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원에 가기
알랭 드 보통 지음, 정영목 옮김 / 이레 / 2006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이미 많은 판매를 통해 친숙한 느낌을 갖게 되는 '알랭 드 보통'이라는 작가의 산문집이다. 그리고 나로서는 이 작가 작품에 대한 첫번째 독서였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알랭 드 보통'이라는 작가에 대해서 나처럼 처음 대하는 독자에게는 결코 권하고 싶지 않은 책이다. (부정의 의미는 아니고, 다른 책들부터 읽으시라는...^^;)

독서경험은 받아들이는 태도 또는 시각, 그리고 여러 이유에 따라서 다를 수 있고, 또한 주관적인 것이기 때문에 그 느낌의 편차는 매우 클 수 있다. 독서는 정해진 결론과 해답을 찾아가는 길은 아니겠기에 당연하겠지만, 그렇다면 이런 리뷰를 남기는 것 역시 자유로운 것이지 않겠는가?

옮긴이의 말을 다시 옮겨보자.

'이 책에 실린 산문들은 대부분 그간 드 보통이 쓴 글들 가운데 그의 면모를 가장 잘 보여줄 수 있는 대목들을 추려서 독립적으로 완결성을 가질 수 있도록 손을 보고 보완한 것들... (중략).. 저자가 직접 고른 구슬들을 다시 갈고 닦은, 말 그대로 주옥같은 글들이 모여 있는 셈이다.'- <옮긴이의 말 - 정영목>

또한 역자의 말에서 빌리자면, 이 책은 펭귄 출판사가 창립 70주년을 기념하여 출간한 문인들 70명의 작품 선집들 가운데 한 권이고, 드 보통은 70번째라는 상징적인 자리를 차지하며....(이 말뜻을 되새기면 그간 모 출판사에서 70주년 기념으로 70명의 출간작가들이 스스로 선정한 '주옥같은 대표작'을 모은 것이고, 70번째라면 가장 현실에 영향력이 있거나, 그러하기를 바라는 배치라는 것인데.... 라고도 읽힐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수식과 치사에 어울릴만한 함량은 아니었다.

'(비행기에서 바라보면) 그 모두가 아주 작다. 땅 위의 원근법의 교훈은...' 누구나 비행기를 타거나 원형놀이기구를 타면 생각하는 것일 수도 있다. 노동의 근원에 대한 사유는 그 결론이 모호하다. '부르조아'에 대한 역사적 기능과 역할에 대한 저자의 시각은 극히 감상적이다. 그리하여 노동에 대한 생각 역시도 애매모호하다. 하물며 이미 그 영향력이 확대되고 있는 '만화'에 대한 저자의 사유는 동시대 유명 저자의 사고임을 의심케 한다.(대표적 선집인데 이 모양이면, 아마도 관심 밖으로 접어두어야 할지)

난감한 생각에 읽어본 다른 분들의 리뷰는 진폭이 크다. 출판사의 상업주의를 의심하는 경우부터 불편한 심기를 비추는 글들도 많다. 반대로 '역시 보통'이라는 글들도 못지 않다. 결국 생각에 빠진다. 그의 소설부터 다시 한번 읽어보아야겠다고... 그러나 이렇듯 무심한 '보통' 독자가 아니고, 저자에 대해 호감을 갖는 독자라면, 어쩌면 이 책이 아쉬울 수도 있겠다는... (이 역시 자의적이겠다..._ _;)


댓글(1)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마노아 2006-09-27 00: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님은 정직하세요. 전 다른 이들의 평가를 생각하며 별 세개 줬는데^^
 
동물원에 가기
알랭 드 보통 지음, 정영목 옮김 / 이레 / 2006년 8월
구판절판


리틀 셰프의 현실적인 느낌이 들지 않는 환경 덕분에 우리는 한동안 가정의 구속으로부터, 우리 마음의 습관으로부터, 세련된 사람들이 정해놓은 규칙으로부터 벗어나, 완전히 다른 삶을 살고 있다는 기만적인 공상에 빠져들 수 있다. 둘 다 리틀 셰프를 좋아한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것은 단지 식당을 고르는 취향이 비슷하다는 뜻이 아니다. 그것은 내면의, 매우 내밀한 심리의 한 부분이 일치한다는 뜻이다. 그곳에서 결혼 피로연이 자주 열리지 않는 것이 놀라울 따름이다.-24쪽

비행기에서 구름을 보면 고요가 찾아든다. 저 밑에는 적과 동료가 있고, 우리의 공포나 비애가 얽힌 장소들이 있다. 그러나 그 모두가 지금은 아주 작다. 땅 위의 긁힌 자국들에 불과하다. 물론 이 유서 깊은 원근법의 교훈은 전부터 잘 알던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차가운 비행기 창에 얼굴을 갖다 대고 있을 때만큼 이것이 절실하게 느껴지는 경우는 드물기에, 우리가 지금 타고 있는 것을 심오한 철학을 가르치는 스승이라 부를 만하다.-38쪽

고대인이 생각하는 좋은 삶에서 기업가나 상인은 아무런 역할을 하지 못했다. 초기 기독교 역시 노동을 냉혹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노동이 어쩔 수 없이 져야 할 현실적인 짐이라는 생각만으로도 모자라서, 거기에 인간은 아담의 죄를 갚기 위해 고된 노동을 할 운명을 타고난 존재라는 훨씬 더 어두운 생각까지 보태놓은 것이다. 노동 조건은 아무리 가혹해도 개선될 수가 없었다. 일이 비참한 것은 우연이 아니었다. 일은 지상에서 겪어야 할 고난의 핵심적 요소 가운데 하나였다. 성 아우구스티누스는 노예들에게 주인에게 복종하고, 자신의 고통을 "비참한 인간 조건"-그가 <신국 The City of God>에서 사용한 표현이다-의 일부로 받아들이라고 권고했다.-72쪽

노동자들은 기본적으로 도구 노릇에 머물게 된다. 고용자와 피고용자 사이에 어떤 동지애가 이룩된다 해도, 노동자가 아무리 선의를 보여주고 아무리 오랜 세월 일에 헌신한다 해도, 노동자들은 자신의 지위가 평생 보장되지 않는다는 것, 그 지위가 자신의 성과와 자신이 속한 조직의 경제적 성공에 의존한다는 것, 자신은 이윤을 얻기 위한 수단일 뿐이지 감정적인 수준에서 늘 갈망하는 바와는 달리 결코 그 자체로 목적일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결국 노동자는 늘 불안하게 살아갈 수밖에 없다.

(중략)

일이 행복을 가져다줄 것이라는 기대를 하지 않는 쪽이 일을 견디는 데 도움이 된다는 사실을 기억해두는 것이 좋겠다. 그래야 우리의 슬픔을 그나마 다독일 수 있을 테니까.-82쪽

어쩌면 불가피한 일이겠지만, 나는 데즈먼드 모리스(<털없는 원숭이> <인간 동물원> 등의 저자)라는 안경을 쓰고 동물원을 나오게 된다. 새러한테 저녁을 먹자고 전화하는 행위에서도 이전의 순수함을 회복할 수 없다. 그것은 인간 종의 짝짓기 의식의 일부일 뿐이다. 야마가 가을밤에 서로 이상한 휘파람 소리를 내면서 하는 일과 근본적으로 다르지 않다.
그러나 사람의 기괴한 짓들이 기본적으로 단순한 동물적 욕구-먹이, 서식지, 자신의 유전자를 가진 후손의 생산 등을 향한 욕구-의 복잡한 표현일 뿐이라고 보게 되면 마음이 편해지기도 한다. 이러다 레전드 파크 동물원의 1년 자유입장권을 끊을지도 모르겠다.-92쪽

'무엇을 먹고 마실지를 생각하기보다는 누구와 먹고 마실 것인가를 신중하게 고려해야 한다. 왜냐하면 친구 없이 식사하는 것은 사자나 늑대의 삶이기 때문이다.'-에피쿠로스

; 예전에는 이렇게 단순하게 사고하기도 했던 모양이다.^^-96쪽

부르주아라는 말은 부정적인 함의가 가득해 보인다. 이 말은 순응, 상상력 부족, 경직, 현학, 속물근성을 암시하는 것 같다. 그러나 호흐의 세계에서 부르주아는 소박하지만 매력적인 옷을 입고, 너무 천박하지도 않고 또 너무 허세를 부리지도 않고, 자식들과 자연스러운 관계를 맺고, 방탕한 상태로 빠지지 않으면서도 감각적 기쁨들을 인정한다.

; 감각적인 이해에 기댄 주관(뭐 어쨋든..)-116쪽

모든 독자는 자기 자신의 독자다. 책이란 그것이 없었다면 독자가 결코 자신에게서 경험하지 못했을 무언가를 분별해낼 수 있도록, 작가가 제공하는 일종의 광학 기구일 뿐이다. 따라서 책이 말하는 바를 독자가 자기 자신 속에서 깨달을 때, 그 책은 진실하다고 입증된다.-122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핑퐁
박민규 지음 / 창비 / 2006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살아남았다고 해서 인류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어딘가에선 힘없는 인간이 맞아죽고, 어딘가에선 힘없는 민족이 폭격을 당한다. <퍼헵스 러브>와 같은 노래를 아무리 불러도, 세계의 키워드는 여전히 약육강식이다. 인류의 2교시를 생각한다면, 생존이 아니라 잔존이다. 지난 시간의 인간들이, 그저 잔존해 있는 것이다.' - <작가의 말>에서..

글자의 크기가 달라지고, 마침표 없이도 행간이 바뀌는 형식실험이 있다. 박민규이기 때문에 가능할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그리 중요하지 않다. '인류의 운명을 언인스톨할지'에 대한 내기를 걸고 한 판 승부를 벌이는 중학생들, 그들이 바라보는 세상과 그들이 절실하게 되묻는 질문들에서 생각 키우는 것은 '왜 이 작가는 이렇게 독자들을 불편하게 하는가?'이다. 그러다 생각이 바뀐다. 이 소설을 불편하게 생각하는 '나'는 무엇인가?

이 작품은 흔히 '다수'라고 불려지는, 평범한 일상을 사는 대부분의 사람들에 대해 질문한다. 일상의 안위에서 한 걸음도 벗어나지 못하고, 진정한 의미에서 스스로를 '가두는' 대다수는 과연 온전한 삶을 살고 있는가 라고 하는 근본적인 질문이다. 그것도 무의식적으로(또는 자동적으로) 폭력에 순응하는 왕따 중학생의 시각에서 되묻는다.  

"적응이 안돼요

다들 결국엔 자기 할 말만 하는 거잖아요

얘길 들어보면 누구도 틀렸다고는 할 수 없어요

왜 그럴까요? 왜 아무도 틀리지 않았는데 틀린 곳으로 가는 걸까요

내가 이렇게 사는 건 누구의 책임일까요

무엇보다

그걸 용서할 수 없어요

60억이나 되는 인간들이

자신이 왜 사는지 아무도 모르는 채

살아가는 거잖아요

그걸 용서할 수가 없어요"

 

이러한 질문에 답을 구하려 애쓰면서도, 그 경쾌한 줄거리를 따라갈 수밖에 없었던 복합적인 감정을 남겨준 소설이다.  숱한 은유와 상징 속에서, 어쩌면 주인공의 독백 속에서 숨어 있는 박민규는 이렇게 이야기한다.

"내 맘대로 썼으니 마음대로 읽으시오."(어느 일간지 기사)

내 곁에서 잠들어 있는 아이의 미래를 생각할 때 상상하기 싫은 불편함이 있지만, 그 내면을 파고드는 그의 질문은 누구에게나 집요하고 근본적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핑퐁
박민규 지음 / 창비 / 2006년 9월
장바구니담기


모쪼록 그 사실을, 나는 알고 있었다. 반팔 아래의 삼두박근을 손바닥으로 감싼 채- 나는 시간이 지나기만을 기다렸다. 다수의 결정이다. 참고, 따라야 한다. 에취, 뒤에서 누군가 심한 재채기를 했지만, 이내 버스 속은 잠잠해졌다. 인간은 누구나 다수인 척하면서 평생을 살아간다.

; 이 작품의 핵심 코드인 '다수'의 의미...-29쪽

평범하게 사는 것이다. 따 같은 거 당하지 않고, 누구에게도 피해를 주지 않고, 다수인 척 세상을 살아가는 것이다. 그게 전부다. 일정하게, 늘 적당한 순위를 유지하고, 또 인간인만큼 고민(개인적인)에 빠지거나 그것을 털어놓을 친구가 있고, 졸업을 하고, 눈에 띄지 않게 거리를 활보하거나 전철을 갈아타고, 노력하고, 근면하며, 무엇보다 여론을 따를 줄 알고, 듣고, 조성하고, 편한 사람으로 통하고, 적당한 직장이라도 얻게 되면 감사하고, 감사할 줄 알고, 이를테면 신앙을 가지거나, 우연히 홈쇼핑에서 정말 좋은 제품을 발견하기도 하고, 구매를 하고, 소비를 하고, 적당한 싯점에 면허를 따고, 어느날 들이닥친 귀중한 직장동료들에게 오분, 오분 만에 갈비찜을 대접할 줄 알고, 자네도 참, 해서 한번쯤은 모두를 만족시킬 줄 아는 그런 사람. 나도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그런 사람이 되면

행복할 수 있을까?

; 이러한 중학생 주인공의 생각과 이 책을 읽는 개개인의 생각은 얼마나 다른가?-34쪽

결국 벌판엔 그래서 모아이와 나만이 남게 되었다. 라켓과 물품을 정리하고, 우리는 한동안 소파에 몸을 묻었다. 다들... 잘하고 있는 걸까? 내가 물었다. 토론... 말이야? 토론... 같은 거. 토론으로 이기지 못할걸. 누구를? 인류가, 인류를.-77쪽

적응이 안돼요

다들 결국엔 자기 할 말만 하는 거잖아요

얘길 들어보면 누구도 틀렸다고는 할 수 없어요

왜 그럴까요? 왜 아무도 틀리지 않았는데 틀린 곳으로 가는 걸까요

내가 이렇게 사는 건 누구의 책임일까요

무엇보다

그걸 용서할 수 없어요

60억이나 되는 인간들이

자신이 왜 사는지 아무도 모르는 채

살아가는 거잖아요

그걸 용서할 수가 없어요-117쪽

(경기가 끝나고)

그리고 우리는 헤어졌다. 벌판의 끝을 향해 걸어가는 모아이에게 나는 손을 흔들었고, 그 모습이 보이지 않을 때쯤 발길을 돌렸다. 핑퐁, 경쾌한 소리가 마음을 울릴 만큼 숲의 공기는 상쾌했다. 천천히

나는 학교를 향해 걸었다.
-252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아디안텀 블루
오사키 요시오 지음, 김해용 옮김 / 황매(푸른바람) / 2006년 9월
평점 :
절판


이 책을 덮으며 떠올린 생각. 리뷰 쓰기가 어려울 것 같다는 생각, 바꿔 말하면 '판단 유보'이다.

이제 50대로 접어든 작가 요사키 요시오. <9월의 4분의 1>이 국내에 소개된 것이 2003년 9월(도서출판 황매)이란다. 그후 소개된 작품이 <파일럿 피쉬>와 이 책이다. 다른 리뷰에서 확인한 바로는 이 책은 <파일럿 피쉬>의 후속작이라고 한다. 뒤늦게야 확인했다. 그런데 책을 읽으면서 이 책에 다른 전작의 후속작이란 느낌은 전혀 받지 못했다. 옴니버스 형태의 소설인가? 이 작품만을 놓고 보면, 후속작이라는 의문은 없다. 그만큼 독립적인 완결성을 갖는다는 이야기일 것이다.

그런데 이 작품의 줄거리는 시한부 선고를 받은 여인과 그녀를 사랑하는 남자가  죽음을 받아들이는 과정에 대한 서술이다. 문학작품에서 매우 자주 차용되는 소재이다. 그렇기 때문에 시대에 따라 삶/죽음, 사랑 등을 어떻게 받아들이는가에 대한 관심 때문에 그러한 소재를 찾게도 되는 것이다. 물론 가장 보편적인 주제이기 때문에 갖는 관심이기도 하지만...

매우 차분하게 읽히는 소설이다. 그러나 주인공인 사진작가와 편집자(일본에서는 그리 불편하지 않은 소재일 수도 있겠지만, 여하튼 이들은 포르노잡지 관련 종사자들이다^^;)라는 사회적 관계나 그 속에서 보여지는 '세계에 대한 적응방식 내지 통찰'은 그리 중요하게 다뤄지지 않는다. 그런 면에서는 내 나름으로 표현하자면 '70년대식'인 것이다. 당 시대에 대한 소통이 그리 부각되지 않으니...

그래서 더욱 궁금하기도 하다. 전작인 <파일럿 피쉬>는 이 작품과 어떤 연계를 갖고 있는지... 관심이 유지되면 다시 읽어볼 일이다. 최근 일본작가에 대한 소개가 매우 활발하다. 개중에는 (개인적인 코드이겠지만) 관심이 가는 작가들도 꽤 있다. 연령으로 구분해볼 때 뒤늦게 소개되는 작가 요사키 요시오에 대해 관심이 유지될지는 단지 내 판단일 뿐이다. 작품들을 일별해보니 한 출판사에서 모두 소개되고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