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 -상
양귀자 지음 / 살림 / 199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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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처음에는 '희망'이 아닌 다른 제목으로 발표된 것 같았는데...써클룸 캐비넷 구석에 박혀있던 그 글을 읽고 너무 마음에 들어서 다음을 기대하던 그 책이, '희망'이란 새옷을 입고 완결되어 기뻤다. (하지만, 첫 느낌이 강해서일까... 지금은 기억도 나지 않는 그 첫 제목이 '희망'보다는 이 글에 더 어울린다고 고집스럽게 되뇌고 있다)

좀 엉뚱한 비유같지만, 한국판 '호밀밭의 파수꾼'이라는 생각이든다. 주인공 우연이와 홀든 콜필드는 비슷한 부분이 많다. 우선 그 상황에서는 삼수생과 퇴학생이라는 실패자라는 점, 세상을 어느정도 냉소적인 시선으로 바라본다는 점, 소중하게 생각했던 사람들을 어떤 의미로든 '잃는다'는 점, 알고 보면 예민하고 섬세한 감성의 소유자라는 점... 그들의 그런 점들이 내게는 더할나위 없는 매력으로 다가왔다.

이제까지 읽어본 소설들을 돌이켜보면, 작중의 인물에서 현실감이 느껴질 정도로 완성도가 높은 경우에는 이야기는 볼 것도 없이 자연스럽게 풀려나가는 것 같다.
'희망'의 경우도 소설 속의 인물들이 하나같이 나름의 생명력 같은 것을 가지고 있다. 그런 인물들을 창조해낸 것 까지가 양귀자의 뛰어난 점이고, 그 이후는 그들을 그냥 풀어놓은(?)것만으로도 소설이 완성되었다고 느껴질 정도이다. 시간이 많이 지났음에도 바래지 않는 매력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좋은 책이다. 그러고보면, 양귀자는 참 괜찮은 작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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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순
양귀자 지음 / 살림 / 199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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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는 내내 진진과 함께 생각하고 기뻐하고 고민했지만, 그런 정도의 공감은 다른 소설에서도 종종 만날 수 있는 수준이었다. 그런데 '모순'은 그러한 식상함을 결말에서 쨍그랑!하고 깨버렸다. 결국 진진이 선택한 것은 나영규. 너무 억지스러운 비유이지만, 어머니의 삶이 아닌 이모의 삶이었던 것이다.

행복이란 것이 과연 무엇일까. 유복하고 평안한 삶을 영위하던 이모는 어머니의 거칠지만 역동적인 삶을 부러워했다. 하지만, 그것이 가진자의 오만이 아니라고 누가 단언할 수 있을까? 이모가 어머니였다면, 자살을 고민하고 실행할 틈도 없었을지도 모른다.

누구나 가보지 않은 길을 꿈꾼다. 진진이 이모네 집 같은 풍족한 집에서 자란 사람이었다면, 아마 김장우를 선택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모순으로 가득찬 세상과 그 안의 삶에서 행복을 찾는 길... 행복은 어떠어떠한 상황이 아닌 자신의 마음 안에서 찾는 것이라는, 구태의연한 결론을 다시 한 번 진지하게 되뇌이게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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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조세희 지음 / 이성과힘 / 200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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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격적이다' 이외에는 마땅한 표현을 찾을 수가 없었다. 중산층 가정에서 태어나 기본적인 생활의 영유를 당연한 것으로 알며 성장해온 나에게는 이런 종류의 이야기가 굉장히 낯설고 거북했다.

이 책에 실린 소설들은 그들의 고통을 세세하고 친절하게 설명해주지는 않는다. 고통이 극단으로 치밀어가면 느끼기를 포기한 듯 일그러지고, 뭔가 아귀가 맞아떨어지지 않는 백일몽같은 문장들이 나머지 공간을 채운다. 하지만 그런 문장들이 더 생생하고 섬뜩하게 주인공들의 심리를 전해준다. 생각하게 만들고, 상상하게 만드는 그런 '여지'들은 그들이 처한 현실을 마치 끔찍한 화상의 흉터처럼 눈을 가리면서도 손가락 틈으로 자꾸 넘어다보게 만든다.

70년대에는 이 이야기가 '현실'이었을 것이라는, 아니 어쩌면 지금도 어디에선가 이런 풍경이 펼쳐지고 있을 것이라는 고민을 해야한다는 것이 책을 읽을 때마다 매번 나를 고통스럽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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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K Touch and Feel : Wild Animals (Boardbook) DK Touch and Feel 9
Deni Bown 지음 / Dorling Kindersley Publishing(DK) / 199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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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육아 사이트에서 좋은 평가를 내리고 있기에 실제로 보지도 않고 알라딘에서 구입했습니다. 하지만 기대가 너무 커서일까요, 막상 책을 받아보고는 여러 가지로 실망스러웠습니다. 우선 생각했던 것보다 크기가 너무 작았어요. 분명히 가로 세로 16센티미터라고 명시되어 있는 것을 확인하지 못한 저의 불찰이지만, 가격이 가격이니만큼 국내 보통 그림책같이 큼지막할 줄 알았거든요. 그리고 처음에는 괜찮더니 점점 모양이 일그러지기도 합니다. 아무래도 책 속에 두텁고 다양한 재질의 털과 패드를 끼워놓았으니 당연한 결과이겠지만요.

그렇지만 엄마의 투덜거림에는 아랑곳없이 아이는 굉장히 좋아하고 신기해하더군요. 특히 끈적이는 개구리의 손끝을 만져보는 것을 즐깁니다. 여러 분이 지적해주신대로 금방 끈적거림이 약해져서 아쉽지만요. 두 돌인 우리 아기도 좋아는 하지만, 제 생각에는 돌 전의 아기들에게 더욱 흥미롭고 효과적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다양한 촉각자극이 두뇌발달을 돕는다는 것은 이미 과학적으로도 밝혀진 사실이니까요. 기회가 되시면 인근 서점에서 실물을 확인하신 후에 인터넷에서 할인된 가격으로 구입하시는 것이 좋을 것 같아요. 그래야 저같이 얼토당토 않은 기대를 했다가 실망하는 일이 없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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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몸은 너무 오래 서 있거나 걸어 왔다 - 2000년 제31회 동인문학상 수상작품집
이문구 지음 / 문학동네 / 200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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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을 보고는 아주 지치고 힘들어보이는 중년 남자의 뒷모습이 떠올랐습니다. IMF가 터졌을 때 신문이나 잡지에서 자주 보였던 어깨는 늘어뜨리고 고개를 푹 숙인, 그런 모습말입니다.

하지만 엉뚱하게 나무이름을 소제로 달고 펼쳐지는 첫 이야기는 힘있고 생기 있게 펼쳐졌습니다. 편안하고 정이 넘치는 농촌이 아닌 경제 논리에 찌든 농촌의 신산한 삶, 그 속에서 농민들은 정말 힘들게도 오래 서 있거나 걸어왔지만 두 손 늘어뜨리고 포기하기보다는 계속해서 걷고, 뛰려는 의지 같은 것이 느껴졌습니다.

김주영님의 '아라리난장'을 읽으면서는 작가가 민초들의 삶을 높은데서 내려다보며 서술하는 듯한 껄끄러움이 느껴졌었는데, 이문구님의 글을 읽으면 그들 안에 융화되어 완전히 하나가 된 듯한 문장들이 자연스럽게 펼쳐지는 듯 해서 기분이 아주 좋았구요.

하지만, 기존에 많이 접해서 익숙해진 전라도나 경상도 사투리와는 달리 충청도 사투리는 '어? 이게 무슨 소리지?'하고 순간순간 고개를 갸우뚱하게 해서 한창 몰입해가던 흥을 깨고는 했습니다. 그리고, 제목이 된 나무들도 그 모습을 떠올려볼 수 없게 생소해서 아쉬웠습니다. 나이가 지긋하시거나, 충청도 태생인 분들이 이 책을 만난다면 책읽기가 더 신명날 거라고 생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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