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 출판의 위기? 우리는 돌파한다
좀더 고민이 필요할 뿐, 널리 유포되고 있는 출판의 위기에 관한 담론에 동의하지 않는다는 열정적인 출판인들을 만났다. 소신 있는 기획으로 유명한 이들이 내놓은 해법은 무엇일까.
 

[19호] 2008년 01월 21일 (월) 13:02:20 노순동 차형석 기자 cha@sisain.co.kr
 

‘출판계 불황’이라는 말은 해마다 반복된다. 상투적 뉴스에 가깝다. 그 중에서도 ‘출판의 꽃’이라 할 수 있는 인문·학술 출판은 역설적으로 위기라는 말이 더 자주 들려온다. 해마다 꾸준히 인문·학술 서적 20여 종 안팎을 출판하는 4개 출판사 대표와 기획자가 모였다. <인물과 사상> 시리즈를 펴낸 바 있는 개마고원은 그동안 고종석·손석춘·강준만 등 비판적 지식인의 책을 펴냈다. 그린비는 연구 공동체 ‘수유+너머’와 긴밀한 관계를 맺으며 인문·철학 서적을 주로 출간한다. 도서출판 길은 묵직한 학술서적을 주로 펴내왔고, 이매진은 정치학자 손호철 교수의 책과 젊은 연구자들의 ‘젊은 인문서’를 출간하고 있다. 각 출판사의 올해 출간 방향에서부터 이야기를 시작했다.

- 출판사별로 올해 출간 방향이나 계획이 어떻습니까?



   
 
ⓒ시사IN 한향란유재건 (그린비 대표)  “출판이 만약 어렵다면, 돌파할 다양한 방법을 찾아야 한다. 인문·사회과학 출판도 오디오북이나, e-러닝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 콘텐츠 자체의 쇄신도 필요하지만 미디어적 관점에서 고민을 병행해야 한다.”
 
 
유재건 (그린비 대표)
: 인문 출판이 힘을 발휘하려면 종수가 늘어야 한다. 인문서의 판매 부수가 2000~3000부 수준이라고 볼 때, 매출을 높이려면 종수를 늘리는 것도 방법이다. 그린비는 올해 34종을 출간하고, 향후 2~3년 안에 한 해 50종 정도 내는 출판사를 목표로 하고 있다. 주마다 한 권씩 책을 펴내 단행본의 깊이를 갖되 현실 문제에 답하는 순발력을 발휘하고 싶다. 올해 출간의 주요 방향은 ‘근대’이다. 근대는 어떻게 생겨났고, 근대를 넘어서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 근대의 원점부터 비판적으로 살펴보려고 한다. 현안에 발 빠르게 대응하는 것은 인문 출판이 하기 힘든 측면이 있다. 대신 저변에서 이론적 기반을 제공하는 작업을 지속하고 싶다.

이승우 (도서출판 길 기획실장) : 우리 출판사가 생긴 지 5년 정도 되었다. 지난해 19종을 냈고, 올해 40~50종 정도 출간할 계획이다. 현재 기획된 책이 200종쯤 되는데, 올해부터 본격으로 나오기 시작한다. 출판사의 색깔을 확실히 드러낼 책들을 내고 싶다. 중역을 하지 않고, 전공자에 의한, 주해가 충실한 엄밀한 결정판본을 내자는 생각이다. 마르크스의 <자본론> 독일어 원전 번역본이나 동서양 고전을 집중해서 번역 출판할 계획이다.

장의덕 (개마고원 대표) : 두 출판사는 모색기를 거쳐 자기 색깔을 확실히 잡은 것 같다. 개마고원은 <인물과 사상> 이후 몇 년 동안 방향을 잃었다. 그동안 국내 기획서 중심으로, 학술서보다는 사회과학적 문제의식을 대중적으로 접근하는 작업을 해왔는데, 쉽지 않았다. 독자 대상에 관한 고민이 크다. 인문·사회과학 출판사들은 ‘이제 대학생은 독자층에서 사라진 것 아닌가’ 걱정한다. 대학생 개인이 아니라, 구조적 문제가 있다. ‘인문적 소양이 먹고사는 데 도움이 안 된다’고 사회가 강요하는 형국이다. 개마고원의 주 독자층은 386세대(30대 후반, 40대 초반)이다. 그런데 눈높이를 386으로만 잡아서는 도저히 안 되겠다. 이제는 ‘10대 좌파’를 발굴하는 기획을 중심에 두고 있다(좌파가 별건가? 세상에 대한 문제의식을 말하는 거다). 10대들이 사회에 대해 진취적이고, 진보적 의식을 갖게 하는 데 도움이 되는 책을 준비 중이다. 20종 내외를 펴낼 계획이다.

정철수 (이매진 대표) : 2004년부터 시작한 젊은 출판사로 그동안 60종을 냈다. 작은 출판사가 생존을 해야 하니까, 종수는 20~25종으로 늘릴 것이다. 학술출판 종수를 늘리거나 동서양 고전에 천착하는 방식은 선택하지 않기로 했다. 이미 그런 책을 내는 출판사가 있기 때문에. 인문·사회과학 출판의 틈새를 찾아 다양성을 확보하자는 게 목표다. 20대 후반, 30대 초반 젊은 연구자들을 신진 필자로 키우는 전략을 택했다. 석사 학위자를 포함해 필자를 발굴하는 데 관심을 갖고 있다.

유재건 : 4개 출판사가 차이가 많다. 경쟁하지 않아서 좋다(일동 웃음).

- 각 출판사가 종수를 늘리려는 경향이 눈에 띈다. 그런데 인문·사회과학 출판이 어렵다고 하지 않는가?

유재건 : 인문·사회과학 출판이 힘들다고 하는데…아니다, 저는 어렵지 않다. 다만 위기론 같은 담론이 유포되는 것이 문제라고 본다(일동 웃음). 판매 부수 때문인지, 종수가 적어서 어려운지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 그린비에서는 인문학 서적이 1000부 정도 팔려도 출판사 운영이 되는 구조를 만들고 싶다. 출판이 만약 어렵다면, 돌파할 다양한 방법을 찾아야 한다. 인문·사회과학 출판도 오디오북이나, e-러닝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 콘텐츠 자체의 쇄신도 필요하지만 전달 방식 등 미디어적 관점에서 고민을 병행해야 한다. 미디어적 실험이 함께 가야, 인문학 출판의 희망을 말할 수 있다.
그린비에서는 연구자를 모시고 내부 강의를 많이 한다. 그거를 전부 녹음하고 홈페이지를 통해 독자에게 제공할 계획이다. 이런 경험이 쌓이면 4~5년 후에 ‘원 소스 멀티 유스’의 방법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시사IN 한향란이승우 (도서출판 길 기획실장)  “인문서는 그 책의 주제를 전공한 전공자가 번역하는 출판 문화가 필요하다. 비전공자가 번역을 하는 경우, 번역이 엄밀하지 못하고 황당한 오역이 생긴다. 출판 편집자나 기획자가 번역자를 찾는 노력이 중요하다.”
 
 
이승우
: 13년째 출판계에 몸담고 있는데, 우리 출판사는 완전히 복고주의다(일동 웃음). 한국 출판이 100년이 되었는데도, 정통·정도·중심을 잡아주는 출판사가 없다. 별처럼 빛나는 출판사들이 경영 세습 등 변화를 겪으면서 제 역할을 못하고 있다. 우리 출판사는 책 출간 여부를 결정할 때 몇 부 팔릴까 생각 안 한다. 품질이 보장된다면 출간한다. 400~500부만 팔려도 낸다. 책만 잘 만들면, 진정한 독자는 본다.

장의덕 : 두 사람과 조금 의견이 다르다. ‘좋은 책을 내면 독자는 본다’는 말은 말문을 막아버리게 만든다. 책이 안 나갔을 경우에 할 말이 없게 되는 거다. 개마고원처럼 인문 대중서를 펴는 출판사로서는 부수에 대한 고민 없이 책을 출간할 수 없다. 그리고 전반적으로 인문·사회과학 책 가운데 재판을 찍는 비율이 떨어지고 있다. 심각한 수준이다. 게다가 초판 부수도 적다. 이전에 3000부 초판을 찍다가 지금은 1500~2000부 발간한다. 대중에게 다가가려고 하는 데 실패하는 것이 기획력의 부족이라 할 수도 있지만 그것만으로는 설명이 안 되는 답답함이 있다. 책 읽는 풍토의 문제인지, 교육제도의 문제까지 거론해야 할지… 해답이 잘 안 보여 답답하다.

정철수 : 이매진의 주 독자층도 개마고원과 비슷하다. 인문 출판의 위기가 매출의 감소도 있지만 책 만드는 사람들의 문제도 있다. 젊은 층이 독자층에서 사라지고, 더불어 편집자도 그 세대에서 배출되지 않고 있다. 현재 외국에서 나오는 최신 이론을 소화할 만한 젊은 편집자가 없다. 그렇게 되면 교정이나 교열도 불가능하다. 30대 중반인 우리 세대가 50대까지 현역에 있어야 하는 거 아니냐고, 출판 동료들과 말을 나눈 적이 있다(웃음). 이렇게 되면 ‘1인 출판’을 해야 하는 것 아닌가 고민스러울 지경이다.

유재건 : 한국에서 인문·사회과학 출판은 새로움과 독창성으로 발언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본다. 예를 들어 <자본론>을 독일어 원전 번역하는 것은 새로운 일이기 때문에 의미가 있다. 한국 사회에 그런 새로움이 필요한 시기다.
독자를 키워내야 한다. 인문 출판이 살아남으려면 판을 키워야 한다. 고용을 창출하고, 우수한 인재들이 인문 출판을 하겠다고 들어올 수 있게 해야 한다. 경영을 합리화하고, 규모를 일정 정도 늘려야 한다.
지금 상태에서는 초판 2000부만 팔리는 것을 전제로 사업 모델을 고민해야 하지 않을까. 자기 일관성을 가지고 시장에 휘둘리지 않기 위해서다. 보이지도 않는 시장성을 생각하면 답이 없다. 우리 출판계의 실력이라면 독자 2000명은 포착할 수 있다. 충성 독자를 500명, 확산 독자를 3000명 잡고서 사업모델을 잡는 것을 고민한다.

- 2007년 인문·사회과학 출판에서 주목할 만한 화두나 출판사가 있었다면?


   
 
ⓒ시사IN 한향란장의덕 (개마고원 대표)  “인문·사회과학 책 가운데 재판을 찍는 비율이 떨어지고 있다. 심각한 수준이다. 대중에게 다가가는 데 실패하는 것이 기획력의 부족이라 할 수도 있지만 그것만으로는 설명이 안 되는 답답함이 있다.”
 
 
장의덕
: 지난해 한국의 사회과학 출판사 체면은 후마니타스가 다 세웠다고 본다. 후마니타스가 없었다면, 한국 사회과학 출판은 정말 ‘쪽팔렸겠다’. <법률사무소 김앤장> 같은 책은 현실 밀착적이다. 이런 책이 나온 것은 매우 의미가 크다. 또 <88만원 세대>는 중학생, 고등학생도 이해할 수 있는 수준으로 쉽게 쓰였다. 어렵지 않으면서도 내용의 함의가 깊다.

유재건 : 강명관 교수가 쓴 <조선의 책벌레들>이 인상적이었다. 한국 사회에서 지식 생산과 수용의 문제를 생각하게 만들었다. 저자는 지난해 학술서 4권을 냈는데, 그 책을 다 읽고 싶은 욕망이 생겼다. 좋은 책은 찾아 읽게 하고, 독자가 지식의 세계에 한껏 욕심을 내게 만드는 책이다. <88만원 세대>에 대한 평가에 동의한다.

이승우 : 강명관 교수의 다른 연구들이 인상적이었다. 실학 담론에 대한 본격 문제 제기였는데, 학계에서 반응이 없는 것이 이상했다. 김동춘 교수가 쓴 <1997년 이후 한국 사회의 성찰>은 ‘기업 사회’ 문제를 다루었다. 그로부터 10개월 만에 삼성 문제가 터졌다. 한국 사회가 기업사회화하는 것을 예리하게 짚었다.
정철수 : 꼽는 책들이 겹친다. 저도 <88만원세대>이다.

- 꼽는 책들이 주로 국내 필자가 쓴 것이다. 그런데 2008년 출간 예정작 리스트를 보면 국내 필자가 쓴 책의 비중이 크지 않다. 개마고원이 참석한 다른 출판사에 비해 국내서 비중이 높은데, 어떻게 생각하는가?

장의덕 : 국내 기획서는 초안을 잡아서 청탁하고 책이 나오기까지 품이 많이 든다. 지난해 낸 책 가운데 한 권은 기획하고, 필자 찾고, 청탁하고, 출간까지 5년이 걸렸다. 청탁하고 나서 원고 펑크나고, 또다시 청탁하고. 필자가 서너 번 바뀌었다. 그런 사례가 비일비재하다. 교수들은 자기 논문을 묶어내면 폼도 나고 실적도 쌓인다. 전공서는 낸다. 그런데 인문 대중서는 기피한다. 쓰는 데 품이 많이 들어서다. 전공서를 쓰는 것보다 훨씬 어렵다. 그렇게 힘들게 써도 기껏 2000~3000부 나가는 상황이다. 그러니 책을 쓰려고 하겠는가? 그러다 보니 필자를 구하기가 너무 힘들다. 지난해 국내 필자가 집필하는 시리즈 12권을 내기로 했는데, 딱 한 권 나왔다. 필자가 없어서다.


   
 
ⓒ시사IN 한향란정철수 (이매진 대표)  “인문 출판의 위기가 매출의 감소도 있지만 책 만드는 사람들의 문제도 있다. 젊은 층이 독자층에서 사라지고, 더불어 편집자도 그 세대에서 배출되지 않고 있다. 최신 이론을 소화할 만한 젊은 편집자가 없다.”
 
 
정철수
: 올해 젊은 연구자들을 필자로 발굴하려는 것을 주요 방향으로 잡은 것도 비슷한 맥락에서다. 교수나 박사 이상 필자를 고집할 게 아니라 다양하게 찾아보려고 한다. 예를 들어 시민사회의 활동가들. 이게 잘되면, 국내 인문·사회과학 출판이 살 수 있는 활로가 되지 않을까.

장의덕 : 현장 활동가들, 워낙 바빠서… 출판사로서는 아주 괴롭다(일동 웃음).

유재건 : 국내서 비중이 낮은 것이 걱정할 문제일까 싶다. 한국 사회에 영향을 미칠 만한 책이면 굳이 국내서인지 번역서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물이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르는 것처럼. 외국은 작가 인프라가 두터운 것이 사실이다. 한 사회가 갖는 힘이다.

- 올 한 해 인문·사회과학 출판계가 해결했으면 하는 과제가 있다면?

이승우 : 인문서는 그 책의 주제를 전공한 전공자가 번역하는 출판 문화가 필요하다. 이전에 비해 우리 사회에 인재 풀이 생겼다. 비전공자가 번역을 하는 경우, 번역이 엄밀하지 못하고 황당한 오역이 생긴다. 출판 편집자나 기획자가 번역자를 찾는 노력이 중요하다.

장의덕 : 인력 구조 문제가 염려스럽다. 메이저 출판사가 인력을 키워서, 그들이 작은 출판사로 유입되어 활력이 되면 좋은데. 지금은 오히려 작은 출판사가 사람을 키우면 메이저 출판사들이 쏙쏙 빼간다. 임프린트 제도가 시행되면서 인력을 빨아들이는 구조가 되어가고 있어 걱정스럽다.

유재건 : 시장에 휘둘리면 방향이 흔들리고, 그러면 독자가 떨어져나간다. 자기 방향을 명확히 설정해 흔들리지 않고 나가는 것이 필요하다. 인문·사회과학 출판사들은 기획 예고제를 했으면 좋겠다. 독자들이 새 책을 기다리고, 출판사들도 서로 참조할 수도 있다. 큰 틀에서 독자와 저자를 더불어 키우지 않고, 자기만 살려고 하면 결국 그게 자기 무덤을 파는 일이다.

진행·정리/노순동·차형석 기자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홍련암 공양주보살

 

홍련암 공양주보살은

홍련암에서만 반평생을 보냈다

 

열아홉에 시집갔으나

서른에 남편이 이승을 떠났다

과일장사, 고기장사로 두 아들 다 키워놓고

미련없이 절로 들어왔다

 

그로부터 삼십년

동해바다는 여전히 홍련암 기둥을 때리고

법당 앞 해당화 향기도 여전한데

 

이제는 자식들이 모시겠다 해도

홍련암을 떠날 수 없다 한다

 

홍련암 부처님이 내 서방님 같다고

정든 서방님 두고 어디 가냐고

 

그렇게 말할 때는 꼭 새색시처럼

얼굴이 빨개지곤 하는데

 

그러면 해당화도 덩달아 붉게붉게 물들어

그 알싸한 향기를

참 멀리가지도 보내는 것이다

 

 

 

<창작과비평> 107호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가혹한 절판의 운명을 거부하라



<비밀의 계절> <새벽의 약속> 등 재출간 책 쏟아져나와… 기획의 중요한 테크닉 “옛날 책을 다시 보라”

▣ 구둘래 기자 anyone@hani.co.kr





△ 한 독자가 헌책방의 책을 뒤적이고 있다. 절판된 책 중에는 ‘정가’를 호가하는 책들도 적지 않다. 재출간 소식이 전해지면 ‘절판’ 책은 가격이 떨어진다. (사진/ 한겨레 김진수 기자)




“우리는 어떤 책이 타고난 절판의 운명에 순응하기만 해야 하는가? 그 운명에 대한 심판을 다시 한 번 붙일 수는 없는가?” 이윤기는 <비밀의 계절> ‘개정판에 붙이는 말’에서 이렇게 썼다. <비밀의 계절>은 이렇게 ‘엄숙한 물음’과 함께 재탄생했다. 도나 타트의 <비밀의 계절>은 오랫동안 헌책방 탐사자들의 ‘쇼핑 리스트’에 올라 있던 ‘절판의 전설’이다. 1992년 까치에서 나왔던 이 책은 지난해 12월 문학동네 장르문학 시리즈 ‘블랙펜 클럽’의 1권으로 재출간됐다. “책은 그 나름의 운명을 지닌다.” 책의 운명은 절판이다, 라고만 하면 왠지 아쉽다. 출판평론가 표정훈이 로마의 작가 테렌티아누스 마우루스의 말을 따 붙인 ‘책 제목’이기도 한 이 말이, ‘절판본’에서는 ‘절박’하게 느껴진다. 표정훈은 ‘절판 도서 살리기’(kungree.com)의 글에서 이렇게 말한다. “비록 ‘그 나름’의 운명이라고는 해도, 절판이라는 운명은 책의 물리적 소멸보다 훨씬 더 가혹하다. 가치의 윤리학보다는 효율의 경제학이, 생각의 깊이보다는 생각의 속도가, 역사의 무게보다는 순간의 가벼움을 중시하는 풍토라면, 가혹한 운명의 굴레에서 벗어나 되살아날 수 있는 책의 숫자도 그만큼 적을 것이다.”
최근 이 ‘운명’을 거역한 책들의 거대한 행렬이 이어지고 있다. <새벽의 약속> <하늘의 뿌리> <대성당> <황금나침반> <황금노트북> <암스테르담> <제멋대로 함선 디오티마> <핀란드 역으로> <연을 쫓는 아이>….

‘다시’ 플러스 새로운 의미

‘새 생명’을 부여받는 데는 명확한 ‘계기’가 있는 경우가 많다. <황금노트북> <황금나침반>처럼 ‘황금’ 붙은 세 권짜리 책들이 그렇다. <황금나침반>(김영사 펴냄)은 동명의 영화 개봉을 계기로, <황금노트북>(뿔 펴냄)은 저자 도리스 레싱의 노벨문학상 수상을 계기로 다시 나왔다. 길찾기에서 나온 권교정의 만화 <제멋대로 함선 디오티마1>은 월간 장르문화 매거진 <판타스틱>의 연재 재개와 함께 재출간됐다. 할레드 호세이니의 <연을 쫓는 아이>(열림원 펴냄)는 같은 저자의 <천 개의 찬란한 태양>(현대문학 펴냄)의 반응이 좋자, 2005년 책을 표지갈이해서 ‘개정판’으로 나왔다.
그러나 ‘재출간’은 나왔던 작품을 ‘다시’ 펴낸다라는 뜻에 새로운 의미가 더해진다. 올 초 문학과지성사에서 나온 로맹 가리의 <새벽의 약속> <하늘의 뿌리>는 각각 고려원에서 1985년, 신구문화사에서 1968년 출간된 책의 재출간본이지만, 번역도 다시 했고 흩어져 있던 작품을 모았다는 의미도 더해졌다. 부커상 수상작인 이언 매큐언의 <암스테르담> 역시 미디어2.O에서 새로 나왔는데 1999년 현대문학에서 나왔던 작품을 새로 번역한 것이다. 최근 김연수 번역으로 나온 레이먼드 카버의 <대성당>은 문학동네에서 재출간하고 있는 ‘레이먼드 카버’ 시리즈의 세 번째 책이다. 이전에 나온 집사재의 ‘레이먼드 카버’ 시리즈(1996)가 (무라카미 하루키가 번역한 일본판으로 추정되는) 원본이 불분명한 ‘편집본’이었다면 문학동네에서는 미국에서 출간된 원본대로 펴내고 있다. 집사재 시리즈는 3권으로 끝났는데, 문학동네 시리즈는 여기에 더해 올해 말이나 내년 초 김연수의 번역으로 <내가 필요하면 전화해>(가제)가 나올 예정이다.





“다시 내려면 의미가 있어야 한다. 장단점을 살피고 의미에 대한 확신이 필요하다.” 2005년 여름 <스밀라의 눈에 대한 감각>을 새로 출간하고 ‘예상외’의 반응을 얻었던 정은숙 마음산책 대표의 말이다. ‘스테디셀러 복병’으로 자리잡기까지 ‘출간 결정’은 ‘재고·삼고’의 시간이 필요했다. 1996년 까치에서 나온 <눈에 대한 스밀라의 감각>(재출간본은 제목이 살짝 바뀌었다)은 추리소설 동호회에서 “이런 책이 절판이라니 말이 안 된다”라는 말을 들었던 작품이다. “그래도 좀 망설여졌다. 그런데 김연수씨가 적극적으로 추천을 했다. 그렇게 되고 안 낼 이유가 없었다.” 마음산책은 <스밀라…>에 대한 좋은 반응이 있고 나서 4권의 ‘리메이크작’을 펴냈다. 로맹 가리의 <가면의 생>, 에프라임 키숀의 <개를 위한 스테이크> <피카소의 달콤한 복수>, 그리고 박찬욱의 <오마주>다. 이런 리메이크 작품이 반응이 좋자 마음산책에서는 회의를 할 때 구간본 출간에 대한 논의를 병행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기다리고 있었다. “50~100권의 재출간 목록을 뽑아 에이전시에 문의한 적이 있다. 그런데 놀랍게도 70% 이상이 다시 저작권 계약이 이루어져 있었다.”

재출간 붐, 1996년부터 5년마다 주기로?

기획자들에게 “구간을 살펴라”는 자주 이야기되는 ‘기획 원칙’이다. 궁리 출판의 김현숙 편집장도 “최근 옛날 출판 잡지를 뒤지며 잊혀진 책들을 찾고 있다”고 말한다. 인문서 시장에서 또한 마찬가지다. 산책자의 김수한 편집주간은 “지난해 인문 쪽 기획의 키워드가 ‘옛날 책을 찾아라’였다. 1980년대 정당한 계약 없이 봇물처럼 쏟아졌던 책들이 인문학의 보고다”라고 말한다. 산책자에서는 보드리야르의 <아메리카>(문예마당·1994), 롤랑 바르트의 <기호의 제국>(민음사·1997) 계약을 맺고 출간을 서두르고 있다. 지난해 11월 나온 에드워드 윌슨의 <핀란드 역으로>는 그 이전에 두 번 나왔던 책이다. 1962년 을유문화사에서 <근대혁명사상사>, 1990년 실천문학사에서 <인물로 본 혁명의 역사>라는 제목으로 출간됐다. 정치학자 해나 아렌트의 책 역시 ‘민주주의’ 담론에 대한 연구 붐을 타고 거의 다 복간됐다.
이러한 ‘재출간’ 붐에 대해 김현숙 편집장은 “저작권법이 원활하게 움직이기 시작한 시기를 기점으로 재출간 사이클이 형성되는 것 아닌가 한다. 요즘 2001년, 2002년에 나왔으나 책의 가치에 비해 호응이 적었던 작품을 눈여겨보고 있다”고 말한다. 외국 저작물과의 계약은 보통 5년을 단위로 갱신된다. 우리나라에서 저작권법이 발효된 것은 1996년. 1987년 10월 가입한 세계저작권협약(UCC)이 먼저이긴 하지만, 1996년부터 출범한 세계무역기구(WTO) 체제와 8월 가입한 베른협약이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하면서 ‘외국과 계약 후 출간’이라는 지금은 당연해 보이는 ‘관행’이 정착했다. 김 편집장의 말대로라면 2006~2008년, 1996년을 기점으로 하는 5년 단위의 새로운 ‘계약철’이 도래하는 것이다.





리메이크작의 성공은 기획자들을 자극해왔다. 그중 ‘고려원 리스트’는 복간의 주요한 대상이다. 파울루 코엘류의 ‘초베스트셀러’ <연금술사>(문학동네 펴냄·2001)는 고려원의 <꿈을 찾아 떠나는 양치기 소년>(1993)을 리메이크한 것이다. 1997년 외환위기 직전 최종 부도처리된 고려원은 연평균 270여 종의 책을 펴내던 당시 ‘단독’ 매출 1위의 출판사였다. 당시 200억원 규모의 연매출을 기록했는데, 2위는 100억원 미만이었다. 고려원의 부도로 총 2만여 권의 문학, 인문, 실용, 여러 전집이 한꺼번에 ‘절판’됐다. 2004년 고려원북스가 고려원 재고와 판권에 대한 권리를 법원으로부터 인정받고 영업을 시작했다. 하지만 재출간이 순조롭지는 않다. <연금술사>처럼 재출간 형태로 다시 발간된 책도 적지 않다. 고려원북스의 편집자는 “소설 <캠든에서의 그 여름>과 아동책 몇 권을 재출간했다. 몇 권의 판권을 알아보고 있으나 신간에 주력하고 있다”고 말한다.
새로운 출판 환경도 재출간 붐을 이끈다. 한기호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소장은 “<스밀라의 눈에 대한 감각>은 팔린 책의 반 정도가 한 인터넷 서점 사이트를 통해서 판매됐다. 알파 블로그의 역할이 커진 것이다. 기술문명이 바뀌면서 소비구조가 바뀌고 있다. 소비에서 개인의 역량이 중요하게 작용하고 있다”고 말한다. 특히 이런 블로거들의 활약은 장르문학에서 두드러진다. ‘일본 미스터리문학 즐기기’ 카페의 운영자이자 번역가인 권일영씨는 ‘장르 마니아’들과 ‘절판’의 상관관계를 이렇게 설명한다. “장르소설은 ‘품절’되는 사태를 겪는 일이 많다. 그래서 정보 교환을 위해 카페 활동이 활발하다. 품절이 자주 되니 소장 욕구도 강하다. 당장 읽지 않더라도 사다 쟁여놓는 경우가 많다.” 이런 소비자들의 ‘계속되는 애절한’ 요구는 재출간 결정으로 이어진다. 절판됐던 다카무라 가오루의 <마크스의 산> <석양에 빛나는 감>은 손안의책이, <영원의 아이>는 북스피어가 새롭게 준비하고 있다.



△ ‘조직적’으로 재출간 운동이 벌어지는 일본의 ‘복각닷컴’(위)과 키노쿠니야의 ‘서물복권’ 프로젝트 사이트 화면. 출판사에 의견을 전달하거나 방문자의 신청을 받아서 출간과 부수를 결정한다.






일본의 9개 출판사 ‘공동 복간 프로젝트’

외국에서는 더 ‘조직적인’ 절판책 복간 움직임을 만날 수 있다. 일본의 복각닷컴(www.kinokuniya.co.jp)은 독자들이 자신이 원하는 복간작 리스트를 모으고 의견이 많이 모이면 출판사에 의견을 전달한다. ‘서물복권(書物復권) 프로젝트’는 출판사 쪽에서 진행한다. 도쿄대학출판회, 호세이대학 출판국, 미스즈출판사, 기노쿠니야, 미라이샤, 게이소 출판사, 하쿠수이샤, 이와나미 등 8개 출판사에 2006년부터는 신요사(新曜社)가 참여하고 있다. 사이트를 통해 복간작을 예고하고 독자들이 신청한 도서를 종합해 최종 복간을 결정한다. 영어권에서는 에이어 컴퍼니(Ayer Company Publishers)가 ‘책의 형태로 남아 있어야 할 목록’을 정하고 재출간을 단행한다. 어떤 형식이든 언제라도 한국에서 가능한 형태로 보인다.
김현숙 편집장은 이런 재출간 붐에 대해 “쉽게 기획을 하려는 건 아닌가 하는 자기 반성이 들기도 한다”고 말한다. 한 문학 출판사의 편집자는 “판권을 보유한 출판사가 오랫동안 출판을 하지 않는 경우를 더러 볼 수 있다. 독자들의 기다림을 헤아려주었으면 좋겠다”고 일침을 가하기도 했다. 한기호 소장은 이러한 재출간 기획이 한 걸음 더 나갈 것을 요구한다. “한때 서점에 나가 있는 책 중 95%는 다시 만들어야 한다고 말하고 다닌 적도 있다. 아날로그 시대에는 책이 정보의 제왕으로서 경쟁자가 없었다. 지금은 무료 정보와 경쟁해야 하는 입장이다. 새로운 물성을 탐구하고 책의 신체성을 새롭게 하는 재출간 기획이 필요하다.”





 



열렬복간 리스트

2007년 신간 출간 종수 5만3226종(대한출판문화협회 자료). 벌써 사라진 책들이 있을지도 모른다. 열렬한 복간의 선택을 받는다는 것은 ‘축복’이다. 알라딘 서재 리뷰어 로쟈와 문학평론가 신형철씨에게 재출간을 바라는 책 3권을 부탁했다. 장르문화 매거진 월간 <판타스틱>은 ‘올해는 이 번역소설을 읽고 싶다’라는 주제로 다음카페 ‘일본 미스터리 문학 즐기기’, 행복한책읽기 출판사 사이트 ‘해피SF’, 네이버 ‘SF카페안드로메다’ 카페에서 설문조사를 벌였다. 그 결과를 ‘절판’본만으로 한정해 정리해보았다. 설문조사 결과와 추천작들은 <판타스틱> 2월호 특집 기사에서 확인할 수 있다.


로쟈의 선택 3: 첫 번째는 레비스트로스의 <구조인류학>(종로서적). 이전에 2권짜리의 절반 분량이 나왔는데, 다시 나온다면 당연 완역·완간돼야 한다. 레비스트로스가 워낙에 연로하기 때문이고 한편으로 그의 주저를 서점에서 구경할 수 없다는 건 좀 ‘쪽팔린’ 일이다. 레비스트로스와 절친했던 로만 야콥슨의 <문학 속의 언어학>(문학과지성사)도 다시 나와야 할 책이다. 나온 책은 발췌역이었는데 다시 나온다면 완역돼 나와야 한다. 야콥슨 전집은커녕 이 정도 책도 시중에서 못 구한다면 역시나 ‘쪽 팔린’ 일이다. 두 번째 책은 일본의 A급 학자 이마무라 히토시의 <역사와 인식>(한실·1992). 그의 <근대성의 구조>도 품절인데, 절판됐다면 다시 나와야 할 책이다. 얇고 재밌는데, 왜 안 나오는지 모르겠다. 세 번째 책은 제이 레이다의 <소련영화사1>(공동체·1983). 1권이 나오고 그걸로 절판됐다. 80년대 초반에도 이런 책들이 나왔는데, 요즘은 왜 그럴까. 이왕이면 최근의 러시아 영화사들도 소개되면 좋겠다. 타르코프스키의 <순교일기> 같은 책도 ‘품절’ 혹은 ‘절판’으로 뜨는데, 이것도 창피한 일이다.

신형철의 선택 3: 시바타 쇼의 <그래도 우리 젊은 날>. 읽어도 그만 안 읽어도 그만인 동시대 코즈모폴리턴들의 소설을 읽느라 우리가 놓친 일본 소설들 중 하나. 전공투 세대의 ‘후일담’소설이다. 내가 읽은 가장 아름다운 후일담 소설. <청춘>이라는 제목으로 재출간된 적이 있으나 반드시 원래 제목으로 다시 나와야 한다. 잭 케루악의 <길 위에서>. 비트제너레이션의 성서. 그러나 그런 얘기는 이제 그만 듣고 싶다. <전후미국문제소설집>(신구문화사·1962)에 수록돼 출간된 적 있으나 그 이후로는 본 적이 없는 물건. 실물을 보여달라. 이세룡의 시집들 <빵> <채플린의 마을> <종이로 만든 세상> 등. 김종삼의 시를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그의 시가 애틋할 것이다. 평균 열 줄을 넘지 않는 짧은 시들이 주는 맑고 슬픈 여운들. 이 시인은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

‘일본 미스터리 문학 즐기기’의 선택: 오사와 아리마사의 <신주쿠 상어> 시리즈. 우리나라에선 3부까지 나오고 절판됐는데, 일본에선 계속 나오는 것 같더군요. 흔한 형사물인 줄 알았는데, 뒤로 갈수록 그 이상의 것이 있습니다. 일단 속도감 있는 재미가 일품이죠.(몬스터) 일본 최고의 문학가 다카무라 가오루 <마크스의 산> <석양에 빛나는 감>. 두 작품은 소개가 되었으나, 절판된 뒤 컬렉터들의 제1표적이 됐습니다. 생생한 상황묘사와 사실적인 캐릭터, 결말의 큰 감동. 이렇듯 최고의 요건들을 두루 갖춘, 고다 시리즈 전작이 출간됐으면 합니다.(이웃 변태) 재닛 에바노비치의 스테파니 플럼 시리즈 코미디와 추리의 즐거운 만남, 제 취향에 딱 맞는 소설입니다. 시공사에서 펴낸 2편을 재밌게 읽었습니다. 시리즈가 10편이 넘는 걸로 아는데 모두 나오길 희망합니다.(다크 워크) 아야쓰지 유키토의 ‘관 시리즈’가 재출간됐으면 합니다. 시계관, 십각관, 암흑관 제외하고는 너무 구하기가 힘드네요. 발품을 팔아도 보이지 않는 그 소설들! 정말 저를 너무 애태우더군요.(가을이/ 사요코/ whitebong7)

‘해피SF’의 선택: 올래프 스태플튼의 작품들. <이상한 존>은 70년대쯤에 어린이용으로 한번 나오긴 했지만, 어린이용이고 그게 마지막이었습니다. 어린이용이 아닌 완전 번역본으로 보고 싶습니다. <스타메이커>나 다른 작품들도 마찬가지구요^^(HAMANE) <지저 세계 펠루시다>를 추천합니다. 아동용 축약본 외에는 제대로 출간된 적이 없는 것으로 압니다. 인간은 누구나 새로운 세계를 동경하지요. 그것이 종종 외부로 나아가는 것만 떠올리게 하는데, 그렇지만은 않다는 걸 알게 해준 작품입니다. 우리가 이미 충분히 알고 있다고 생각하던 지구를 다시 바라보는 계기가 됐답니다.(펠루시다) 국내에서 출간 중이지만 자꾸 지연되는 어슐러 K. 르귄의 책들을 어서 보고 싶습니다. 절판된 책도 그렇지만 아직 출간되지 못한 책도 많다고 들었습니다. 철학적이고 감수성이 풍부한 르귄만의 공상과학(SF), 판타지에 맛을 들이면 헤어나올 수가 없어요.(whitfume) 존 윈덤의 <트리피드의 날>이 나왔으면 좋겠네요. 어릴 적에 아동용 축약본으로 감명 깊게 읽었던 SF소설인데 아직까지 국내에 완역본이 소개된 적은 없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dopeLgangER)

‘SF카페 안드로메다’의 선택: 존 윈덤의 작품이 나왔으면 좋겠네요. 아동용으로 나온 걷는 식물 트리피드 정말 재미있게 봤었는데, 그의 다른 작품 <저주받은 마을>도 침략을 테마로 한 SF 스릴러라고 하네요. (엽기부족) 레이 브래드버리의 <화성 연대기> 재간을 바랍니다.(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소나기 클릭 랭킹
표시 순위
장대비 1~20위
소낙비 21~50위
부슬비 51위~100위
보슬비 101위~200위
이슬비 201위~α

“펭귄, 세계고전 1200선 … 작품해설로 정평” [중앙일보]


한국어판 내는 펭귄 클래식 프로이덴하임 대표



 
  아담 프로이덴하임 펭귄 클래식 대표는 “책이 쏟아져 나올 수록 독자들은 ‘믿고 읽을 만한’ 책을 더 찾는다”며 “펭귄 클래식을 통해 한국 독자들이 ‘좋은 문학’에 대한 갈증을 풀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사진=김형수 기자]
 
 
‘문고본의 대명사’로 통하는 펭귄 클래식이 한국에 진출한다. 국내 출판사 웅진 씽크빅(대표 최봉수·이하 웅진)과 50대 50으로 자본을 투자한 합작출판사를 통해서다. 웅진은 “펭귄 클래식과 웅진의 단행본 그룹 임프린트인 ‘문학에디션 뿔’ (대표 박상순)이 펭귄 클래식 코리아를 설립했다”고 28일 발표했다. 웅진은 이어 “오는 5월 첫 책을 발간하며 연내 최대 50권의 클래식 시리즈를 한국어로 번역·출판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펭귄 클래식이 영어 이외의 언어로 출간되는 것은 올 2월 선보이는 중국어판에 이어 한국어판이 두 번째다.

중앙일보는 이날 합작사 설립을 기념해 내한한 아담 프로이덴하임(33) 펭귄 클래식 대표를 서울 동숭동 웅진 사옥에서 단독으로 만났다. 프로이덴하임 대표는 “60년이 넘는 역사를 통해 전세계 독자들로부터 쌓아온 두터운 신뢰가 펭귄의 가장 큰 자산”이라며 “한국 독자들이 ‘최고의’ 시리즈를 한국어로 읽을 수 있게 돼 정말 기쁘다”고 말했다.

60년 역사가 펭귄 클래식의 자랑이듯이 프로이덴하임 대표도 나이가 지긋해야 할 것 같았다. 그러나 인터뷰 자리에 ‘백발의 신사’는 없었다. 대신 “전날 오후에 도착해 아침에 일어나기 쉽지 않았다”면서도 목소리가 쩌렁쩌렁 울릴 만큼 에너지 넘쳐보이는 젊은 ‘청년’이 등장했다. 이번 합작을 적극적으로 밀어붙인 주인공이었다.

-한국 출판사와 합작을 추진한 이유는.

“18개월 전 처음으로 중국과 합작회사를 세웠다. 펭귄 클래식은 15개국에 지사를 두고 있지만 합작은 처음이었다. 그리고 한국이 두 번째다. 한국 출판시장의 잠재력이 매우 크다고 판단했다. 수준높은 독서 문화가 있고, 한국인의 교육열이 남다르다는 것도 확신을 줬다. 국제 사회에서 한국의 지명도가 높아진 것도 주요한 요소로 작용했다.”

-합작 관계를 설명한다면.

“한국어로 번역해 출판한다.웅진이 펭귄의 디자인과 브랜드를 모두 사용한다. 작품 해설도 포함된다. 한국 시장에서 인정받은 웅진의 마케팅과 펭귄의 콘텐트·노하우가 결합되는 것이다.”

-펭귄이 다른 문고판과 다른 점은.

“보통 독자들은 출판사 이름을 잘 기억하지 못한다. 하지만 펭귄이라면 모르는 사람이 없다. 오랜 역사가 일궈놓은 결과다. 방대한 리스트도 빼놓을 수 없다. 클래식 시리즈만 1200여 권이다. 영미문학 작품만 있는 것이 아니라 전세계에서 엄선된 작품이 망라돼 있다. 우수한 번역자를 발굴해 번역에 공을 들였고, 시대 배경 등 작품의 이해를 돕기 위해 첨부한 해설에도 자부심을 갖고 있다.”

-고전만 출간하는가.

“그렇지 않다. 최근 영국에서 출판된 에일린 창의 ‘색,계’(Lust,Caution)도 펭귄 클래식에서 나왔다. 클래식 시리즈에는 ‘클래식’ ‘모던 클래식’ ‘포퓰러 클래식’ ‘레드 클래식’ 등 여러 브랜드가 있다. 모던 클래식이 2차 대전 이후에 나온 작품들이라면, 포퓰러 클래식은 고전 중에서 베스트셀러 120권을 다시 추려 텍스트만 수록한 것이다. 기차에서도 읽고, 배낭에 넣고 다니며 읽을 수 있도록 만들었다. 레드는 현대작이 많고, 또 온라인이나 수퍼마켓에서도 독자들이 위협(웃음)을 느끼지 않고 구매할 수 있도록 표지를 다른 버전으로 바꿨다.”

-한 제목의 책이 다른 표지로도 출판된다는 뜻인가.

“그렇다. 펭귄이 문고판의 대명사가 되는 데에는 독특한 ‘책 디자인’도 한 몫했다. 고전이기 때문에 독자들에게 더 새롭고 친근하게 다가가기 위한 노력이 필요했다. 표지 디자인에 중점을 두는 것은 그런 노력의 일환이다. 오는 3월에는 셜록 홈즈의 책들을 완전히 새로운 디자인으로 선보일 계획이다.”

-시리즈 중 대표작을 꼽는다면.

“‘오딧세이’는 300만권 이상이 팔렸고 조지 오웰의 ‘동물 농장’과 존 스타인벡의 ‘분노의 포도’ 등은 수 십년 동안 변치 않은 최고 베스트셀러다. 제인 오스틴도 독자들이 끊임없이 찾는 작가다.”

-디지털 시대다. 시장이 줄고 있지 않나.

“그렇지 않다. 그렇다면 우리가 최근 5~10%의 성장을 기록하지 못했을 것이다. 오히려 클래식 시리즈는 최근 건강하게 성장하고 있는 편이다. 갈수록 수 많은 책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현대의 독자들은 그 양에 짓눌릴 정도다. 그럴수록 중요해지는 것이 바로 책의 질이다. 믿고 권할 만한 책이 더 중요해진다는 뜻이다. 그런 점에서 나는 젊은 독자들도 클래식 시리즈를 계속 찾을 것이라 믿는다. ‘좋은 문학’(good literature)에 대한 갈증은 여전히 있기 때문이다.”

프로이덴하임은 미국에서 자라 하버드 대학에서 독문학을 전공했다.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유럽문학 예비 박사 과정을 수료한 뒤 런던의 예일대 출판사 에디터를 거쳐 2004년부터 펭귄 클래식을 이끌고 있다.


글=이은주 기자, 사진=김형수 기자






대중 문고판으로 폭넓은 독자층 자랑

펭귄북스는 …



 
 
1935년 출범한 세계 메이저 출판사 중 하나다. 영국 일간지 파이낸셜타임스(FT)를 소유한 피어슨 그룹에 속해 있으며 미국, 영국, 호주, 남아프리카공화국, 인도, 중국 등 15개국에 지사를 두고 있다. ‘돌링 킨더슬리’, ‘퍼핀’, ‘레이디버드’, ‘러프 가이즈’ 등 여러 브랜드를 통해 매년 4000여권에 달하는 책을 출판하고 있다.

클래식 시리즈는 46년 클래식 최초의 편집자인 E.V 리우가 호머의 ‘오딧세이’를 처음 내놓으면서 대중 문고판으로 자리잡았다. 값비싼 양장본이 많던 당시 가격이 저렴하면서도 세련된 표지에 고전을 담아 호응을 얻었다.

‘오딧세이’ 번역판은 출간되자마자 300만권이 넘게 팔리는 성공을 거뒀으며 이후 ‘채털리 부인의 사랑’ ‘동물 농장’에 자리를 내주기 전까지 15년간 펭귄의 베스트셀러를 차지했다.

2006년 펭귄 클래식은 출범 60주년을 맞아 구두 디자이너 마놀로 블라닉, 패션 디자이너 폴 스미스, 포토그래퍼 인 샘 타일러 우드 등 5인의 명사에게 책 표지 디자인을 의뢰해 제작한 ‘디자이너 클래식’ 한정판을 출판해 화제를 모았다.


이은주 기자 [julee@joongang.co.kr]
김형수 기자 [kimhs@joongang.co.kr]

댓글(3)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소나무집 2008-01-31 13: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신문 기사를 보며 좋은 일인가? 잠시 고개를 갸우뚱했습니다.
웅진의 덩치는 더 커지겠네요.
반면 소규모 출판사들의 몫이 점점 줄어드는 것 같아 아쉽기도 하고요.

달빛푸른고개 2008-01-31 17: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최근 웅진이나 랜덤하우스, 그리고 베텔스만과 결합한 대교 등 기업형 출판사들의 행보에 의해 상대적으로 피해를 보는 출판사들이 많은 걸로 알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작은 출판사에서 인재를 키우면 데려가는 식도 있고, 시장에서의 경쟁도 차츰 더 어려워지는 것 같습니다.

행인 2011-07-13 01: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명품 외국 브랜드를 비싼값에 들여와서, 각종 자본공세로 홍보하는 일이 출판계에도 들이닥친 거란 생각에 심히 걱정됩니다. 번역은 원전에서 한국어로 옮기는 건데, 결국 펭귄클래식이라는 '브랜드'만, 작품 리스트만, 그 명성만을 빌려온 꼴이지 않나요? 그 외국 브랜드 없이도, 충분히 자력으로 세계문학전집을 기획할만한 능력이 있었을텐데요. 중국에 이어 두번째라니, 중국에 이은 두번째로 민망한 출판국이 되겠죠....
 
친구 - 행운의 절반
스탠 톨러 지음, 한상복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07년 12월
평점 :
품절


'새로운 시대의 리더는 공감할 줄 아는 사람, 그러니까 친구가 되어줄 수 있는 능력을 갖춘 사람이라고 볼 수 있어요. 공감은 어울리는 과정에서 계발되니까요.'(184쪽)

'자네가 누군가를 미워할 때 자네는 그 사람의 노예가 되는 거야.'(234쪽)

'좋은 감정을 내보내면 좋은 것이 돌아오고, 나쁜 감정을 발산하면 아픈 상처로 돌아오는 법이지.'(235쪽)

스토리의 짜임새는 다소 허약하지만, 저자의 경력상 삶의 지혜를 알려주는 미덕이 있는 책이다.(다만 요즘 이러한 책들이 양산된다는 것이...)

무엇보다 책의 말미를 장식하는 티베트 속담이 가슴에 남는다.

'앞에 놓인 삶을 향해 미소 지어보라. 미소의 절반은 당신의 얼굴에 나타난다. 그리고 나머지 절반은 친구들의 얼굴에 나타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