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보슬비 > [흔적] 디지로그 digilog
디지로그 digilog - 선언편
이어령 지음 / 생각의나무 / 2006년 4월
절판


정보사회에서의 '미각'과 음식물은 디지털화할 수 없는 마지막 아날로그의 영토를 대표하는 성벽이라 할 수 있다. 동시에 사람은 동물처럼 배를 채우기 위해서만 먹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준다. 인간의 먹는 행위는 생리적인 욕구나 물질적인 경제가치로만 설명할 수 없는 그 이상의 문화적 의미를 나타낸다. 음식물이 정보를 교환하는 미디어의 역할을 하고 있다는 이야기이다.

=>정보와 음식이 연결될수 있는 코드라고는 생각해 보지 않았는데, 그래서 사람들은 주목할지 모르겠어요.-.쪽

먹는 것이 문명의 의미를 상징하는 것은 전 지구적인 현상이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사과 문명론이 바로 그러한 보기의 하나이다. 아담과 이브가 따먹은 사과(선악과)에서 기독교 윤리의 헤브라이즘이 나왔다면 미의 여신 아프로디테에게 바친 파리스 왕자의 사과에서는 심미적인 헬레니즘이 발생했다고 말한다.
그리고 빌헬름 텔의 사과에서는 독재 권력을 싸워 이긴 민주주의가 탄생했고 뉴턴의 사과를 통해서는 근대 인간의 이성과 질서를 상징하는 과학시대가 열렸다. 이러한 문명의 시작만이 아니라 스피노자의 사과나무에 이르면 종말의 이미지까지도 담고 있다. 대중적인 사과 문명론은 이미 앞에서 본 대로 애플컴퓨터에까지 이어져 정보시대의 상징물로 등장하기도 한다.

=>사과가 주는 상징이 꽤 크네요. 세계를 바꾼 사과니깐요.-.쪽

스팸은 햄 통조림 이름이다. 그런데 어째서 그것이 정크 메일과 같은 쓰레기라는 뜻으로 사용되고 있다.
공장에서 다량으로 생산된 스팸 통조림 맛은 백이든 천이든 그 맛이 똑같다.
(중략)
스팸 통조림 - 무차별적으로 발송되는 스팸 메일의 유래가 바로 통조림 브랜드, 스팸이다.
(중략)
스팸은 우리가 지금 당면하고 있는 '정보포식'상태와 그러한 정황 속에서 우리가 잃고 있는 디지털의 '정보현실감'이 무엇인지를 보여준다.

=>스팸메일을 보면서 항상 왜 스팸메일일까? 궁금했는데 이제 이해가 가네요^^;;-.쪽

젓가락이 상호의존성과 관계를 중시하는 배려의 정신에서 나온 것이라면 포크와 나이프는 개체의 분리를 기본으로 하는 독립성에서 비롯된 것이라 말할 수 있다. 사실 근대의 개인이 출현하기 전까지는 서양 사람들도 포크와 나이프를 사용하지 않았다.
젓가락으로 밥을 먹는 것이 포크와 나이프로 식사하는 것보다 우월한 것인가 열등한 것인가를 따지자는 것이 아니다. 문화는 상대적인 것이므로 절대적인 평가 기준이란 있을 수 없다. 그러나 우월성이 아니라 어느 것이 더 정보시대의 특성에 맞느냐 하는 '적합성' 면에서는 그 비교와 분석이 가능하다.

=>항상 문화의 우월성만 따졌지,특성에 맞는 적합성은 무시했던것 같습니다.-.쪽

한국 정치가 그냥 직선 궤도를 달리는 보통 열차였다면 단 한 번의 추락으로 산산조각났을 것이다. 그러나 한국인은 정말 롤러코스트의 기적 같은 원심력, 구심력과 좌우 균형감각을 가지고 역사의 궤도를 순발력 있게 활강한다. 천 번 만 번 추락해도 새로운 청룡 하나가 내일 다시 떨어진 그 바닥으로부터 솟아오를 것이다. 좌로 쏠리고 우로 부딪치는 이념 싸움과 전쟁 속에서 불안과 공포의 절규가 터져 나와도 사람들은 안도의 숨을 쉬며 땅에 내려온다. 그리고 또 그 무시무시한 청룡열차를 타기 위해서 줄을 선다.
한국인들의 행동양식은 언제나 극단으로 치닫는 것같이 보인다. 머리띠를 두르고 결사반대를 외치는 여당과 야당의 싸움을 보고 있는 외국인들은 양쪽에서 마주보고 달려오는 열차를 보는 것 같다고 말한다. 그러나 부딪치기 직전 그 열차들은 서로 교차하면서 빠져나간다. 그 선로는 단선이 아니라 복선이었던 것이다.
개발 독재 열차, 문민 독선 열차, 386 막가는 열차……. 그것이 무엇이든 정상에 오르자 낭떠러지로 떨어지는 추락의 충격 속에서도 한국인이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은 결코 훌륭한 정치가나 영민한 경제학자, 뛰어난 과학자가 있어서가 아니다. 한 번도 정상에 올라본 적은 없지만 놀라운 균형감각과 순환의식을 지닌 평범한 한국인들의 힘이 있기 때문이다. 좋은 의미로든 나쁜 의미로든 도킨스가 이름 지은 바로 그 문화 유전자 밈(meme)의 힘인 것이다.-.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빠삐용의 책읽기 - 김광일의 책 읽어주는 남자, 하나
김광일 지음 / 생각의나무 / 2006년 2월
평점 :
품절


작가 혹은 평론가 등의 저자가 간행한 '서평모음집'을 찾는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겠다. 아마도 숱하게 쏟아지는 책 가운데 어떤 책을 선택할 것인가 하는 판단에 도움을 받고자 하는 경우가 대부분일 것이고, 각종 언론에서 이뤄지는 서평의 빈약함이나 가벼움을 보충하고자 하는 경우이겠다. 또는 엔쏠로지 형태로 책을 다 읽지 않고도 그 맥락을 짚어보고자 하는 또다른 가벼움이거나...

서평집 역시도 그리 희박한 장르는 아니어서, 대개 저자의 편력이나 특장들을 확인하고, 그 '시각'에 대한 일정한 이해를 하고 책을 접하게 된다. '글쓰기, 특히나 서평 쓰기가 밥벌이'일 수 있는 기자 직업의 필자가 쓴 글의 깊이나 다양성은 어떨까?

'평균적으로 일주일에 약 백여 권씩 발간되는 단행본 가운데 엄선에 엄선을 거듭해서 고른 책...'(<책머리에>)에 대해서는 그 어려움에도 공감하지만(다 읽을 수는 없겠고, 일정한 자기선호나 시각이 당연히 작용할 터) 또한 직분과 관련해서는 상당한 책무감도 있으리라 생각한다.

그런데 '저는 이 책에 실려 있는 책들을 우리가 종신형을 선고 받고 무인도로 들어갈 때 마지막에 골라야 하는 10권의 책처럼 골랐습니다. 무인도로 들어가는 빠삐용이 책을 10권만 사다 달라고 저에게 부탁한다면 그때 골라주고 싶은 책들'(<책머리에>)이라고 한다. 그래서 책 제목도 그러할 것이고, 어떤 비장함이 느껴지는 서술 덕에 첫 장을 넘길 때부터 진지해진다.

다루고 있는 작품은 주텍스트, 보조텍스트를 포함하여 무려 예순 세 권이다. 그런데 독자들을 위해 상당히 친절하게 배려한, 자상한 설명에도 불구하고 저자의 독서편중은 이 책의 특장이랄 수밖에 없겠다. 목록 일부분을 보면...

오쿠다 히데오 장편 <인 더 풀>/강병융 장편<상상인간 이야기>/김경 산문집 <뷰티풀 몬스터>/아멜리 노통브 <시간의 옷>/배빗 콜 <내 멋대로 공주>/알베르토 모라비아 장편 <권태>/마이클 프레인 <곤두박질>/존 그리샴 <톱니바퀴>/돈 드릴로 장편 <화이트 노이즈>/한네스 슈타인, <반 지성 독트린: 생각 없이 살기]/로랑 그라프 <매일 떠나는 남자>/캐롤라인 황 <스물일곱, 내 청춘이 수상하다>/윌 퍼거슨 장편 <해피니스>…

'빠삐용에게 줬다가는 다소 서운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으로 제목을 바꿔보면 어떨까.

<빠삐용의 이 시대 '사랑' 읽기>

저자의 박식함이 면면 드러나기도 하지만, '어설픈 주말 외출, 지지부진한 영화보다 당신을 열 배쯤 행복하게 만들어줄 책입니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당신이 책읽기에 들인 시간만큼 제가 손들고 서있겠습니다'(92쪽)는 책을 검색했더니 '(기사를 보고 읽었는데..) 손들고 있으라고 하고 싶다'는 서평이 올라온다면...(올라있다^^) 두 가지겠다. 자타가 인정하는 영향력 있는 신문의 위력이 영향력이 별로 없거나, 필자의 시각일 텐데... 여하튼 일정한 주제(이 시대 '사랑'이라는 여러 양태들)에 대한 깊이는 인정해야 할 듯.

 두서너 권은 이미 읽었고, 이 [서평모음집]에 기대어 한 권의 책을 선택해본다. [섭섭하게, 그러나 아주 이별이지는 않게]...


댓글(1)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달빛푸른고개 2006-05-09 13: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1쇄) 92쪽 2행의 따옴표(') 삭제해야^^
 
달려라, 아비
김애란 지음 / 창비 / 2005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지난 연말부터 올해초까지 문단에서 가장 주목받은 작가 김애란.  문단에 '80년대 작가가 화려하게 등장했다'는 수사들은 그만큼 (젊은 나이가 아닐 수도 있는) 70년대 이후의 주목받는 작가가 드물었다는 측면에서는 새로움에 대한 기대를 '과분하게' 받고 있다는 측면이 강하다고 보인다. 결국 작품으로 그 새로움을 확인해 볼 일이다.

'누가 뭐라 하건 소설은 문체입니다. 문체가 있어야 소설이 직립하고, 문체가 있어야 소설에 진행이 생깁니다. 주제와 구성이 통시대적이라면, 문체는 무엇보다 당대적입니다.' ([빠삐용의 책 읽기],137)

이 책을 소개하는 김광일씨의 기사가 상기시키는 바대로 이 소설의 문체는 나처럼 기존의 고전적 독서경험에 익숙한 독자들에게는 상당히 이질적이다. 호흡의 속도..

9편의 단편집인데, 등단작이라 할 수 있는 <노크하지 않는 집>과 <달려라 아비>가 인상에 남는다. 전체적으로 화자의 환경이나 전개가 (미리 예측가능할 정도로) 유사하지만, 이를 평가의 잣대로 삼기는 어렵다. 이제 문단에 새롭게 하나의 물음표로서 작용하기 시작했으니... 부러 '해설'을 읽지 않고, 다음 책을 기다려본다. 또한 천운영과 김애란 사이의 간극이 무엇인지도 되새겨볼 일.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빠삐용의 책읽기 - 김광일의 책 읽어주는 남자, 하나
김광일 지음 / 생각의나무 / 2006년 2월
품절


물론, 저자의 글(한네스 슈타인, [반 지성 독트린: 생각 없이 살기])은 패러디입니다. 참된 지성이란 '도구적 사슬'을 끊어내는 것이라고 말하고 싶은 것인지도 모릅니다. 도구적 사슬이란 뭡니까. '단지 외부로부터 어떤 통로를 거쳐 내 머릿속으로 들어와 저절로 자기들끼리 희희낙락하며 편안하게 머리 안을 흘러 다니다 때때로 어느 포털 사이트 게시판쯤에 방출되는 점액질의 이미지와 말들'(역자서문)이 아니겠습니까. 삿된 머리 굴리기로 해골 복잡하게 만드는, 스팸 같은 인포메이션들 말입니다. -51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내 영혼이 따뜻했던 날들
포리스트 카터 지음, 조경숙 옮김 / 아름드리미디어 / 2003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책의 국내 초판 발행은 1996년의 일이다.(미국에서의 초판 발행은 1977년) 국내 출간 이후 지금도 베스트셀러에 항상 랭크되어 있는 책이다.(그러한 책들 몇 권을 기억나는 대로 읊조려보면, [상실의 시대](하루키, 문학사상), [목적이 이끄는 삶](신앙 관련), [모모](이 책은 드라마 덕에 최근에 다시 인기가 있는 책), 그리고 [누가 내 머리에 똥 쌌어?], [사과가 쿵], [강아지똥] 등등의 (자녀교육용) 유아그림책... [내 영혼이 따뜻했던 날들]이라는 작품은 내 짐작으로는 앞으로 꽤 오랜 시간이 지나도 꾸준히 지금의 관심이 유지될 것으로 보인다. 분명 그럴 것이고, 좀더 적극적으로는(^^) 그래야 할 책이다.

기억하시는지, 다음 문장...

'인디언은 우의의 표시로 손바닥을 펴서 들어올려 보인다. 아무 무기도 갖고 있지 않다는 뜻이다. 할아버지의 눈에는 충분히 이치에 맞는 이 행위가 백인들에게는 우스꽝스럽게 비치곤 했다. 백인들은 악수로 같은 뜻을 표현하지만, 악수라는 것은 감칠 듯이 다정한 말을 입에 올리면서도 친구라고 하는 상대가 혹시라도 소매 속에 총을 숨기고 있을까봐 그것을 떨어뜨리기 위해 흔들어대는 행위라는 게 할아버지의 주장이셨다. 할아버지는 악수를 좋아하지 않는다. 일단 친구라고 생각한 상대를 의심하며 소매에서 뭔가를 떨어뜨리려는 사람이 좋게 보일 리 없었던 것이다.'(194)

 

어디 이뿐인가? 장면장면마다 세상과 사물, 그리고 관계에 대해 (할아버지 할머니로부터 손자에게 전승되는) 그 놀라운 지혜들이란...

 

'그런 사람들은 살아 있어도 죽은 사람이 되고 만다. 할머니는 어디서나 쉽게 죽은 사람들을 찾아낼 수 있다고 하셨다. 여자를 봐도 더러운 것만 찾아내는 사람, 다른 사람들에게서 나쁜 것만 찾아내는 사람, 나무를 봐도 아름답다고 여기지 않고 목재와 돈덩어리로만 보는 사람, 이런 사람들이 죽은 사람들이었다. 할머니 말씀에 따르면 그런 사람들은 걸어다니는 죽은 사람들이었다.

영혼의 마음은 근육과 비슷해서 쓰면 쓸수록 더 커지고 강해진다. 마음을 더 크고 튼튼하게 가꿀 수 있는 비결은 오직 한 가지, 상대를 이해하는 데 마음을 쓰는 것뿐이다.'(102)

 

아메리카 대륙에서 마야문명이나 인디오문명은 문명개화의 속도가 달라 결국 식민지화된 제국주의의 침탈이 가장 명징하게 드러나는 사례이다. 20세기에 들어서는 이제 자본주의 속성까지 말짱하게 드러나 테이크아웃 종이컵에 갇혀버린 '체 게바라'가 있었고, 지금도 정글에서 전 세계로 평화의 이메일을 날리고 있는 멕시코의 '마르코스'도 있다. 주변에 우리의 의식조차 강제하고 있는 이러한 '자본의 속도'를 지금 어떻게 이해해야 할 것인가?

 

혈통의 동질성이나 약자에 대한 동정이 아니라 그들을 존경하고, 우러를 수 있는 것은 그들이 이룬 문화적 성취 또는 세계관이 아닐까? 그러한 인디언의 세계관(자연관) 등이 생생히 체현된 서술로 이어지는 이 책은 그 자체로 완벽한 문화재는 아닐런지...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조선인 2006-05-06 20: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뜬금없이 죄송한 이야기지만 저자에 관한 참혹한 진실입니다. 한 번 읽어보시길.

http://www.aladdin.co.kr/blog/mypaper/860902


달빛푸른고개 2006-05-08 13: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 자료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작품과 그 작가의 생애를 등치시킬 수는 없겠지만, 일단 '자전적 요소'가 허구일 가능성은 작품의 감동을 반감시키기에 충분하네요. 특히 '논픽션' 부제가 삭제되는 과정이 있다는 내용은 미국에서도 일정한 '평가작업'이 있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도 있겠구요. 좋은 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