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하루키를 좋아한다.
사실은, 그의 작품 속 주인공들을 사모한다.
그들은 너무도 '평범하다'고 그려지지만, 평범한 사람의 평범한 속내를 비범하게 풀어 내는 비범한 능력의 소유자들이다.
박민규, <삼미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에서 나는 문득, 하루키의 냄새를 맡았다. '그랬거나 말거나, 1983년의 베이스볼'에서 엉뚱하게 불거져 나온 '봉간다'의 프로야구 즈음 해서 였을 것이다. 이유가 뭐였을까, 엉뚱하고 황당한, 심하게 주관적이라 도리어 활짝 열린 메타포? 아니면,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그 무엇?
여하간, 박민규는 하루키와 닮았고, 게다가 핀토스의 일자바지에 아디다스 라인이 들어간, 딱 그정도 만큼 더 거친 매력이 있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박민규는 하루키와는 달리, 나의 모국어를 자유자재로 끊고, 비틀고, 조이는, 유쾌한 능력의 소유자였던 것이다.
그가 얘기한 <프로의 세계>. '무진장 노력한 삶'과 '눈코 뜰 새 없이 노력한 삶' 사이의 어디쯤만을 '평범한 삶'이라 인정해 주는 비정한 세계에 대한 통찰은 매우 반가운 것이었다.
"나는, 다른 사람들처럼 그렇게, 예식장에서 평범하게 결혼하고 싶지 않아."라고 말하는 후배들에게 내가 꼭 해주던 말.
"야, 그렇게 평범하게 결혼하는 게, 남들 다 하는 것처럼만 해 내는 게 얼마나 힘든지 알아?"
그랬다. 도대체 자신의 인생이 소중하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으랴. 그 소중한 인생을 제대로 살아 내려 저마다 아둥바둥 애를 쓰지만, 대부분은 그냥 <평범하게> 살아가고 있을 뿐이다. 하긴, 그 저변에는 <평범>이라는 개념이 절대적이 아닌 상대적 개념이라는 굴레가 있긴 하지만.
그렇게 자주 하던 상념의 핵심을 시원하게 찔러주고, 게다가 평범하고 비루한 인생에 '그건 당신의 잘못이 아니야. 비틀어진 세상 탓이지.'라고 가슴 울컥한 위로까지 던져주니.....아, '1할 2푼 5리'나 '연안부두'는 그렇다쳐도, '삼미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과 '박민규'도 없이, 나는 지금껏, 도대체, 어떻게 인생을 살아올 수 있었단 말인가?
완벽하다. 적어도 내게 있어서는, 완벽한 소설이다. 사전지식도 별로 없었던 이 책 한 권 못 읽은 것이 왜 그렇게 오랫동안 마음에 걸렸는지 이젠 알겠다. <삼미>는, 내 운명이었던 것이다. 2004년 8월의 어느 날, <내 인생 최고의 소설>의 반열에 들, 그런 운명. 쓰고보니 오버가 심한 과찬...같기도 하다만.^^
이 모진 <프로의 세계>에서, 열심히 살았건만 평범할 뿐인 사람들, 그리고 진정 평범할 뿐이건만 <하류 인생>이라 눈총 받는 사람들과 이 책을 나누고 싶다. '브라보~'