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야기 찔레꽃 울타리
질 바클렘 지음, 이연향 옮김 / 마루벌 / 199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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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은 피터 래빗을 더 구입하고 싶었는데, 이 시리즈는 안타깝게도 낱권으로는 구할 수가 없더군요. 그래서 내심 '꿩 대신 닭'이라는 기분으로 구입했는데...지금은 찔레꽃 울타리 시리즈의 팬이 되었습니다.

제가 처음 구입한 것은 '가을 이야기'입니다. 책을 펴 들고는 글이 꽤 많은 편이라 조금 걱정 했지요. 우리 아이는 집중시간이 짧은 편이라 활기차고 짤막한 말놀이 책을 선호하는 편이거든요. 하지만 기우였습니다. 잔잔하고 예쁘게만 보이는 이 그림책 속에는 흥미진진한 모험이 가득하거든요.

아빠와 겨울 양식을 준비하던 아기들쥐 앵초가 길을 잃습니다. 마음 착한 들쥐 부부의 티타임에 초대되기도 하지만, 집주인을 짐작할 수 없는 복잡한 땅굴 속에 들어갔다 나온 후로는 날이 어두워져 버리지요. 가시 덤불 밑에 떨고 있던 앵초는 불빛이 어룽거리는 무서운 형태의 괴물을 봅니다. 하지만 그것은 자신을 찾으러 나온 가족들이었죠!

줄거리는 평이한데, 실제 이야기는 어린 앵초의 심정이 되어 대변한 듯 생생해서 아이가 넋을 잃고 포옥 빠져듭니다. '엄마, 이 괴물, 괴물 아니지 응? 사과 할아버지지 응?'하며 미리미리 줄거리를 주워 섬기는 아이. 길을 잃은 앵초에게 동화되어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두려움과 긴장감을 떨칠 수가 없나 봅니다.

그런 절정을 넘어 서면 결말은 너무도 포근합니다. 집에 돌아와 젖고 더러운 옷을 갈아 입는데, 침대 곁 탁자엔 따뜻한 도토리 죽이 준비되어 있지요. 그리고 엄마와 함께 푹신한 침대에 누워 잠이 듭니다. 게다가 자장가까지...

'수염을 내리고 편안히 쉬거라.
꿀과 우유와 과자가 가득하단다~
밤새 부디 좋은 꿈만 꾸거라.
내일 아침 해님이 떠오른단다.'

^^ 외워서 쓰는 겁니다. 곡을 붙여서, 우리만의 자장가를 만들었거든요. 사실 아이가 계속 이 책을 읽어 달라고 하는 것도 이 자장가 때문입니다. 잠이 들때도 '엄마, 수염을 내리고~ 불러줘.'하기도 해요.

예쁜 그림에, 더 예쁜 이름을 가진 들쥐들(앵초, 얼마나 이쁜 이름인가요!)이 딸과 저에게 둘만의 자장가를 선물했습니다. 겨울이 되고, 새봄이 오고, 또 여름이 되고...그 때마다 찔레꽃 울타리 시리즈를 한 권씩 살 겁니다. 그리고 나중에는 책날개의 김은하님이 말하신 찔레꽃 울타리 커피잔 세트를 장만해서 아이와 함께 향기 좋은 차를 한 잔 즐겨보고도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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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랑이 잡은 피리 옛이야기 그림책 까치호랑이 18
강무홍 글, 김달성 그림 / 보림 / 199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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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가 한창 우리 이야기에 관심을 갖기 시작하는 요즘, 다양한 전래동화를 들려 줘야 할텐데...조바심이 났습니다. 그런데 외국 그림책들에 비해 전래동화 그림책은 양과 질이 현저하게 떨어지더군요. 어쩔 수 없이 방문판매하는 전집을 구입해야 하나, 망설이고 있던 차에 <호랑이 잡은 피리>와 만나게 되었습니다.

도서관에서 마땅히 대출할 것이 없어서 뽑아 든 것인데, 기대 이상이라 아이도 저도 너무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우리 세대는 '세계명작' 세대잖아요. 소공녀나 십오소년 표류기의 줄거리는 그토록 생생한데, 이 이야기는 언젠가 들은 듯 하면서도 새로왔습니다. 하긴, 어쩌면 정말로 못 들어본 얘기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리 것이라서 그런 친숙한 느낌이 들었을 수도 있죠.

다른 여러 분들이 칭찬하셨듯이 뭐니뭐니해도 그림이 돋보이는 책입니다. 빛깔 고운 수채화로 우리네 옛 모습이 구석구석, 아기자기하게 표현되어 있습니다. 아이들에게는 그렇게 볼거리가 많은 그림이 좋다죠? 딸아이도 장승을 가리키며 이게 뭐냐고 묻더라구요. 마침 같이 빌려온 <시장 나들이>(솔거나라)에도 장승 그림이 있기에 이거랑 같은 것이고, 마을을 지켜주며, 이름은 '천하대장군'과 '지하여장군'이라고 열심히 가르쳐 주었습니다. '아~ 처나대장 지아여장~' 하는 아이의 까만 눈이 어찌나 귀엽던지^^

중간에 여우가 재주를 넘어 둔갑하는 모습도 재미있습니다. 삼형제를 졸졸 따라다니는 동물들 또한 귀엽구요. 막내의 피리에 맞춰 춤을 추는 다람쥐며 토끼며는 어찌나 잘 표현되어 있는지! 정말 덩실덩실 어깨춤들을 추는 것 같답니다.

더불어 그림을 받쳐주는 글도 탄탄합니다. 똑같은 이야기도 어떻게 풀어내느냐에 따라 재미가 사뭇 다르잖아요. 특히 옛이야기는 그렇죠. <호랑이 잡은 피리>는 사건들을 적절한 리듬으로 느슨하지 않게 끌고 갑니다. 그리고 슬픔, 공포, 모험, 성취 등의 다양한 테마와 느낌을 장면마다 잘 살려서 읽어 주는 저도 듣는 아이도 함께 흥이 납니다. 한 이야기에서 그렇게 다양한 감정을 체험할 수 있는 것은 전래동화 이기에 가능한 일 아닐까요?

저도 처음에는 글씨가 좀 작다 싶었지만 아기자기한 그림을 해치지 않으려면 그 정도 크기가 적합할 듯 싶습니다. [까치호랑이]라는 전래동화 시리즈로 스무 권 가까이 다른 이야기가 있더군요. 우리 것을 소중히하는 보림이기에 기대가 큽니다. 권당 만원을 호가하는 전집보다 이렇게 한 권 한 권 공들인 전래동화가 더 많이 나왔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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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마 유령들의 저녁식사 - 친구와 함께보는 그림동화 6 친구와 함께보는 그림동화 6
쟈끄 뒤케누아 지음 / 사계절 / 199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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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받아 보고는 속으로 '에게?' 했습니다. 생각한 것보다는 사이즈도 작고, 종이도 좀 얇은 듯 했거든요. 하지만 읽어주다 보니 내용과 그림에 딱 알맞은 크기였습니다.

우선 발상이 기발하지요? 꼬마 유령 앙리가 친구들을 초대해 만찬을 벌이는데, 친구들은 먹는 음식과 똑같은 색깔로 변합니다. 그러다가 후식인 아이스크림을 먹고는 녹아서 투명 유령들이 되지만 설겆이를 마치고 커피, 마지막으로 우유를 마시고는 도로 하얀 유령들이 되지요.

친구들을 '왁'하고 놀라게 하는 앙리나, '아유~ 얄미운 앙리!'하는 친구 유령들 모두 친근하고 귀엽게 표현되어 있습니다. 덕분에 요즘 한창 무서움증이 생겨서 컴컴한 곳을 지날 때면 '엄마! 저기 귀신 나와!'하는 딸아이(이게 다 여름 내내 공포물로 도배를 한 그놈의 TV때문이죠!!!)를 다독거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어? 어디? 엄마는 귀신은 안 보이는데? 아, 앙리가 왔나? 앙리야, 오늘은 저녁 식사에 널 초대하지 않았어. 다음에 와~' 하면 아이도 신이 나서 이 얘기 저 얘기를 하다가 귀신은 홀랑 잊어버리지요.

페이지 수는 꽤 되지만 한 면엔 기껏해야 한 두 줄의 이야기 뿐입니다. 잘 나눠진 컷 속의 그림들이 대신해서 이야기를 풀어내고 있으니까요. 그래서 읽어 주기도 편안하고 부담 없습니다. 매일매일의 긴 그림책 대장정에(이 놈들은 엄마 목 아픈 건 아랑곳 없이, 책 읽어 주라며 최소 열 권은 끌고 와요...그죠?) 가벼운 에피타이저로 딱이죠.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중간에 색깔들이 약간은 선명치 못하고 사실감이 떨어진다는 것입니다. 커피 색은 너무 옅게 표현되어 연한 황토색에 가까운데요, 그런 색이름을 모르는 아이는 그냥 '노랑'이라고 말합니다. 엥? 노랑 커피라니...프림을 너무 많이 탔나?

한국판 <꼬마 유령들의 저녁 식사>가 나온다면 어떨까, 생각해 봅니다. 김치 색깔, 된장 찌개 색깔, 멸치 볶음 무늬 유령들... 보기엔 별로겠지만, 혹여 아이들의 편식 습관을 살짝~ 자극해 줄 수 있진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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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독한 아름다움 - 김영숙 아줌마의 도발적인 그림 읽기
김영숙 지음 / 아트북스 / 200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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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면 누구나 느끼는 사실, 책은 가끔 그 내용을 떠난 자체로도 아름답다. 겉모습만 보고도 반하는 책이 가끔은 있는 것이다. <지독한 아름다움>이 바로 그랬다.

경박할만큼 얇지도, 부담스러울만큼 두툼하지도 않은 적당한 두께와, 그림을 담아내기 위해 키웠는데도 화집이라기보다는 책으로 느껴지는 크기. 만져보면 보송보송한 무광의 표지와 딱 맞아떨어지는 그림, 제목... 하, 이쯤되면 칭찬이 아니라 거의 '찬양'인가?

겉모양이 그렇게 마음에 쏙 들었기에 도리어 책 내용에는 별 기대를 하지 않았다. 유행인가? 봇물처럼 쏟아져 나오는 '그림 읽기'책 중 몇 권을 접했지만, 거기서 거기, 그림 좀 아는 사람들의 어줍잖은 인생론이 대부분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책은 좀 달랐다. 아슬아슬하게 중도를 잘 걸었다고 해야 하나. 기존의 그림 읽기가 지나치게 개인적인 느낌이거나, 아니면 지나치게 단순한 정보 전달이거나...양 극단에 치우쳐 있었던 반면에, <지독한 아름다움>에는 작품에 대한 기본적인 지식과 당시의 시대상을 충분히 전달하면서도 허를 찌르는 통쾌한 감상이 있다.

그림에 대해 정말 궁금했던 기본적인 지식, 예를 들어 얀 반 에이크의 '아르놀피티의 결혼식'에 부풀어 오른 신부의 드레스를 보면서 나는 정말로 속도 위반을 의심했다. 그런데 그것이, 그 시대의 패션 경향이었다니...ㅋㅋㅋ

그리고 감상하는 사람들의 허를 찌르는 통쾌함! 들라크루아의 '자식을 죽이는 메데이아'를 보며 메데이아 없이는 아무것도 이루지 못했을 이아손이 왜 영웅이 되었는가를 짚어 내는 실력은 대단했다.

- 그럼에도 우리는 너무 지독한 메데이아 때문에 제 손으로 뭐 하나 제대로 한 것 없는 한 남자를 영웅이라 말한다. 사랑이란 이름으로 비롯된 집착과 광기도 신물나지만 이럴 때에도 역시 남자는 하는 일 하나 없이 영웅이 된다. 그저 그 지독한 여자와 살아주었다는 것만으로도. 111p '이 왕관이 당신 몫이던가? 中 -

이 반어법...카타르시스가 느껴지지 않는가?

이 책을 읽고서야 어떤 그림을 읽어 내는 것이 그저 지식만으로도, 넘치는 감상만으로도 되는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감상이 앞서 왔다 하더라도, 저자의 말대로 사랑하게 되면 알고 싶어지는 것이 아닌가?

공부가 귀찮아서 잠시 제쳐 놓았던 미술의 세계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다시 책상에 펴 놓으려고 한다. 정말 그 '지독한 아름다움'을 온몸으로 느껴보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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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Very Hungry Caterpillar (Board Book, 2nd Edition) - 느리게100권읽기 4색과정 (빨강) 느리게100권읽기-1차추천도서
에릭 칼 글 그림 / Hamish Hamilton / 199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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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베스트셀러가 된 책 중에는 그럴 만한 가치가 없다고 생각되는 것도 있습니다. 하지만, 스테디셀러는 정말 아무나 되는 것이 아니지요.

영어 조기교육 열풍이 그다지 달갑지가 않아...아니, 솔직히 게으른 엄마 때문에 우리 딸아이는 네 살인 지금 영어 책이 달랑 두 권입니다. 그런데 얼마 전, <이명신 선생님, 영어그림책 골라주세요>라는 책을 읽고는 영어 그림책이 단순히 영어 조기교육의 도구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좋은 영어 그림책을 읽어 주는 것은 영어 조기해득 외에도 수많은 이득이 있을 것이라고 말이죠. 그래서 구입한 책이 <배고픈 애벌레>입니다.

오랜만에 영어 그림책을 읽어 주자니 준비도 필요했습니다. 특히 문제는 독해가 아니라 발음이었지요. 인터넷 영어 사전을 뒤져 액센트와 발음을 연습했습니다.(daum의 영어 사전은 발음을 들을 수 있게 되어 있어 많은 도움이 되더군요.)

그리고는 처음으로 아이에게 읽어 주는데...한글 그림책만 보던 아이는 알아 듣지 못하는 영어가 답답한지 '엄마, 영어 말고 그냥 말로 읽어 줘~' 하고 조르더군요. 엥? 되도록이면 우리 말로 해석해주지 말라고 했는데! 혼란스러운 마음에 당황하다가 첫 날은 그렇게 갔습니다.

다음 날, 고심 끝에 아이에게 '이 책은 영어로 씌여진 책이니까, 오늘은 한 번 처음부터 끝까지 영어로 들어 보자.'하고는 읽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는 우리말 그림책을 읽을 때보다 다섯 배쯤 '오버'를 했지요.

첫 장에 알이 잎에 놓여 있을 때는 작고 신비스러운 목소리로, 애벌레가 깨어났을 때, 'tiny and very hungry caterpillar'에서는 살짝 애벌레를 짚어 주기도 하고, 'still hungry' 다음에는 책에는 없어도 'I'm hungry, I'm hungry'하며 기운 없이 배를 움켜 쥐었습니다. '어? 아직도 잘 듣고 있네?' 마지막 하일라이트는 토요일에 복통을 일으킨 장면이었지요. 'stomachache!'하며 배를 움켜잡고 구르다가 기절~~~

아이는 그야말로 좋아서 꼴깍 넘어가더군요. 그리고 신기한 것은, 그렇게 연기를 하다보니 엄마인 저도 절로 흥이 났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감정이 고조되니 마지막 나비가 된 장면에서는 어떤 환희가 느껴지더군요. 아마 아이도 그랬겠죠.

영어그림책을 처음 시작할 때 대부분의 아이들은 생소한 언어에 대한 호기심은 잠시이고, 무슨 말인지 모르니 답답해 할 것입니다. 그럴 때 풍부한 억양으로 감정을 살리고, 몸짓을 많이 섞어 재미있게 표현해주면 책읽는 시간이 즐거운 놀이 시간으로 승화되겠죠. 그리고 점점 반복해 읽을수록 뜻은 자연히 이해되고, 결국 평이하게 읽어 줘도 가만히 듣고 있는 때가 올 것입니다.

참, 그리고 이 보드북은 튼튼하긴 한데 크기가 너무 작아 구멍에 아이의 손가락이 들어가질 않더군요. 그래서 생각해낸 것이 '모루'입니다. 보육사같은, 유치원 교구상에서 많이 팔거든요. 철사에 보송보송 털이 솟아 있는 건데요, 울룩불룩한 모양에 연두색 모루는 어찌 보면 애벌레 같기도 해요. 그래서 그걸로 구멍을 통과하며 아이와 논답니다.

아이가 영어그림책을 통해 영어 영재가 되기를 바라지는 않습니다. 그저 영어를 낯설고 힘든 일이 아닌, 친숙하고 재미있는 것이라고 생각하게 된다면...그만큼 좋은 일이 또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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