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에서 만난 세상 - 대한민국 인권의 현주소를 찾아
국가인권위원회 기획, 박영희 외 지음, 김윤섭 사진 / 우리교육 / 200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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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사는 세상은 지금 어디쯤 와있는가? 시인 박영희, 소설가 오수연, 전성태 등이 이 사회의 그늘진 곳을 찾아나섰다.(국가인권위원회에서 발간하는 월간 <인권>에 연재된 글 모음집)

탄광촌과 나병환자촌, 새벽바다의 어부들과  어린 엄마들, 그리고 창신동 미싱골목 등 우리와 함께하는 이웃들의 삶을 여실히 보여주는 수작이다. 부디 많은 청소년들이 함께 공감했으면 한다. 르뽀라는 글 양식이므로 작가들의 글을 꼭지별로 인용해본다.

(탈학교 아이들) "선거 때마다 화가 났어요. 열여덟 살이면 세상의 장단점을 파악할 수 있고, 참여할 권리가 있는 나이 아닌가요? 실업계 학교 학생들은 3학년 때 취업을 나가면 봉급도 받고 세금도 내잖아요. 그런데 왜 세금까지 내는 사람들한테 투표권을 안 주는 거죠? 국가는 국민의 세금으로 돌아가잖아요."(66쪽)

(코시안) "한국에 살고 싶어 찾아온 외국인들을 뒤로한 채 과연 복지국가와 세계화를 말할 수 있을까요?"(72쪽)

(아시아 여성) 드디어 그들이 왔다. 여러 '언니의 집'에 모인 200명도 넘는 베트남 처녀들이 한국 남자들이 머물고 있는 호텔로 갔다. 한국 남자들은 고작 열 명 정도였다. 그들이 안내자와 쌍을 이루어 호텔 방을 하나씩 차지하고, 베트남 처녀들은 줄지어 방들을 순례했다. 한 방으로 들어갔다가 한국 남자가 아무 말 없으면 다음 방으로, 그 다음 방으로 갔다. 한 남자가 롱을 지목했다. 남자들은 대열 중에 일단 눈에 드는 처녀를 다섯 명쯤 골라 방에 앉혀 놓았다가, 나름의 기준으로 그중 한명을 선택했다. 롱이 뽑혔다. "넌 운이 좋은 거야." 안내자의 통역에 따르면, 그 남자는 롱에게 처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그의 나이 예순세 살이었다. 이튿날 남자는 롱의 부모님을 방문하여 허락을 받고, 그 다음 날 결혼식을 올렸으며, 롱은 마침내 한국에 왔다. "1억원을 줘도 싫어." 7개월 후 롱은 이렇게 되뇌며 베트남으로 돌아갔다. 그동안 새벽부터 저녁까지 남편이 운영하는 해장국집에서 설거지 그릇에 파묻혀 지냈고... (88~89쪽) 자기가 운영하는 음식점에서 외국인 아내를 부려먹다가 인권 단체 실무자가 조사를 나가자 "종업원 쓰기가 힘드니까 데려왔지. 내가 미쳤다고 외국 여자랑 결혼하느냐?"고 호통을 치고, 중매 업체에 찾아가 "지금 아내가 너무 고집이 세서 반품하고 이혼할 테니까 다른 여자랑 재혼하게 해 달라"고 요청하기도...(98쪽) 사랑이야말로 국경을 넘지 못하는 건 아닌지. 따져 보니 그 지역 필리핀 신부들 태반이 맏며느리였다. 우연일까? 농촌의 장남이라면 우리나라 여성들이 선호하는 혼처라고 할 수는 없다. 그래서 외국인 신부들이 많을 수밖에 없는지도 모른다. 그들이 제사를 모신다. 전통과 가계를 그들이 잇고 있다.(100쪽)

(막장..)"아마 광부들이라면 다 그랬을 거야. 막장에서 일하는 것보다 더 두려운 게 하나 있는데 그게 뭐였는지 아나? 1년에 한 번씩 받는 정기검진이야. 자신의 건강을 위해서라면 백 번이고 천 번이고 받아야 마땅하겠지만 그게 어디 말처럼 되는감. 만에 하나 이상한 증세가 발견되면 그날로 광업소에서 쫓겨나는 마당에. 그러면 가족은 누가 먹여 살리고 자식들 공부는 누가 시켜 주나?"(130쪽)

(지하철 노동자) 을지로 순환선이 한 바퀴 도는 데 87분이 소요된다. 이들이 하루 동안 전동차를 운행하는 시간은 4시간 24분. 운행거리는 총 146.4킬로미터이다. 근무 교대는 열차가 역사에 머무는 30초 동안에 이루어졌다.(180쪽)  지난해 11월 도시철도 노조가 84명의 기관사에게 신경정신과 검진을 받게 한 결과 20명의 기관사가 공황 불안 장애 진단을 받았다. 기관사들이 집단적으로 정신 질환을 앓고 있는 셈이다.(183쪽)

(고충 수업, 타율 학습) 하루 대부분을 학교에 묶여 있는 학생들에게 집은 잠자는 곳에 불과하다. 따라서 학생들은 학교나 학원에서 헤어지며 "잘 자고 와!", "이따 보자!" 하는 기묘한 인사를 나눈다.(2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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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연습
조정래 지음 / 실천문학사 / 200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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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말 그대로 '大河'에 빠지고 싶은 충동이 일 때, 붙잡게 되는 책들이 있다. <임꺽정>, <장길산>, <태백산맥> 3부작 등... 한 열흘 정도는 항상 토끼눈을 하고, 그래도 또 날밤을 새우게 하는 책들...

<한강> 이후 오랜만에 조정래의 장편을 만났다. 분량만으로 장편은 하나의 '큰' 업적으로 평가되기는 하나 작가 조정래에게 장편은 외려 가벼운 '외출'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는 이미 질곡의 현대사를 방대한 분량의 대하소설로 일궈낸 작가이기 때문일 것이다.

1993년 남북 정권의 합의에 의해 북송된 비전향 장기수 이인모선생. 이 작품은 그러한 과거 치유(현실적 계산도 물론 고려된 조치이긴 하지만)의 뒷그늘에서 더욱 고통스러웠을 '전향' 장기수를 통한 현실읽기이다. 수감기간만으로도 이미 세계 최장기 양심수들을 배태한 분단현실의 암울한 그림자이다.

기존의 고정간첩과의 접선계획도 없이, '서점'을 차리기 위해 남파된 윤혁. 순진하게 학교동창에게 접근했다가 어떠한 실적도 내지 못하고 잡혀서, 모진 고문 속에 무기수 판결을 받고 투옥된 주인공. 살인적인 전향공작에 떠밀려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전향서를 날인을 하고, 그로 인해 주어진 한정된 자유공간에서 아이들을 통해 새로운 '희망'의 싹을 본다는 줄거리는 그들의 순결한 '생애'에 비해서는 다소 긴장이 떨어지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갖게 한다.

그러나...

"알아요, 다 알아요. 강제로 그렇게 된 것, 아니 거짓말로, 그게 아니고, 그걸 뭐라고 해야 되나, 그래요, 그놈들이 가짜로 만든 것 다 알아요. 박 동지가 꺽이지 않고, 항복하지 않았다는 것도 다 알아요. 설령 박 동지를 오해하고 멸시하는 사람들이 있어도 그건 그 사람들 잘못이에요... 나 같은 놈도 사니까, 그 일 다 잊어버려요."(22~23)

생을 마감하면서도 '전향서에 손도장을 누른' 죄의식에서 벗어나지 못하며, 그러나 자신의 순결한 정신을 훼절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누군가로부터 확인받고자 하는 그 의식은 분단이 개인에게 강요한 가혹한 희생을 대변한다.

'몸이 그렇게 되는 동안 주인 여자가 말한 사흘이 어떻게 지나갔는지 전혀 시간 감각이 없었다. 차라리 그대로 죽었으면 좋았을 것을..., 문득 스친 생각이었다. 죽음..., 인생의 끝..., 별로 두려운 생각이 없었다. 북쪽을 떠나면서부터, 남쪽에 침투하고, 검거되고, 조사 받고, 긴 세월 감옥살이를 하는 동안 얼마나 많이 생각했던 것인가. 이 세상에서 죽음을 가장 많이 생각하고 언급하는 직업이 철학가고 종교인들이겠지만 그 절박함과 밀도에 있어서 자신들을 당할 수 있을 것인가. 어쩌면 자신들이 이 세상에서 가장 급박하고 절실하게 죽음을 생각한 부류들이 아닐까. 그렇게 해서 정리된 죽음은, '영원한 잠'이었다. 그 영원한 잠을 혼수상태와 다름없었던 지난 사흘 동안에 얻을 수 있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생각이 떠나지 않았다.'(61~62쪽)

죽고 싶어도 죽을 수 없는 삶의 조건 앞에서, 한 평이 채 안되는 독방에 갇인 무기수에게 남겨진 '시간'이란 무엇을 의미하는가. 세계적으로 최장기 수감기록을 남긴 이 땅의 '비전향 장기수'는 과연 그들만의 상처인가, 분단의 상황이 종결되기까지 우리는 그러한 상처를 보듬고 치유하며, 아직도 가려진 어둠의 그늘로부터 자유로워져야 하는 숙명임을 새삼 깨닫게 하는 책읽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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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사람들이 지은 감자농사, 풍년입니다
아이들 위한 '행복한 울력'에 동참했습니다
텍스트만보기   임윤수(zzzohmy) 기자   
▲ 감자 캐는 사람들의 표정, 풍년과 행복 그 자체입니다.
ⓒ 임윤수
칠순을 훨씬 넘기신 노스님과 할머니는 물론 감자를 캐던 모든 사람들이 뽀얗고 커다란 감자를 양손 가득 들어 올린 채 "젊은 양반이 이 맛 알겠시유"하며 환한 웃음으로 수확의 기쁨을 나타내십니다.

감자농사가 잘 됐기 때문에 일을 하시면서도 기분들이 좋으신가 봅니다. 끄무레한 날씨 탓에 쨍쨍한 햇살이 내려 쬐는 건 아니지만 장마철이라 그런지 후텁지근한 그런 오후입니다.

두둑을 거반 깔고 앉은 채 감자를 캐셔야 할 만큼 나이가 드신 할머니셨지만 일하시는 손길은 가볍게만 보입니다. 새댁시절부터 농사일을 하셨던 할머니기에 일머리를 알고 계셔서 그럴 수도 있겠지만, 지금 캐내는 감자가 당신의 손자나 증손자가 다닐 유치원을 건립하는데 주춧돌이 되고 종자돈이 될 거라고 생각하니 마음조차 기꺼우신 모양입니다.

▲ 제일 먼저 어른 허리만큼 자란 감자싹을 뽑았습니다.
ⓒ 임윤수
▲ 이어서 밭둑을 감싸고 있던 비닐을 걷어냅니다.
ⓒ 임윤수
진천 보탑사에서는 석 달 전인 지난 3월 22일, 씨감자 쭉쭉 삐져 유치원을 짓기 위한 주춧돌을 마련하겠다며 감자를 심었습니다. 그때 심은 감자를 지난 금요일(23일) 수확한다고 하기에 감자밭엘 다녀왔습니다. 비탈진 산밭, 겨울을 지나 불모지처럼 아무것도 없던 땅을 갈아엎어 둑을 만들고, 그 둑에 비닐을 씌우고 촘촘하게 구멍을 뚫어 씨감자를 넣었습니다.

아직은 찬기가 남아있어 따뜻한 양지를 찾게 하는 3월, 나이 젊은 새댁부터 나이 지긋한 할머니까지 함께 어울려 울력으로 감자 씨를 쪼개고 씨감자를 넣더니 어느새 수확할 때가 된 것입니다.

감자를 심고 얼마의 시간이 지나 감자 싹이 점차 무성해 지더니 어느덧 하얀 꽃들을 피웠습니다. 튼실한 감자를 얻기 위해 꽃대를 잘라내던 게 며칠 전 같은데 어느새 수확을 할 때가 된 것입니다. 감자를 심으며 워낙 흙살이 좋아 농사가 잘될 거라고 하더니 정말 땅속에는 주먹만한 감자들이 주렁주렁 달려 있었습니다.

여름이 시작된다는 하지(夏至)였던 지난 수요일(21일) 감자를 캐려 했으나 장마철로 접어든 때라 그런지 날씨가 궂은 바람에 기약 없이 감자 캐기를 미뤄야 했습니다. 그러다 날씨가 괜찮을 것 같아 23일 갑작스레 감자 캐기를 하게 된 것입니다.

▲ 한 사람씩 밭둑에 올라 앉아 감자를 캐냅니다.
ⓒ 임윤수
▲ 감자 캐기 울력에 스님이라고 예외일 수는 없습니다.
ⓒ 임윤수
진즉부터 생업이나 시간에 제한을 받지 않는 분들에게 감자 캐기 울력에 동참해 줄 것을 부탁했던 터라 몇몇 분들에게 전화를 하여 감자를 캘 거라고 홍보를 하였습니다. 정말 갑작스런 결정임에도 내 일처럼 모여 준 감자캐기 일꾼은 무려 22명이나 되었습니다.

감자를 심을 때도 그랬지만 감자를 캘 때도 감자농사를 짓는 목적이 '심성 바른 아이들을 키워내기 위해 유치원을 짓기 위한 종자돈 마련'임을 충분하게 설명해 그런지 여건이 되는 분들이 보시를 실천하고 봉사하는 마음으로 감자 캐기 울력에 동참한 것입니다.

어른 허리만큼이나 웃자라 있는 무성한 감자 싹들을 걷어내고 비닐을 걷어냅니다. 비닐에 가렸던 도톰한 두둑이 황토 빛으로 드러납니다. 포슬포슬한 황토흙이 부드럽기만 합니다. 두둑에 엉덩이를 붙인 채 오리걸음을 하듯 앞으로 이동하며 두둑 가장자리를 조심스레 호미로 긁어냅니다.

황토 속에 숨어 있던 뽀얀 감자들이 하얗게 드러냅니다. 감자에 생채기가 나지 않도록 양쪽으로 호미질을 하고 흙장난을 하듯 손가락을 펴 밭두둑을 허물어 나가니 보석 같은 감자들이 석류씨앗처럼 끊이지 않고 쏟아집니다.

오금이 아파오고 다리가 저려오겠지만 감자농사가 풍년인 탓에 모두들 기쁘기만 한 모양입니다. 날씨가 개 햇살이 강해지고 밭일을 해 본 경험이 없는 몇몇 사람들은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릅니다. 무리라도 하다 일사병이라도 일으킬까 그늘로 들어가 쉬라고 하여도 흙 속에서 감자를 캐내는 그 기쁨을 놓칠 수 없다는 듯 밭고랑을 떠나지 않습니다.

▲ 여러 사람들이 함께하는 울력이라 그런지 감자 캐기는 두 시간여 만에 끝났습니다.
ⓒ 임윤수
▲ 흙살이 좋아서 그런지 분이 팍팍 나는 뽀얀 감자가 풍년입니다.
ⓒ 임윤수
사람들이 지나간 뒤에는 뽀얗고 토실토실한 감자가 밭고랑 가득 메워집니다. 누에가 비단실을 뽑아내 듯 사람들이 지나간 엉덩이 뒤로는 하얀 감자 줄이 생깁니다. 마치 꾸러미에 들어 있는 달걀처럼 고랑에 놓여있는 감자들은 가지런합니다.

나이야 지긋하지만 도회지에서 자라 감자 캐기를 처음 체험한다는 분들도 힘이야 들지만 신이 난다고 합니다. 뭔가를 농사지어 거두어들이는 기쁨이 이 맛인가 보다 하며 수확의 뿌듯함을 표현합니다. 워낙 일꾼이 많다 보니 두 시간 정도 지나자 감자 캐기가 끝났습니다. 모자 밑으로 흐르는 땀을 쓱쓱 씻어내며 감자밭을 돌아보는 표정들이 모두들 부자입니다.

풀밭처럼 무성하기만 하던 감자밭이 하얀 감자가 조약돌처럼 즐비한 황톳빛 들녘으로 변모되어 있습니다. 감자는 뽀얗기만 한 게 아니라 맛나 보이는 윤기가 좌르르 흐릅니다. 감자 캐기를 마친 사람들이 그늘로 모여들어 새참으로 준비된 과일들을 깎아먹으며 휴식을 만끽합니다. 어느 곳에나 있는 그늘이고, 어디에서나 불어주는 바람이지만 노동으로 흥건하게 흐른 땀을 식혀 주는 바람이 한층 더 시원하게만 느껴집니다.

하얀 감자가 햇살을 오래 받으면 파랗게 변한다는 걸 알기에 마냥 쉬고 있을 수만은 없었습니다. 미리 준비 된 종이박스를 펼쳐 밭고랑에 있는 감자들을 주워 담습니다. 뜨거운 햇살아래서 허리를 구부린 채 주워 담으면서도 여기저기서 '하하'거리는 웃음소리가 끊이질 않습니다.

▲ 감자를 캐는 사람들이 지나간 뒤에는 마술이라도 부리듯 누에 실같은 감자줄이 생겼습니다.
ⓒ 임윤수
흙 속에서 토실토실하게 영근 알알의 감자를 캐내는 것도 좋았지만 이렇듯 캐낸 감자를 종이상자에 주워 담는 것도 즐겁기만 한 모양입니다. 감자가 가득 채워진 종이상자는 장정이 들기에도 묵직할 만큼 무겁습니다. 일을 하면서도 사람들을 행복하게 했고, 손자나 증손자들에게 예쁜 심성을 심어주는데 씨앗이 될 감자 상자들이 차곡차곡 화물트럭으로 옮겨집니다.

감자농사가 풍념임을 확인하는 순간부터 환한 웃음으로 마냥 기뻐하시던 스님들의 웃음이 그치질 않습니다. 주렁주렁 달려 나오는 감자에 행복해 하고, 수북할 만큼 고랑에 늘어나는 감자에 뿌듯해 하시더니, 차곡차곡 감자상자가 쌓여가니 그 기쁨을 참지 못해 박장대소를 하십니다. 생각에 머물지 않고 솔선하며 미래를 꾸려 가시는 스님들께 마음으로나마 경배의 예를 갖추게 합니다.

▲ 유치원을 세울 거라는 원력을 세운 스님들이 풍년농사에 기뻐하고 사람들 동참에 행복해 합니다.
ⓒ 임윤수
울력에 동참한 사람들이 거둬들인 상자 속 감자들은 정말 유치원을 짓기 위한 주춧돌이나 종자돈이 되기 위해 사람들에게 팔려나갈 것입니다. 그렇게 팔려간 감자는 그 누군가에게 맛난 행복을 줄 것입니다.

언젠가 당신들의 자손에게 고운 심성을 심어줄 씨앗이 될 거라는 기대감에 뜨거운 햇살 속에서 해야 하는 농사일에 기꺼이 동참하는 할머니나 불자들의 마음이야 말로 보살도가 아닐까 생각됩니다.

아름다운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 아름다운 마음으로 농사짓고 거둬들인 감자. 뽀얀 때깔만큼이나 분도 팍팍 나고 맛도 좋으니 이 감자야 말로 행복표 '주춧돌 감자'가 될듯합니다.

▲ 자손들을 위한 일이라면 뜨거운 햇볕아래서 하는 농사일도 마다않는 마음이야말로 보살도입니다.
ⓒ 임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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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케팅 상상력 >   김민주 지음, 리더스북 펴냄

 

왜 지금 우리에게 마케팅 상상력이 필요한가!


기업 경영에 있어서 마케팅은 갈수록 그 비중이 커지고 있다. 지금은 CEO에서 말단 직원까지 모두 마케터가 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을 정도가 돼버렸다. 모두가 눈에 불을 켜고 자사의 제품을 광고하고 판매하기 위해 마케팅에 열을 올리지 않으면 그 제품은 피워보지도 못하고 소멸하게 된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이러한 마케팅의 대상은 제품뿐만 아니라 서비스, 아이디어 등 교환가치가 있는 것이면 모두 그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기업뿐만 아니라 학교, 비영리기관까지도 마케팅을 할 수 있고 또 해야만 한다. 소위 마케팅 전쟁 시대인 것이다.


지금 한창 우리나라를 뜨겁게 달구고 있는 월드컵마케팅 열기만 봐도 그렇다. 2006 FIFA 독일 월드컵을 앞두고 온 나라가 월드컵마케팅 홍수에 빠져 있다. 기업뿐만 아니라 문화산업, 건설업계 등 월드컵마케팅을 펼치지 않는 곳이 없을 정도다. 문제는 이 전쟁에서 살아남지 못하고 사라져버리는 상품과 이벤트들이 예상 외로 많다는 것이다. 그러면 왜 어떤 상품과 브랜드는 히트를 치고, 어떤 것은 그렇지 못할까? 성공하는 마케팅과 실패하는 마케팅의 차이는 무엇일까?


이 책은 바로 이 차이점이 ‘상상력’에 있다고 말하고 있다. 즉 작은 구멍가게에서 세계적 대기업까지 100가지 사례를 통해 찾아낸 성공의 공통분모는 바로 ‘상상력’이라는 것이다. 상상력은 하나의 꿈이고 하나의 아이디어다. 곧 새로운 도전에 대한 출발점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상상력은 생각을 실제로 구현해내는 창의력과 기존의 것을 크게 바꾸는 혁신과는 다르다. 그렇다면 마케팅 상상력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아직은 존재하지 않는 미래의 고객을 미리 만나보는 것이고, 이미 존재하는 고객을 새로운 방식으로 만족시키는 것이며, 고객이 앞으로 원하게 될 무언가를 세상에 내놓고 평가받는 것이다. 결국 고객을 창조하고 지키기 위해서 상상력만큼 중요한 것은 없다.


작은 카페에서 세계적 대기업까지, 성공한 마케팅 아이디어 따라잡기!


기발한 상상력으로 성공적인 마케팅을 펼친, 이 책에 소개된 몇 가지 사례를 들여다보자.


󰋯친환경 기업으로의 이미지 쇄신은 물론 매출과 수익의 신장까지 가져온 GE의 에코매지네이션(Ecology + Imagination = Ecomagination) 전략

󰋯중동의 이슬람 국가에 진출하면서 그들이 하루 다섯 번 메카를 향해 예배를 드리는 것에 착안해 출시한 나침반폰과 끼블라폰으로 남다른 고객만족이 무엇인지 보여준 LG전자

󰋯인사동 찻집에서 좌석 회전율을 의식한 주인에게 쫓겨나면서 손님들이 편하게 쉴 수 있는 제3의 공간을 떠올려 현재 20여 개 지점을 오픈하며 승승장구하고 있는 민들레영토

󰋯감자칩 위에 유머나 간단한 상식을 직접 새겨 넣는 것을 시작으로 소비자들이 원하는 문구를 선택할 수 있도록 해 펀 마케팅의 진수를 보여준 프링글스 프린트

󰋯제2차 세계대전 당시 60여 개나 되는 이동형 공장을 만들어 군대와 함께 이동하며 유럽 전파까지 성공적으로 이루어낸 코카콜라의 전쟁 마케팅

󰋯전세계를 경쟁자로 보고 대중적인 미술관을 지향해 위기를 극복한 구겐하임미술관


이들은 모두 작은 아이디어에서 출발해 혁신을 이끌어내고 성공을 일궈냈다. 즉 이들은 그냥 무심코 지나칠 수 있는 작은 생각들을 간과하지 않고 생각의 생각을 발전시켜 구체적인 아이디어를 만들었고, 이를 바탕으로 과감하게 새로운 시도를 해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이다. 지은이는 이런 것이 바로 마케팅 상상력의 힘이라고 말하고 있다.


이 책에서 제시하고 있는 100가지 사례들은 이미 잘 알려진 유명한 사례들보다는 잘 알려지지 않은 사례들이 대부분이라 무척 신선하다. 그러나 무엇보다 이 책의 가장 큰 특징은 단지 이러한 100가지 사례들을 나열하는 데서 그치지 않는다. 그 안에서 상상력이 어떻게 내 회사와 제품들을 돋보이게 해주는지, 어떻게 위기를 돌파하고 새로운 기회를 만들어내는지, 또 작게 주어진 기회를 어떻게 큰 성공으로 키워나가는지에 대해서도 매우 유익한 단초들을 얻을 수 있다는 데 있다. 또한 각 시례마다 ‘KEYWORD’를 제공하고 있어 평소 관심 있는 특정 분야를 쉽게 찾을 수 있고, 다양한 마케팅 전략을 접할 수 있다.  


개인과 조직이 상상력을 개발하는 구체적인 방법을 제시하다!


지은이는 말한다. 상상력과 창의력의 출발은 역시 개인에게서 시작한 개인의 경쟁력이 조직의 경쟁력으로 연결되고, 조직의 경쟁력이 기업의 경쟁력, 그리고 국가 경쟁력으로 귀결된다고 말이다. 물론 개인의 상상력이 아무리 뛰어나도 시스템이 이를 뒷받침해주지 못하면 개인의 상상력은 제대로 구현되지 못하고, 이러한 일이 반복적으로 되풀이되면 개인들은 상상력을 발휘하려는 의지가 꺾이게 마련이다. 그렇게 되면 더 나아가 기업, 국가는 상상력이 메말라 천편일률적인 사고방식에 사로잡혀 제자리걸음만 하게 된다고 충고한다.


그럼 어떻게 하면 개인과 조직의 상상력을 개발하고 발전시켜 나갈 수 있을까? 이 책의 마지막 장에 그 방법이 구체적으로 소개되어 있다. 


우선 개인의 상상력을 개발하기 위해서는 ‘생각나는 대로 시간순으로 적어라’, ‘실패 사례를 많이 봐라’, ‘다른 업종의 사람들과 많이 교류하라’, ‘아이디어를 위한 제3의 공간을 만들어라’ 등 구체적인 방법을 제시하면서 끊임없이 새로운 것에 대한 탐구를 즐길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다음으로 조직의 상상력을 개발하는 방법에는 ‘조직 구성원의 실패에 대해 관용을 베풀어라’, ‘가장 성공적인 실패에 상을 주어라’, ‘회사 내 창의성 센터를 만들어라’, ‘회사 내 바람잡이를 만들어라’ 등 직원들이 보다 더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마음껏 상상력을 펼칠 수 있는 열린 조직문화 구축의 중요성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상상력을 발휘하기 위해 우리 모두가 꼭 천재가 될 필요는 없다. 하지만 평범해서도 안 된다. 파울 에르도슈, 살바도르 달리, 에디슨 등이 처음부터 천재로 태어난 것은 아니다. 그들은 끊임없이 생각하고 그 생각을 발전시키며 새로운 시도를 하는 데 주저하지 않았기 때문에 오늘날 그 이름이 유명해진 것이다. 이는 조직도 마찬가지다. 대박 터트리는 상품, 브랜드가 부러운가? 그렇다면 마케팅을 상상하라! 마케팅이 커질수록 당신의 회사와 마케팅은 더욱 돋보이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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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란색 봉투만 봐도 끔찍하다”

인구 5만의 소도시 태백에 이마트 개장, 사지에 내몰린 중소상인들 … 돈의 씨를 말리는 대형마트의 공격에 지역 주민들 승리한 사례 없어

▣ 태백= 남종영 기자 fandg@hani.co.kr
▣ 사진 윤운식 기자 yws@hani.co.kr

강원도 태백시의 5·31 지방선거는 ‘이마트 대리전’으로 치러졌다. 태백시장을 두고 이마트 입점을 찬성하는 후보와 반대하는 후보가 맞붙어 치열한 다툼을 벌였다. 선거가 끝난 직후, 전화로 들리는 태백경실련의 조호성 정책위원의 목소리에는 힘이 없었다.

반말 무마하려 대리인 내세워

“실낱같은 희망이라도 있었는데, 이젠 이마저 사라졌어요. 700표 차이로 졌거든요.”

당선자는 박종기 한나라당 후보였다. 조 위원은 그를 “인구 5만 명밖에 없는 태백에 이마트 건축 허가를 내준 현 부시장”이라고 했다.


△ 태백시 중심가인 황지자유시장 골목, 지붕을 얹는 재래시장 현대화 사업이 진행되고 있지만, 상인들은 철시를 서두르고 있다.

2004년 태백에 대형마트가 들어올 것이라는 소문이 퍼지자, 중소상인들은 그해 10월 비상대책위원회를 발족한 뒤 쉼 없이 반대투쟁을 벌였다. 태백에서 총궐기 대회를 열기도 하고, 관광버스를 타고 서울에 올라와 신세계 본사 앞에서 집회도 열었다. 하지만 이마트는 터를 닦고 공사를 시작했다. 태백 중소상인과 시민단체가 모인 안티이마트운동본부는 마지막 희망을 지방선거에 걸었다. 아이스크림 도매업을 하는 최종연(43)씨가 시의원 후보로 나섰고, 태백시장 후보들에게는 이마트 입점에 관한 입장을 물었다. 2위를 차지한 김동욱 열린우리당 후보와 김강산 무소속 후보만 “중소상공인이 준비할 수 있는 최소한의 시간이라도 필요하다”는 입장을 냈다.

6월7일 오후 5시께 도착한 태백 시내는 한산하다 못해 정적으로 가득 차 있었다. 태백역 주변은 죄다 철문으로 몸뚱이를 감싸고 있는 상가들뿐이었다. 마지막 남은 ‘시내’는 황지연못 근처의 중심가 두 블록이 유일했다. 1990년대 석탄산업 합리화 조처의 여파 때문이었다. 1990년대 중반 12만 명에 달하던 태백시 인구는 한 해에 1만 명 이상씩 떨어져 지금은 5만 명을 갓 넘었다. 안호진 안티이마트운동본부 간사는 “그나마 이곳이 마지막 남은 상권”이라고 말했다.

시내에 있는 황지자유시장 골목에는 ‘점포 세 줍니다’라고 쓰인 벽보가 세 집 건너 하나씩 붙어 있었다. 골목 사이에 건축 자재들이 쌓여 있었다. 재래시장을 쾌적한 쇼핑 공간으로 탈바꿈시켜 대형마트와 대적시킨다는 재래시장 현대화 사업. 시장에 지붕을 얹는 아케이드 공사를 하고 있는 중이었다. 안 간사는 “아케이드와 통행로 정비에 20억원을 쓴다”고 말했다. 그러나 공포의 철시 대열이 끝날 거라고 생각하는 상인들은 없어 보였다.

이마트 태백점은 10월 말 개장될 예정이다. 인구 5만 명 수준의 소도시에 대형 할인점이 진입하는 건 이번이 처음이라서 업계에서는 태백을 주시하고 있다. 그동안은 10만 명 안팎의 도시가 마지노선이었다. 중소상인의 반대를 뚫고 개장한 뒤, 다른 지역에서처럼 많은 이득을 얻을 수 있다면, 다른 소도시나 군 단위에서도 못할 게 없다.

태백시 화전동에 있는 이마트 부지에는 공사가 한창이었다. 단층짜리 1800평짜리 매장. 기타 부지로 6천 평을 매입했다. 그런데 공사 현장에는 이곳이 ‘이마트 예정지’임을 알리는 어떤 표식도 없었다. 이마트 예정지임을 추측할 수 있는 유일한 단서는 ‘신세계 건설’이라는 이름이 달린 산업재해 예방 구호뿐이었다.

안호진 간사는 “이 땅의 소유주는 신세계가 아니라 서울 사람인 이아무개씨”라고 말했다. 그는 “이마트 직원들이 사전에 내려와 시장조사를 했고 대리인을 내세웠다”며 “처음엔 신세계 쪽에서 이마트 건설 계획이 없다고 잡아뗐다”고 말했다.

전주, 실패한 ‘지역법인화 운동’

신세계가 이마트 개장 계획을 실토한 것은, 태백 중소상인들이 반대운동을 시작한 지 반년이 넘은 2005년 4월께였다. 이미 태백시가 이마트 매장 한가운데를 지나는 국공유지인 도로를 대리인인 이씨한테 팔고 난 뒤였다.

대리인을 내세운 인·허가 작업은 대형 할인점이 고안해낸 일종의 편법이다. 업계의 치열한 경쟁으로 입점 부지가 모자라는데다 지역 여론의 반대를 피해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해당 지자체로선 ‘관련법상 하자가 없다’며 허가를 내줄 수밖에 없고, 할인점은 대리인에게 관련 땅과 매장을 인수받은 뒤 영업에 들어간다. 태백뿐만 아니라 논산, 김제 등에서도 똑같은 방식이 동원됐다. 한 대형 할인점 관계자는 이를 굳이 숨기지 않았다. “물론 그렇게 하면 안 되는데, 상권 반발이 워낙 거세니까 어쩔 수 없어요.”

전국에 일어난 대형 할인점 건설 붐은 사회적 문제가 되어가고 있다. 할인점 입점 소문, 중소상인들의 반발, 지자체의 특혜 시비, 찬반 주민들의 대립, 상경 투쟁 등 거의 모든 지역에서 일정한 소란의 터널을 거친다. 안티이마트운동본부가 집계한 바에 따르면, 인구 5만~15만 명의 소도시에 대형마트가 추진 중인 지역이 10곳이나 된다. 홈플러스는 이미 전국 50곳에 부지를 확보해뒀고, 이마트도 현재 88개인 점포를 130~140개로 늘린다는 방침이다.

중소상인들이 대형마트 입점을 결사반대하는 이유는 뭘까. 대형 할인점은 종소상인들에게는 생존권 문제와 직결돼 있기 때문이다. 대형 할인점이 장사를 시작하면, 직접적인 경쟁관계를 맺는 재래시장 상인부터 무너진다. 재래시장은 할인점의 진출로 2002년 매출 15조원에서 2003년에는 13조5천억원으로 줄었다. 1년 만에 1조5천억원이 줄어든 것이다. 소매상의 감소 추세도 뚜렷하다. 1996년에서 2004년까지 할인점이 247개 늘어날 때 영세소매상 8만 개가 감소했다는 보고도 있다. 그래서 상인들 사이에서는 “대형마트 1개 생기면 동네 슈퍼 300개가 망한다”는 말이 떠돈다.

이렇게 되면 지역에 돌아다니는 돈의 씨가 마르기 시작한다. 서울에 본사를 둔 대형마트들이 지역 소비자가 내는 돈을 싹쓸이해가기 때문이다. 기존에는 소비자가 중소상인에게 소비를 하고 그 중소상인이 다른 중소상인에게서 소비하는 지역 내 통화 순환이 이뤄졌다면, 대형할인점은 이러한 순환 체제를 무너뜨린다. 더군다나 할인점이 지방정부에 내는 세금도 미미하기 그지없다. 주요 세원인 법인세가 국세이기 때문이다.

인구 62만 명의 중소도시 전주는 이러한 상황을 잘 보여준다. 2002년 한 해 동안 전주 시민들은 이마트에서 1297억원을 썼다. 그러나 이마트 전주점이 낸 지방세는 종합토지세, 재산세 등 5억4천만원뿐. 전주에서 거둬들인 돈(매출액)의 0.4%만 세금으로 낸 셈이다.

“지역 시민사회단체가 모여 전주 이마트를 지역법인화하자는 운동을 벌였어요. 몇 차례 이마트 간부들과 간담회를 가졌지만 역부족이었어요.” 전주 YMCA의 조미영 부장은 2003년 거셌던 지역법인화 운동이 실패로 돌아갔음을 부정하지 않았다. 이마트의 자비에 호소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운동은 성공하긴 힘들었다.

“주민 스스로 할인점 통제해야”

현재 국내에서 대형 할인점을 막아낸 지역은 한 곳도 없다. 미국의 월마트 반대운동가 알 노먼은 “미국에선 지금까지 300여 곳의 지역 사회가 대형마트의 신규 진입을 막아냈다”며 “특히 지역 주민 스스로 대형 할인점을 통제해야 한다”고 말한다. 주민투표제 등을 통해 행정에 개입함으로써, 대형 할인점이 진입하기 전에 반드시 거쳐야 하는 용도변경, 교통영향평가 등 건축허가에 개입할 수 있다.


△ 태백시 화전동의 이마트 건설 현장. 지역 주민들 몰래 추진되는 대형마트 건설현장에는 공사에 대한 어떤 설명도 없다.

이는 대형마트가 지역 경제에 주는 득실, 즉 소비자로서의 즉자적인 이익뿐만 아니라 생산자와 노동자로서 일하는 자신에게 끼칠 중·장기적인 영향에 대해서 논의하는 사회적 학습 과정이 될 수 있다. 대형 할인점처럼 소비자만 앞세우면 사회적 연대의 거미줄은 끊어진다.

“노란색 이마트 봉투만 봐도 끔찍하다”는 태백 진주마트의 황호창(56)씨는 20년 슈퍼 일을 접고 태백을 떠날 준비를 하고 있다. 이미 동해·삼척에 나가 나름대로 시장조사를 했다고 씁쓸하게 웃었다. 그는 “다른 지역에 가든지 편의점을 차리든지 해야 하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며 고개를 내저었다. 안티이마트운동본부는 10월 이마트 태백점이 문을 열면, 이마트가 지역 경제에 끼치는 폐해만큼 책임을 요구할 것이라고 밝혔다. 상인들은 “우리 역시 졌구나”라고 말하면서도, “불매운동이라도 해야 하지 않느냐”며 희망을 버리지 않고 있다.



법은 언제까지 구경만 하나

외국은 대형 할인점 무차별적 진입에 강력한 국가적 규제장치 마련

“있는 걸 부술 순 없잖아요. 현재로선 출점 러시에 브레이크를 거는 방법이 우선입니다.”

이선근 민주노동당 경제민주화운동본부장은 국가적 규제를 마련해놓은 외국에 비해 한국은 대형 할인점의 무차별적 진입에 무방비 상태라고 말한다. 프랑스는 가장 강력하게 대형 할인점 신설을 규제하는 나라다. 1973년 제정된 로와이에법은 점포 면적 3천㎡, 매장 면적 1500㎡ 이상을 증설하는 경우 정부의 허가를 받도록 했다. 일본에서는 1천㎡ 이상 점포를 설립할 때는 신설 계획에 대한 공표와 설명과 공청회를 실시해야 한다. 영국은 ‘대형마트 설립 가이드라인’을 두고 총매장 2만㎡ 이상의 대형마트는 ‘중소소매업에 대한 영향 조사 보고서’를 지방정부에 보고하도록 하고 있다.

반면 한국에선 유통산업발전법 등 관련 법령에 따라 3천㎡ 이상의 점포 개설은 해당 구청에 등록만 하면 되고, 3천㎡ 이하는 사업자 등록으로 끝난다.

대구시 남구는 2005년 2월 대형 할인점의 신규 진입을 제한하는 ‘영세상인 보호를 위한 업무 지침’을 만들었다. 이 지침은 15만 명당 3천㎡의 대형마트 1개만 허용토록 해 현재 영업 중인 홈플러스 외의 추가 입점을 막도록 했다. 그러나 이는 어디까지나 지침일 뿐이다. 남구 관계자는 “할인점이 소송을 제기하면 꼼짝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인구 146만 명에 이미 12개의 할인점이 영업 중인 대전시도 뒤늦게 도시계획조례를 개정해 2007년까지 준주거지역에 3천㎡의 대형 매장을 제한하도록 했다. 이에 대해 안호진 간사는 “지자체의 임시방편일 뿐”이라며 “국가적인 법적 통제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심상정 의원(민주노동당) 등 10명은 이와 관련해 ‘지역유통산업 균형발전특별법’를 발의했다. 이 법안은 대형 할인점 건설 전에 주민 공청회와 유통산업균형발전위의 심의를 거치도록 하고, 인구당 점포 수와 면적을 규정하도록 했다. 이상민 의원(열린우리당)이 발의한 ‘대규모 점포 사업활동 조정 특별법’도 발의돼 있는데, 이 법안은 24시간 영업제한과 허가제를 주내용으로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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