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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아침 제가 받아보는 메일 가운데 오늘 내용이 푸근해서 옮겨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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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근하려다가 지천댁 마당에서 나무 패는 소리가 들려 들어섰다.

"아, 하루 종일 어디에 있었소?"
"잉, 노인정에. 글고 말씨... 그 거시기 리모콘이... 아니제 그 거시기..."
"핸드폰?"
"잉, 핸드폰. 그거이 말씨, 손자가 만져가꼬 거시기가 나들 안혀."
"진동으로 했다고?"
"잉, 진동. 거시기를 좀 거시기 해 줄란가?"
"소리 들리게 바꿔 달라고?"
"글제, 당췌 전화가 오는지 알 수가 있남."
"그거 힘든 기술인데..."
"아, 좀 해 줘!"
"줘 보쇼."

진동 모드를 벨로 바꾸고 내 전화기에 입력된 지천댁 번호로
확인 전화를 한번 한다. 잠시 후 신호가 울리고 전화벨이 울린다.

"하이고, 요로코롬 간단한 거이..."
"간단하다니요. 이게 얼마나 힘든 기술인데!"
"염병허고 자빠졌네! 그거이 뭐가 힘들다고!"
"그래요. 앞으로 김치냉장고 안 열리고
테레비 리모콘 안되는거 나는 모르는 일이요!"
"호랭이 물가것네!"

도끼로 쪼갠 나무를 아궁이로 던져 넣는다.

"내일이 보름이요."
"그랴. 나물이라도 해 먹어야제. 혼자 살아도 그런 거이 다 챙겨 먹어야
사람 구실헌당께. 워쨔, 내일 나물해서 점심밥이라도 헐란가?"
"하이고 저희도 준비하네요. 엄니나 빠지니 말고 드세요."
"이장이 달집 태울 준비나 허는지 몰것네. 내일 보세."
"그래요.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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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 이러한 내용의 글과 지리산 풍경을 담은 사진으로 하루를 시작하실 분들은 www.jirisan.com을 방문해보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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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

 

깊은 산 골짜기에 막 얼어붙은 폭포의 숨결

내년 봄이 올 때까지 거기 있어라

다른 입김이 와서 그대를 녹여줄 때까지

 

 

- <무늬> 문학과지성사. 1994

(옛 기억 하나) 그때 10월에 왜 이 시집을 사게 되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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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어회와 깻잎

 

군산 째보선창 선술집에서 막걸리 한 주전자 시켰더니 병어회가 안주로 나왔다

그 꼬순 것을 깻잎에 싸서 먹으려는데 주모가 손사래치며 달려왔다

병어회 먹을 때는 꼭 깻잎을 뒤집어 싸먹어야 한다고, 그래야 입 안이 까끌거리지 않는다고

 

 

 

; <간절하게 참 철없이> 창비.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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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나무집 2008-02-13 14: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남편도 꼭 깻잎 뒤집어서 사먹는데...
안도현, 아무래도 이 시집 사 봐야 할까 봐요.
 

마하타르

 

제가 사는 석남리는

낮은 지붕과 정다운 굴뚝들이 이마를 마주대는

서산에서도 설렁설렁 헐거운 동네인데

서산중학교 네거리 못미처 대웅분식이라는 곳도

그중 소박하고 정겨운 술집이에요

닭발에다 순대도 구수하고

배추김치에 칼국수 맛도 심심삼삼,

얼큰한 등뼈해장국에 막걸리 몇 통 놓고 부담 없이

쌈박하게 취할 수 있는 곳인데

어쩌다 영업 일찍 끝나면

두 양반이 소주 한 병 놓고 권커니 잣커니

아름다운 그림을 보여주는 곳이지요

대웅분식 바깥양반 김명수 씨

오늘 낮술에 대취해 느닷없이

지나가던 제 손 잡고 하소연합니다

나이 열일곱에 머슴살이부터 시작해

이날 이때껏 목수 미쟁이 연탄장수

안할말로 안 해본 일 없이 살다가

마지막으로 선택한 직업이 환경 미화원인데

더럽고 냄새나는 시절들

세상의 온갖 쓰레기 모두 치우면서

좋은 세상 열리는 거 보고 죽어야제

그 흔한 신세타령도 없이

꿍꿍 일밖에 모르고 살아온 분인데

가장 큰 고민이 면허증이래요

알밤 같은 아들 둘 딸 하나 낳아 잘 키우고

일자무식 마누라 손끝 하나는 맵고 당차

분식집 돈벌이도 쏠쏠하기만 한데

나이 오십 줄에 어쩐지 옆구리가 텅 빈 듯 허전하시대요

세상의 온갖 기계란 기계는 다 만지고

몸으로 때우는 것은 누구도 부러워할 것 없이 해치우는데

그놈의 운전면허 시험에는 서른여섯 번이나 떨어졌다나 봐요

이제 땅도 사고 집도 있어

찌들은 주름살 골짜기에 햇빛 들고 봄눈 녹아

어쩌다 가족끼리 자장면이래도 먹으러 갈라치면

몇 행보씩 오토바이 신세를 진대요

모처럼 쉬는 날이면 고생한 마누라 옆에 태우고

아들딸 앞세워 벚꽃 구경, 단풍 구경 시키고

아 바람 아래 포구에라도 나가

산 낙지에 소주 한잔 재미난 이야기 파도에다 띄우고 싶기도 한데

그놈의 면허증이 늘 문제라고

힘없는 내 손을 잡고 마구 흔드는 것이에요

배우지 못한 놈은 자가용도 탈 수 없냐고

배우지 못한 놈은 평생 노가다하고

배우지 못한 놈은 평생 쓰레기나 치우고

배우지 못한 놈은 평생 연탄이나 배달하라는 법이 어디 있겠냐고

한글을 읽을 줄도 모르는 놈은 무슨 수로 고개 떨구면서

땅을 치며 풀을 뜯는 겁니다

죄 없는 흙을 쥐어뜯는 겁니다

그 위로 달구똥 같은 눈물이 번지기 시작하는데요

 

 

- <크나큰 침묵> 솔. 19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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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여우 2008-02-12 12: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전에 살던 동네가 저 지역이었습니다.
대웅분식 칼국수는 한겨울 얼음이 꽝꽝 얼때 먹으면 뜨거운 국물이 칼칼하니 시원합니다.
시에서 언급한 것처럼 배추 겉절이도 짱이고
두어평 남짓한 식당방에 엉덩이를 지지고 앉아 옆자리의 아저씨들 얘기 들음 재밌죠.
기억의 저편에서 사라져가던 한자락을 떠올릴 수 있는 시를 만났습니다.
지금은 '석남리'가 아니고 '석남동'이라 불리죠.
유용주 시인은 여적 저 동네에 살고 있는지도 궁금하네요.

달빛푸른고개 2008-02-12 16: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옮겨본 시에 직접 가보신 경험이 있으셨군요.
언제 한번 가보고 싶군요. 김명수씨가 계실 때...
어쩌다 들러본 서산은 그 인상에 군산과 매우 비슷하더군요.
어쩌면 구룡포나 (예전) 삼천포, 벌교 등도 비슷하겠지만요.

유용주 시인은 동문동에 여적 사시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달 1

 

한나절 바지락을 캐고 난 갯벌은

먼데 막소줏집 불빛 하나를 남겨두고

말이 없다

 

어둠이 노을을 삼키고

웅크린 섬들을 지우는 동안

철책이 빗장을 걸고 이빨을 세운다

 

한점 비린내도 없이

저렇게 바람으로 텅 비어버린

갯벌이 나는 두렵다

 

물이랑이

칼등을 세워

비구름 몰려오는 수평선으로 돌아간다

 

사나운 바람이 엉겨붙어 아우성치는

철책 위로

피를 머금은 달이, 솟는다

 

 

- <지금도 그 별은 눈뜨는가>. 창비. 19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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