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원에 가기
알랭 드 보통 지음, 정영목 옮김 / 이레 / 2006년 8월
구판절판


리틀 셰프의 현실적인 느낌이 들지 않는 환경 덕분에 우리는 한동안 가정의 구속으로부터, 우리 마음의 습관으로부터, 세련된 사람들이 정해놓은 규칙으로부터 벗어나, 완전히 다른 삶을 살고 있다는 기만적인 공상에 빠져들 수 있다. 둘 다 리틀 셰프를 좋아한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것은 단지 식당을 고르는 취향이 비슷하다는 뜻이 아니다. 그것은 내면의, 매우 내밀한 심리의 한 부분이 일치한다는 뜻이다. 그곳에서 결혼 피로연이 자주 열리지 않는 것이 놀라울 따름이다.-24쪽

비행기에서 구름을 보면 고요가 찾아든다. 저 밑에는 적과 동료가 있고, 우리의 공포나 비애가 얽힌 장소들이 있다. 그러나 그 모두가 지금은 아주 작다. 땅 위의 긁힌 자국들에 불과하다. 물론 이 유서 깊은 원근법의 교훈은 전부터 잘 알던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차가운 비행기 창에 얼굴을 갖다 대고 있을 때만큼 이것이 절실하게 느껴지는 경우는 드물기에, 우리가 지금 타고 있는 것을 심오한 철학을 가르치는 스승이라 부를 만하다.-38쪽

고대인이 생각하는 좋은 삶에서 기업가나 상인은 아무런 역할을 하지 못했다. 초기 기독교 역시 노동을 냉혹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노동이 어쩔 수 없이 져야 할 현실적인 짐이라는 생각만으로도 모자라서, 거기에 인간은 아담의 죄를 갚기 위해 고된 노동을 할 운명을 타고난 존재라는 훨씬 더 어두운 생각까지 보태놓은 것이다. 노동 조건은 아무리 가혹해도 개선될 수가 없었다. 일이 비참한 것은 우연이 아니었다. 일은 지상에서 겪어야 할 고난의 핵심적 요소 가운데 하나였다. 성 아우구스티누스는 노예들에게 주인에게 복종하고, 자신의 고통을 "비참한 인간 조건"-그가 <신국 The City of God>에서 사용한 표현이다-의 일부로 받아들이라고 권고했다.-72쪽

노동자들은 기본적으로 도구 노릇에 머물게 된다. 고용자와 피고용자 사이에 어떤 동지애가 이룩된다 해도, 노동자가 아무리 선의를 보여주고 아무리 오랜 세월 일에 헌신한다 해도, 노동자들은 자신의 지위가 평생 보장되지 않는다는 것, 그 지위가 자신의 성과와 자신이 속한 조직의 경제적 성공에 의존한다는 것, 자신은 이윤을 얻기 위한 수단일 뿐이지 감정적인 수준에서 늘 갈망하는 바와는 달리 결코 그 자체로 목적일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결국 노동자는 늘 불안하게 살아갈 수밖에 없다.

(중략)

일이 행복을 가져다줄 것이라는 기대를 하지 않는 쪽이 일을 견디는 데 도움이 된다는 사실을 기억해두는 것이 좋겠다. 그래야 우리의 슬픔을 그나마 다독일 수 있을 테니까.-82쪽

어쩌면 불가피한 일이겠지만, 나는 데즈먼드 모리스(<털없는 원숭이> <인간 동물원> 등의 저자)라는 안경을 쓰고 동물원을 나오게 된다. 새러한테 저녁을 먹자고 전화하는 행위에서도 이전의 순수함을 회복할 수 없다. 그것은 인간 종의 짝짓기 의식의 일부일 뿐이다. 야마가 가을밤에 서로 이상한 휘파람 소리를 내면서 하는 일과 근본적으로 다르지 않다.
그러나 사람의 기괴한 짓들이 기본적으로 단순한 동물적 욕구-먹이, 서식지, 자신의 유전자를 가진 후손의 생산 등을 향한 욕구-의 복잡한 표현일 뿐이라고 보게 되면 마음이 편해지기도 한다. 이러다 레전드 파크 동물원의 1년 자유입장권을 끊을지도 모르겠다.-92쪽

'무엇을 먹고 마실지를 생각하기보다는 누구와 먹고 마실 것인가를 신중하게 고려해야 한다. 왜냐하면 친구 없이 식사하는 것은 사자나 늑대의 삶이기 때문이다.'-에피쿠로스

; 예전에는 이렇게 단순하게 사고하기도 했던 모양이다.^^-96쪽

부르주아라는 말은 부정적인 함의가 가득해 보인다. 이 말은 순응, 상상력 부족, 경직, 현학, 속물근성을 암시하는 것 같다. 그러나 호흐의 세계에서 부르주아는 소박하지만 매력적인 옷을 입고, 너무 천박하지도 않고 또 너무 허세를 부리지도 않고, 자식들과 자연스러운 관계를 맺고, 방탕한 상태로 빠지지 않으면서도 감각적 기쁨들을 인정한다.

; 감각적인 이해에 기댄 주관(뭐 어쨋든..)-116쪽

모든 독자는 자기 자신의 독자다. 책이란 그것이 없었다면 독자가 결코 자신에게서 경험하지 못했을 무언가를 분별해낼 수 있도록, 작가가 제공하는 일종의 광학 기구일 뿐이다. 따라서 책이 말하는 바를 독자가 자기 자신 속에서 깨달을 때, 그 책은 진실하다고 입증된다.-12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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