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영혼이 따뜻했던 날들
포리스트 카터 지음, 조경숙 옮김 / 아름드리미디어 / 200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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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이 책의 국내 초판 발행은 1996년의 일이다.(미국에서의 초판 발행은 1977년) 국내 출간 이후 지금도 베스트셀러에 항상 랭크되어 있는 책이다.(그러한 책들 몇 권을 기억나는 대로 읊조려보면, [상실의 시대](하루키, 문학사상), [목적이 이끄는 삶](신앙 관련), [모모](이 책은 드라마 덕에 최근에 다시 인기가 있는 책), 그리고 [누가 내 머리에 똥 쌌어?], [사과가 쿵], [강아지똥] 등등의 (자녀교육용) 유아그림책... [내 영혼이 따뜻했던 날들]이라는 작품은 내 짐작으로는 앞으로 꽤 오랜 시간이 지나도 꾸준히 지금의 관심이 유지될 것으로 보인다. 분명 그럴 것이고, 좀더 적극적으로는(^^) 그래야 할 책이다.

기억하시는지, 다음 문장...

'인디언은 우의의 표시로 손바닥을 펴서 들어올려 보인다. 아무 무기도 갖고 있지 않다는 뜻이다. 할아버지의 눈에는 충분히 이치에 맞는 이 행위가 백인들에게는 우스꽝스럽게 비치곤 했다. 백인들은 악수로 같은 뜻을 표현하지만, 악수라는 것은 감칠 듯이 다정한 말을 입에 올리면서도 친구라고 하는 상대가 혹시라도 소매 속에 총을 숨기고 있을까봐 그것을 떨어뜨리기 위해 흔들어대는 행위라는 게 할아버지의 주장이셨다. 할아버지는 악수를 좋아하지 않는다. 일단 친구라고 생각한 상대를 의심하며 소매에서 뭔가를 떨어뜨리려는 사람이 좋게 보일 리 없었던 것이다.'(194)

 

어디 이뿐인가? 장면장면마다 세상과 사물, 그리고 관계에 대해 (할아버지 할머니로부터 손자에게 전승되는) 그 놀라운 지혜들이란...

 

'그런 사람들은 살아 있어도 죽은 사람이 되고 만다. 할머니는 어디서나 쉽게 죽은 사람들을 찾아낼 수 있다고 하셨다. 여자를 봐도 더러운 것만 찾아내는 사람, 다른 사람들에게서 나쁜 것만 찾아내는 사람, 나무를 봐도 아름답다고 여기지 않고 목재와 돈덩어리로만 보는 사람, 이런 사람들이 죽은 사람들이었다. 할머니 말씀에 따르면 그런 사람들은 걸어다니는 죽은 사람들이었다.

영혼의 마음은 근육과 비슷해서 쓰면 쓸수록 더 커지고 강해진다. 마음을 더 크고 튼튼하게 가꿀 수 있는 비결은 오직 한 가지, 상대를 이해하는 데 마음을 쓰는 것뿐이다.'(102)

 

아메리카 대륙에서 마야문명이나 인디오문명은 문명개화의 속도가 달라 결국 식민지화된 제국주의의 침탈이 가장 명징하게 드러나는 사례이다. 20세기에 들어서는 이제 자본주의 속성까지 말짱하게 드러나 테이크아웃 종이컵에 갇혀버린 '체 게바라'가 있었고, 지금도 정글에서 전 세계로 평화의 이메일을 날리고 있는 멕시코의 '마르코스'도 있다. 주변에 우리의 의식조차 강제하고 있는 이러한 '자본의 속도'를 지금 어떻게 이해해야 할 것인가?

 

혈통의 동질성이나 약자에 대한 동정이 아니라 그들을 존경하고, 우러를 수 있는 것은 그들이 이룬 문화적 성취 또는 세계관이 아닐까? 그러한 인디언의 세계관(자연관) 등이 생생히 체현된 서술로 이어지는 이 책은 그 자체로 완벽한 문화재는 아닐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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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인 2006-05-06 20: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뜬금없이 죄송한 이야기지만 저자에 관한 참혹한 진실입니다. 한 번 읽어보시길.

http://www.aladdin.co.kr/blog/mypaper/860902


달빛푸른고개 2006-05-08 13: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 자료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작품과 그 작가의 생애를 등치시킬 수는 없겠지만, 일단 '자전적 요소'가 허구일 가능성은 작품의 감동을 반감시키기에 충분하네요. 특히 '논픽션' 부제가 삭제되는 과정이 있다는 내용은 미국에서도 일정한 '평가작업'이 있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도 있겠구요. 좋은 글 감사합니다.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화장실과 가장 멋진 별밤 - 떠나라, 자전거 타고 지구 한바퀴 2
이시다 유스케 지음, 이성현 옮김 / 홍익 / 200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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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나라, 자전거 타고 지구 한바퀴'(2)... 1권인 <가보기 전엔 죽지 마라>의 후속편이라서 연속된 기록이리라는 생각에 한꺼번에 구입했는데...^^; 1권을 다 읽다보니 저자인 이시다 유스케의 자전거 여정이, 중국을 거쳐(한국에 대한 언급도 없이) 끝난 이후인지라, '또 떠났나?' 하는 생각에 짚어들었는데... 1권의 여행기록 가운데, 다시 상기할 만한 내용을 정리해놓은 것이다. 예컨대 그 여행의 에피소드 가운데 '가장 무서운 곳', '기상천외한 것들', '최고의 음식' 등... (일어 원서의 제목도 똑같은 것을 보니, 재탕이 홍익출판사의 문제는 아닌 것 같기도...^^)

'그들(시리아 국민들)의 미소와 내 모습을 비교해 보면, 나는 너무 속세에 닳아 버린 게 아닌가 하는 기분이 든다. 혹시 그러한 편견들은 미국을 비롯한 강대국들이 세계 정복을 위한 술책의 하나로 억지로 만들어 놓은 이미지가 아닐까?'(238)

여행은 사람을 지혜롭게 만든다. 이러한 일본 젊은이의 자문에 대비해볼 때 우리는 얼마나 자유로운가?

그나저나 여행기를 읽고는 왠지 들썩거리는 마음은 언제나 마찬가지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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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보기 전엔 죽지마라 - 떠나라, 자전거 타고 지구 한바퀴 1
이시다 유스케 지음, 이성현 옮김 / 홍익 / 200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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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이 너무 강렬하다.

읽고 난 후에는 '출판사의 상업적인 판단이 과잉작용했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 강렬함에 비해 내용은 기대보다 떨어진다.^^

그러나 서른 이전에 마음을 만들어, 7년간이나 전세계를 자전거로 일주하는 저자의 집념은 높이 살 만하다. 중간에 제 고향으로 돌아가 충전하는 시간도 없이, 오직 자전거 하나로 전 세계를 일주하는 진취성은 옷깃을 여미게 한다.

그러나 담아야 할 내용이 너무 벅찼기 때문에 원고나 전체적인 편집에서 독자가 따라가며 '간접경험'을 하기에는 친절하지 않다.(20대의 세계일주기에 너무 많은 것을 바라는 건 아닌지 자문해보기도..) 여행과 관련한 일차적인 정보보다는 그러한 여로를 만들어가는 청춘의 집념을 느껴보는 기억이었다.

'인간의 삶이 그럴 것이다. 인간의 삶의 행로를 여행에 비교한다면 그렇게 눈 깜짝할 사이일 것이다. 여행도 그렇듯이 지금 있는 곳에서 최선을 다하며 행복을 찾는 것, 그것이 진짜 인생다운 인생이라고 생각했다.'(269)

주제가 있는 여행이라면 아직 출간되지 않았지만, 한겨레신문에 연재되었던 홍은택의 <아메리카 자전거 횡단>이나 그밖의 많은 책들이 있을 것 같다.

일본에서는 전문적인 필자가 아닌 경우 대부분 글의 깊이가 가볍다는 '허튼' 생각을 확인한 경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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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여행가방 - 박완서 기행산문집
박완서 지음 / 실천문학사 / 200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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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대적으로 등단이 늦었던 작가, 그러나 그 '나이듬'이 어떤 의미가 있을까? 외려 마당에 놓인 절구에 빗물이 고이듯 그 늦음은 아무렇지도 않듯이 깊이있는 작품활동을 일생동안 계속해오신 박선생.

작품 중에 보이는 컷 하나. 너무도 가벼운 발걸음으로 마치 생을 건너듯 보이는 모습. 그 발걸음이 오래 지속되기를 바란다.

'음력 설까지 쇠었으니 이제 확실하게 한 살을 더 먹었다. 이 나이까지 건강하게 살았으니 장수의 복은 충분히 누렸다고 생각한다. 재물에 대한 미련은 없지만 내가 쓰고 살던 집과 가재도구를 고스란히 두고 떠날 생각을 하면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나의 최후의 집은 내 인생의 마지막 여행가방이 아닐까. 내가 끼고 살던 물건들은 남 보기에는 하찮은 것들이다. 구식의 낡은 생활필수품 아니면 왜 이런 것들을 끼고 살았는지 남들은 이해할 수 없는 나만의 추억이 어린 물건들이다. 나에게만 중요했던 것은, 나의 소멸과 동시에 남은 가족들에게 처치 곤란한 짐만 될 것이다. 될 수 있으면 단순 소박하게 사느라 애썼지만 내가 남길 내 인생의 남루한 여행가방을 생각하면 내 자식들의 입장이 되어 골머리가 아파진다.

그러나 내가 정말로 두려워해야 할 것은 이 육신이란 여행가방 안에 깃들었던 내 영혼을, 절대로 기만하 수 없는 엄정한 시선, 숨을 곳 없는 밝음 앞에 드러내는 순간이 아닐까. 가장 두려워해야 할 것을 별로 두려워하지 않는 것은, 내가 일생 끌고 온 이 남루한 여행가방을 열 분이 주님이기 때문일 것이다. 주님 앞에서는 허세를 부릴 필요도 없고 눈가림도 안 통할 테니 도리어 걱정이 안 된다. 걱정이란 요리조리 빠져나갈 구멍을 궁리할 때 생기는 법이다. 이게 저의 전부입니다. 나를 숨겨준 여행가방을 미련 없이 버리고 나의 전체를 온전히 드러낼 때, 그분은 혹시 이렇게 나를 위로해주시지 않을까. 오냐, 그래도 잘 살아냈다. 이제 편히 쉬거라.'(잃어버린 여행가방, 63)

 

그래도 잘 살아냈다....

 

얼마전 쉰 살이 넘은 따님이 산문집을 냈다는 소식이 있다. 박선생의 삶은 내 기억 속엔, 고등학교때 읽었던 [꼴찌에게 보내는 갈채](당시 정우사)에서 보여주는, 세상에 대한 따뜻한 시선과 삶에 대한 지혜가 줄곧 유지되고 있다.

 

장수의 복은 충분히 누렸으나... 이 세상을 위해 그간 채워왔던 지혜를 더 나누어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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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은 내 운명 - 번역이 좋아 번역가로 살아가는 6人6色
이종인 외 지음 / 즐거운상상 / 200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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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이 '창조'일 수 있을까'

내 입장에서는 분명이 답할 수 있다. 번역은 매우 창조적인 작업이라고.. 본문 가운데에서 인용하자면, 지금까지 축적되어온 출판물의 3/4이 해외번역물이라고 한다. 이 비중이 적절한지에 대해서는 판단이 다르겠지만, 해외의 지식과 정보, 문화적 성과물들을 유입하는 것은 바람직하다고 본다. 그 비중치를 감안하면 번역의 중요성은 그 무게감이 더욱 커진다. 그런데 그 '축적물' 중에는 상당한 오역이 있을 것이라는 짐작은 그리 어렵지 않다. 초기 일어의 중역본들이 우리에게 얼마나 많은가. 문학작품이건 사회과학 이론서이건, 아니면 정밀을 요하는 과학서이건... 아직도 또래나 선배들의 대부분이 '맑스'를 '마르크스'로 발음하는.. 마오쩌뚱이나 호치민을 그 이름으로 부른 건 언제부터인가. 모택동, 호지명.. 단지 명칭뿐만 아니라 그들의 말과 글 속에 나타나는 문화의 '생동감'을 제대로 '변환하여 전달하는' 번역가들의 역할을 너무도 크다고 할 수 있다. 가끔 오역의 사례를 고발하여 문제의식을 환기시키는 서적들이 출간된 적이 있는데, 그러한 '학습서'보다 실제 현장에서 그 일을 담당하고 있는 분들의 솔직한 서술들이 더욱 친근하게 느껴져 어느날 새벽, 단숨에 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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