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FTA, IMF 10개 이상 터지는 것"
[한미FTA의 음모와 위험 ①] 정태인 전 청와대 비서관 강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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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연대에서 매월 네번째 수요일에 진행하는 [수요대화모임] 42차 강사로 나선 정태인 전 청와대 국민경제비서관의 강연 내용을 2회에 걸쳐 지상중계합니다. 지상중계 2회에는 정 전 비서관이 직접 보고 온 NAFTA 이후 12년이 흐른 멕시코의 실상과 한미FTA가 가진 사회민주주의의 위협 요소에 대한 내용이 이어집니다. <편집자 주>
정리 : 허창영 인권연대 간사

▲ 한미FTA와 경제성장은 아무런 상관이 없다고 말하는 정태인 전 비서관.
ⓒ 인권실천시민연대
한미FTA에 대한 가장 보편적인 상황은 아마도 국민도, 추진하고 있는 공무원들도, 또 반대하고 있는 나조차도 FTA에 대해 너무 모르고 있었다는 점 같다. 심지어 NAFTA(북미자유무역협정)를 만들었던 미국의 의회조차 NAFTA가 앞으로 어떤 일을 만들지 몰랐다는 생각이 든다. 결국 우리는 너무 모르고 있다.

FTA와 경제성장은 무관

정부가 한미FTA를 해야 되는 이유로 전세계 200개의 FTA가 있고, 전체 교역의 반 이상이 FTA를 맺은 나라들 사이에서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을 들고 있다. 따라서 우리가 이 흐름에 동참하지 않으면 선진국으로 올라가기는 커녕 후진국으로 전락할 수 있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또 하나는 우리는 수출을 해서 사는 나라이기 때문에 세계에서 가장 선진적이고 큰 시장인 2조7천억달러짜리 미국 시장을 선점해야 살 수 있다는 논리다. 그리고 이 논리는 국민들에게 가장 쉽게 다가가는 논리다.

전세계적으로 200여개의 FTA가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 내용에 구체적으로 들어가면 이야기가 전혀 달라진다. FTA의 이름은 자유무역협정이지만 사실은 그 협정 밖에 있는 국가들에 대해서는 기본적으로 보호무역이다. 협정을 맺은 국가끼리는 관세를 철폐하지만 그 외의 국가들에는 여전히 관세를 두기 때문에 차별적인 대우를 하는 것이다.

원래 자유무역은 모든 국가에게 똑같이 대하는 것이다. 그래서 GATT(가트)가 만들어지던 1947년에는 FTA를 인정하지 않으려 했다. 그러다 유럽의 국가들이 EU를 결성하기 위해 예외조항을 요구하면서 생긴 것이 FTA 규정이다.

그런데 WTO에서는 FTA가 많이 생기면 다자간 협정이라든가, 자유무역의 틀이 깨질 수 있기 때문에 FTA를 신고하고 승인을 받도록 하고 있다. 그렇지만 FTA를 체결한 곳 누구도 GATT나 WTO에 신고하지 않고 있다. 심지어 현존하는 가장 강력한 FTA인 NAFTA도 마찬가지다. 이런 WTO가 파악하고 있는 FTA가 200개 정도다.

그런데 현존하는 FTA조차 그 수준이 천차만별이다. 우리나라와 미국은 ‘높은 수준의 FTA’를 맺겠다고 한다. 미국은 심지어 NAFTA보다 강력한 ‘NAFTA 플러스’로 맺겠다는 것이 전략이다. 높은 수준이라는 것이 정확하게 규정되어 있진 않지만 대체로 전품목을 개방하고 개방의 정도가 90% 이상인 것을 말한다. 그러면 그런 FTA가 있느냐. 없다. NAFTA도 그렇게 안된다. 그런데 우리는 그런 FTA를 맺겠다고 한다.

대부분의 FTA는 협상을 하다보면 수준이 낮아진다. 결국 무산이 된 한일FTA도 초기에는 김과 자동차부품 시장을 놓고 서로의 요구가 상이했다. 그렇기 때문에 협상을 하다보면 수준이 낮아질 수밖에 없다.

중국과 FTA를 하면 우리의 농업이 망할 것이라는 얘기를 하지만 그렇지 않다. 중국은 제조업이 빠른 속도로 성장하고 있지만 아직 관세가 높다. 따라서 우리나라에 농산물을 수출하기 위해 관세를 낮춘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렇기 때문에 중국은 제조업을 지키고 우리는 농업을 지킬 수 있는 방향으로 협상의 수준이 낮아진다. 이런 이유로 FTA의 대부분은 중간 수준이다. 후진국들의 FTA는 더 낮은 수준이다. 이들은 더 지킬 게 많기 때문에 몇 가지 협정만 가지고 FTA라는 이름을 붙인 것이다. 200개라고 하는 것의 대부분이 그런 낮은 수준 혹은, 중간 수준의 FTA다.

실제로 WTO의 자유무역에 어긋나지 않는, 높은 수준의 FTA는 많아야 18~20개 밖에 되지 않는다. 따라서 FTA 갯수만 가지고 우리가 소외됐다는 것은 말이 안된다. FTA는 아프리카 국가들이 평균 5~6개, 유럽이 3~4개, 동아시아가 2개다. 중남미 국가는 평균 7개의 FTA를 맺고 있다. 정부 논리대로라면 동아시아가 가장 못 살아야 한다. 그러나 동아시아의 경제성장률이 빠르다. 중남미와 동아시아의 경제성장률 격차는 점점 더 벌어지고 있다. 더구나 FTA를 가장 많이 맺은 멕시코는 2003년에 모라토리엄 선언을 했다. 즉 FTA 개수와 경제성장률은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얘기다. 다만 정부가 호도하고 있을 뿐이다.

우리의 대외의존도는 세계 최고 수준

한미FTA를 반대하는 사람들은 쇄국론자라는 비판을 많이 한다. 그 근거로 우리 경제의 대외의존도가 70%이기 때문에 더 개방을 해야 된다는 주장을 한다. 대외의존도 70%는 아일랜드나 네덜란드와 같은 유럽의 작은 나라들을 제외하고는 세계 최고 수준이다. 가장 개방이 많이 되어 있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천천히 가자는 것인데 무엇이 쇄국인가. 상식적으로 말이 되지 않는다. 마타도어일 뿐이다.

요즘 청와대 국정브리핑을 보면 '조중동'과 차이가 없다. 섞어 놓으면 분간할 수 없을 정도다. FTA에 대해서는 이미 '대연정'이 이뤄졌다. 실제로 상식을 가지고 있는 경제학자라면 내수를 늘려서 내수와 외수의 균형을 맞춰야 한다는 생각을 하기 마련이다. 미국의 대외의존도는 18% 정도다. 수출지향의 일본도 18~25%대에서 움직이고 있다.

다른 국가들은 우리가 상상하는 것보다 대외의존도가 상당히 낮다. 즉 선진국일수록 상당한 내수를 바탕으로 경제를 안정적으로 운용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임금이 높고 복지와 삶의 질이 높다는 얘기다. 대외의존도가 높다는 것은 삶의 질이 낮다는 얘기일 수도 있다. 왜냐면 임금을 낮춰서 수출경쟁력을 높이면 기업은 좋지만 그 수출을 위해 임금을 낮춘 노동자들은 살기 어려워질 수 있는 것이다.

더욱더 경제학의 상식에 비춰볼 때 한국은 지나치게 대외의존도가 높기 때문에 내수를 늘려야 하는데, 그러므로 대외의존도를 높이기 위해서 한미FTA를 해야 한다는 얘기를 하고 있다. 이것도 사실이 아니다. 상식에 어긋나는 얘기를 하는데 우리가 그걸 받아들이고 있다. 우리가 ‘수출만이 살길이다’는 박정희 시대 때부터의 구호에 세뇌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는 박정희 시대의 경제를 이미 넘어서 있다.

미국의 FTA 전략과 음모

미국의 FTA 전략에 대해서는 특별히 주목할 필요가 있다. 미국은 원래 한꺼번에 협상하는 다자간 협상을 선호했다. 8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우루과이라운드에서 도하라운드까지 이르는 다자간 협상을 주도했다. 그래서 2000년대 초반까지의 목표는 FTAA(전미자유무역협정)를 만드는 것이었다. 즉 NAFTA를 바탕으로 아메리카 대륙을 유럽의 EU처럼 하나로 묶는 것이었다. 그런데 2005년에 FTAA는 중남미 좌파 성향 국가들의 반대로 모두 무산됐다.

또 한축에서 진행되고 있었던 MAI(다자간 투자협정)도 프랑스 등이 미국에서 투자자 보호를 너무 많이 요구한다는 이유로 무산됐다. 또 도하라운드 역시 칸쿤에서 좌절됐다. 이를 계기로 지금은 당시 미무역대표부(USTR)의 대표였던 로버트 죌릭이 ‘경쟁적 자유주의’라는 개념을 도입하면서 양자간 FTA를 맺겠다고 선언을 한다.

즉 전 세계를 대상으로 양자간 FTA를 경쟁적으로 맺게 하겠다는 것이며, 그 내용은 ‘NAFTA 플러스 이상’이다. NAFTA에는 ‘우리는 상대국가의 공기업 민영화를 강요하지 않는다’라고 되어 있다. 그런데 죌릭은 ‘우리는 상대국 공기업 민영화와 규제완화를 지지한다’고 명확히 한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바로 죌릭이 선언한 내용이다.

죌릭의 공기업 민영화와 규제완화 지지 선언은 우리가 IMF를 통해 많이 들었던 얘기다. 즉 미국은 IMF와 월스트리트의 합의를 바탕으로 현존하는 FTA 중 가장 강력한 NAFTA보다도 더 강한 FTA를 맺어서 개방, 민영화, 긴축정책이라는 워싱턴 컨센서스를 관철하겠다는 뜻을 천명한 것이다.

그리고 이 내용은 신자유주의의 핵심이다. 즉 미국은 한편으로는 IMF를 통해서, 한편으로는 FTA를 통해서 신자유주의를, 워싱턴 컨센서스를 관철하겠다는 것이다. 그래서 미국은 앞으로 FTA는 점점 더 강해질 것이라고 선언한다. 그런데 그 첫번째 케이스가 한국이다. 원래 한국이 아니었는데 한국은 네 가지 선결조건까지 주면서 케이스가 되기 위해 매달리고 있는 상황이다.

한미FTA는 IMF가 10개쯤 터지는 것이라는 얘기가 많이 되고 있다. 처음에는 10개는 아니고 한 8개쯤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지금은 생각이 달라졌다. 10개 이상이다. 100개일 수도 있다고 본다. IMF 조건은 돈을 갚으면 효력을 잃는다. 그리고 돈을 갚으면 조건에 대해 법적인 강요를 계속할 수 없다. 그런데 한미FTA는 한미동맹처럼 협정을 깨지 않는 한 영원히 지속된다. '한미동맹에서 빠져나오면 어떻게 살지'라고 생각하는데 조금 지나면 한미FTA도 마찬가지 상황이 될 것이다.

미국의 일방적 논리만 강요

미국이 FTA에서 가장 중점을 두는 것은 세 가지다. 첫째가 지적재산권, 둘째가 투자, 셋째가 서비스다. 여기다 농업을 더하면 미국이 다자간 협상 등 모든 통상협상에서 전력을 기울여서 관철시키려고 하는 것들이다. 우리는 제조업 관세를 얘기하지만 미국은 제조업 관세에 신경도 쓰지 않는다.

미국의 평균관세는 나라마다 다른데 대체로 한 2% 정도이고 우리는 18% 정도다. 멕시코는 25% 정도 됐다. 이를 10년 동안 똑같이 낮추자고 하면 우리는 18%를 낮춰야 하고, 미국은 2%만 낮추면 되는 것이다. 어디가 더 충격을 받고, 어디가 더 이익이겠는가. 농업을 제외한 세 가지를 ‘신이슈’라고 부르는데 우루과이라운드 이후 미국이 이를 대단히 강조하고 있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많은 힘을 기울이고 있다.

지적재산권은 쉽게 얘기하면 특허다. 특허가 경제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는 두 가지 이론이 있는데 모두 타당성이 있다. 첫째는 특허권을 강하고 길게 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특허권이 없으면 돈이 되지 않기 때문에 발명과 연구를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뭔가 새로운 기술과 지식이 창출되게 하기 위해서 특허권이 강력하고 길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또 하나는 특허권을 강하게 할 경우 기술을 만들어도 너무 비싸서 확산이 안되기 때문에 도움이 안된다는 것이다. 기술이 확산되어야 경제가 발전하기 때문에 특허 기간을 줄이고 강도를 낮춰야 한다는 주장이다. 둘 다 일리가 있다. 하나는 기술의 창출에 관련되어 있고, 하나는 기술의 확산에 관련되어 있다.

다만 특허를 많이 갖고 있고 만들 능력이 있는 사람은 전자를 요구하고, 특허가 없고 이를 사용해야 하는 사람은 후자를 택한다. 특허를 가장 많이 갖고 있는 미국은 전자다. 전세계 특허의 절반 이상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미국은 이를 가장 강력하게 만들자고 주장한다. 한국과 미국이 협상하면 미국 주장대로 간다.

다음은 투자다. 이게 가장 중요하다. 상품이 아니라 투자다. 상품이 국경을 넘어올 때 관세를 얼마로 하느냐의 문제로 생각하지만 투자는 상품이 아니다. 처음에는 석유나 지하자원을 통해 이익을 창출한 외국인 기업을 좌파정권이 몰수해버리는 경우를 방지하기 위해 투자에 대한 조항이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것이 수용으로 바뀌면서 기업의 이윤에 저해하는 행위를 규제해야 된다는 것까지 넓어진다.

NAFTA에 ‘간접적 수용’이라는 말이 나온다. 기업의 이윤을 저해하는 것도 막아야 한다는 것이다. 점점 보호하는 투자의 대상이 커진 것이다. 보호하는 방법도 달라졌다. NAFTA의 혁명적인 변화는 투자자가 바로 정부를 제소할 수 있게 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에 대한 판단도 우리나라 사법부가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제3의 민간기구가 판단을 한다.

간접적 수용도 독소조항인데 이것은 최고의 독소조항이다. 이것은 우리의 헌법과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것이다. 바로 이것 때문에 MAI가 무산된 이유이기도 했다. 그런데 한미FTA에는 들어가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우리 정부는 투자에 대한 쟁점은 없다고 했는데 이 부분을 우리가 합의해 준 것 같다. 이는 미국 요구를 받아들였다는 것인데 그 내용을 공개해야 한다.

▲ 정 전 비서관은 노무현 대통령과 4인방은 반드시 청문회에 설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 인권실천시민연대
한나라당 정책을 열린우리당이 들고 나왔다

서비스 경쟁력 역시 미국이 가장 좋다. 농업도 미국이 가장 강하다. 땅이 워낙 비옥하기도 하지만 면적당 농업보조금도 가장 많이 준다. 미국은 다른 나라에 대해 농업보조금을 줄이라고 하지만 자신들은 최근에 더 늘렸다. 그럼 제조업은 어떤가. 우리가 제조업은 경쟁력이 있을 것으로 보지만, 세계시장에서 경쟁력 1위 상품은 미국이 가장 많이 가지고 있다.

한국이 미국보다 더 강한 것은 자동차 중형 부문, 반도체 D램 부문, 휴대 전화 일부, 백색 가전 정도다. 그 외에는 미국이 모두 강하다. 특히 화학 의료 산업은 미국이 압도적 우위를 가지고 있다. 한일FTA를 준비할 때는 기계부품육성방안 같은 걸 만들었는데 한미FTA에서는 그런 것도 없다. 미국과 캐나다가 CUSFTA(캐-미 자유무역협정)를 맺고 다시 멕시코와 NAFTA를 맺는데 3년이 더 걸렸다. 그걸 우리는 10개월만에 해치우려 하고 있다.

정부는 한미FTA의 위험성에 대해 지적하면 아직 협상이 끝난 것도 아니니 나중에 결과를 보고 얘기하자고 한다. 또 협상의 내용이 문제가 되면 나중에 국회에서 비준을 안 할 것이라고 한다. 그런데 미국의 의회처럼 우리의 국회도 미리미리 보지 않으면 비준을 하지 않을 수 없다. NAFTA는 3000페이지다. 하나하나 각 부문의 전문가들이 봐야 이해할 수 있다. 경제학자나 변호사도 자기 분야만 안다. 국회의원들이 한 달 봐도 모른다.

더구나 원래 이런 것은 한나라당의 정책이었다. 그런데 이를 열린우리당이 들고 나왔다. 이것도 대연정이다. 열린우리당이 들고 나왔는데 한나라당이 반대할 이유가 없다.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대신 해주고 욕도 대신 먹는 것이다. 이런 엄청난 정책은 언제나 부작용이 있기 마련이다.

좋은 정책이나 나쁜 정책이나 큰 정책은 마찬가지다. 부작용에 대해 한나라당은 노무현 정권이 잘못해서 그렇다고 얘기할 것이다. 다음 정권은 누가 잡던지 대통령과 이른바 4인방은 청문회에 설 수밖에 없을 것이다. 부작용은 나오게 되어 있다. 끝나면 끝이기 때문에 지금 얘기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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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여행
김훈 지음, 이강빈 사진 / 생각의나무 / 200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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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이미 오래전에 출간된 작품인데, 뒤늦게 읽게 되었다.

'1999년 가을부터 2000년 여름까지 전국의 산천으로 끌고 다닌 내 자전거의 이름은 風輪이다... 이 책을 팔아서 자전거값 월부를 갚으려고 한다. 사람들아 책 좀 사가라. 52살의 여름에 김훈은 겨우 쓴다.'(책 머리에-초판 27쇄에 개정판 14쇄이니 자전거값은 몇 백배 충당되고도 남았겠다-인용자)

여수 향일암, 광주, 만경강, 안면도, 감포와 고성, 도마령과 미천골, 섬진강 덕치마을로부터 다시 암사동과 조강에 이르기까지...

무엇보다 왜 '자전거'였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중년의 몸을 이끌고 험한 고개들을 오르내리는 모습은 그 자체만으로도 하나의 '귀감'일 것이다. 서울을 중심으로 속도를 내면 네 다섯 시간이면 어디든 반도의 끝이다. 1년에 걸쳐 진행된 이 여정은 우리에게 속도 속에서 간과하고야 마는 많은 것들이 있다는 것을 각인시켜준다. 즉, 이 책은 스스로 고행을 통해 역설하는 '문명비판'이기도 한 것이다.

그리고 그 '느린 속도' 속에서 저자의 해박한 지식과 사유를 통해 그 속에서 간직해야 할 것들을 시공을 초월하여 풀어놓고 있는 것이다. 저자의 말처럼 암사동에서 조강에 이르는 그 느린 강물의 흐름 속에는 이미 서기 5천년 전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의 유장한 시간이 포함되어 있지 않은가. 출퇴근을 위해 한강을 건너며 슬쩍 눈을 들어 바라보는 강물이 예전과 같지는 않을 것 같다. 하물며 '맹인 친구를 데리고 마을 어귀까지 바람을 쏘여주고 술도 먹여주는' 미천골의 아름다운 사람의 삶을 생각하는 것이란...

의상, 원효, 이순신, 다산, 정도전 등에 대한 저자의 식견을 새겨볼 일이다.

(책에서 아쉬운 점) 99쪽, 147쪽, 174쪽, 280쪽, 284쪽, 그리고 명기하고 싶지 않은 두 쪽에 이르기까지 교정을 다시 봐야할 것이다. 내가 잘못 이해한 것이라면 다행이겠지만, 이미 개정판 27쇄에 이르기까지 고치지 못했다면 아쉬운 일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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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농사꾼의 별에서 창비시선 241
이상국 지음 / 창비 / 200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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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다섯번째 시집이다. 네번째 시집 <집은 아직 따뜻하다>(1998)를 읽다가 느꼈던 감상이 새로웠던 기억이 있다. 그때의 '새로움'은 무엇이었을까?

'시인의 고향은 설악산 아래 양양이다. 그는 거기서 태어나서 60년 가까운 세월 동안 한번도 근처를 벗어나 살지 않았다고 한다.'(김윤태, <어느 농사꾼..> 해설에서)

단지 그뿐일까? 그보다는 시인의 시선과 사유가 현실에 깊이 착근해있기에 가능한 표현들, 즉 단순한 일상의 삶에서 길어올리는 시어들이 주는 생생함이었던 것 같다. 지나친 '사유의 확장'으로 인해 부유하는 詩語들에 의해 익숙해지거나 뜻도 모르고 주억거리는 유희에서 벗어나게 했던 기억이었다.

여전하다. 대관령, 한계령, 미시령(이제 터널로 다닌단다. 그래서 용대리 민박집 아주머니의 장나들이도 원통을 향하지 않고, 속초에 있는 이마트로 가신단다) 건너의 영동을 바라보는 시선이 국립공원과 대형 콘도와 몇몇 해수욕장을 연상시키는 시선에 그치지 않고, 불에 타버린 산림과 어두운 골목길의 절망과, 어부들의 수고로움에까지 가닿을 수 있도록 배려하는 것이다.

분량이 작은 시집 한 권을 읽는다는 것으로, 그 안에 담긴 뜻의 어느 만큼을 과연 이해했을까 하는 스스로에 대한 의문이 든다. 또한 흔히들 시집 말미에 '시의 이해를 돕고자' 하는 해설이 있는데, 때로는 그 해설이 시 읽기를 방해하는구나 하는 생각이 종종 들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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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여행
김훈 지음, 이강빈 사진 / 생각의나무 / 200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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갯지렁이의 구멍은 밀물에 쉽게 쓸려버려서 갯지렁이는 끊임없이 흙을 뱉어내며 새 집을 지어야 한다. 갯지렁이의 이 기구한 무주택의 운명이 갯벌에 지속적으로 산소를 불어넣어, 갯벌은 모든 살아있는 것들의 터전이 된다. 갯지렁이는 온몸의 마디를 뻘밭에 밀면서 헤치고 나간다. 갯지렁이는 죽음을 통과하듯이 온몸을 뒤틀면서 뻘 속을 헤치고 나간다. 갯지렁이가 기어간 뻘 위의 자국은 난해한 문자와도 같고, 고통스런 글쓰기의 흔적과도 같다.(중복문 있음...)-57쪽

차를 따서 불에 말리는 과정이 '덖음'이다. 차 맛은 이 '덖음' 과정에서 크게 달라진다. 찻잎에는 독성이 있다. 그래서 차나무 밭에는 벌레가 없고, 놓아먹이는 염소들도 차나무 밭에는 얼씬거리지 않는다. 덖음은 차의 독성을 제거하고, 잎 속의 차 맛을 물에 용해될 수 있는 상태로 끌어내고, 차를 보관 가능하게 건조하는 과정이다. 그날 딴 차는 하루를 넘기면 안 되고, 그날 안으로 덖음질을 마쳐야 한다.-99쪽

날똥이여, 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세월이여 청춘이여 조국이여, 모든 것은 결국 날똥이 되어 가락국수처럼 비실비실 새어나가는 것인가. 쉰 살 넘어서 누는 날똥은 눈물보다 서럽다.-118쪽

아파트에는 지붕이 없다. 남의 방바닥이 나의 천장이고 나의 방바닥이 남의 천장이다. 아무리 고층이라 하더라도 아파트는 기복을 포함한 입체가 아니다. 아파트는 평면의 누적일 뿐이다. 천장이고 방바닥이고 부엌 바닥이고 현관이고 간에 그저 동일한 평면을 연장한 민짜일 뿐이다. 얇고 납작하다. 그 민짜 평면은 공간에 대한 인간의 꿈이나 생활의 두께와 깊이를 받아들이지 않는다. 한 생애의 수고를 다 바치지 않으면 이런 집에서조차 살 수가 없다. 공간의 의미를 모두 박탈당한 이 밋밋한 평면 위에 누워서 안동 하회 마을이나 예안면 낮은 산자락 아래의 오래된 살림집들을 생각하는 일은 즐겁고 또 서글프다.-134쪽

소백산맥에 군사도로가 뚫린 지 518년 후에 의상은 이 고개를 멀리 바라보는 신라 최전방 격전지 들판에 부석사를 세웠다. 그 500년 동안 전란은 그칠 날이 없었다. 김부식의 수사법에 따르면, 의상의 시대인 7세기에 이 들판에서는 人馬의 피가 내를 이루어 창과 방패가 떠내려갔다. 피가 내를 이루던 살육의 시대에 의상은 가장 웅장한 평화의 체계에 도달했던 것인데, 그의 화엄 체계 속에서 당대의 살육이 어떻게 설명되는 것인지는 알 수 없다.(의상과 원효, 그리고 퇴계와 정도전, 다산에 대한 김훈의 상상력은 충분히 공감할 만하다)-160쪽

진도 운림산방은 꿈과 현실이 포개져 있었던 그의 말년의 화실이다. 허소치는 50세 되던 1857년에 귀향해서 이 초가집을 짓고, 70세까지 여기서 그림을 그렸다.-187쪽

엄 노인은 사람이 죽어서 산으로 가는 이 마지막 사업을 '입산'이라고 말했다. 그의 '입산'이라는 말 속에서, 산은 삶이 다하는 자리에서 펼쳐지는 평화의 깊이로 느껴졌고, 그래서 위로받아야 할 쪽은 상여 속에 누워서 입산하는 죽은 자가 아니라 빈 상여를 메고 하산해야 하는 산 자들일 것이다.-213쪽

문경새재와 하늘재에는 자동차가 들어올 수 없다. 여기는 자전거의 낙원이고, 높은 고개들을 잇달아 넘어가는 자전거의 지옥이다..(중략) 문경새재를 넘어가는 영남대로는 서울-충주-상주-부산을 연결하는 조선 500년의 간선도로였다. 행정과 교역의 대부분이 문경새재를 넘나들며 이루어졌다.

(가봐야 할 곳 : 전북 임실군 운암면의 옥정호 마을)-218~219쪽

초이는 회장에 당선되었을 때 당선 소감에서 "1학년에서 6학년까지 모두 한데 어울려 잘 놀도록 하겠다"라고 말했다. 초이는 지난 1년 동안 이 공약을 충실히 지켰다. 축구할 때도 1, 2학년을 빼버리지 않고 늘 함께 데리고 놀았다. 초이네 집은 닭을 기른다. 그래서 초이의 글에는 닭을 걱정하는 얘기가 많이 나온다. 아빠가 기르는 닭이 장난이 아니고, 우리 집 식구들을 먹여 살리는 닭이라는 걸 초이는 알고 있다.-266~267쪽

조선 영조 연간의 지리학자 신경준(1712~1781)은 "하나의 근본으로부터 만 갈래로 나누이는 것이 산이요, 만 가지 갈래가 하나로 합쳐지는 것은 물이다"라고 말했다. 신경준의 국토 인식은 조화론적인 것이었다. 다양성의 원리와 통합의 원리, 그 우뚝한 두 기둥 사이의 공간이 삶의 자리이며 역사의 근원지이다. 서울의 북한산과 서울의 한강이 그 두 개의 기둥이다.-27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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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산새들의 목욕... "어, 시원하다!"
텍스트만보기   이종혁(zhlee) 기자   
▲ 장맛비가 잠시 그친 구봉산 자락의 바위틈에 물이 고여 있습니다. 이곳에서 무슨 일이 있었을까요?
ⓒ 이종혁

장맛비가 잠시 그친 날 구봉산에 올랐습니다. 날도 덥고 뜨거운 산행길, 우연히 시선이 머문 그곳에선 산새들이 더위를 식히고 있었습니다. 사람들이 지나가면 몸을 숨기고, 인기척이 없을 때는 왔다 갔다 하며 물놀이를 즐깁니다. 멀리서 숨죽이며 바라보았습니다. 욕심을 내서 더 가까이 가니 멀리 달아나 버리더군요. 물놀이를 방해해서 미안했습니다.

▲ 조그만 산새들이 틈에 고인 물에서 목욕을 하고 있습니다.
ⓒ 이종혁

▲ 한 녀석이 발을 먼저 담궈 봅니다. 음, 이 정도면 시원한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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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잠시 물에 들어가 후다닥 몸을 털고는 숨고, 또 잠시 후에 나와서 목욕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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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마리가 하고 나오면 다른 녀석이 기다렸다가 들어가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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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 마리가 한꺼번에 들어가서 몸을 흔들며 더위를 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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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휘익~ 첨벙! 파다닥! 더울 때는 사람에게도, 산새에게도 물놀이가 최고인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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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 시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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