤을 해가면서 읽어보면, 대사가 아예 없는 중간 부분에서는 특히나, 대사를 읽을 필요가 없으므로 빠른 속도로 스크롤이 가능하다. 언뜻 보기에는 불필요한 듯 보이는 배경 컷이 다수 배치되어 있는데, 마우스의 휠로 스크롤하면서 보면 마치 ‘애니메이션’처럼 보이는 효과가 느껴진다.
세로로 길게 대사만으로 이어진 빈칸이나 배경만으로 채워진 컷은, 잡지에 연재되는 종이 만화에서였다면 불필요한 공간 낭비, 혹은 작가의 게으름에 의한 편법으로 치부되는 것들이다. 하지만 온라인 만화에서는 이것이 스크롤을 통해 독자에게 독특한 느낌을 가질 수 있게 하고 있는 하나의 연출기법으로 인정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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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강도영(필명 강풀), 양영순, 심승현, 원수연(왼쪽부터). |
문제는 이러한 인터넷만화의 새로운 시도들이 한국 만화의 긴 역사 속에서도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는 데 있다. 한국만화가협회에 따르면 한국 만화의 시작은 1909년 6월 ‘대한민보’에 실린 이도형의 1칸만화라고 한다. 이것이 한국 신문만화의 효시라고 하는데, 그렇게 따지면 한국 만화의 역사는 무려 100년에 가깝다.
100년에 가까운 역사 속에 한국 만화는 수많은 명작과 인기작을 낳으며 대중의 사랑을 받았다. 신문만화, 대본소(만화가게)만화, 잡지만화, 단행본만화, 그리고 현재의 인터넷만화에 이르기까지 여러 가지 매체를 통해 다양한 걸작이 등장했다. 하지만 한국 만화가 작품으로서가 아니라 만화를 만드는 기법의 측면에서 완전히 색다른 창조를 해낸 적은 매우 드물다. 당초에 신문에 연재된 풍자만화는 영국이나 미국 신문만화의 영향에서 비롯되었고, 이후 대본소만화나 잡지만화 역시 일본의 극화나 잡지 연재만화에 기법적 측면에서 지대한 영향을 받았다. 즉 펜과 먹물을 써서 만화를 그린다는 가장 기초적인 부분에서부터 사용하는 원고용지의 형태, 자나 컴퍼스를 사용하여 선을 긋는 방식, 당초 인쇄용으로 사용되던 ‘스크린톤’이란 용구를 도입하여 흑백원고에서 색채표현을 시도한 것 등, 만화를 그리기 위한 기법 중 한국에서 개발된 것은 없다시피 하다. 또한 ‘말풍선’을 사용한 대사의 표현이나 컷과 화면 분할, 영화적인 연출의 도입, 심지어는 ‘개그만화’ ‘학원만화’ ‘판타지만화’ ‘요리만화’ 등 장르의 개척에 이르기까지 한국 만화의 거의 모든 부분은 해외만화의 영향하에 이루어졌다고 할 수 있다.
이는 신문만화나 카툰이 한국보다 먼저 유럽과 미국에서 만들어져 발전됐고, 일본에서는 흑백만화를 잡지에 장편 연재하는 시스템이 1950년대부터 이미 확립, 1960년대를 거치면서 엄청나게 번성했다는 점에서 비롯된다. 이미 완성된 시스템이 다른 나라에 의해 구축되어 있었기 때문에, 뒤늦게 출발한 한국으로서는 그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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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터넷상에 스캔돼 올려진 김성모의 만화. |
하지만 인터넷만화는 다르다. 2005년 현재, 세계에서 인터넷 포털사이트에 만화가 이만큼 대량으로 연재되고 소비되고 있는 국가는 한국밖에 없다. 한국보다 인터넷 사이트 수가 더 많다는 미국이나 일본에서도 아직까지 인터넷만화는 개인이 자신의 홈페이지에 취미로 올려놓는 수준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다만 일본에서는 근래 마이니치신문이 만화전문 포털사이트를 구축했고, 최근에는 온라인 전문 만화잡지가 만들어지기도 하는 등 여러 가지 초보적인 시도는 계속되고 있다.)
그러므로 당연히 한국 이외에 인터넷만화가 이만큼 다량으로 만들어지고 있는 국가는 없으며, 따라서 인터넷만화 특유의 실험적 연출이나 기법적 시도 역시 한국을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인터넷만화의 초기에는 미국이 세계 인터넷 시장의 중심이었기 때문에 미국에서 이루어진 성과가 한국에 그대로 전파되기도 했으나, 최근 3~4년 사이에 한국 인터넷만화의 발전은 실로 눈부시다 아니할 수 없다.
“세계 시장을 주도하라”
조금 과장을 섞어 표현하자면 한국 만화 100년 역사 속에 처음으로 한국 만화가 세계를 주도해나아갈 기회를 잡았다고도 할 수 있다. 물론 인터넷만화라는 장르가 세계적으로도 한국에서만큼 일반화·대중화될 수 있을지는 아직 단언할 수 없다. 하지만 지난 12월 6일자 일본 아사히신문은 한국과 중국, 인도네시아 등지에서 온라인을 중심으로 만화시장이 확장되고 있다는 내용의 기사를 실었다. 이 기사에는 필자의 다음과 같은 코멘트가 들어있다. “만화는 우선 잡지에서 연재한다는 일본식 모델이 한국에서는 무너지기 시작하고 있다. 인터넷만화는 앞으로 아시아 전체에 퍼질 것으로 생각된다.”
2001년 한국문화콘텐츠진흥원의 조사에서 169억원 수준이던 인터넷만화 시장이 지난해에는 350억원 규모로 2배 이상 늘어났다고 업계에선 본다고 한다. 지난 12월 5일자 동아일보 보도에 따르면, 올해에는 인터넷만화시장 규모를 450억원 이상으로 예측하고 있다.
이처럼 확장일로에 있는 한국의 인터넷만화 시장은 새로운 연출에 대한 실험과 색다른 시도를 통해 많은 변화를 겪어왔다. 이와 같은 변화가 시작된 것은 길게 잡아 2000년, 실질적으로는 2003년부터였다. 겨우 2~3년밖에 지나지 않은 셈이다. 하지만 그 2~3년 동안 한국의 인터넷만화는 세계에서도 유례가 드물 만큼 빠른 속도로 성장을 거듭해왔다. 그리고 그 성장 속에 한국 인터넷만화가 구축해놓은 경험은 세계 만화시장에 인터넷만화가 본격적으로 대세를 이룰 즈음에는 분명히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과연 한국의 인터넷만화가 세계 만화시장에서 주류로 편입할 수 있을지, 또 한국식 인터넷만화 제작기법이 세계에서도 통용될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선정우 만화칼럼니스트·만화기획사 코믹팝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