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대천덕 신부가 말하는 토지와 경제정의
대천덕 지음, 전강수 외 옮김 / 홍성사 / 2003년 8월
평점 :
품절
헨리조지의 ‘진보와 빈곤’이 톨스토이의 ‘부활’을, 대천덕의 ‘토지와 경제 정의’를 낳았다
조지, 톨스토이, 대천덕 모두 기독교인이다.
기독교인이라면 성경(레위기 25:23)에 적혀 있든 땅은 신의 것이니 인간이 사고 팔 수 없는 것이라는 점을 알아야 한다.
이를 현대 사회에 적용하자면, 땅에 대한 세금만 물도록 하는 것, 즉 토지단일세의 실시이다.
<밑줄>
가난은 해결할 수 없는 문제라고 말하는 사람은 하나님을 모독하는 것이요 하나님을 거짓말쟁이라고 부르는 것과 같다는 사실을 헨리 조지는 일깨워 준다. 또 사도 요한은 우리에게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말하면서 그 형제를 사랑하지 않는 자는 거짓말쟁이라고 말한다. 사도 요한에 따르면, 자기 형제를 사랑한다고 말하면서 형제의 물질적 필요를 채워 주기 위한 어떠한 노력도 하지 않는 사람 또한 거짓말쟁이요 살인자이다 (요일 3:11~18, 4:20)
콘스탄틴 시대의 로마 제국의 지주들이 진정한 회개 없이 ‘회심’한 이래로 기독교회의 지도자들은 줄곧 예레미아 시대의 선지자 노릇과 제사장 노릇을 해 왔다. 즉, 구약의 토지법을 일상생활에 실제로 적용하거나 실현하는 일은 애써 무시하면서 그 법의 영적 해석에 대해서는 자기 편한 대로 말을 바꾸는 짓을 일삼아 왔던 것이다. 이러한 형태는 통상 교회가 토지법을 제정하거나 시행할 권한이 없다는 논리로 정당화되어 왔다.
하지만 AD 313년 관용령에 의해 교회는 집권 세력과 타협하였다. 더욱이 오늘날 민주주의 사회에서 유권자의 다수가 그리스도인이다. 교회는 더 이상 올바른 토지법을 통해 정의를 실행할 권한과 책임을 외면할 수 없다. 그런데도 교회는 콘스탄틴 시대에 분분했던 토지법 문제를 애써 무시하였다. 결국 교회는 지주들의 도구로 전락하고 말았다. 이슬람은 북아프리카와 중동에서 그리스도인 지주들이 토착민들을 착취한 데 대해 토착민들이 저항하는 가운데 발흥하였다. 오늘날 교회는 이 토지법 문제를 완전히 잊어버린 것 같다.
BC 200년, 즉 콘스탄틴 시대가 시작되기 500년 전, 로마가 카르타고를 정복했을 때 바알의 토지법이 많은 로마인들의 탐욕을 부추겼다. 바알의 토지법은 아합 시대에 이세벨의 친척들이 카르타고를 세운 이래 줄곧 카르타고의 지배원리였다. 포에니 전쟁에서 카르타고를 상대로 싸웠던 로마의 참전 병사들은 카르타고 제국의 영토였던 북아프리카의 토지를 하사받았다.
시간이 지나면서 로마의 구제도는 바알 제도로 대체되고, 이탈리아의 불굴의 자영농들은 새로운 지주 계급의 땅에서 농노로 전락하였다. “벽돌로 지어졌던 로마를 대리석으로 바꾸어 놓은”, 바로 그 바알 제도로 인해 로마 제국은 쇠퇴를 거듭해 끝내는 멸망하고 말았다. 하지만 교회는 그 제도를 개혁할 마음이 없었고 오히려 지주들의 지배 아래 놓이는 꼴이 되고 말았다.
그러자 북아프리카의 모든 사람들이 들고일어나서 기독교에 대항했으며, ‘땅은 하나님의 것’이라는 구호 아래 이슬람교도가 되었다. 이와 똑같은 상황이 중동에서도 재현되었다. 유럽에서는 야만인들의 침략으로 로마 문명의 유산이 파괴된 후, 교회는 좀더 평등한 토지 제도를 만들기 위해 여러 가지 노력을 했다. 하지만 교회가 진정한 경제정의의 비전을 회복하기에는 그 전에 바알 제도와 타협했던 기간이 너무 길었다.
16세기에 재세례파가 성경적 토지개혁을 요구했을 때, 가톨릭과 개신교 모두 그들을 무자비하게 박해했다. 유럽의 거의 모든 지역에서 교회는 이미 최대의 지주였던 것이다. 신교와 구교 사이의 전쟁에서 진정한 문제는 종교가 아니라 토지였다.
아일랜드의 역사만큼 이를 분명하게 보여 주는 사례도 없다. 대대로 잉글랜드 국왕은 영혼 구원이라는 허울 좋은 명분 아래 아일랜드인들의 토지를 강탈하여, 자신들의 심복인 국교도와 장로교도들에게 하사하였다. ‘아일랜드 문제’란 다름 아닌 바알 문제이다. 바로 그 ‘기독교적인’ 유럽인들은 사하라 이남의 아프리카를 땅에 굶주린 식민주의자들에게 분배하면서, 비교적 공정했던 아프리카의 토지 제도를 붕괴시키고 바알 제도를 수립하였다. 그 결과는 재앙이었다.
이로서 아프리카인들은 가난과 착취에 시달리게 되었다. 아프리카의 토착민과 식민주의자들 간에는 깊은 증오심이 생겨났으며, 식민주의자들은 부패에 빠져 들었다. 식민 열강은 차나 커피 농장 아니면 다이아몬드와 기타 광산물의 생산을 위해 가장 생산성이 높은 토지를 ‘샀으며’, 토착민들에게는 농장과 탄광에서 일하게 하는 데 필요한 최소한의 임금만 지불한 채 거기서 나온 모든 이윤을 유럽으로 송금하였다. 제국주의 열강들의 식민지로 있던 국가들이 정치적 독립을 되찾았다 하더라도 경제적 착취는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오늘날 아프리카는 전쟁과 살인, 분노, 두려움, 토양 부식, 기아 등으로 고통당하고 있지 않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