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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터의 의자 ㅣ 네버랜드 Picture Books 세계의 걸작 그림책 45
에즈라 잭 키츠 글, 그림 | 이진영 옮김 / 시공주니어 / 1996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저는 뭔가가 궁금하고 안 풀리면 책부터 찾는 버릇이 있습니다. 좋은 습관이지요. 하지만, 이것이 아이 키울 때는 가끔 어긋나는 것을 느낍니다.
큰 아이가 동생을 보면서 부쩍 스트레스를 받고 말썽을 피우기에 부푼 기대를 품고 구입한 <피터의 의자>. 책은 정말 좋습니다. <눈 오는 날>과 <피터의 의자> 두 권 밖에는 못 보았지만, 애즈라 잭 키츠를 저나 아이나 참 좋아하거든요.
처음에 이 책을 읽어주자 아이는 '얘는 피터가 아냐!'하며 바득바득 우기더군요. 자세히 보면, <눈 오는 날>에서 보다 피터가 많이 자랐거든요. <눈 오는 날>의 피터는 기껏해야 네 살배기 정도로 보이는데, <피터의 의자>에서 피터는 이제 제법 어린이 티가 나는 대여섯 살의 아이가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피터가 나이를 먹었고, 이제는 동생까지 생겨서 오빠가 되었대.'하고 얘기해 주었더니, 수긍한 뒤부터는 피터를 더욱 좋아하더라구요. 그림책 속의 아이가 자기처럼 자라나는게 신기하고 친숙했나봐요.
(이 책을 통해 이해심 많은 누나가 되었으면...)흑심을 품고 있으니 한껏 다정한 목소리로, 나긋나긋하게 책을 읽어 주었죠. 열심히 듣는 아이를 보며 뿌듯한 마음에 책을 덮은 순간 들려오는 말,
'엄마, 나도 페인트칠 하게 의자 사 줘!'
저는 깔깔 웃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책 한 번 읽었다고 네 살 먹은 아이가 개과천선(?) 할 것이라고 믿은 제가, 평소에는 버럭버럭 소리나 지르면서 기대에 부풀어 상냥하게 속살거린 제가 우습더라구요.
거듭 깨달아지는 것이지만, 그림책의 내용이 아이를 변화시키는 것은 아닙니다. 그 책과 어우러진 시간의 감동이 아이를 바꾸지요. 언제나 아기 동생에게 내줘야 하는 엄마가 아쉬워서, 책 읽어 주는 시간이면 큰 아이는 같은 책도 세 번, 네 번, 열 번 읽어 달라고 우깁니다. 책이 재미있기도 하겠지만 책을 읽는 동안은 엄마를 독차지할 수 있다는 걸 알기 때문이죠.
<피터의 의자>를 읽으면서는 꼭 아이를 무릎에 앉혀야겠습니다. 다른 책은 몰라도, 이 책을 읽는 동안은 동생이 운다고 중간에 달려 나가지 않으렵니다. <피터의 의자>와 함께 하는 시간에서 안정감을 느낀다면, 그 때는 내용이 이해되고 조금 더 의젓하게 자란 '누나'가 되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