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천덕 자서전 믿음의 글들 167
양혜원 / 홍성사 / 1998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예수원 대천덕 신부님의 자서전에서 있는 일화를 소개합니다.

 

6.25 전쟁 이후 국가 재건 사업이 일기 시작했던 초기에는 거지 소년들이 많았다. 우리는 그 중 한 아이를 데려다가 신학교에서 양육하며 가족처럼 돌보아 주고자 했다. 나는 이 소년이 갑자기 떠나기 전까지는 신학생들이 이 아이에게 얼마나 거칠게 굴었는지 모르고 있었다. 내게 어학(한국어)를 가르쳐 주던 나이 든 학생에게 왜 그 아이가 떠났느냐고 물었더니 이렇게 대답했다.

구속을 견딜 수 없었나 보죠

그 말을 들은 나는 당황하여 반문했다.

구속이라니요?”

그는 양손이 수갑에 묶여 풀지 못하는 시늉을 했다.

그게 구속의 뜻이라구요? 그렇다면 왜 하나님이 우리를 구속하셨겠습니까?”

우리를 겸손하게 하시려고 그랬겠죠, .”

이 대답에 놀라 나는 한영 사전을 찾아보았다. 거기에는 동음이의어로 구속이라는 단어가 또 하나 실려 있었다. 즉 하나는 자유롭게 하다라는 뜻이고, 또 하나는 억압하다라는 뜻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나서 나는 자유롭게 하다라는 뜻을 아는 학생은 하나도 없다는 것과, 그 말은 한자를 아는 신학자들만이 사용하는 용어로서 일상생활에서는 거의 사용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잡아 묶는 구속(拘束)과 풀어 주는 구속(救贖), 공교롭게도 음은 같지만 뜻이 완전히 달라서 혼란을 주는 단어입니다.

 

그러나 설령 신학생들이 말로서 주님의 구속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었다 하더라도, 삶에서는 그러하지 못했습니다.

 

거지 소년을 괴롭혀 내쫓은삶은 풀어주는 구속(救贖)이 아니라 잡아 묶는 구속(拘俗)이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구속(拘束)하지 않고, 구속(救贖)하신 것처럼 우리도 우리에게 그러하여야 합니다.

 

https://youtu.be/55s3T7VRQS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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