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사람들이 지은 감자농사, 풍년입니다
아이들 위한 '행복한 울력'에 동참했습니다
텍스트만보기   임윤수(zzzohmy) 기자   
▲ 감자 캐는 사람들의 표정, 풍년과 행복 그 자체입니다.
ⓒ 임윤수
칠순을 훨씬 넘기신 노스님과 할머니는 물론 감자를 캐던 모든 사람들이 뽀얗고 커다란 감자를 양손 가득 들어 올린 채 "젊은 양반이 이 맛 알겠시유"하며 환한 웃음으로 수확의 기쁨을 나타내십니다.

감자농사가 잘 됐기 때문에 일을 하시면서도 기분들이 좋으신가 봅니다. 끄무레한 날씨 탓에 쨍쨍한 햇살이 내려 쬐는 건 아니지만 장마철이라 그런지 후텁지근한 그런 오후입니다.

두둑을 거반 깔고 앉은 채 감자를 캐셔야 할 만큼 나이가 드신 할머니셨지만 일하시는 손길은 가볍게만 보입니다. 새댁시절부터 농사일을 하셨던 할머니기에 일머리를 알고 계셔서 그럴 수도 있겠지만, 지금 캐내는 감자가 당신의 손자나 증손자가 다닐 유치원을 건립하는데 주춧돌이 되고 종자돈이 될 거라고 생각하니 마음조차 기꺼우신 모양입니다.

▲ 제일 먼저 어른 허리만큼 자란 감자싹을 뽑았습니다.
ⓒ 임윤수
▲ 이어서 밭둑을 감싸고 있던 비닐을 걷어냅니다.
ⓒ 임윤수
진천 보탑사에서는 석 달 전인 지난 3월 22일, 씨감자 쭉쭉 삐져 유치원을 짓기 위한 주춧돌을 마련하겠다며 감자를 심었습니다. 그때 심은 감자를 지난 금요일(23일) 수확한다고 하기에 감자밭엘 다녀왔습니다. 비탈진 산밭, 겨울을 지나 불모지처럼 아무것도 없던 땅을 갈아엎어 둑을 만들고, 그 둑에 비닐을 씌우고 촘촘하게 구멍을 뚫어 씨감자를 넣었습니다.

아직은 찬기가 남아있어 따뜻한 양지를 찾게 하는 3월, 나이 젊은 새댁부터 나이 지긋한 할머니까지 함께 어울려 울력으로 감자 씨를 쪼개고 씨감자를 넣더니 어느새 수확할 때가 된 것입니다.

감자를 심고 얼마의 시간이 지나 감자 싹이 점차 무성해 지더니 어느덧 하얀 꽃들을 피웠습니다. 튼실한 감자를 얻기 위해 꽃대를 잘라내던 게 며칠 전 같은데 어느새 수확을 할 때가 된 것입니다. 감자를 심으며 워낙 흙살이 좋아 농사가 잘될 거라고 하더니 정말 땅속에는 주먹만한 감자들이 주렁주렁 달려 있었습니다.

여름이 시작된다는 하지(夏至)였던 지난 수요일(21일) 감자를 캐려 했으나 장마철로 접어든 때라 그런지 날씨가 궂은 바람에 기약 없이 감자 캐기를 미뤄야 했습니다. 그러다 날씨가 괜찮을 것 같아 23일 갑작스레 감자 캐기를 하게 된 것입니다.

▲ 한 사람씩 밭둑에 올라 앉아 감자를 캐냅니다.
ⓒ 임윤수
▲ 감자 캐기 울력에 스님이라고 예외일 수는 없습니다.
ⓒ 임윤수
진즉부터 생업이나 시간에 제한을 받지 않는 분들에게 감자 캐기 울력에 동참해 줄 것을 부탁했던 터라 몇몇 분들에게 전화를 하여 감자를 캘 거라고 홍보를 하였습니다. 정말 갑작스런 결정임에도 내 일처럼 모여 준 감자캐기 일꾼은 무려 22명이나 되었습니다.

감자를 심을 때도 그랬지만 감자를 캘 때도 감자농사를 짓는 목적이 '심성 바른 아이들을 키워내기 위해 유치원을 짓기 위한 종자돈 마련'임을 충분하게 설명해 그런지 여건이 되는 분들이 보시를 실천하고 봉사하는 마음으로 감자 캐기 울력에 동참한 것입니다.

어른 허리만큼이나 웃자라 있는 무성한 감자 싹들을 걷어내고 비닐을 걷어냅니다. 비닐에 가렸던 도톰한 두둑이 황토 빛으로 드러납니다. 포슬포슬한 황토흙이 부드럽기만 합니다. 두둑에 엉덩이를 붙인 채 오리걸음을 하듯 앞으로 이동하며 두둑 가장자리를 조심스레 호미로 긁어냅니다.

황토 속에 숨어 있던 뽀얀 감자들이 하얗게 드러냅니다. 감자에 생채기가 나지 않도록 양쪽으로 호미질을 하고 흙장난을 하듯 손가락을 펴 밭두둑을 허물어 나가니 보석 같은 감자들이 석류씨앗처럼 끊이지 않고 쏟아집니다.

오금이 아파오고 다리가 저려오겠지만 감자농사가 풍년인 탓에 모두들 기쁘기만 한 모양입니다. 날씨가 개 햇살이 강해지고 밭일을 해 본 경험이 없는 몇몇 사람들은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릅니다. 무리라도 하다 일사병이라도 일으킬까 그늘로 들어가 쉬라고 하여도 흙 속에서 감자를 캐내는 그 기쁨을 놓칠 수 없다는 듯 밭고랑을 떠나지 않습니다.

▲ 여러 사람들이 함께하는 울력이라 그런지 감자 캐기는 두 시간여 만에 끝났습니다.
ⓒ 임윤수
▲ 흙살이 좋아서 그런지 분이 팍팍 나는 뽀얀 감자가 풍년입니다.
ⓒ 임윤수
사람들이 지나간 뒤에는 뽀얗고 토실토실한 감자가 밭고랑 가득 메워집니다. 누에가 비단실을 뽑아내 듯 사람들이 지나간 엉덩이 뒤로는 하얀 감자 줄이 생깁니다. 마치 꾸러미에 들어 있는 달걀처럼 고랑에 놓여있는 감자들은 가지런합니다.

나이야 지긋하지만 도회지에서 자라 감자 캐기를 처음 체험한다는 분들도 힘이야 들지만 신이 난다고 합니다. 뭔가를 농사지어 거두어들이는 기쁨이 이 맛인가 보다 하며 수확의 뿌듯함을 표현합니다. 워낙 일꾼이 많다 보니 두 시간 정도 지나자 감자 캐기가 끝났습니다. 모자 밑으로 흐르는 땀을 쓱쓱 씻어내며 감자밭을 돌아보는 표정들이 모두들 부자입니다.

풀밭처럼 무성하기만 하던 감자밭이 하얀 감자가 조약돌처럼 즐비한 황톳빛 들녘으로 변모되어 있습니다. 감자는 뽀얗기만 한 게 아니라 맛나 보이는 윤기가 좌르르 흐릅니다. 감자 캐기를 마친 사람들이 그늘로 모여들어 새참으로 준비된 과일들을 깎아먹으며 휴식을 만끽합니다. 어느 곳에나 있는 그늘이고, 어디에서나 불어주는 바람이지만 노동으로 흥건하게 흐른 땀을 식혀 주는 바람이 한층 더 시원하게만 느껴집니다.

하얀 감자가 햇살을 오래 받으면 파랗게 변한다는 걸 알기에 마냥 쉬고 있을 수만은 없었습니다. 미리 준비 된 종이박스를 펼쳐 밭고랑에 있는 감자들을 주워 담습니다. 뜨거운 햇살아래서 허리를 구부린 채 주워 담으면서도 여기저기서 '하하'거리는 웃음소리가 끊이질 않습니다.

▲ 감자를 캐는 사람들이 지나간 뒤에는 마술이라도 부리듯 누에 실같은 감자줄이 생겼습니다.
ⓒ 임윤수
흙 속에서 토실토실하게 영근 알알의 감자를 캐내는 것도 좋았지만 이렇듯 캐낸 감자를 종이상자에 주워 담는 것도 즐겁기만 한 모양입니다. 감자가 가득 채워진 종이상자는 장정이 들기에도 묵직할 만큼 무겁습니다. 일을 하면서도 사람들을 행복하게 했고, 손자나 증손자들에게 예쁜 심성을 심어주는데 씨앗이 될 감자 상자들이 차곡차곡 화물트럭으로 옮겨집니다.

감자농사가 풍념임을 확인하는 순간부터 환한 웃음으로 마냥 기뻐하시던 스님들의 웃음이 그치질 않습니다. 주렁주렁 달려 나오는 감자에 행복해 하고, 수북할 만큼 고랑에 늘어나는 감자에 뿌듯해 하시더니, 차곡차곡 감자상자가 쌓여가니 그 기쁨을 참지 못해 박장대소를 하십니다. 생각에 머물지 않고 솔선하며 미래를 꾸려 가시는 스님들께 마음으로나마 경배의 예를 갖추게 합니다.

▲ 유치원을 세울 거라는 원력을 세운 스님들이 풍년농사에 기뻐하고 사람들 동참에 행복해 합니다.
ⓒ 임윤수
울력에 동참한 사람들이 거둬들인 상자 속 감자들은 정말 유치원을 짓기 위한 주춧돌이나 종자돈이 되기 위해 사람들에게 팔려나갈 것입니다. 그렇게 팔려간 감자는 그 누군가에게 맛난 행복을 줄 것입니다.

언젠가 당신들의 자손에게 고운 심성을 심어줄 씨앗이 될 거라는 기대감에 뜨거운 햇살 속에서 해야 하는 농사일에 기꺼이 동참하는 할머니나 불자들의 마음이야 말로 보살도가 아닐까 생각됩니다.

아름다운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 아름다운 마음으로 농사짓고 거둬들인 감자. 뽀얀 때깔만큼이나 분도 팍팍 나고 맛도 좋으니 이 감자야 말로 행복표 '주춧돌 감자'가 될듯합니다.

▲ 자손들을 위한 일이라면 뜨거운 햇볕아래서 하는 농사일도 마다않는 마음이야말로 보살도입니다.
ⓒ 임윤수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