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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에서 만난 세상 - 대한민국 인권의 현주소를 찾아
국가인권위원회 기획, 박영희 외 지음, 김윤섭 사진 / 우리교육 / 2006년 3월
평점 :
우리가 사는 세상은 지금 어디쯤 와있는가? 시인 박영희, 소설가 오수연, 전성태 등이 이 사회의 그늘진 곳을 찾아나섰다.(국가인권위원회에서 발간하는 월간 <인권>에 연재된 글 모음집)
탄광촌과 나병환자촌, 새벽바다의 어부들과 어린 엄마들, 그리고 창신동 미싱골목 등 우리와 함께하는 이웃들의 삶을 여실히 보여주는 수작이다. 부디 많은 청소년들이 함께 공감했으면 한다. 르뽀라는 글 양식이므로 작가들의 글을 꼭지별로 인용해본다.
(탈학교 아이들) "선거 때마다 화가 났어요. 열여덟 살이면 세상의 장단점을 파악할 수 있고, 참여할 권리가 있는 나이 아닌가요? 실업계 학교 학생들은 3학년 때 취업을 나가면 봉급도 받고 세금도 내잖아요. 그런데 왜 세금까지 내는 사람들한테 투표권을 안 주는 거죠? 국가는 국민의 세금으로 돌아가잖아요."(66쪽)
(코시안) "한국에 살고 싶어 찾아온 외국인들을 뒤로한 채 과연 복지국가와 세계화를 말할 수 있을까요?"(72쪽)
(아시아 여성) 드디어 그들이 왔다. 여러 '언니의 집'에 모인 200명도 넘는 베트남 처녀들이 한국 남자들이 머물고 있는 호텔로 갔다. 한국 남자들은 고작 열 명 정도였다. 그들이 안내자와 쌍을 이루어 호텔 방을 하나씩 차지하고, 베트남 처녀들은 줄지어 방들을 순례했다. 한 방으로 들어갔다가 한국 남자가 아무 말 없으면 다음 방으로, 그 다음 방으로 갔다. 한 남자가 롱을 지목했다. 남자들은 대열 중에 일단 눈에 드는 처녀를 다섯 명쯤 골라 방에 앉혀 놓았다가, 나름의 기준으로 그중 한명을 선택했다. 롱이 뽑혔다. "넌 운이 좋은 거야." 안내자의 통역에 따르면, 그 남자는 롱에게 처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그의 나이 예순세 살이었다. 이튿날 남자는 롱의 부모님을 방문하여 허락을 받고, 그 다음 날 결혼식을 올렸으며, 롱은 마침내 한국에 왔다. "1억원을 줘도 싫어." 7개월 후 롱은 이렇게 되뇌며 베트남으로 돌아갔다. 그동안 새벽부터 저녁까지 남편이 운영하는 해장국집에서 설거지 그릇에 파묻혀 지냈고... (88~89쪽) 자기가 운영하는 음식점에서 외국인 아내를 부려먹다가 인권 단체 실무자가 조사를 나가자 "종업원 쓰기가 힘드니까 데려왔지. 내가 미쳤다고 외국 여자랑 결혼하느냐?"고 호통을 치고, 중매 업체에 찾아가 "지금 아내가 너무 고집이 세서 반품하고 이혼할 테니까 다른 여자랑 재혼하게 해 달라"고 요청하기도...(98쪽) 사랑이야말로 국경을 넘지 못하는 건 아닌지. 따져 보니 그 지역 필리핀 신부들 태반이 맏며느리였다. 우연일까? 농촌의 장남이라면 우리나라 여성들이 선호하는 혼처라고 할 수는 없다. 그래서 외국인 신부들이 많을 수밖에 없는지도 모른다. 그들이 제사를 모신다. 전통과 가계를 그들이 잇고 있다.(100쪽)
(막장..)"아마 광부들이라면 다 그랬을 거야. 막장에서 일하는 것보다 더 두려운 게 하나 있는데 그게 뭐였는지 아나? 1년에 한 번씩 받는 정기검진이야. 자신의 건강을 위해서라면 백 번이고 천 번이고 받아야 마땅하겠지만 그게 어디 말처럼 되는감. 만에 하나 이상한 증세가 발견되면 그날로 광업소에서 쫓겨나는 마당에. 그러면 가족은 누가 먹여 살리고 자식들 공부는 누가 시켜 주나?"(130쪽)
(지하철 노동자) 을지로 순환선이 한 바퀴 도는 데 87분이 소요된다. 이들이 하루 동안 전동차를 운행하는 시간은 4시간 24분. 운행거리는 총 146.4킬로미터이다. 근무 교대는 열차가 역사에 머무는 30초 동안에 이루어졌다.(180쪽) 지난해 11월 도시철도 노조가 84명의 기관사에게 신경정신과 검진을 받게 한 결과 20명의 기관사가 공황 불안 장애 진단을 받았다. 기관사들이 집단적으로 정신 질환을 앓고 있는 셈이다.(183쪽)
(고충 수업, 타율 학습) 하루 대부분을 학교에 묶여 있는 학생들에게 집은 잠자는 곳에 불과하다. 따라서 학생들은 학교나 학원에서 헤어지며 "잘 자고 와!", "이따 보자!" 하는 기묘한 인사를 나눈다.(214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