댓글에 본인임을 밝히셨듯이, 하이드님이 그린 나무랍니다.^^
이 나무그림은 전반적으로 다른 나무그림과 확연히 차별화가 되고 있다.
나무그림 검사 시에는 보통 "나무를 한 그루 그려보세요, 어떤 나무이든 그리고 싶은대로 하면 됩니다."라는 지시를 내리기 마련인데, 이 그림에는 나무 한 그루가 아닌 숲이 그려져 있다.
용지의 사용도 독특하다. 대부분은 세로방향으로 용지를 사용하는데, 피험자는 가로방향으로 돌려 그림을 그려나갔다.
면이 없이 단선으로만 표현되고 있는 점도 눈여겨 봐야 하겠다.
하나 이상의 나무를 그리는 경우는 개인보다 집단에 대한 관심이 지대할 때 나타난다. 그 숲의 나무들이 흩어져 있느냐, 밀집되어 있느냐, 나무의 수가 어느 정도냐, 모양새가 어떠하냐에 따라 다양한 해석이 나올 수 있는데, 이 그림에 표현된 나무들은 여러 그루가 모여 있음에도 불구하고 각각이 매우 외로워 보인다. 피험자가 집단 속에서의 개인, 군중 속에서의 외로움 같은 주제에 관심을 갖고 있을 수 있음을 시사한다.
용지를 옆으로 해서 그린 나무
통상 용지를 옆으로 뉘어 나무를 그린 사람의 출현율은 아주 적어, 대략 5% 미만이다. 90도 돌려서 옆으로 한 용지에 나무를 그리는 것은 자기의 직접적인 환경에 만족하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 즉, 스스로의 환경을 답답하다고 여겨 더 넓은 환경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현재의 환경이 제공하고 있는 것 이상의 것을 받아들일 가치가 있다. 내가 자신을 변화시킬 이유가 없다. 주위의 환경이 나의 요구에 맞춰져야만 한다."는 주장이 내재되어 있는 것이다.
이러한 방법으로 나무를 그리는 사람은 때때로 이기주의적인 특징을 보이기도 한다.
용지의 사용법과 더불어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단선으로만 이루어진 나무들이다. 이 나무들은 줄기나 수관에 있어 '면'의 표현이 없다. 이렇게 단선으로 표현된 나무의 경우 해석이 조심스럽게 이루어져야 한다. 수관은 일반적인 둥근 모양인데 줄기만 단선으로 그려져 있다면 정서의 통로가 과도하게 좁아 자신의 감정을 부정하고 억누르고 있는 상태라고 해석할 수 있지만, 전체적으로 단선만을 사용한 추상적인 나무이기에 그런 의견은 옳지 않다고 보인다.
다만, 전반적인 스트로크를 통해 피험자의 심리를 미루어 짐작해 볼 수는 있다. 선의 움직임은 정서의 운동에 반응해 비슷하게 표현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적절한 힘을 가해 연속적으로 그린 선을 건강한 선으로 파악한다. 이와 대조되는 선으로는 중간중간 끊기거나 겹친 부분이 많은 파선을 들 수 있는데, 파선은 외부의 영향을 수용한다는 긍정적인 면을 갖고 있긴 하지만 대부분 무력감과 취약감의 표상으로 나타난다.
피험자의 스트로크를 살펴보면 강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희미하지도 않은 정도의 힘을 가하고 있다. 전반적으로 곡선보다는 직선의 표현이 압도적으로 많고 망설임 없이 빠르게 그린 선으로, 크게 집중하지 않고 무언가 귀찮은 듯 내그은 흐름을 보인다.
직선과 파선의 중간 정도로 보이는 스트로크의 특질로 볼 때, 현재 피험자는 무력감이나 취약감에 빠져 있으나 그 정도가 심하지 않던가, 일시적인 것으로 미루어 판단할 수 있다.
단선의 줄기들에 이어 역시, 단선으로 표현된 가지가 그려져 있는데 자세히 살펴보면 이 가지들은 줄기에 완전히 결합되어 있지 않고 대부분 분리되어 있다. 빠른 속도로 그려진 단선 가지에서 이런 양상들이 나타나는데, 이런 경우는 통상 가소성은 있지만 외부에 쉽게 영향을 받는 상태이다.
특히, 주요 줄기나 가지에서 저런 형태로 나란히 가지가 뻗어나가는 경우(그러면서 연결은 되어 있지 않는 경우)는 그린이가 방어적인 성격으로, 타인의 접근을 의도적으로 막고 있을 가능성이 높음을 시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