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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몸은 너무 오래 서 있거나 걸어 왔다 - 2000년 제31회 동인문학상 수상작품집
이문구 지음 / 문학동네 / 2000년 6월
평점 :
품절
제목을 보고는 아주 지치고 힘들어보이는 중년 남자의 뒷모습이 떠올랐습니다. IMF가 터졌을 때 신문이나 잡지에서 자주 보였던 어깨는 늘어뜨리고 고개를 푹 숙인, 그런 모습말입니다.
하지만 엉뚱하게 나무이름을 소제로 달고 펼쳐지는 첫 이야기는 힘있고 생기 있게 펼쳐졌습니다. 편안하고 정이 넘치는 농촌이 아닌 경제 논리에 찌든 농촌의 신산한 삶, 그 속에서 농민들은 정말 힘들게도 오래 서 있거나 걸어왔지만 두 손 늘어뜨리고 포기하기보다는 계속해서 걷고, 뛰려는 의지 같은 것이 느껴졌습니다.
김주영님의 '아라리난장'을 읽으면서는 작가가 민초들의 삶을 높은데서 내려다보며 서술하는 듯한 껄끄러움이 느껴졌었는데, 이문구님의 글을 읽으면 그들 안에 융화되어 완전히 하나가 된 듯한 문장들이 자연스럽게 펼쳐지는 듯 해서 기분이 아주 좋았구요.
하지만, 기존에 많이 접해서 익숙해진 전라도나 경상도 사투리와는 달리 충청도 사투리는 '어? 이게 무슨 소리지?'하고 순간순간 고개를 갸우뚱하게 해서 한창 몰입해가던 흥을 깨고는 했습니다. 그리고, 제목이 된 나무들도 그 모습을 떠올려볼 수 없게 생소해서 아쉬웠습니다. 나이가 지긋하시거나, 충청도 태생인 분들이 이 책을 만난다면 책읽기가 더 신명날 거라고 생각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