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루 속의 뼈 -상
스티븐 킹 지음, 한기찬 옮김 / 대산출판사(대산미디어) / 199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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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읽었던 스티븐 킹의 작품들 중 최고의 작품은 '내 영혼의 아틀란티스', 그 다음은 '유혹하는 글쓰기', 그리고 뒤이어 '자루속의 뼈'를 추가하기로 했다. 한창 스티븐 킹에 빠져있는 내게 조악한 번역과 편집으로 찬물을 끼얹은 '드림 캐쳐', 그 실망했던 마음을 자루속의 뼈가 충분히 위로해 주었다.

'공포'라는 면에서는 그의 이전 단편들보다는 조금 뒤쳐진다. 아니, 뒤쳐진다는 표현은 적합치 않다. 질이 다르다고나 할까. 짜릿할 정도로 오싹한 두려움을 주던 기존의 공포와는 달리 자루 속의 뼈에서는 자극적이지는 않지만 별장 '웃는 사라'를 둘러싼 알 수 없는 기운처럼 음울하고 묵직한 공포가 전면에 걸쳐 흐르고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모자란 스릴을 채우고도 남을만큼 멋진 사랑이야기가 있다. 부록으로 스티븐 킹 자신의 느낌이 강하게 와닿는 작가론까지. 마이클 누난의 모델이 본인이라는 것은 누구나 알 수 있을 것이다. 죽은 아내 조애너와 그에 대한 사랑도 '유혹하는 글쓰기'에서 그려졌던 스티븐 킹의 아내와 닮은 구석이 많다.

매티와 행복한 해피엔딩을 이루었다면 내 마음이야 말할 수 없이 뿌듯했겠지만, 그녀가 죽고 난 후 키라를 지키기 위한 극적인 사투의 속도감은 즐길 수 없었을테니 아쉬움을 접을 수 밖에. 그런 진부함을 살짝 비켜가는 재치 때문에 더욱 스티븐 킹에게 빠져들게 되는 것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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셜록 홈즈 전집 1 (양장) - 주홍색 연구 셜록 홈즈 시리즈 1
아서 코난 도일 지음, 백영미 옮김, 시드니 파젯 그림 / 황금가지 / 200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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셜록 홈즈는 어린 시절 누구나 한 두번쯤 읽으면서 자랐을 것이다. 나 역시도 홈즈의 팬이었지만 고상한 순문학(?)에만 높은 가치를 두던 사회풍조 때문이었을까, 홈즈를 읽으면서는 언제나 질이 낮은 책을 재미로 읽는다는 죄책감이 동반되었다. 그러나 하지 말라는 것은 무엇이든 재미있지 않은가? 그런 죄책감은 책을 읽는 재미를 더욱 배가시켰다. 어쩌면 이리도 똑똑할 수 있을까, 어떻게 이런 생각을 해냈을까, 마냥 신기할 뿐이었다.

이제 복고 바람을 타고 다시 떠오르는 홈즈. 하지만, 세상이 변한건지 어른이 된 내가 약아진 것인지... 그 명석해보이던 셜록 홈즈가 조금은 어설퍼 보인다. 특히 주홍색 연구에서는 별다른 추리도 없이 범인을 너무 수월하게 잡은 것 같은 느낌이다. 그만큼 극적인 반전이 없었다는 얘기. 바닥에 흥건하던 피가 코피이고, 흥분 상태에서 코피가 나올 정도면 몸에 피가 많은 사람이므로 혈색이 좋을 것이라니...맞는 얘긴가? 이 정도면 '추리'가 아니라 '추측', 혹은 '억측'이라고 해야 맞지 않을까 싶다.

그래도 후반부의 모르몬 교에 얽힌 사랑과 복수의 활극은 그런 단점을 많이 보완하여 덮을만큼 매력적인 구석이 있었다. 다음편, 그 다음편에서는 다시 명석한 홈즈에 대해 감탄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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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을 모으는 사람 풀빛 그림 아이 27
안토니 보라틴스키 그림, 모니카 페트 글, 김경연 옮김 / 풀빛 / 200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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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니카 페트는 자기만의 독특한 세계를 갖고 있는 작가인것 같습니다. 수줍음이 많지만 자신의 일을 성실하게 묵묵히 해나가는 부루퉁 아저씨는 행복한 청소부와 아주 비슷한 점이 많습니다. 다만, 행복한 청소부 아저씨가 소박하고 현실적인 교훈을 전해준다면 부루퉁 아저씨는 몽환적이고 신비한 방법으로 아이들에게 상상력과 창의력을 길러준다는 점이 달라 보이는군요.

제 아이는 이제 세 살인데요, 행복한 청소부 때와 마찬가지로 아직 아이가 이 책을 읽을만한 나이가 못된다는 점이 안타까와질만큼 좋은 책입니다. 초등학교에 입학할만한 정도의 아이들이라면 '생각을 모으는 사람'을 읽고는 꼬마 철학자가 되어서 엄마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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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약국의 딸들 - 나남창작선 29 나남신서 105
박경리 지음 / 나남출판 / 200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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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극은 언제나 희극보다 더 강한 흡인력으로 사람들을 끌어들인다. 삶의 잔인한 속성에 언제나 한숨 짓고, 우울해지면서도 김약국의 딸들을 몇 번이고 되 읽게 되는 것은 그런 이유이리라. 아니, 몇몇의 다른 이유들도 있다. 조선의 나폴리라고 한다던가. 통영이 가진 아름다움을 맛깔나게 술술 펼치는 초반부의 입담과 끝까지 매력을 잃지 않고 이야기를 끌고 나가는 그 특유의 사투리. 한 때 아리랑에서의 전라도 사투리에 홀딱 반하여 경상도 사투리란 투박하고 거칠다고만 생각해왔던 나에게, 말 끝마다 감정이 뚝뚝 묻어나는 듯한 통영의 사투리는 더할나위 없는 매력으로 다가왔다.

유교의 뒤끝자락, 근대사에서 아들들이 아닌 딸들을 중심으로 전개되는 이야기는 상당히 이례적인 것이지만 그 딸들이 모두 비극의 주인공이 되는 수난사는 이례적이라고 할 수 는 없다. 그렇지만 이례성이 반감되었다고 비범함마져 반감되는 것은 아니다. 끝간데 없이 이어지고 겹쳐지는 비극이 작위적이라는 느낌 하나 없이 독자들의 마음에 대못을 박는다. 그 비극의 절정은 내가 볼 때는 용란보다는 용옥이다. 전형적인 한국의 여인상, 지은 죄 없이 벌을 짊어지던 용옥의 죽음은 슬픔보다도 분노를 자아낸다.

3대에 걸친 긴 가정사가 그리 길다고 할 수 없는 분량에 집약되어 있음에도 이 소설에서는 빈틈을 찾아보기가 힘들다. 작가의 경륜이라는 것이 우습게 볼 것이 아님을 느끼게 해주는 것이다. 2~3년이 지나면 나는 다시 한 번 김약국의 딸들을 뽑아들고 읽게 될 것이다. 그러는 이유는 나 자신도 알 수 없다. 비극이 희극보다 흡인력이 강하다는 말을 다시 되풀이할 수 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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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 - MBC 느낌표 선정도서, 보급판, 최순우의 한국미 산책, 학고재신서 1
최순우 지음 / 학고재 / 200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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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개의 요즘 세대들은 외국의 문화 예술에는 두루 해박함에 비해 한국 문화 예술에 대해서는 문외한이기 십상이다. 나 자신도 한국의 예술 작품들은 그저 국사책에나 어울리는 고리타분한 것이라고만 생각해왔다.

수학여행지에서 둘러본 불국사며 석굴암, 고분에서 출토됐다던 각종 물품들은 왜 그렇게도 보잘것 없고 시시하게 느껴졌던지. 하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아무리 훌륭한 문화 예술도 그것을 보고 느끼는 능력을 갈고닦지 않으면 제 몫의 감흥을 불러일으키기 힘들다는 것을 깨달았다.

작가가 제일로 꼽는 한국미가 '담박한 간소미'인데 어린 나는 금칠은칠한 으리으리하고 화려한 것을 찾았으니 아귀가 어긋나도 한참을 어긋난 것이리라. 어디서 한 번쯤은 본 듯한 주요한 유물들을 대상으로 한 점은 다른 책들과도 다를바가 없지만, 그 접근방법은 매우 색다르다. 단순한 해설에 그치지 않고 작품을 감상하는 법과 그것이 우리의 문화 유물이라는 것에 대한 자부심을 은연중에 길러주는 것이다.

지금 다시 고적지나 박물관을 찾는다면 같은 작품에 대한 감상도 180도 달라질 것임을 느낀다. 자라나는 학생들에게도 우리 유물들이 어느 시대 어디서 어떤 기법으로 만들어졌는지나 달달 외우게 할 것이 아니고, 무량수전...에 수록된 글과 같이 그것의 진정한 아름다움과 가치가 어디에 있는지를 깨닫고 감상할 수 있게 가르쳐야할 것이다. 시대나 기법은 작품설명에 다 나와있는데, 굳이 외워야할 필요가 없지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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