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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또한 즐겁지 아니한가 - 제주 애월에서 김석희가 전하는 고향살이의 매력
김석희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12년 3월
평점 :
품절
애월(涯月)...
물가 涯에 달 月
'물가에 어린 달'이라는 뜻이다.
제주 애월은 시오노 나나미의 역작 <로마인 이야기>를 비롯하여, 쥘 베른 걸작 선집 등을 직접 번역한, 대한민국 번역계에서 일가를 이루신 김석희 선생의 고향이다. 그가 제1회 한국번역상 대상을 수상한 경력만을 보아도 번역계에 이바지한 그의 노고를 가늠할 수 있다. 또한 그는 작가로 데뷔하여 <이상의 날개> 등의 소설을 발표하기도 했다.
이 책은 타향살이 40년을 접고, 고향 애월에 귀향한 김석희 선생이 온라인 카페에 '애월통신'이라는 연재한 '귀향살이 3년의 기록'이다. 작가 스스로 '그렇다고 귀거래사를 읊거나, 귀농일기 같은 땀의 흔적을 담거나, 자연과 세상에 대한 성찰이나 담론을 보탠 것은 아닙니다. 아니, 오히려 그런 것과는 거리가 먼, 마음이 가고 시선이 가는 대로 마음과 눈길에 붙잡힌 평범한 일상의 소소한 풍경을 그려보려고 했습니다.'라고 이야기한다. 그러나 40년만에 귀향한 노작가의 혜안이 감춰질 수는 없겠다.
'제주 여행은 언제가 좋으냐는 질문을 받으면, 나는 망설이지 않고, 10월 말에서 11월 초라고 대답합니다. 이유는 여러 가지 생각할 수 있지만, 억새와 고등어 때문입니다..(중략)..바다를 뒤덮는 물결과 들판을 휩쓰는 억새의 물결. 자연 풍광을 묘사할 때 쓰는 표현은 다양합니다만, 나는 아직도 제주 가을의 산야를 어떻게 묘사할지, 그 적당한 표현을 찾아내지 못했습니다..(중략)..소싯적엔 구이와 조림이 고등어를 먹는 방식이었지만, 이제는 생선회로도 먹을 수 있게 되었지요. 특히 가을이 들면서 살이 통통해지고 거기에 기름기가 배어, 그 느끼하면서 고소한 맛이 실로 각별합니다. 이 맛을 제주에서는 '배지근하다'고 표현하는데, 표준어로 말하면 '감칠맛'에 가깝습니다.'(139쪽)
고향에서의 기억과 일상을 다시 회복하고 향유하는 작가의 모습이 부러울 따름이다.
출판계의 지나온 궤적을 어슴프레하게나마 짐작할 수 있는 입장에서 볼 때, 우리나라의 번역 현실은 매우 척박했다. 번역을 단지 하나의 '기술'로 치부하던 시절이 있었고, 번역 작가의 위상은 인정받지 못한 시기가 그리 먼 옛날의 일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번역서를 고를 때 먼저 번역자를 확인해보는 정도로, '번역은 제2의 창작'이라는 번역에 대한 인식이 점차 확대과정을 거치고 있다. 근대화 시기 서양문물을 수용하는 동아시아 3국(한국,중국,일본)의 향후 역사전개 과정을 비교하는 작가의 글을 통렬하기도 하다. 또한 평생을 책과 함께 한 작가의 '책'에 대한 다음과 같은 문장은, 비록 타인의 문장을 옮겨온 것이지만 깊이 새겨볼만 한다.
'책이란 무엇인가?
아르헨티나의 시인이자 소설가인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는 책을 '인간이 상용하는 여러 가지 도구들 가운데 가장 놀라운 발명품'이라고 말했다. 다른 것들은 신체의 확장에 불과하다. 현미경과 망원경은 시각의 확장이고, 전화는 음성의 확장이고, 칼과 쟁기는 팔의 확장이다. 그러나 책은 다른 것이다. 책은 기억의 확장이며 상상의 확장이다.'(149쪽)
고향 제주에서(그가 평생 몸담은 분야가 '번역'이다 보니, 앞으로도 지역적인 제한이 없다는 점이 장점일 터인데..) 작업을 이어가는 노 작가의 모습이 책을 통해 그려진다. 또한 더 맑은 시선으로, 좋은 작품을 지속적으로 소개해주시길 기원한다.
'아침 여섯 시경 먼동이 트고, 그 희붐한 햇살에 저 멀리 한라산도 시야에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떠났던 고향. 떠나고 싶어 했던 고향에 돌아온 것입니다. 금의환향은 아니지만, 타향에서 낙오자 신세로 갈 곳이 없어 낙향한 것은 아니니, 그것만으로도 고맙고 다행한 일이지요.'(65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