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해자는 가해자끼리 통하는 법



전범의 회고록과 <요코 이야기> 속에 나타난 일본과 미국의 지독한 동지애

▣ 한승동 한겨레 선임기자 sdhan@hani.co.kr

일제 대본영 작전과와 만주 관동군 참모였다가 패전 뒤 전범으로 11년간 시베리아에 억류됐던 세지마 류조는 귀환 뒤 제국 참모 시절의 경험을 살려 이토추상사 회장 자리에까지 오른다. 국내에도 번역돼 널리 읽힌 야마자키 도요코의 <불모지대>의 주인공 모델이 그였다는 풍설이 있다.

자신에게 달라붙은 전두환·노태우에 우월감



△ 전두환 대통령 부부가 1984년 나카소네 수상일가와 산책을 하고 있다.(사진/ 연합)






1996년에 나온 그의 회고록 <이쿠산카>(幾山河)(극우 산케이신문사가 냈다)를 보면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 1979년 12월12일 쿠데타로 전두환·노태우 신군부가 실권을 장악한 직후인 80년 3월 이병철 당시 삼성회장이 그에게 연락을 해왔다. “한번 조용히 방한해서 군 선배로서 전두환, 노태우 장군을 격려하고 어드바이스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경제관계 문제도 있을 터이니 도큐의 고지마씨도 함께 와주십시오.” 그래서 그해 6월 전·노를 만났다. 그때 전두환은 그들에게 어떻게 나라를 통치할지, 일본엔 어떻게 접근해야 할지 등을 물었다. 광주에서 막 숱한 피를 뿌린 두 사람에 대한 인상을 세지마는 “모두 온후하고 관용적이며 시야가 넓은 사람들”이었다고 썼다. 전후를 살피건대, 신군부 쪽에서 일본 지배그룹과 연결해달라고 재계 쪽에 부탁했을 것이다. 그들에겐 돈과 일본, 미국의 지지가 필수적이었다.
세지마는 그 뒤에도 한국을 수시로 들락거리며 한-일 정권유착 밀사로 활약하는데, 나카소네 정권 때 40억달러 차관을 전두환 정권에 제공하는 일을 모사했고 일본 총리로서는 첫 한국 방문이었던 나카소네 방한도 성사시켰다. 그때 일본 외상이 지금의 아베 신조 총리의 아버지 아베 신타로였다. 총리가 된 나카소네가 만사를 제쳐놓고 거금을 들여가며 한국 방문을 서두른 것은 이유가 있었다. 그것은 그 뒤 이른바 ‘론-야스’(로널드 레이건-나카소네 야스히로) 관계로 발전한 미-일의 밀착과, ‘넘버원 국가로서 일본’, 미국에 이은 차기 패권국 일본이라는 말이 이상하게 들리지 않을 정도였던 1980년대 일본의 안정과 번영을 위한 방략의 첫 단추였다. 나카소네는 바로 미국에 가서 부마항쟁과 광주항쟁의 피눈물 위에 세워진 한국 쿠데타군을 지원하도록 공작했고, 그 결과 확보된 한국 안보환경의 안정, 곧 친일·친미 군사정권 유지가 미-일 신보수주의의 정권 밀착과 번영의 한 고리가 됐다.
<이쿠산카>의 특징 가운데 하나는 ‘반성’이 없다는 것이다. 반성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닌데, 그것은 일제 대본영이 정세 판단과 자기한계 인식, 효율적인 전쟁 수행을 제대로 못했다는 데 맞춰져 있다. ‘좀더 잘했더라면…’ 정도다. 조선과 만주, 또는 조선만이라도 일본 땅으로 만들지 못한 데 대한 유감이 묻어난다. 그런 부류의 인간들이 자신들에게 달라붙은 신군부, 나아가 한국민 전체에 우월감을 느꼈을 건 당연지사. 그 순간 가해자는 시혜자로 돌변한다.
얼마 전 일본 패전 당시 열두 살 소녀가 겪은 ‘조선 탈출기’ <요코 이야기>가 논란을 불렀다. 거기에도 가해자의 반성은 없다. 일제 대륙침략의 핵심범죄 중 하나가 만주침략과 괴뢰국 만주국 건설이었는데, 요코의 아버지는 만주국을 위해 일했다. 말하자면 요코 가족은 본의든 본의가 아니든 가해자의 일원으로 조선 땅 나남에서 살았고 패전하자 본국으로 탈출한다. <요코 이야기>에는 식민지에 군림하던 그들 지배자의 거만과 안락과 만행은 언급조차 없다. 도대체 왜 그런 비극이 일어나게 됐는지, 그들이 왜 나남이란 남의 땅에 살게 됐는지 묻지 않는다. 당연한 듯이. 그들을 공격했다는 공산주의자들을 비난하는 것은 항일 독립군들을 비적이니 마적이니 하며 부도덕한 도둑떼로 몰고 윤봉길을 무도한 테러리스트로 몰았던 시각과 조금도 다르지 않다. 미국 중학교가 <요코 이야기>를 교과서로 채택한 것은 어쩌면 자신들의 제국주의적 행태를 오직 ‘반공’의 이름으로 정당화하고 식민지 가해자들과 동맹했던 미국의 입장, 분위기에 기막히게 부합했기 때문일지 모른다. 가해자는 가해자끼리 통하는 법이다.

<요코 이야기>도 애초에 침략이 없었다면?

생각해보자. 수백만 명을 죽이고 국토를 고엽제로 뒤덮었던 베트남전의 비극이 어디에서 비롯됐나. 영화 <디어 헌터> 등에서 보듯 그런 식민지배와 침략이 없었다면 애초에 존재하지도 않았을 전쟁에서 침략자들은 가족과 조국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던졌던 가난한 베트남인들을 무지막지한 빨갱이로 묘사하면서 자신들을 오히려 피해자로 그리며 ‘우아한 번뇌’에 빠진다. 비극은 비극이되 웃기는 일 아닌가. 12살 식민지배자의 자손 요코가 본 것은 바로 자신들 때문에 피폐해진 식민지 군상이었고, 외부 지배자들을 몰아내기 위해 목숨을 걸었던 일부 민족주의자들이었다. 그들에게 대든 조선의 민족주의자들이 그들에겐 위험하게 보였을 것이다. 대부분 좌파일 수밖에 없었던 조선의 항일 민족주의자들을 요코는 공산주의자, 즉 ‘빨갱이’로 몰면서 사태의 본질을 얼버무렸다. 지극히 좁은 자기 주변의 에피소드들을 가공해 피해자를 가해자로 뒤바꿔버린 것이다.
마치 납치사건 하나로 식민지배 최대 피해자 가운데 하나인 북한을 가장 악독한 가해자로 뒤바꿔놨듯이. 만일 식민지배가 없었고, 식민군 무장해제를 구실로 미군이 새로운 지배자로 들어와 일방적으로 국토를 남북으로 갈라놓지 않았고, 따라서 한국전쟁과 분단 고착이 없었는데도 일본인 납치사건이 발생했을까.
<요코 이야기>를 문제 삼는 사람들을 두고 민족주의에 눈이 멀어 단순한 가해 사실조차 인정하지 못하고 반성하지도 못하는 덜떨어진 짓이라고 비판하는 사람들이 있다. 누가 저질렀든 가해 사실은 정당화될 수 없고 가해자는 비난받고 단죄당해 마땅하다. 하지만 민족주의에 대한 과도한 경계 때문에 사실을 오인하거나 덜 익은 코즈모폴리턴으로 행세하는 건 민족주의보다 훨씬 더 위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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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과서 속에 ‘노동’없다?



7차 교육과정 경제 과목에서 찾기 힘든 ‘노동 문제’, 교과서의 편향성이여

▣ 조계완 기자 kyewan@hani.co.kr

현행 7차 교육과정에서 경제 과목의 노동 관련 대목을 보면, ‘경제성장 요인과 안정화 정책을 설명할 때 △기업경영 혁신 △가계저축 증대 △정부 규제 완화와 정책 일관성 그리고 △노사협력 등을 논의 자료로 사용한다’고 돼 있다. ‘학교 노동교육’에서 가르칠 노동 문제는 일과 직업에 대한 가치관, 직업세계와 직업선택, 노동인권, 실업, 노동조합 등 다양한 측면이 있다. 그런데도 현행 경제 교과서는 노동 문제를 오직 ‘노사관계’ 한 가지로 협소하게 다루고 있다. 게다가 노사관계를 보는 관점도 지극히 편향돼 있다. 노동인권이나 노사 간 힘의 불균형 해소라는 관점은 완전히 빠져 있고, 오직 국가 경쟁력 강화 차원에서만 노사관계를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 단병호 민주노동당 의원이 2006년 7월 인천 정보산업고를 찾아 학생들에게 노동인권을 가르치고 있다.(사진/ 한겨레 이종근 기자)




강성 노조 때문에 기업이 해외로?

(주)교학사, 대한교과서(주), (주)두산, (주)천재교육에서 펴낸 4종의 고교 경제 교과서를 보자. 노동 관련 서술 대목을 살펴보면 할애된 분량이 형편없이 적다(표 참조). 학교 노동교육의 철저한 부재라고 할 수 있다. ‘노동교육의 우파적 편향’을 걱정하기 이전에 노동교육 자체가 아예 없다시피 한 셈이다. 국민공통교육과정(1∼10학년(고교 1학년)) 중 중학교 사회과 교과서는 “근로기준법과 노동조합법이 있다. 헌법에서 노동3권을 보장하고 있다”는 내용, 그리고 ‘근로자와 기업가의 역할’을 간단하게 소개하고 있는데 이것이 전부이다. 노사갈등도 ‘사회 문제의 이해와 합리적 해결’ 소절에 10줄 정도 짧게 설명되고 있을 뿐이다. 노사갈등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보편적이고 중요한 사회적 갈등인데도 갈등 해결을 다루는 대목에 제시되는 사례들을 보면, 노사갈등은 아예 빠져 있거나 부정적으로 다뤄지고 있다. 한국노동교육원 송태수 교수는 “우리 학교에서 노동교육은 거의 이뤄지지 않고 있다. 노동이 빠진 국민경제와 사회 공동체, 그리고 노동 없는 미래 사회만 그려지고 있을 뿐이다”고 지적했다.
내용을 보면, 실업 문제는 대부분의 고교 경제 교과서가 다루고 있다. 그러나 ‘실업’ 내용을 제외한다면 ‘경제 안정과 성장을 위해 노사관계 안정과 노사협력을 요구하는’ 내용이 노동 관련 서술 대목의 거의 전부다. 교학사 교과서의 경우 ‘노동’은 ‘Ⅴ-2-(2). 국가 경쟁력 강화를 위한 한국 경제의 과제’ 중에서 ‘② 성숙한 노사관계 정립’을 다루는 단원에 등장한다. 내용은 △임금 상승률과 생산성 증가율 추이를 보여주고 △과격한 노동운동, 고임금, 강성 노조 때문에 일부 기업이 해외로 공장을 이전하고 △기업이 문을 닫거나 외국인 직접투자를 가로막는 요인은 잦은 노사분규와 과격한 노동운동 때문이고 △개방화 시대에 국제 경쟁력 강화를 위해 노조는 무리한 요구를 자제해야 한다고 서술하고 있다. 특히 두산 교과서를 빼면 노동시장의 ‘고용 구조’에 대한 내용을 거의 찾아볼 수 없다. 노동시장에서 비정규직이 50%를 넘고 상당수의 ‘예비 노동자’들이 생애 처음으로 노동시장에 진입할 때 비정규직이 될 공산이 큰데도 학교에서 비정규 노동을 전혀 언급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시장주의’ 강화된 7·8차 교육과정

학교 노동교육은 앞으로 직업세계에 진출할 학생들을 대상으로 노사관계·노동인권 등 노동자로서의 기회와 권리에 대한 의식뿐 아니라 노동문화, 직업선택, 근로계약 체결, 근로의 이행 및 종료까지 포함한 노동세계의 전 과정을 교육하는 것이다. 학교 노동교육은 사실상 사회과 교육과정 수립에 참여하는 사회·경제학자 네댓 명이 결정한다. 이들이 사회·경제 교과서에 ‘노동’을 얼마나, 어떤 내용으로 넣을지를 판단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 노동교육은 교과서 편찬에 참여하는 학자들의 우편향, 노동부의 무관심, 교육당국의 보수성, 정치사회적 분위기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근거 없이’ 불온시돼왔다. 물론 노동 문제를 아예 소홀히 취급한 측면도 있고, 노동을 이념적 차원에서 덮어놓고 기피한 측면도 있다. 특히 6차 이후 7·8차 교육과정으로 넘어오면서 ‘시장주의 교육’이 더욱 강화돼 노동교육 내용이 더욱 축소·우편향화하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사실 한국 노동자의 경우 노동조합에 대한 탄압 때문이 아니라, 노동조합을 불온시하는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스스로 위축되고 막연한 두려움이 내면화돼 노조에 가입하지 않는 성향도 강하다. 물론 학교 노동교육의 부재 탓이다.
전국사회교사모임 신성호 교사(중앙고)는 “1980, 90년대에 교육·노동 단체에서도 학교 노동교육을 정부에 적극적으로 요구하지 않았다”면서 “2003년부터 한국노동교육원이 학교 노동교육에 대한 관심을 보이고 민주노동당에서도 노동인권교육을 확대하고 있는 중이다”고 말했다. 한국노동교육원은 2003년 말에 프랑스·영국·독일 등 5개국 학교 노동교육의 실태를 분석한 바 있다. 노동교육원 송태수 교수는 “노사관계 갈등을 해결할 때 기업과 노동조합 쪽 실무자 대상 교육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사회적 환경과 의식도 중요하다”며 “노사관계 균형은 일반 국민이 노동의 가치를 존중하고 노사관계를 이해해야 성공할 수 있으며, 그 토대가 바로 노동교육”이라고 말했다.

“노동교육 배제는 큰 사회적 손실”

교육과정은 그렇다 치고, “전교조 소속 교사를 중심으로 학교 현장에서 교사들이 직접 노동교육을 하면 되지 않느냐”는 말도 나온다. 교사들이 교육과정을 재구성해 수업하면 노동을 학생들한테 충분히 가르칠 수 있다는 주장이다. 이에 대해 신성호 교사는 “ 사회과 수업 시수는 제한돼 있고, 짧은 시간에 교과서에 나오는 내용을 모두 가르치기에도 벅차다”며 “교과서에 나와 있지 않은 노동교육을 하면 당장 학생들부터 싫어하고, 학교장과 교육부의 제지를 받게 된다”고 말했다. 노동절 등 계기가 있을 때 교사들이 노동교육을 하더라도 금방 교육부의 금지 지시가 떨어지기 마련이다.
‘근거 없는 우려’와 달리 중·고교 학교 노동교육은 ‘이념’을 넘어선다. 노동조합과 노사관계뿐 아니라 일의 의미, 직업선택과 태도, 직업세계에서 보장되는 권리와 의무 등 포괄적인 내용을 다루기 때문이다. 특히 노동조합과 노사관계를 학교에서 일찍 가르치면 사회적 노사갈등 비용도 줄어들게 된다. 송태수 교수는 “노동교육은 시장경제 체제에서 갈등 해결과 민주주의 능력 함양에 가장 적합하고 필수적인 교육 영역”이라며 “어떤 역사적·정치문화적 배경에서든 학교 노동교육이 배제돼온 건 커다란 사회적 손실”이라고 말했다.


 



“노동자 권리는 인간 존엄성 문제”

중·고교 교과 통해 체계적으로 노동교육하는 프랑스·영국·독일

프랑스의 교육과정 지침서는 노동자 권리와 관련해 이렇게 규정하고 있다. “기업 내에서 노동자들의 권리는 인간 존엄성의 문제이다. 노동자로서 인간은 (컨베이어 벨트) 체인의 하나 또는 도구가 아니며 권리의 주체로 다뤄져야 한다. 그러나 노동자들은 복종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있고, 노동법은 노동관계 속에 존재하는 이런 불평등에 근거를 두어 제정됐다. 다음과 같은 사례 연구를 선택할 수 있다. △기업체의 단체협약을 비교 연구한다 △기업 내에서 노동자들의 집단적 의사표현 사례를 분석한다 △노동자의 권리가 어떻게 보호되는지를 알려주기 위해 판례를 공부한다.”
프랑스의 <시민교육>은 중학교 1∼4학년까지 주 3∼4시간의 필수교과로, 노동자의 권리와 자유, 고용 평등, 주 35시간 노동제 등을 다룬다. 이어 고교 <시민-법률-사회교육> 교과는 빈곤, 일할 권리와 시민권, 근로계약서, 임금, 아동노동, 여성노동, 산업안전, 근로조건, 불법노동, 노동조합과 노동자의 대표, 노동자들의 행위와 집단적 조직, 파업 등을 3년간 체계적으로 교육한다.
영국에서는 10여 년간의 논란 끝에 2002년부터 <시민교육>이 학교 정규교육 과정에 도입됐다. 이에 따라 10∼11학년에서 노동교육을 실시하고 있는데, 노동세계의 권리와 책임을 주로 학습한다. 구체적인 수업 주제로는 사용자와 노동자의 권리·책임, 청소년 노동인권, 아르바이트 노동 때 점검해야 할 목록, 노동자 상담 및 지원센터에 대한 정보, 노동조합, 산업안전, 노사분쟁 등이 다뤄진다. ‘노동사회’로 불리는 독일은 중등 사회 교과서에서 ‘노동’을 매우 중요한 주제로 다루고 있다. 특히 독일의 노동교육은 모든 교과서들이 토론식·유도식·체험식 방법을 채택하고 있고, 서술식 구성을 피하고 있다. 또 자료 취합의 구성을 채택해 단락마다 주제에 적절한 자료들(법규, 성명서, 신문기사, 그래픽, 통계 등)을 엮어 제시하고 있다. 한국노동교육원 송태수 교수는 “독일 교과서들은 내용 면에서도 대비되는 입장을 공정하게 보여주고 객관성을 유지하고 있다”며 “노동세계와 노사관계에서 민주주의적 갈등 해결 원칙을 교육해 독일 사회의 민주주의와 사회통합 구현을 추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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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심한 문화체육관광부
 
 
 
한겨레 김창금 기자
 








 

» 김창금 기자 kimck@hani.co.kr
 
타임아웃 /

문화체육관광부가 2008 베이징올림픽 연예인 응원단 파견비용으로 2억원을 썼다고 한다. 21명의 연예인과 이들이 데리고 간 수행원까지 합쳐 모두 42명이 8월9일부터 19일까지 5성급 호텔에 묵으면서 호텔비로만 1억1600만원을 썼다. 1인당 숙박비만 283만원이다. 돈은 모두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개인적으로 판단해 쓸 수 있는 스포츠토토 수익금에서 나왔다고 한다.

대표선수를 응원하는 것을 싫어할 시민은 없다. 그런데 정작 대표선수를 관리하고 육성하는 스포츠 단체들은 못내 씁쓸한 표정이다.

연예인을 동원해 응원하는 방식도 구태의연하지만, 쓸 수 있다고 돈을 마구 쓰는 장관의 행태가 황당하다는 것이다.

한 비인기종목 협회의 임원은 “돈 많이 버는 연예인들이 자기 돈을 쓰면서 좋은 데서 자고 먹고 하는 것은 뭐라할 수 없지만, 국가가 그들에게 숙식을 제공하면서 응원을 해야 하느냐”며 힐난했다.

그럴만도 한 것이 올림픽에 나가는 대표선수들이 받는 수당은 하루 3만원에 불과하다. 이것도 최근에 급격히 오른 것이다. 2002년 이전에는 하루 5천원을 받고 뛰었다. 일부 재정적 여유가 있는 협회는 수당 이외에 격려금을 주지만 미미한 액수다. 이런 상황에서 연예인 한 명당 하루 50만원 가량을 들이면서 응원을 하려고 했다는 발상에 혀를 차고 있다.

비인기 종목이 느끼는 허탈감은 특히 더하다. 각종 국제대회에 나가기 위해 정부에 재정지원을 요청하면, 승인이 떨어지는 것은 10~20%에 불과하다. 그것도 선수단 전체에 대한 지원이 아니라 일부에 대한 부분지원이 대부분이어서 협회가 비용을 충당해야 한다. 그런데 일회성 반짝행사인 연예인 응원단에 퍼주듯 돈을 쓴 것을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이다.

대한배구협회의 한 관계자는 “국제대회 출전 대표선수들에게는 정부가 지원하는 일일수당 3만원과 협회 격려금 170달러가 전부”라고 말했다.




만약 11일간 대회에 출전하면 60만원 정도를 받는 셈이다. 이 액수는 연예인 응원단 1명 체류비의 10분의 1에 불과하다. 연예인 출신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이런 사실을 알기나 할까?


김창금 기자 kimc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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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섬고개 친구들
김중미 지음 / 검둥소 / 2008년 8월
절판


엄마가 말을 마치자 새벽 두 시가 넘었다. 엄마는 퉁퉁 부은 눈을 손바닥으로 비비고 나서는 계면쩍게 웃었다.
"내가 어린 아들 잠도 못 자게 신세타령을 했네. 미안하다."
나는 뭉클해지려는 마음을 억누르며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쑥스러운 걸 참으며 엄마에게 물었다.
"엄마, 나 오늘은 엄마 옆에서 자도 돼?"
엄마가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잠든 한나를 벽 쪽으로 슬쩍 밀어내고 엄마 옆에 누웠다. 그리고 말없이 엄마 허리를 껴안고 눈을 감았다.-61쪽

"강선경, 너 도대체 이게 무슨 짓이야?"
선생님의 성난 모습에 술렁대던 아이들이 모두 몸을 웅크리고 입을 다물어 버렸다. 겁이 난 나는 눈을 내리떠 보며 반 아이들을 살폈다. 어느 누구도 내 편을 들어줄 것 같지는 않았다.
"선경아, 무슨 일이야? 그동안 선생님이 선경이를 잘못 봤니? 이렇게 너보다 약한 애랑 몸싸움을 하다니!"
선생님의 말에 눈앞이 흐려졌다. 선생님한테 무언가 말하고 싶었지만 그동안 있었던 일들이 머릿속을 맴돌 뿐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나는 터져 나오려는 울음을 참고 교실 밖으로 뛰어나왔다.-70쪽

"기러믄, 태욱이네 미용실 골목이래 다 헐렸간?"
"응."
할머니의 얼굴이 착잡해졌다.
"근데 할머니, 우리 동네도 철거한다는 말이 돈다는데."
"기런 말이야 벌써부터 있었디."
"그럼 어떻해."
"걱덩 말라우. 내래 그 집 헐라고 하므는 집에서 한 발짝도 안 나갈 거니까니."
"그럼 나도 할머니랑 같이 싸울게."
할머니가 눈가가 자글자글해지도록 웃어 주었다. 나는 얼른 할머니를 끌어안았다. 할머니의 품은 언제나 푸근하고 따뜻했다. 그러나 언제까지 할머니한테 기댈 수 없을 거라는 생각에 마음 한 구석이 서늘해졌다. -104쪽

"아버지. 내가 선생님 돼서 월급 모으면 아빠 땅 사 드릴게요. 아빠 오늘 월남 얘기해 준 거 되게 좋았어요. 나중에 또 해 주세요."
아버지의 표정이 잠시 밝아졌다.
"내가 지금 괴물이랑 싸우고 있거든. 이 괴물도 언젠가는 힘이 빠지고 늙겠지. 그러면 그땐 내가 이 괴물을 쳐부수고 가족에게 돌아갈 거야."
나는 아버지가 하는 말뜻을 다 알아듣지 못했다. 그저 언젠가는 우리에게 돌아온다는 말이 가슴에 아로새겨졌다. 아버지는 버스가 오기 전 주춤거리며 내게 다가오더니 나를 품에 안았다. 처음 안겨 보는 아버지의 품이 뜻밖에도 따뜻했다. 나는 버스에 올라타는 아버지를 향해 손을 흔들어 주었다. -116쪽

"할머니한테는 내가 최고지?"
"기럼."
"아빠보다도?"
순간 할머니의 눈빛이 흔들렸다. 나는 할머니 눈을 피하며 너스레를 떨었다.
"할머니, 내가 할머니한테 다 갚아 줄게. 할머니 고생한 거, 다. 그러니까 괜히 울고 그러지마."
할머니가 주름진 손등으로 눈을 훔치며 말했다.
"내래 언제 울었간? 밥이나 먹자우."
"맞아. 나 배고파 할머니."
나는 할머니가 벽을 짚고 일어나는 걸 도와 같이 주방으로 갔다.-127쪽

"다시 한 번 좋게 말할 때 들어. 일 크게 만들지 말란 말이야. 그 선생님이 이 학교에서만 이십 년이야, 인마. 이보다 더한 일도 있었는데 아직 건재하다고. 너 혼자 윤똑똑이 짓 해 봤자 아무 이득 없어. 네가 이런 일을 크게 만들면 학교 전체가 시끄러워지고 너희들도 손해야. 너 생각해 봐. 너 혼자 이래 봤자 되는 일이 없어. 애(얘?)들이 네 편들어 줄 거 같아? 천만에. 솔직히 저 선생님 건드릴 수 있는 거였으면 벌써 문제가 해결됐을걸. 네가 혼자 들고 일어나 봤자 아무 소용없어. 공부 잘하고 똑똑한 놈들은 제가 당하지 않는데 나설 리 없고, 어중간한 놈들도 괜히 끼어들지 않을 거고. 태욱이 같은 놈들이야 부르대겠지만 솔직히 공부 못하고 별 볼일 없는 애들 편을 누가 들 거야? 하다못해 수학 선생님한테 당한 놈들 부모도 대학 입시 생각해서 함부로 안 나선다고. 까놓고 말해서 너희 부모님이 네 뒤를 봐줄 만큼 빽이 좋냐? 자칫하다간 너만 똥 밟는 거야. 너 괘씸한 거 생각하면 오늘처럼 혼자 날뛰는 거 그냥 놔두고 징계 처리 받게 해도 돼. 그렇지만 명색이 담임으로서 너한테 기회를 주는 거야. 이미 학생주임 선생님이 우리 교실에 가서 아이들한테 -195쪽

으름장 놓고 나왔을 거라고. 괜히 너랑 태욱이한테 부화뇌동하는 놈 가만 안 둔다고."
말로는 나를 걱정해서 하는 충고라지만 담임의 말투는 거의 협박 투에 가까웠다. -이어서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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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소풍 - 따뜻한 사람들이 만들어가는 순박한 밥집
김홍성 글 사진 / 효형출판 / 200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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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베트 불교의 한 상징인 룽타가 그려져있어서 흔히 룽타라고 불리는 이 깃발을 우리는 무던히도 좋아했다. 누가 우리더러 왜 하필 그 골목에 식당을 차렸냐고 물으면 골목에 펄럭이던 룽타가 좋아서라고 대답하곤 했다.-23쪽

집집마다, 아낙마다 뒤질세라 열심히 가꾸는 창가의 꽃들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어린 딸들처럼 작고 예쁜 꽃들이 조르르 앉아있는 창을 만날 때마다 나는 괜히 눈물이 났다.-2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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