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쾌한 혁명을 작당하는 공동체 가이드북 - 행복은 타인으로부터 온다!
세실 앤드류스 지음, 강정임 옮김 / 한빛비즈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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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드워드 윌슨의 지구 정복자’, 요차이 벤클러의 펭귄과 리바이어던’, 스티븐 핑커의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 리처드 윌킨슨과 케이트 피킷의 평등이 답이다등을 언급하면서 왜 공동체인가를 설명합니다.

 

그리고 어떻게 공동체를 이루어 갈 것인가를 아주 간단하게 이야기합니다. 각자의 삶을 나누고, 사회에 대해 비판하며, 함께 해야 할 일을 논의하는 것이죠. , 혁명은 거실에서(living room revolution)라는 원래 제목이 암시하듯, 즐겁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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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규모 토론은 효과가 없다. 매번 나이 많은 사람들이 일어나 큰 소리로 설교할 뿐이다. 사람들이 상호작용하는 행사가 아니라면 어떤 행사도 계획하지 마라. 일대일로 대화한다면 아무도 모임에서 떠나지 않을 것이다.

 

차와 와인을 한 잔씩 들고 거실에 모여 세가지 질문에 대해 대화를 주고받는 것이다. 첫번째 질문은 참석자들에게 자신의 경험, 즉 개인적인 이야기를 말해달라고 요청하는 것이다. 두번째 질문은 그들이 속한 문화를 비판적으로 생각해보라고 요청하는 것이다. 세번째 질문은 토론을 유도하여 집단적 행동은 물론 개인적인 실행방안까지 만들어 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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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어디에도 내집이 있다 나를 찾아 떠나는 여행 2
조연현 엮음 / 한겨레출판 / 200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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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의 매헌세스/슈마허 대학/우드브룩/핀드혼/브루더호프’, 프랑스의 플럼빌리지/떼제’, 독일의 제그’, 캐나다의 아젠타’, 미국의 트윈오스크’, 스리랑카의 사르보다야’, 인도의 오로빌을 한국의 정토회/예수원/쉴터/정농회회원들이 찾아간 탐방기를 대표저자 조현님이 엮은 책입니다조현님의 최근작 우린 다르게 살기로 했다와 함께 읽으면 좋습니다


 야생초 편지의 저자 황대권님이 쓴 부분이 눈에 띕니다.

한평짜리 콘크리트 방에 앉아서 늘 공동체를 꿈꾸어 왔다. 그러나 한번도 공동체를 보거나 그렇게 살고 있는 사람을 만나 본 일은 없었다. 그저 책을 읽고 머릿속에 그렸다가 지우고 그렸다가는 지우고. 어설프게마나 그 안에서 공동체를 시도해보기도 하였다. 그러나 외압과 이기심으로 인하여 너무도 쉽게 허물어져 갔다. 드디어 10년만에 세상에 나왔다. 몰라보게 커진 도시는 거대한 소비기계였고, 사람들은 철저한 개인일 뿐이었다. 도무지 적응할 수 없었다. 산속에 들어가 농사를 지었다. 자연이 있어서 좋았으나 생계가 되지 않았다. 무엇보다도 외로워서 견딜 수가 없었다. 그 오랜 세월의 독수공방이 모자라서 또 입산수도냐며 비아냥거리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그랬다. 여전히 해답은 공동체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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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아침 30, 저년 15, 일요일에는 한시간의 워십이라 부르는 종교 모임을 갖는데 그 내용이 매우 독특하다. 참석자들이 침묵한 채 둥그렇게 그냥 앉아 있다가 시간이 되면 옆 사람과 악수하며 인사 나누는 게 전부다. 예배라고 굳이 이름 붙일 수 없는 것이, 여느 교회들처럼 지도하고 설교하는 목사가 없고 자원봉사직인 인턴들이 돌아가며 문 앞에서 안내만 한다. 참가자들의 태도도 눈을 뜨고 멀뚱멀뚱 앉아 있는 사람, 눈 감고 있는 사람 제각각이다. 가끔, 정말 어쩌다 워십 중에 일어나 몇 마디 하는 사람이 있는데 이는 자기의 영적 체험을 나누는 증언을 위해서다. 가끔 퀘이커 교단 전체에 중요한 제안을 하는 사람도 있다고 하는데 이러한 제안은 모임에서 토론과 대화를 통해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지를 결정한다. (영국 우드브룩)

 

핀드혼 공동체에서 신은 사랑이다라고 할 때 그 신은 기독교의 신도, 이슬람의 신도, 힌두의 신도 아니다. 세상의 그 어떤 신도 아니지만, 모든 신일 수도 있다. 지금까지의 신은 종교라는 조직을 통하여 겉으로는 사랑과 평화의 메시지를 전하면서도 실상은 조직의 논리에 얽매여 세상을 분열과 경쟁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던 것이다. 그들은 신을 세속의 잣대로 조직화하는 것을 거부한다. (스코틀랜드 핀드혼)

 

이들은 문제가 있다고 생각되는 상대에게 직접 솔직히 얘기하는 것을 사랑으로 여긴다.

그들은 예배의식보다 삶 그대로가 주님께 드리는 예배가 되어야 한다고 굳게 믿고 있기 때문이다. (영국 브루더호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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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린 다르게 살기로 했다 - 혼자는 외롭고 함께는 괴로운 사람들을 위한 마을공동체 탐사기
조현 지음 / 휴(休)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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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외 공동체들을 찾아가서 쓴 책들이 여러권 있습니다. 그 중 가장 대표적인 것이 바로 이 책일 것입니다. 저자 조현은 한겨레신문 종교전문기자로 2002년에 세계 어디에도 내 집이 있다라는 국외 공동체 탐방기를 엮어낸 적이 있습니다.

 

우린 다르게 살기로 했다는 국내외 마을공동체 탐사기입니다. ‘파주시 공방골목, 광주시 신흥마을, 마포구 소행주(소통이 있어 행복한 주택), 강북구/홍천 밝은누리공동체, 도봉구 은혜공동체, 남원 산내면, 보령시 천북면, 홍성군 홍동면, 보은군 선애빌, 성남시 논골, 화성시 더불어숲동산교회, 합천군 오두막공동체, 산청군 민들레공동체, 단양군 산 위의 마을, 인천시 우동사(우리동네사람들), 양산 성모울타리공동체, 태국 아속, 인도 오로빌, 미국 브루더호프, 일본 야마기시/애즈원등을 저자가 직접 찾아가 쓴 체험기입니다.

 

마침 포천의 한 공동체 학교에서도 이 책을 필독서로 지정했다고 하는데, 읽고 이야기하고 쓰면서 우리 공동체의 미래를 만들어 가는데 밑거름 삼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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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짓기 교사인 구자옥 선생님과 학생 8명이 집짓기 수업을 하고 있었다. 이들은 일주일에 한차례씩 1년간 수업하면서 생활관 한 동을 뚝딱 지어낸다. 자신이 살 집 정도는 직접 지을 수 있도록 교육한다.

집짓기만이 아니다. 이곳에선 대부분의 먹거리를 직접 농사를 지어 자급자족한다. 선생님과 학생들이 하늘땅살이라는 과목을 함께 한다. 그것도 강의실 수업이 아니라 직접 논밭에서 작물을 가꾸는 실제적인 공부다. (밝은누리 공동체)

 

처음 땅을 구입할 때는 일단 개인 명의로 등기를 했지만 결국 공동법인 유한회사를 설립해 소유권은 법인이 갖도록 했다. 그러나 이상이 한순간에 실현되긴 쉽지 않았다. 많이 낸 사람과 적게 낸 사람 간의 갈등도 없지 않았고 결국 초기에 많은 기여를 한 입주자가 채 1년이 안 돼 나가겠다면서 자신의 돈을 돌려줄 것을 요구했다. 그 때는 소유권이 법인 명의로 바뀌기 전이라 이 일로 공동체가 상당한 위기에 처하기도 했다. (선애빌 공동체)

 

공동체 가장자리엔 드럼과 기타, 북 등을 갖춘 야외 음악실이 있었다. 아이들은 자주 그곳에 모여 신기를 발산했다. 한국의 많은 아이가 새장에 갖힌 새라면, 이들은 스스로 살아가고 즐기는 법을 배우는 숲속의 새들 같았다.

아속에서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자기가 먹은 식기는 직접 씻는 것처럼 손님들도 그래야 한다. (태국 아속 공동체)

 

한국의 개신교인과 달리 포도주나 맥주를 자유롭게 즐기는 모습도 인상 깊었다. 주일에도 주기도문 암송과 찬송과 설교 등으로 이어지는 예배 틀도 없었다. 노래는 많이 불렀지만, 설교 같은 일방적인 전달은 찾아볼 수 없었다. 모든 공동체원이 자신의 신상이나 생각을 나눴다.

이토록 아름다운 공동체에 그런 독재와 갈등이 있었다는 것도 충격이었지만, 가족의 비사를 세상에 남김없이 공개한 자신감이 놀라웠다. 더욱 놀라운 것은 하인리히가 수십년간 자신을 죽이려한 독재자에게 협조한 사람들을 끌어안고 섬기며, 자기 아버지가 꿈꿨던 오늘날 브루더호프의 하모니를 이루어갔다는 사실이었다.

브루더호프엔 상대에게 할 말이 있을 때는 뒷담화를 하지 말고 본인에게 직접 솔직하게 말하라는 불문율이 있다. 그 지독한 흑역사의 갈등을 거치며 배운 지혜일 것이다.

늘 말발이 센 사람들만 말하는 바깥세상과는 다른 회의가 이어졌다. 누구든 일어나서 말했고, 토의는 길었고, 진지했다. 다시 흑역사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나와 다른 타인의 생각도 알기 위해서였다. 하모니란 억누르는 것이 아니라 솔직하게 표현할 때 열린다. (미국 브루더호프 공동체)

 

구태에 빠진 야마기시를 비난하며 나간 사람들이 인근 스즈카에 애즈원공동체를 따로 만들었다. 그러나 오히려 야마기시에선 자신을 버리고 떠난 이들에 대한 배신감을 토로하거나 비판하기보다는 야마기시즘을 실현하는 애즈원 같은 곳이 곳곳에 생기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했다. 이들은 초기 경제적 자립을 고심하는 애즈원이 만든 비료 공장의 비료를 사주어 자립을 돕기도 했다. 한때 완전히 퇴락할 것으로 보였던 야마기시공동체는 새로운 활력을 찾으며, 성숙한 여유와 평화의 공기가 흐르고 있었다. (일본 야마기시 공동체)

 

권력이란 처음에 그간 훌륭하다거나 특출하다는 데서부터 출발해요. 보통 사회에선 권력자가 있는 게 당연하지요. 지도자로서 강요하고 질책하는 그에게 맞춰 살아가는 게 당연하다고 여기는데, 사이엔즈 연구소에서는 사람이란, 사회란 어떤 것인지 제로에서부터 연구합니다. (일본 에즈원 공동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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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생 그 아름다운 공존
톰 웨이크퍼드 지음, 전방욱 옮김 / 해나무 / 200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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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주 목요일 서울 중계동 은행사거리에서 집회가 열립니다. 한 고등학교의 내부 비리를 고발한 교사를 징계한 사건에 항의하는 집회입니다. 의로운 일을 하다가 어려움에 놓인 사람을 돕는 것은 하늘의 뜻이라 생각하기 때문에 목요집회를 성수(?)하고자 노력했습니다.

 

나무들은 햇빛을 받기 위해 서로 경쟁적으로 키를 키우고 잎을 늘립니다. 그러나 땅 밑에선 뿌리들끼리 서로 협력하면서 양분을 주고 받는다고 합니다. 잎들의 경쟁으로 작은 나무는 죽어가지만 뿌리들의 협력으로 살려내죠.

 

의로운 사람이 외롭지 않도록 집회에 참여하는 건 우리 사회라는 나무의 뿌리 역할을 하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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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대 초 오레곤 주립대학의 균류학자 수전 시머드가 이끄는 연구진은 실제 숲 생태계에서 일련의 야외실험을 하였다. 균근을 통한 나무 사이의 자원 전달을 측정하기 위해서였다. 연구진은 특정 종의 균류로 이루어진 균근이 동일 종의 나무들뿐만 아니라 다른 종의 나무들까지 서로 연결시킨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이들은 자작나무와 전나무를 연결시켜주는 네트워크를 관찰한 결과 이 나무들이 열 종류의 균류 공생체를 공유한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놀랍게도 햇볕을 받은 자작나무는 균근의 연결 네트워크를 통해서 그늘진 곳의 전나무에 당을 공급하는 것 같았다. 시머드의 연구진은 이 숲의 그물망을 탐험하면서 역동적인 지하 상호 의존성의 새로운 원리를 발견했다. 빛을 찾으려고 애쓰는 어린 묘목이 대부분을 이루는 그늘진 곳의 식물들은 숲의 지붕 꼭대기에서 햇빛을 받고 있는 식물들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지하에서는 재분배 과정이 이루어지는 것으로 보인다. 사물은 종 내에서 그리고 종 사이에서 분배된다. 없는 자는 받을 것이며, 많은 자는 앗길 것이다. (톰 웨이크퍼드 - 공생, 그 아름다운 공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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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자와 혁명가 - 영성의 두 갈래 길
이도영 지음 / 새물결플러스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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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자적 영성과 혁명가적 영성의 조화를 꿈꾸는 책입니다. 다만 전체 300여쪽 가운데 성자 쪽에 200여쪽을 쓰다보니 다소 아쉽습니다. 그러나 부족한 혁명가 쪽은 저자의 전작인 페어 처치를 읽어서 보충하면 될 듯합니다.

 

성자 쪽은 다른 목회자의 글에서 충분히 읽을 수 있으니, 혁명가 쪽에 대해서 살피자면 세월호, 미투, 장애, 난민 등현재 우리 사회의 현실에 대한 목회자의 솔직한 생각이 잘 드러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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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의 수용소에서 가장 빨리 죽어간 사람들은 개인주의자들이다. 반면에 죽음의 수용소 안에서 끝까지 살아남을 뿐만 아니라 유일하게 나치에 저항한 사람들은 정치범들이다. 그들에게는 애초부터 나치의 정체를 꿰뚫을 수 있는 비판의식깨어 있는 의식이 있었고, 그들은 저항을 위해 조직적 연대를 할 줄 아는 사람들이었다. 그렇기에 끝까지 잘 살아남았고 유일하게 저항하는 세력이 되었다. 우리는 스스로에게 물어야 한다. 프로테스탄트(저항자)답게 저항하려 하는가저항을 위해 진정한 공동체를 세우고 조직적 연대를 추구하는가? 혁명가적 영성을 갖추고 있는가?

 

교회는 페미니즘을 반대하는 세력 중 하나다. 하지만 교회야말로 페미니즘이 필요한 곳이다. 교회야말로 여성 차별이 가장 극심하게 일어나는 곳이기 때문이다. 그동안 교회는 순종적인 마리아와 반역적인 하와라는 이미지를 통해 여성성을 규정해왔다. 이것이야말로 여성 혐오의 전형이다. 교회는 남녀가 존재는 평등하나 기능에는 차별이 있다는 거짓 논리를 주장하며 성경에 나와 있는 여자는 교회에서 잠잠하라라는 말을 문자적으로 적용해 왔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대부분의 교단에서 여자는 장로와 목사가 될 수 없었다. 지금까지도 그런 교단들이 있다. 권사들은 교회의 힘든 일을 도맡아 하면서도 중직을 맡을 수 없었고 목사들의 행사 때면 한복입고 동원되는 몸종이었다. 기독교에서 여자는 남자로 하여금 원죄를 짓게 만든 요물이다. 여성은 언제나 불안정하고 감정적이며 죄에 무력한 문제 덩어리다. 여성은 남성의 갈비뼈에서 나온 부차적 존재이고 결핍된 존재이며 종속적 존재다. 남성은 여성의 머리다. 여성은 남성에게 사랑받아야 할 존재이며 남성에게 복종해야 한다. 그런 면에서 여성은 항상적으로 자기 비하의 상태에 빠져 살아왔다고 할 수 있다. 남성들은 그런 여성들에게 교만으로서의 죄를 깨달으라고 강제했다. 페미니즘의 맥락에서 보면 교만으로서의 죄는 가부장제 아래에 있는 남성 신학자들과 국가 종교에 의해 강조된 죄 개념이라고 할 수 있다. 그동안 교회는 가부장제를 거부하고 변혁하려는 여성에게 교만의 죄를 적용하여 순종을 강요해왔다. 하지만 여성에게는 자기 비하로서의 죄가 더 중요하다. 그들은 더 낮아질 필요가 없었다. 이미 낮아질 대로 낮아졌기 때문이다. 여성은 높아지려는 죄가 아니라 낮아지려는 죄와 싸워야 한다. 그들을 항상적으로 낮아지게 만드는 불의한 체제의 악을 깨닫고 사회적이고 구조적인 악과 싸워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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